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의 시간』 이종열 ‘피아노에 빛을 불어넣는 사람’

대한민국 조율 명장 1호, 예술의 전당 수석 조율사. 대한민국 클래식 공연 역사의 산증인을 만난다는 긴장감도 잠시, 에디터들을 몸소 맞아준 건 서글서글하고 상냥한 인상의 이종열 선생님이었다. 그를 따라 무대 뒤편의 사무실까지 향하는 동안 이종열 조율사는 마주치는 직원마다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나이에 관계없이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존중하고 먼저 인사를 건네는 그의 모습은 과연 인간적인 존경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60여 년 동안 ‘조율’이라는 한 우물을 판 덕에 지금은 물이 펑펑 나오는 우물을 갖게 되었다는 이종열 조율사. 대한민국 최고의 조율사를 만나 『조율의 시간』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이 책이 전문 조율사도 좋지만 일반인들한테 많이 읽히길 바라면서 썼어요. 조율이란 무엇인지, 조율사가 단순히 땡땡 건반만 누르다 가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조율을 잘 모르는 사람이 나를 보면 피아노 고쳐 주는 아저씨에 불과할 테지만, 나는 조율은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5p)
이종열 선생님, 안녕하세요. 책이 나온 지 한 달 정도가 지났습니다. 요즘은 어떤 일상을 보내고 계신가요?
책을 낸 뒤로 인터뷰가 많이 들어와요. 오늘도 오전에 인터뷰 하나 하고 지금 또 하고 있어요. 잡지 표지에도 실리고 팟캐스트도 나가고 그래요. 후배들이 인터뷰 같은 거 들어오면 다 나가래요. 나가서 조율사가 어떤 사람인지 알리고 이미지 개선도 하고 그러라고. 그래서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어요.
조율 일은 평소처럼 하고 있어요. 예술의 전당은 월요일이 휴관이라 월요일 말고는 매일 출근해서 그날 사용될 피아노를 조율해요. 오늘은 오전 10시에 인터뷰가 있어서 아침 7시 반에 출근했어요. 아침에 2대를 조율하고 왔어요. 일을 끝내놓지 않으면 다른 걸 못해요, 온 신경이 피아노한테 가 있어서. 아침 일찍 얼른 조율을 마쳐놔야 마음이 편하죠.
스케쥴표가 정말 빈틈없이 빡빡하네요. 조율만 하기에도 바쁜 삶을 살아오셨을 것 같은데, 틈틈이 글을 써 책으로 내신 것이 존경스럽습니다. 책을 내야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하게 되셨을까요?
제가 낸 책은 이게 두 번째입니다. 처음은 피아노 조율에 관한 기술자들이 보는 책을 냈어요. 번역서 아니면 번역서 짜깁기한 책만 보는 현실이 안타까워서 후배들에게 기술을 전수하고자 하는 마음에 쓴 책이에요. 그러고 나서는 틈틈이 쓴 글을 모아서 책으로 낼까 싶었는데, 아는 출판사도 없고 출판 쪽 사람 중에 아는 이도 없으니 전에 조율 책을 낸 음악 출판사에 가져갔어요. 거기서는 원고를 보더니 책으로 만들 자신이 없대요. 한 번 거절당하니까 자신감이 없어져서 원고를 그냥 가지고만 있었어요. 2년 동안이나 그렇게 가지고만 있었는데 어느 날 민음사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내가 쓰는 글은 연주평을 전혀 배제하고 조율에 관한 특별한 또는 괴상한 주문 등을 기록으로 남겨 보고 싶은 일념에서 시작한 것이다. (148p)
민음사에서 선생님이 원고를 이미 써서 가지고 있는 걸 알고요?
아니, 아무한테도 이런 거 썼다 얘기를 안 했는데 어떻게 알고 연락했는지 몰라요. (웃음) 담당 편집자님이 지메르만 내한 공연에 가려다 티켓을 못 구해서 이리저리 기사라도 찾아보다가 내 얘기를 알게 됐대요. 그래서 이분은 뭔가 재밌는 얘기를 많이 가지고 있을 것 같다, 싶어서 연락했답니다. 그런데 마침 제가 원고를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만나서 얘기하고 사흘 만에 계약서를 가지고 다시 찾아왔어요. 내가 어디 도망갈까 봐 선인세라고 얼른 돈도 넣어주더라고요, 하하.
책 낸 뒤로 출판사에 이 책 대필한 거 아니냐는 질문이 많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기술자가 어떻게 이런 글을 다 썼냐고요. 예전에 1978년도에 잡지에 글을 연재한 적이 있어서 그때 글도 조금 실었고, 새로 쓴 글도 많아요. 편집자가 말하길 글에 제 특유의 화법이 있는데 그걸 살리면서 교정을 봤다고 해요. 제가 전주 출신이라 전라도 말씨가 들어갔나 봐요, 하하.
