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영 ZERO 零』 김사과 ‘텅 빈 인간의 식인’
* 해당 인터뷰는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독자를 위해 출판사 서평 이상의 스포일러를 싣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도시에 괴물이 살고 있다. 아름답고 영리하여 뭇 사람들의 호감을 받는 괴물이다. 괴물은 도시에 살기 위한 모든 조건을 갖췄다. 부유하며, 높은 학력에, 누구나 인정할 만한 사회적 지위까지. 만약 그런 괴물이 당신을 잡아먹으려 든다면, 당신은 과연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까. 소설가 김사과가 그리는 세계에서 식인은 더할 나위 없이 조용하고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 피가 튀기지도 비명이 들리지도 않는 이 투명한 폭력은, 그러나 읽는 순간 지독한 익숙함에 몸서리치게 될 것이다. 책장을 끝까지 넘기고 난 뒤 책을 덮고 주위를 둘러보라. 당신의 가까운 곳에 괴물이 있지는 않은지.
“일단 정신을 차리고 은밀히 도망칠 방법을 찾아보세요.”
안녕하세요, 작가님. 반디앤루니스의 독자분들께 작가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소설가 김사과입니다.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너는 영혼이 없어. 이해해? 젠장 어떻게 이해하겠어, 영혼이 없는데……. 너는 완전히 제로야. 완전히 텅 빈…… (162p)
지난 11월 출간된 『0 영 ZERO 零』은 어떤 소설인가요? 간단히 설명해주신다면요.
『0 영 ZERO 零』은 1인칭 시점에서 반사회적인 인물의 내면과 그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보통 미디어에 등장하는 반사회적인 인물은 남성이거나 폭력적인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여성이고, 사회에 잘 적응하였고, 아무런 눈에 띄는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지 않아 독특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한편으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설정이라서 현실적으로 읽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0 영 ZERO 零’이라는 다소 독특한 제목을 어떻게 부르면 좋을까요? ‘0’을 반복적으로 넣은 의도가 궁금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불러보았는데요, 빠르게 영영영영 하고 부르는 것이 꽤 재미있다는 걸 최근 깨달았습니다. 사실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 제목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막연히 0이라는 의미를 담은 제목은 어떨까, 하고 임시로 제가 아는 0이라는 의미가 담긴 언어를 모두 적어놓았어요. 그랬던 것이 나중에 편집자님의 추천으로 정식 제목이 되었습니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머리를 굴리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게 전부예요, 여러분. (55p)
이전 소설 『N.E.W』에서는 재벌2 세와 5평 원룸에 사는 인터넷 BJ라는 양극단의 인물을 다뤘었지요. 이번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주인공을 비롯하여 대부분 고학력자에 부유하고 안정적인 사회적 계급을 확보한 중산층입니다.
이번 소설에서는 한국의 여유로운 중간계급에 대해서 탈낭만적으로 접근해보고 싶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악마적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잘 교육받은 한국의 중산층 여성으로, 이상적인 정신세계를 가졌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한국의 중산층은 매우 흥미로운 소재라고 느낍니다. 앞으로도 계속 연구해보고 싶습니다.
『0 영 ZERO 零』의 ‘나’와 마찬가지로 전작 『N.E.W』와 『천국에서』도 사람들이 몹시 불편해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요. 이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택하는 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현실에서 사람들의 신기하거나 엉뚱한 점을 발견하면 호기심이 생깁니다. 그 호기심을 충족해나가다 보면 소설 쓰기로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작품 속 ‘나’는 먼저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고 만다는 식인食人의 세계관을 가졌기에 주변인을 은밀하고 계획적으로 불행에 빠트려 몰락시킵니다.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잡아먹는 일련의 과정은 ‘나’의 입을 빌리자면 “완벽했”(20p)지요. ‘나’의 시선에서 벗어나 작품 속 주변 인물이 보기에는 어땠을지 궁금해집니다.
현실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주위에 있는, 비슷한 학벌과 직업, 경제적 위치와 취향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 무의식적으로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니까 나쁘지 않다고 단정한 다음, 그 이상은 타인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거죠. 그래서 주인공에게 직접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간주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물론 조금만 주의 깊게 관찰해보면 이상하고 수상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을 테고, 그렇다면 피하겠죠.
만약 소설 속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요.
일단 정신을 차리고 은밀히 도망칠 방법을 찾아보세요.

(이미지 제공=작가정신)
책에 소설과 함께 대담을 실었습니다. 이 대담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길 바라며 싣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책이 다루는 소재도 그렇고, 결말에 충격적인 부분이 있어서 소설을 읽으신 분들이 책을 덮으며 의문에 빠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딱딱한 평론을 싣기보다는 대담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제가 책을 쓰게 된 계기라던지 이 책을 둘러싼 이야기를 전달하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작업의 뒷이야기를 묻고 싶습니다. 작업하는 동안 즐거웠던 점이나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중편 분량의 소설을 써본 건 처음인데, 짧지도 길지도 않은 게 쓰는 입장에서 쾌적한 포맷이었습니다. 어려운 점이라고 한다면 주인공이 가진 언뜻 평범하면서도 괴상한 분위기를 너무 과하지도 밋밋하지도 않게 표현해내기 위해 분위기를 조율해내는 것이었습니다. 초반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소설 본문에 에미넴의 노래 가사가 등장해요. 소설 작업에 노래 등의 영감을 많이 받는 편인가요?
글을 쓰면서 에미넴의 The Marshall Mathers LP 앨범을 많이 들었습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Kill You〉보다는 〈Criminal〉을 더 많이 들었어요.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계속해서 사람을 잡아먹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데, 이 부분은 루쉰의 〈광인일기〉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인터뷰가 나가는 오늘은 2019년을 하루 남겨둔 날입니다. 작가님의 2019년을 마무리하는 소감과 2020년의 계획이 듣고 싶어요.
저에게는 매우 뜻깊은 한 해였습니다. 마침내 운전면허를 땄고,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소설 『0 영 ZERO 零』이 무탈하게 출간된 것도 기쁩니다. 2020년에는 에세이집을 집필할 예정이고요, 계속해서 프랑스어를 공부하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유롭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이미지 제공=작가정신)
김사과
1984년 서울 출생. 2005년 「영이」로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 소설집 『02』『더 나쁜 쪽으로』, 장편소설 『미나』『풀이 눕는다』『나b책』『테러의 시』『천국에서』『N.E.W』, 산문집 『설탕의 맛』『0 이하의 날들』이 있다.
글 | Editor - 임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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