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혼자에게』 이병률 ‘누구에겐가 바람을 부쳐주는 사람’

혼자여서 가능한 일들이 있다. 마음속에 들어앉았던 한 사람을 돌려보내는 일, 그 누구도 아닌 나만을 위한 여행을 떠나는 일, 깊은 내면에 빠져보는 일…. 언젠가 꼭 필요한 그 시간은 생각보다 더 외롭고, 길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 서늘한 시간을 걷고 있을 수많은 혼자에게 이병률 시인이 손을 건넸다. 산문집 『혼자서 혼자에게』에 담긴 그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혼자로서의 날들이 왠지 조금 더 괜찮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음에도 온기가 필요한 이 계절, 이병률 시인이 일으킨 바람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이미지 제공 = 달 출판사
반갑습니다. 이번 책 출간 이후 어떤 일상을 보내고 계신가요?
안녕하세요. 출간 이후 독자들 만나는 시간도 많이 가지면서, 역시나 혼자 숨어보는 일도 병행하면서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제목의 의미가 궁금했습니다. 홀로 살아가는 이에게 전하는 이야기일 거로 짐작하면서도 한편으론 시인 스스로에게 띄우는 편지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네, 저에게 하는 말로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저를 타이르고 힘을 북돋아줘야만 살아갈 수있으니까요. 그러다가 이 혼자가 혼자를 잘해주면 꽤 괜찮은 내가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러다가 많은 사람들이 ‘혼자를 경영’하는 일에 대해 잘 생각하지 않으면서 살고 있는 것도 같았고요.
혼자여도 그런대로 괜찮은 계절에 이 책을 만나니 더없이 좋았습니다. 책에서 “혼자 있을 핑계로 나는 모든 계절을 탈 것”이라고 하셨지요. 시인께도 특별히 혼자 있기에 더욱 좋은 계절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처럼 찬바람이 부는 이 계절 아닐까요. 우리는 요즘 고개를 들어 겨울이 도착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게도 되지만 그러다가 자꾸 고개가 우리 내면으로 향하고 마는 어쩔 수 없는, 시기 같습니다.
딱히 어떤 결과를 바라서는 아니겠지만 혼자 있을 핑계로 나는 모든 계절을 탈 것이고 좀더 잔혹하고 괴팍한 외로움을 즐길 것이다. 그러다 혼자에게 말을 걸어 괜찮냐고 물을 것이다.
2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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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로서의 시간은 막막하고 외로운 듯하지만, 오롯한 사유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병률 시인에게 ‘혼자’는 어떤 의미인가요?
많은 것들과 분리되어 있는 시간이에요. 그 중에 여행을 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고요. 혼자 있다보면 그제서야 온전히 제대로 느끼고 감각하는 것들이 많아지죠. 단지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던 대상이 와락,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애정 어린 대상으로 바뀌는 것도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에 가능하지요.
『혼자가 혼자에게』를 읽고 전해온 반응 가운데 인상적인 반응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이젠 혼자만의 여행을 준비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은 친구도 있었고, 정신적으로 찬물을 끼얹는 듯한 시원시원한 생각의 줄기들이 좋았다는 분도 계셨어요. 독자들의 반응을 직접 육성으로 듣는 기회가 많은 요즘인데, 누구에겐가 바람을 부쳐주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제 마음을 읽어주셔서 고맙고 고마울 뿐이에요.
내가 나에게 부채질을 하지 않고 어떻게 혼자일 수 있겠는가. 내가 남에게 그것조차 하지 않고 살기로 한다면 나 사는 자리에 어떻게 어떤 빛이 비치겠나.
272, 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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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혼자 여행을 마음먹은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낯선 곳에서 혼자의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까요? 그런 분들에게 전할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처음에는 혼자라는 사실이, 들고 온 여행가방보다 몇 배나 무거울 거예요. 하지만 큰 계획이나 그림 없이 일정을 텅 비워놓은 상태에서 많이 걸으세요. 보는 대로 느끼시고요. 혼자 있는 시간을 이대로 방치하다보면 “이제 좀 내 시간을 어질러볼까?” 하는 순간이 차오르거든요. 모든 걸 흡수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얼굴 전체로 피어오르게 가끔 표정 관리도 해보세요. 풍경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거나 낯선 사람이 웃으면서 말을 걸어오는 아주 짜릿한 순간들을 만나게 되실 거예요.
