『일기시대』 문보영, 그 무엇도 다름 아닌 ‘일기’

일기는 무엇일까? 한 날에 일어난 사사로운 일들의 기록, 타인에게 말 못할 비밀스러운 마음의 공간, 혹은 하루를 부유하는 생각들의 정리. 시인 문보영의 일기록 <일기시대>는 이와 같이 명확한 말로 경계 짓기 조금 힘들다. 그 모든 것이면서도 그 무엇도 아닌 것, 혹은 그 무엇도 다름 아닌 일기로서 일기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시인의 일기는 계속해서 들여다보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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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문보영 시인님. 반디앤루니스 독자 여러분에게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시 쓰는 문보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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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이 꽤나 독특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작가님이 운영하는 블로그 이름이기도 하지요. 『일기시대』는 어떤 책인가요?
『일기시대』는 그동안 쓴 저의 일기이기도 하고 동시에 일기란 무엇인가,에 관한 일기론이기도 해요. 이번 책에는 도면이 많아요. 제가 자주 이용하는 공간인 방, 도서관, 카페의 도면이에요. 그 공간에서 제가 어떻게 움직이며 무엇을 하는지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2부에 수록된 ‘시인기’ 시리즈는 제가 시를 처음 접하게 된 시절의 이야기예요. 종각에서 부모님, 조부모님 뻘 되는 분들과 함께 시를 공부했거든요. 더불어 새벽 12시에서 5시에 제 방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불면증이 있어서 늦게 잠들거든요. 어떤 독자 분은 집 안에 텐트를 치고 사는데 그 텐트에서 『일기시대』를 읽으셨다고 하셔서 무척 반가웠어요. 새벽에 쓰는 일기는 꼭 텐트 안에서 남 몰래 쓰는 기분이거든요. 『일기시대』는 그런 분위기에 어울리는 장난기 많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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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 일기를 써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작가가 되기 전부터 하루를 기록하셨다지요. 혹시 일기를 쓰게 된 첫 계기는 어떻게 되실까요?
사실 아주 오래된 건 아니에요. 대학생 시절에 문학회라는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거든요. 친구들이 블로그에 시를 올렸어요. 저는 친구들의 시를 읽었어요. 그러다가 공짜로 시를 읽는 게 미안해서 저도 블로그를 열어 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친구들도 일기를 올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일기를 쓰는 것만큼이나 친구들의 일기를 읽는 게 너무 좋았어요. 책에 쓴 것처럼, 누군가의 일기를 읽으면 그 사람을 완전히 미워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거든요. 그것이 일기의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선한 면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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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는 보통 타인에게 말하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순간들에 관한 기록인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고백처럼. 하지만 작가님의 일기는 꼭 그렇지만은 않아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밀스러우면서도 비밀스럽지 않게 느껴졌다고 할까요.
음...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일기가 자기 이야기만 하는 장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제게 일기는 ‘오늘 있었던 일을 기록한 글’이 아니라 장르가 정해지지 않은 글이에요. 구로이 센지의 <<에곤실레, 벌거벗은 영혼>>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와요. “모든 것을 알고 싶은 자는 자기 자신의 예를 통해 배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다만 자기 자신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되며, 적당히 봐주어서도 안 된다. 스스로를 마치 다른 사람인 양 엄격하게 다루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에곤실레의 자화상에는 자기 연민이나 자신에 대한 용서가 없다고 말해요. 제가 일기를 쓰는 이유는, 일기를 통해 저를 위로하거나 저 자신을 용서하기 위해서는 아닌 것 같아요. 그보다는 인간을 탐구하고 싶은데, 가장 쉬운 재료가 나 자신이기 때문에 저를 재료 삼아 사람을 공부하는 것에 가까워요. 돈이 안 들고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가 나 자신이니까요. 인간을 그리기 위해서 구체관절인형을 사서 근육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것처럼요.
모든 것을 알고 싶은 자는 자기 자신의 예를 통해 배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다만 자기 자신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되며, 적당히 봐주어서도 안 된다. 스스로를 마치 다른 사람인 양 엄격하게 다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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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일기를 쓰고 내보이는 일이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쓰는 마음들이 잉크 자국으로 기록되어 끊임없이 남들에게 그 속을 드러내야 할 테니 말입니다.
