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 - 나를 온전히 바라보고 받아들이기

내 속에는 수없이 많은 ‘나’가 적재되어 있다.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나는 자꾸 내가 누구인지 헷갈리게 만들고, 그 방황 속에서 자꾸만 하나의 ‘나’로 수렴되길 원한다. 백은선 시인은 그런 나의 파편을 담담하게 주워, 유랑 속에서 온전한 자신으로 살아나가는 에세이를 썼다. “이제 내 꿈은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끔은 울음을, 또 가끔은 웃음을 유발하는 그의 글을 읽다보면, 알다가도 모를 ‘나’를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자신을 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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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백은선 시인님. 반디앤루니스 독자 여러분에게 본인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반디앤루니스 독자 여러분. 저는 시 쓰는 백은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시를 쓰는 날보다 아이를 보고 수업을 하는 날이 좀 더 많은 시인이고요. 저는 엉망진창이면서, 반성하고 후회하는 데에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어요. 이런 재능을 어디에 써먹나, 쓸모없다. 그렇게 생각하곤 했는데 마침내 산문집을 만나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세상 기준으로 본다면 형편없는 사람이기도 하고 어떤 단면만 본다면 꽤 훌륭히 어른으로서의 삶을 흉내 내고 있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그게 단지 역할 놀이의 일종이기 때문에 바깥에 나가면 쉽게 방전되곤 합니다. 혼자 있는 걸 몹시 좋아하는데 외로움을 많이 타서 늘 뭔가 나사가 하나 빠진 상태로 연명 중입니다.

저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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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는 무엇에 관한 책, 혹은 어떤 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집에 있음 사람이 그립고 밖에 있음 집이 그립듯,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으로 우왕좌왕 좌충우돌 성장하는 저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저에게는 엄마, 작가, 가사노동자, 선생, 딸 등 해나갈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역할이 있는데요. 그 역할들 사이에서 전환이 어려워 슬퍼하는 저와 제 내면에 어린이를 다독이면서 일단 오늘만 살고 보자, 그런 마음들을 다각도에서 살펴본 것이 이 책인 것 같아요.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인간의 다면성, 파편성을 어떤 정해진 하나의 틀에 집어넣기보다 그대로 보여주고자 노력했습니다.
더해서, 저는 <언브레이커블 키미슈미트>라는 미드를 좋아하는데요. 극 중, 어린 나이에 납치를 당해 벙커에서 성장하며 강제 노역을 하는 키미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러한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키미는 단 한 번도 운 일이 없다고 하는데요, 누군가 그 이유를 물으니 레버를 한 번 돌리는 건 쉽고, 그 한 번을 돌릴 수 있다면 열 번을 돌리는 것도 가능하다고, 자신은 천번 만번은 생각하지 않고 매 순간 한 번에 집중하면서 현재만 생각했다고 그렇게 (정확하지는 않은데 제 언어로 이해하자면 그랬답니다.) 이야기해요. 저는 바로 그러한 키미처럼 사는 저의 삶을 쓰고자 했어요. 물론 키미처럼 어른스럽지는 못했고 만 번을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아 얼어붙고 엉엉 울어버리는 제게 “한 번만 생각하자”고 늘 말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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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문학동네에서 연재하셨던 글을 엮어 이번 산문집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를 펴내셨습니다. 당시 글의 제목은 『우울한 나는 사람이에요』로 알고 있는데요, 어쩌다가 책의 제목을 바꾸시게 되셨나요?
책의 제목은 담당 편집자 이재현 편집자님이 정해주셨습니다. 아무래도 우울에만 초점을 두다 보면 책이 좁은 의미로 읽힐 것을 염려하셨던 것 같아요. 두고두고 생각하면 할수록 좋은 제목인 것 같아서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제목뿐 아니라 이 책은 재현 편집자님의 손이 거치지 않은 구석이 없어요.