혼자 있는 그곳은 속깊은 문장을 알려준다. 내가 숱하게 화를 내야만 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공손하게 손을 모으게 한다.
218쪽
“참 많은 여행을 했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이제는 어떻게 어떤 여행을 하는가가 중요한 차례가 되었다”(66쪽)고 하셨어요. 가까운 미래에 앞두고 계신 여행이 있나요? 어떤 여행인지도 궁금합니다.
독자들과의 아이슬란드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제가 해왔던 여행의 방식을 독자들과 나누는 모양으로 진행이 될 듯 싶습니다. “제가 하는 여행의 방식은 이렇습니다. 별거 아닌데 나쁘지 않지요?” 같은 식이겠죠. 혼자인 듯 또 여럿인 듯 떠나는 여행이에요.
책에 실린 이야기는 소재도, 그 시점도 각각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사람을 향하는 어떤 마음들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인께 ‘사람’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여쭙습니다.
사람요? 힘들어요. 근데 그만큼 좋은 게 없지요. 정말 정말 좋은데 징그러운 게 사람이기도 한 것이고. 사람 이제 그만 보고 싶다가도 사람 곁으로 돌아오고 마는 것. 그만큼 사람 안에서 신명 있게 살려고 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에요. 가끔은 저를 싫어하는 사람도 너무나 많을 거라는 쓸데없지만 중요한 생각도 하면서 살아요. 하지만 그것도 참 좋아요.
책에 실린 모든 글을 통틀어 단 하나의 문장을 꼽아주신다면, 어떤 문장이 될 수 있을까요?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책 속에 있는 “내 삶이 한 두가지 단어로 규정되지 않기를 바란다”(274쪽) 정도의 문장이면 어떨까 싶은데요. 저만이 아니라 누구나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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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넘기고 만난 “좋은 날이 많이 있었습니까”라는 문구를 곱씹어보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다정한 날도, 흐린 날도, 어딘가 씁쓸한 날도 혼자 얼마간의 시간을 갖고 쓰다듬으면 좋은 날이 되지 않을까 하고요. 시인께서도 이런 날들을 지내고 계신가요?
네, 조금은 이기적으로 저를 챙기게 되는 시기예요. 아주 좋아하는 계절이니까. 아끼고 싶은, 아주 야금야금 제 앞에 도착하는 시간들이 가슴 뛰기도 하는 걸 보면 분명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은 2019년은 어떻게 보낼 예정이신가요?
정리할 건 정리해야지 싶지만, 정리 안 되는 것들은 가만히 두려고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혼자를 살아내고 있는 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혼자라서 멋있는 사람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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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1967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좋은 사람들」,「그날엔」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저서로는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찬란』 등과 여행산문집 『끌림』(2005) 등이 있으며, 제11회 현대시학 작품상을 수상했다.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들을 순서대로 적어내려가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다가 실수처럼 그 길로 접어들었다. 스무 살, 카메라의 묘한 생김새에 끌려 중고카메라를 샀고 그 후로 간혹 사진적인 삶을 산다. 사람 속에 있는 것, 그 사람의 냄새를 참지 못하여 자주 먼 길을 떠나며 오래지 않아 돌아와 사람 속에 있다. 달라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진실이 존재하므로 달라지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전기의 힘으로 작동하는 사물에 죽도록 약하며 한번 몸속에 들어온 지방이 빠져나가지 않는 체질로 인해 자주 굶으며 또한 폭식한다. 술 마시지 않는 사람과는 친해지지 않는다. 시간을 바라볼 줄 아는 나이가 되었으며 정상적이지 못한 기분에 수문을 열어줘야 할 땐 속도, 초콜릿, 이어폰 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방적인 것은 도저히 참지 못하나 간혹 당신에게 일방적이기도 하다.
| Editor - 조은혜
zzonis@bn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