맞아요. 일기를 내보인다는 건 미움받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저 자신을 너무 희화화할 때는 내가 나를 너무 함부로 대하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하기도 해요. 그런데 그냥...일기를 쓸 때 ‘나는 광대다’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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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여서 그런 것일까요, 확실히 형식에 있어 자유로움이 돋보였습니다. 책의 곳곳에 직접 그린 그림들이 많이 보입니다. 글로 풀지 않고 그림을 그려 삽입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책에 <책에 그림이 많았으면 좋겠어>라는 꼭지가 있는데 그 뒤에는 그만큼 글을 안 읽어도 되니까....라는 속뜻이 숨어 있어요. 이번 책이 꽤 두껍거든요. 대신 그림이 있으면 독자들이 숨 쉴 틈이 있을 것 같더라고요. (웃음) 이건 농담이고요, 그림을 그렸을 때 이미지가 더 선명하게 전달될 것 같을 때 러프하게 그림을 그렸어요. 그리고 그림이 글의 엄숙함을 조금 덜어주면서 약간의 장난스러움을 부여하는 것 같아요.
내 생각, 아니 내 합리화에 따르면 귀찮음은 작품의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다.내 생각, 아니 내 합리화에 따르면 귀찮음은 작품의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다.
귀찮음은 귀한 소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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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글의 곳곳에 유머러스함이 짙게 묻어나고 있습니다. 친구들의 이름-인력거, 처천재, 흡연구역-부터 시작해서, 줄임말, 괄호 안의 속마음 드러내기 등 시인님의 재치가 잔뜩 느껴지는데요. 통상적인 고정관념, ‘문학하는 사람들은 정적이다’에 어긋나서 오히려 더 매력적인 글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저라는 인간은 굉장히 정적이랍니다. 조용한 공간을 사랑하고 평소에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요. 그런데 저라는 인간이 원체 재미가 없기 때문에 글에서라도 재미있으려는 게 아닐까요? 어디 가서 작가라고 말하면 ‘내 인생이 소설이야, 내 인생을 소설로 써줘’라고 말하는 분들을 뵙기 마련인데요. 그런 분들을 뵐 때마다 매번 신기해요. 제 인생은 죽었다 깨도 소설이 될 수 없을 것 같거든요. 너무 지리멸렬해서요. 그런데 오히려 별게 없기 때문에 소설을, 시를 쓸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 인생이 소설이라면 소설을 쓸 필요를 못 느낄 것 같거든요. 이미 삶이 소설일 테니까요. 반대로 제 인생은 너무 별게 없어서, 저만 빼고 다른 게 다 재미있어 보여요. 그리고 제 스스로라도 이야기를 만들어내서 저를 웃겨야 해요. 그게 제가 도서관에서 종일 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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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시인님의 친구들이 대거 등장하는데요. 그중 상상의 친구 뇌이쉬르마른이 눈에 띕니다. 프랑스의 한 도시이름이기도 하다지요. 뇌이쉬르마른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소개 부탁드려요.
네, 맞아요. 뇌이쉬르마른은 저의 상상의 친구이고, 제 글에 자주 등장해요. 어릴 적엔 상상의 친구가 없었는데 다 커서 상상의 친구가 생겼어요. 사실 작년에 번-아웃이 왔어요. 독자들에게 편지와 일기를 보내는 서비스를 몇 년간 했거든요. 그 번-아웃은 다름 아닌 ‘나’라는 화자를 더 이상 쓸 수 없는 번-아웃이었어요. 일기 탈진이 온 거예요. 그래서 삼인칭을 쓰기 시작했어요. ‘나’로 시작하지 않는 문장을 쓰니 살 것 같았어요. 그렇게 소설을 끄적이게 되었는데요. 그런 과도기에서 일기를 쓸 때도 ‘나’가 아닌 다른 인물이 필요했고, 그렇게 해서 지어낸 상상의 친구가 뇌이쉬르마른이에요. 뇌이쉬르마른은 제가 혼잣말을 하면 그 혼잣말이 대화가 될 수 있도록 허공에서 나타나 대답을 해주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제게 들려줘요.