편집자님의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면 이 책이 입사 후 첫 담당 편집이라고 해요. 그래서 정말 많이 아껴주시고 마음을 많이 써주셨지요. 편집자님이 아주 열정적이셔서 저는 믿고 따라가기만 했어요. 저의 첫 산문이자 첫 담당 편집인 책! 저희 둘에게 의미가 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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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 출간했던 시집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들로 만들어진 필름』 이후, 2년 만에 산문집으로 돌아오셨는데 아무래도 본업이 시를 쓰시는 일이다보니 산문집으로 책을 출간하신 소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책에도 썼지만 저는 늘 산문을 쓰는 일에 주저하는 편이라 제가 단독으로 산문을 묶어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연재하지 않았던 산문 다섯 편이 함께 들어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연재했던 원고를 모은 것이니, 연재라는 형식이 없었다면 이렇게 책이 나오는 게 어렵지 않았을까 싶어요.
회포는 음…… 약속을 지켜내서 다행이다, 하고 생각하고 있고 근래 책이 잘 팔린다는 소식을 들어서(웃음) 정산을 기다리며 두근거리고 있어요. 시집보다는 더 내 책 같은 느낌도 들고 그래요. 어째서 그럴까 생각해보면 시를 쓸 때는 거리를 두는 방법을 많이 생각하며 쓰는데 산문은 최대한 나를 뒤집어 다 보여주자는 생각을 하면서 썼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정말 많이 창피하기도 하고 그래요. 책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으면서도 아무도 읽지 않았으면 싶기도 하고 모두가 읽고 나를 이해해줬으면 하는 이상한 마음이 들어요. 저 웃기죠.
이 두서없음이 현재 우리가 처한 삶 그 자체라고 생각해서 일부를 삭제하거나 들어내지 않고 그냥 그대로 송고하기로 한다. 중심없이 흔들린다. 불안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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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산문 사이를 우왕좌왕하며>에서 보면, 시를 쓰는 본인은 종종 본인을 넘어가지만 산문을 쓰고 있는 본인은 한 문단을 끌어갈 호흡도 없다고 말씀하셨는데요. 확실히 시와 산문은 사용되는 그 언어와 구조가 다르고, 써내려가는 마음도 서로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다르죠. 시는 말씀해주신 것처럼 쓰다 보면 제가 저를 넘어서는 지점들을 만나곤 해요. 써놓고 와 내가 이걸 어떻게 썼지? 싶은 순간도 있고요. 제가 어디까지 갈지 저도 모르는 상태로 돌입하고 갈 수 있는 한 멀리 가보려고 하죠. 산문을 쓸 때와 시를 쓸 때는 ‘눈’이 바뀌는 것 같아요. 범박한 예를 들자면 시를 쓸 때 새의 눈을 장착한다면 산문을 쓸 때는 곤충의 눈을 장착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풍경이 바뀌고 바뀐 풍경을 보는 마음의 자리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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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니할 수 없이, 시의 순간이 불쑥 글 속에서 나타났던 것 같습니다. 가끔은 일종의 작가 노트를 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시인이다 보니까 매일 하는 생각이 시 생각이고 내 생각을 쓰라 하면 시 얘기부터 나오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홍시에서 홍시 맛이 나니 홍시라고 하는 수밖에요. (웃음) 저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시다 보니까. 근데 독자분들은 시에 관심이 없어서 지루해하시면 어쩌지 하고 시 얘기를 덜 하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어쩌겠어요. 제가 시인인걸.
책 나오고 엄마가 읽고 나서 “그동안 네 시를 하나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산문집 읽고 나니 시집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동안 엄마는 제 시집을 드려도 한 편 정도 읽고 꽂아두기만 하셨거든요. 그렇지만 산문이라는 렌즈로 시를 해석하려고 하게 되면 시가 갖고 있는 세계가 축소되거나 왜곡될까 걱정스럽기도 해요. 제 시의 화자는 저와 동일 인물이 아니니까. 단지 참고하기에는 좋은 글 정도로만 여겨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런 노파심에 산문을 쓰는 일이 더 지난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나는 시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말은 ‘언제까지나’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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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글에는 마치 고백과도 같은 솔직함이 묻어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너무도 인간적인 순간들이 그리고 그것의 개시가 이 산문의 큰 매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분명 쉽지 않은 일이셨겠지요.