얼마 전에 출간 기념으로 독자와 만나는 자리가 있으셨다고요. 분위기는 어땠나요?
풍월당에서 했는데 거기 피아노가 한 대 있어요. 피아노를 열고 즉석에서 조율 시범도 보여주고 연주도 하면서 진행했습니다. 원고도 없이 마이크 하나 덜렁 쥐고 했어요.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것처럼 그냥 얘기했는데 폭소가 여러 번 나왔어요. 어느 부분에서 나온 건지 모르겠네. (웃음) 책을 읽은 분들이 의외로 재미있었다는 얘기를 많이 해줬어요. 조율에 대한 이야기도 전문 지식 없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써서 참 재밌게 읽었다는 얘기를 많이들 해주시더라고요.
저도 피아노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아주 재밌게 읽었습니다. 조율과 음악에 대해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이 책이 전문 조율사도 좋지만 일반인들한테 많이 읽히길 바라면서 썼어요. 조율이란 무엇인지, 조율사가 단순히 땡땡 건반만 누르다 가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앞부분엔 제가 태어나서 조율사가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쓰다 보니 자서전 같은 느낌이고, 뒷부분엔 조율의 기술적인 이야기를 일반인도 쉽게 알 수 있도록 썼어요. 중간은, 뭐, 음악가들 만나면서 있었던 일이랑 제가 일 잘했다는 자랑이네요. (웃음) 사실 책머리에 이런 얘기도 썼어요. ‘실제로 내가 공연장에서 일을 잘 못 하고 실수해서 망신을 당한 일이 한 번도 없다, 하지만 독자가 보기에는 “이 사람 자기 잘한 얘기만 골라서 했네”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고요. 그런데 출판사에서 이렇게까지 겸손할 필요는 없다면서 빼버렸어요. (웃음) 하지만 사실이 그래요. 그렇게 큰 실수를 했으면 지금까지 수석 조율사로 일하고 있을 수가 없겠죠.
풍금 뒤의 뚜껑을 열고 리드를 빼냈다. 당시의 풍금, 곧 리드 오르간은 발로 페달을 밟아 바람을 넣어서 소리를 내는데, 이때 공기가 리드(reed)를 진동시킨다. 보니까 진동판이 하모니카처럼 생겼기에 고정 부분 안쪽을 좀 깎아 보았더니 음이 낮아졌다. 안쪽 부분이 얇아지면서 탄력이 줄어드니까 진동이 느려진 것이다. 이번에는 끝부분을 깎아 보았다. 중량이 가벼워지니까 진동이 빨라져 음이 높아졌다. 아, 바로 이거다. 이렇게 높낮이를 잘 맞추어서 옆의 음과 서로 조화를 시키면 되는 구나. 이렇게 쉬운 것을! (31p)
『조율의 시간』을 읽으며 선생님의 굉장한 음악적 식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쌓아오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책에서도 말했지만 저는 스승이 없습니다. 전부 독학이에요. 대학도 안 나왔지요. 성격이 소심해서 고등학생 때 악기점에 가서 조율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가 “학생은 공부나 해”하고 일언지하에 거절당한 뒤로는 누구한테 가르쳐달라 소리도 잘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서점에다가 일제 조율 책을 주문하고, 일본어를 모르니까 책 읽으려고 그것도 또 공부하고, 조율 책 보면서 순정률이랑 평균율을 알고, 그렇게 혼자서 익혀나갔어요. 나중에는 음악사랑 작곡가 공부도 했지요. 음악사를 알아야 조율법을 알 수 있거든요. 바흐 시대까지만 해도 평균율 조율법이 아닌 순정률 조율법을 썼어요. 작곡가별로 자기 나름의 조율법이 있었지요. 그런 작곡가의 음악을 연주하는 날에는 그 조율법을 써야 하니 그런 공부도 스스로 했습니다. 누가 강제로 시켰으면 스트레스받아서 안 했을지도 몰라요. 혼자 스스로 미쳐서 했으니까 다 한 거지요.
▲ 이종열 조율사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시절 구입해 독학했다는 일본 조율 서적. 갈라진 책등과 갈색으로 바랜 책장에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지메르만 내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2003년 내한 공연에서 지메르만이 “미스터 리에게 감사한다”며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공식적으로 인사한, 한국 최초의 사건이었죠. 당시에도 대단한 화제였습니다.
지메르만은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인 동시에 굉장한 완벽주의자예요. 본인이 피아노 조율 기술을 갖고 있어서 조율에 굉장히 까다로울 뿐 아니라 공연에 쓸 피아노도 자기가 직접 주문해 고친 피아노를 들고 날아왔습니다. 그런 사람이 관객 앞에서 고맙다는 인사를 해준 거죠. 나는 60여 년 동안 조율하는 일을 해왔지만 연주자가 그렇게 공개적으로 칭찬해준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나한테 처음으로 그런 인사를 해준 게 세계 최정상의 연주자인 거예요.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죠.