뇌이쉬르마른 : 넌 방에게 먹힌거야
나 : 그럼 이건 어때. 여기 문이 있어.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지. 그런데 문이 있던 자리가 벽이 되면 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
뇌이쉬르마른 : 벽이 문을 먹은 거야. 벽이 문을 뱉어야 나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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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의 마지막에 종종 취침시각 혹은 도서관 퇴근 시간 등 끝과 관련한 시간을 기재해놓으셨더라고요. 혹시 그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일기를 쓸 때 몇 시에 일어났는지 그리고 몇 시에 잤는지 기록하는 버릇이 있어요. 사실 저는 누가 저보다 늦게 잤다고 하면 위로가 되더라고요. 제 이상형은 저보다 늦게 잠드는 사람이거든요....(웃음) 그래서 누구보다 늦게 자는 사람으로서, 누군가에게, 그러니까 잠 못 드는 사람에게 당신보다 늦게까지 뒤척이는 인간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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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일기는 창작의 근간이 된다고 합니다. 물론 작가님께서는 일기일 뿐인 일기여도 상관이 없다고 하셨지만, 작가님의 시 혹은 산문이 된 일기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어떤가요?
정말 많아요. 소설을 쓰든 시를 쓰든 옛날 일기장부터 들춰보거든요. 예전에 쓴 일기를 전혀 다른 맥락에서 발화할 때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해요. 그런 식으로 일기를 활용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문보영이지만 가끔 내가 한 명이 아니라는 느낌에 사로잡히곤 한다. 내 영혼은 쫙 펼치면 줄줄이 손을 잡고 있는 접힌 종이 인형처럼 생긴 것 같다.그도 그럴 것이 나는 문보영이지만 가끔 내가 한 명이 아니라는 느낌에 사로잡히곤 한다. 내 영혼은 쫙 펼치면 줄줄이 손을 잡고 있는 접힌 종이 인형처럼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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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와 일기 쓰기는 글을 쓴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공유하지만, 형식도 내용도 판이하게 다릅니다. 어떻게 다른지, 혹은 왜 다른지 알 수 있을까요?
예전에 시를 발표해야 하는데 시가 없어서 일기를 발표한 적이 있어요. 일기도 시가 될 수 있지 않나, 하는 합리화를 하면서요. 그런데 다시 읽어보니 너무 별로인 거예요. ‘시인데 왜 이렇게 설명이 많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럼 일기에서 설명을 빼면 시가 되려나?’ 그래서 그 일기에서 설명인 부분을 모두 지워봤어요. 그러자 남은 것은 0이었어요. (일기-설명=0) 일기에서 설명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거예요. 일기가 곧 설명이니까요. 그러면 시는 설명을 배반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어요. 설명할 수 없는, 설명되지 않는 많은 감정과 상황과 현상을 직설적으로 내뱉고 튀는 거요. 그리고 설명 없이 누군가에게 가닿는 말,이 시가 아닐까 싶어요. 책에도 나오듯이 저 또한 시를 처음 접했을 때 이렇게 생각했어요. “한국어인데 외국어 같았다. 나는 이 외국어를 배운 적이 없는데 왠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해는 나중에 오는 문장도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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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펴내실 책들을 기약하며, 작가로서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싶으신지 또는 어떤 책을 만들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다음 주에 저의 첫 소설집 『하품의 언덕』이 나와요. 당분간은 다음 시집에 집중해야 하는데 소설 쓰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큰일입니다. 그리고 제가 만들고 싶은 책은 조금은 자유로운 책인 것 같아요. 시인지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분명하지 않은, 장르가 혼합된 책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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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 여러분에게 하시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부탁드립니다.
『일기시대』 표지의 그림은 파울 클레의 ‘건망증이 심한 천사’라는 작품이에요. 처음 이 그림의 이름을 듣고 울 뻔했어요. 제게 만일 수호천사가 있다면 건망증이 심한 천사일 것 같거든요. 건망증이 심해서 저를 수호하는 걸 자꾸 까먹는 것이죠. 문보영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하는데 자꾸 까먹어서 불행하게 만들었다가, 다시 본분을 되찾아 저를 행복하게 해줘요. 그런데 비단 제 수호천사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의 수호천사가 약간씩은 건망증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 책도, 그런 수호천사처럼 어딘가 빈틈이 많고 잠을 잘 못 자는 한 사람의 일기라고 생각하고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문보영
1992년에 제주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그는 바로 이듬해, 시집 『책기둥』으로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시집 『책기둥』, 『배틀그라운드』, 산문집 『준최선의 롱런』,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 산문집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등이 있다. 저서 활동 외에도 수기한 일기를 구독자에게 우편으로 부치는 ‘일기딜리버리’를 비롯해 시인의 일상이 담긴 브이로그, 독자들과 함께 일기를 쓰는 블로그 등을 운영하며 독자들과 활발한 소통을 하고 있다.
| Editor - 황승현
h_beatrice@bnl.co.kr
사진 - 저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