쉽지 않았지만, 제가 중간이 없어서…… 전부가 아니면 무라고 생각했어요. 중간이 없는 저를 싫어하지만 조절이 안 되더라고요. 완전히 솔직하던지 전부 꾸며 쓰던지(절대적 허구는 없겠지만) 그런 기로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솔직한 게 최고다”라고 자주 생각하는 편이기도 했고 또 제가 글을 잘 못 쓰니까 솔직함만이 제가 가진 미덕이라고 믿고 투신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글이라는 게 전혀 가공되지 않는 것도 불가능하니까 어느 정도는 선택된 솔직함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고소당할 수도 있고, 너무 없어 보일 수도 있고 그런 고민은 계속했던 것 같아요. 웃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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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며칠간 이 책을 반복하며 읽었습니다. 자꾸만 떠오르는 구절들이 저를 놓아주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요? 작가님에게도 그런 구절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요, 혹시 어떤 부분인지 알 수 있을까요?
저는 <시와 산문의 사이를 우왕좌왕하며>하고 마지막의 <나오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줄곧 사랑했기에 때로 나라고 여겼던 것을 이제 손에서 놓을 수 있다” 근데 못 놓고 있어요. 어떻게 해요. 쓸 때는 놓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글로 쓰면 응어리가 풀릴 것 같고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마음들이 있었어요. 대나무 숲 같은 거였어요. 근데 막 실컷 소리 지르고 산에서 내려왔는데 마음이 시원하지가 않고 어째 되레 슬픈 것 같아요. 글이 발화되는 순간에는 그 글을 영원히 못 박아두고 싶으면서 완전히 내게서 분리시키고자하는 마음이 한자리에 있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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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산문집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산문집을 내지 않으리라 다짐하셨는데요, 작가님의 산문에 며칠간 헤어날 수 없었던 저로서는 아쉽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물론 산문을 쓰시면서 느끼셨을 심적 피로도가 글 속에서 역력히 묻어나와 더 바랄 수는 없겠지요. 다만, 출간 예정의 책들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어떤 책들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간 예정이던 다른 산문은 계약을 파기했어요. 그 출판사 쪽에 죄송해서 말씀을 드리기 어렵지만 산문집을 쓰면서 시를 못 쓰게 되어 너무 힘들었거든요. 죄송합니다. 사람에게는 언어 총량의 법칙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 언어를 이제는 시를 쓰는 힘으로 가져오고 싶어요. 언젠가는 마음이 변할지도 모르지만(이렇게 막 무리수 두고 그러면 안 되겠지만요.) 당장은 시를 더 열심히 쓰고 싶어요.
그리고 4월 5일에 새 시집 <도움 받는 기분>이 나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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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펴내실 다른 책들을 기약하며, 작가로서 어떤 지향점을 갖고 계신지 그리고 어떤 글, 또는 시를 쓰고 싶으신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저도 스스로에게 자주 묻곤 하는데 도무지 모르겠다는 대답만 돌아와요. 음, 확신하거나 단정하지 않는 글을 쓰고 싶어요. 늘 내가 모른다는 걸 견지하면서 써나가고 싶어요. 그리고 제 시 세계를 더 밀고 나아가고 확장하고 싶은 게 제 바람이에요. 방향은 아직 미정이지만. 이제 십 년차 작가인데 아직도 어떻게 시 쓰는지 잘 모르겠어요. 시인 친구들을 만나면 자주 물어봐요. “시 어떻게 쓰는 거야?” 근데 또 그걸 알게 되면 못 쓸 것 같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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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실 독자분들께 자유롭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제 글이 조금이라도 독자분들에게 용기를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늘 문을 열고 밖에 나갈 용기, 설거지를 할 용기, 밥을 먹을 용기, 하고 싶은 말을 써볼 수 있는 용기. 각종 용기를요. 동질감을 느낀다고 말씀해주신 분들이 꽤 있었는데, 그때마다 내가 막 다 틀린 인간은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정말 다행스럽고 감사했어요.

저자 제공
백은선
198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2년 [문학과사회]로 등단하였다. 시집 『가능세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들로 만들어진 필름』, 『도움받는 기분』, 산문집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 등이 있다.이 있다. 2017년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했다. 아무것도 확신하지 않고 끝없이 질문을 던지고 싶다. 나 자신의 바깥으로 가고 싶다고 늘 소망하면서도 나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슬퍼지곤 한다. 도저히 아직은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모든 일에 격렬한 동시에 의연해지고 싶다.
| Editor - 황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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