▲ 인터뷰를 진행하는 중 사무실에 놓인 텔레비전에서 마침 피아노 조율에 관한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땡, 조율한 피아노의 건반을 눌러보는 소리에 이종열 조율사의 시선이 금방 텔레비전 화면으로 향했다. “지금 소리 안 맞는데.”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그의 귀는 모든 소리에 예민하게 열려 있었다.
높은 연세에도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데요. 특별한 건강 관리 비법이라도 있으신가요?
특별한 건 안 해요. 하루에도 이곳저곳 조율하러 돌아다니는 것만으로 몸을 많이 움직이게 되거든요. 담배는 아예 안 하고, 술은 젊었을 때 이후로는 끊었어요. 사실 내 또래의 남들 다 하는 등산도 안 하고, 낚시도 할 줄 모르고, 여가가 거의 없어요. 가끔 일이 없는 날에 모아둔 LP판을 듣거나 하지요. 무엇보다 매일 일어나서 출근할 곳이 있고 할 일이 있다는 게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 나한테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느껴요.
조율은 지극히 인간적인 일이다. 지금 지구상에 가장 우수하다는 전자 조율기로 조율을 하고 청각으로 검사해 보면 오차가 상당히 많다. 이는 그냥 오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화음을 저해한다. (282~283p)
인간의 많은 일을 기계가 대체하는 시대입니다. 국내의 조율사 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지요. 기계로 따라잡을 수 없는 청각 조율만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기계는 반음의 백 분의 일까지 인식해서 알려줍니다. 그런데 인간의 귀는 그것의 오분의 일까지도 더 쪼개서 들어요. 그러니 사람 귀는 반음의 오백분의 일까지도 듣는 거지요. 피아노 줄에 미세한 오염, 땀이나 담배 연기로 인한 얼룩 조금만 있어도 음이 또 달라져요. 기계는 그런 다양한 부분까지 인식하지 못하지요. 잘 들을 줄 모르는 사람보다야 기계로 하는 전자 조율이 낫겠지만, 항상 가장 아름다운 건 사람의 귀로 듣고 하는 청각 조율입니다.
건반 악기의 조율이란 건 한 개의 음을 정할 때 위아래로 묻고 결정하는 일이에요. 가장 민주적인 정치를 ‘조율’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조율사들은 조율의 다른 말을 ‘타협’이라고 해요. 5도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4도에게도 물어보고 6도에게도 물어본 뒤 아무에게도 불만이 없는 그 자리에 5도를 세웁니다. 그게 조율이에요.
마지막으로 반디앤루니스 독자들에게 자유롭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조율사를 꿈꾸는 사람이 봐도 좋겠지만, 일반인이 많이 읽어줬으면 하고 썼어요. 이만큼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끈기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저는 60여 년 동안 한 우물만 판 덕분에 지금은 물이 펑펑 나오는 우물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좀 쓸만한 기술을 갖게 됐다고 여기는데 80세예요. 그런데도 아직도 조율은 어렵고 배움에 끝이 없습니다. 후배들은 제가 일하는 걸 보고 “선생님 고만하세요, 선생님이 대충 한 것도 다른 사람이 열심히 한 것보다 나아요”라고 하는데 누가 보기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이 장인으로서 대충하는 걸 용납할 수가 없어요. 후배들에게는 이런 교훈을 심어주고 싶었고, 일반인들에게는 조율에 대한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랐습니다. 이 기회에 조율사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으면 좋겠어요. 공연을 만드는 건 피아노가 삼 분의 일, 조율사가 삼 분의 일, 그리고 연주자가 삼 분의 일입니다. 조율사가 있어 줬기에 그날의 공연에 아름다운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이종열
1938년 전주에서 태어나 1956년 피아노 조율에 입문했다. 수도피아노사와 삼익피아노사를 거쳐 프리랜서 조율사로 독립했다. 세종문화회관, KBS홀, 호암아트홀, 국립극장 등 주요 콘서트홀에서 조율을 했으며 현재 서울 예술의전당과 롯데콘서트홀 수석조율사로 재직 중이다. 한국피아노조율사협회 고문, 튜닝아트 대표를 맡고 있으며 (사)한국피아노조율사협회 교재편찬위원으로서 『피아노의 조정』, 『피아노의 정음』을 썼다. 2007년 산업자원부 피아노조율부문 명장 1호로 선정되었다.
글 | Editor - 임채원
chaewon418@bnl.co.kr
사진 | Editor - 조은혜
zzonis@bn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