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디앤루니스 모바일

서점에서 만난 사람

『스페이스 보이』 박형근 “스스로 빅브라더가 되는 걸 경계해야 한다”


모든 것을 잊고 싶어 우주로 날아간 한 남자가 있다.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샤넬의 디자이너 라거펠트. 라거펠트의 모습을 한 외계인과 기이한 여행을 함께 한 남자는 지구에 돌아와 우주 대스타가 된다. 『스페이스 보이』는 우주를 소재로 하지만, 우주가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의 모습을 밝힌다. ‘스트레이트한 펑크록 같은 소설’ 『20세기 소년』으로 대한민국 디지털 작가상 대상을 받은 박형근은 2018년 스스로 ‘세르주루텐 향수 같은 소설’ 이라 말하는 『스페이스 보이』로 세계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우리 문학에 독특한 자신만의 지형을 만들어가고 있는 소설가 박형근과 서면으로 나눈 인터뷰를 전한다.

 




- 세계문학상 대상 축하드립니다. 수상 소감을 여쭤보고 싶어요.
시작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의 한계란 사고의 한계”라는 문구가 모티브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잊고 싶은 남자와 샤넬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등장해 “기억”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했고 큰 상금이 걸린 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 작가님의 두 소설 『20세기 소년』, 『스페이스 보이』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두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었나요?
대학 때부터 소설로 써보고 싶다고 생각한 소재가 3가지 있었어요. 하나는 인터넷에 관한 소설, 하나는 기억에 관한 소설, 하나는 훗날 마스터피스로 불릴 만한 청춘 소설. 운 좋게도 앞선 두 가지가 책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고 기호를 소비하는 데 인생을 소진하는 우리 세대의 존재 방식에 관하여 많은 관심을 두고 계시다는 생각을 했어요. 실제 어떠신가요?
우리 주변에 있는 가장 가까운 것들이니까요. 『스페이스 보이』에서는 패션을 전공한 여자친구의 영향으로 칼 라거펠트와 많은 패션 소품들이 등장하죠. 주인공이 입었던 티셔츠부터 슈트, 보드화, 부츠, 구두까지. 향수 브랜드도 많이 등장하고요. 전자기타 브랜드들 립스틱 브랜드들도 등장하죠.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제가 산속에 들어가서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실제로 옷도 좋아하고 신발도 좋아해요. 그렇다고 수집을 한다거나 한정판 사려고 추첨을 기다리지는 않고요.


기본적으로 자신의 기호를 소비하는데 인생을 쓰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질문에서처럼 그걸로 인해 인생을 소진하게 되는 건 별로인 거 같아요. 우리 인생 위에 소비재가 있는 거 말이에요. 옷이나 신발 구하려고 몇 달간 해외사이트를 뒤지고 리셀 기다리는 건 안 맞아요. 언젠가 정말 미적으로 뛰어나다고 생각한 신발이 있었는데 딱 한 번, 2개 사서 하나 소장할까 생각한 적은 있고요.

- 소설을 보면서 신기루 위에 존재하는 게 우리 세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작품에서 그것을 다루는 방식은 조금씩 다릅니다. 『20세기 소년』에서는 전복하는 방식으로 풀었다면, 『스페이스 보이』의 결말은 패배로 다가오기도 했어요. 『20세기 소년』에서 『스페이스 보이』로 가는 동안 작가님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20세기 소년』의 신은 26살쯤의 남자고 『스페이스 보이』의 신은 30살의 남자죠. 30살의 신이 세상에 패배했다기보다 악수를 신청했다고 생각해요. 20대의 신은 좀 더 패기가 있고 겉멋도 있고요. 개인적으로 『20세기 소년』은 처음으로 쓴 소설이고 문체적으로 얼마나 간결하고 미니멀한 문장으로 리듬을 부여할 수 있는지 실험한 소설입니다. 『20세기 소년』의 초판은 라임도 맞춘 소설이었고요. 그걸 좀 더 다듬고, 라임에 집착하지 않는 대신 다른 방법으로 리듬감을 부여할 방법을 어느 정도 찾은 게 『스페이스 보이』입니다.

“맞아. 하지만 인생의 목표를 이루고 나니 더 이상 더 큰 목표는 아무 의미 없는 것을 알았거든. 이런 무력감은 심한 우울증으로 이어져 버리지. 그래서 여러 가지 작은 목표를 정해 놓고 열심히 해봤어.
예를 들면 수영을 배우기 시작해서 여러 영법을 하나씩 마스터하는 거야. 그리고 모든 게 완벽하게 되면 또 다른 목표를 세우지. 그렇게 해서 딴 자격증만 해도 수십 개가 넘어. 정보검색사, GTQ, 워드프로세서, SCJP, 하훼자격증….”
(『20세기 소년』 中)




- 『20세기 소년』의 호세는 욕망하는 자동차 구매 후 인생의 목표를 잃고 이를 채우기 위해 다른 기호들로 옮겨 갑니다. 끝없이 소비로 자신을 채우는 지나, 마음에 구멍이 뚫린 호세에 작가님이 보시는 우리 세대의 모습이 반영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사람들에게 늘 성취를 강요하죠. 근데 그런 성취를 해내는 사람은 소수잖아요. 몇만 명이 모이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우승자는 한 명이고 취직 하나 하는데도 엄청난 경쟁을 거쳐야 하죠. 호제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캐릭터에요. 뭔가를 성취해서 행복한가? 아니면 뭔가를 성취하려고 노력했던 때가 행복했나? 소설 속 호제는 그것을 이룬 뒤 반대로 그 과정만을 탐닉하는 인간이 되죠. 마치 ‘성취는 쓰레기야. 뭔가를 성취하려고 노력하는 과정만이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이지.’ 이렇게 생각하죠. 『20세기 소년』을 쓸 즈음에는 모두가 행복해질 수 없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 『스페이스 보이』의 신은 우주체험 후 하루아침에 대스타가 됩니다. 원본의 의미, 원본의 진위와 관계없는 이미지가 확산되고 소비되는데, 『스페이스 보이』는 그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설계자들이 등장하고 그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런 과정을 보여주신 의도가 궁금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가짜이며 허구다. 그런 의미부여는 없었어요. 연예산업을 다룬 건 재미를 위해서였죠. 그가 왜 우주에 갔는지에 대한 역설을 하기에도 적합했고요. 우리가 소비하는 문화가 원본이나 본질이 아니라는 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시뮬라시옹 이론 같은 걸 얘기하기에도 시간이 많이 흘렀죠.

때로 사람들이 분노하는 건 ‘내가 소비하는 이미지가 깨지는 게 싫어서’라고 생각해요. 그게 실체건 허구건 별로 신경 안 쓰죠.

“우린 왜 문화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거지?”
나는 20세기 소년들의 사이사이를 헤집고 지나다닌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부유한 문화 소비자지만 창조하는 법은 하나도 몰라. 창조는커녕 기성세대의 가랑이 사이로 기어들어가고 싶어서 안달이지. 우리는 이미 최악의 세대야.”
(『20세기 소년』 中)


- 『20세기 소년』의 인물들은 우리 세대에 관하여 창조할 줄 모르는 소비자, 순응주의자라 비관합니다. TV 세대가 미디어에 의한 지배를 우려했다면 ‘20세기 소년’ 그리고 ‘스페이스 보이’들이 겪는 동일성 문제는 악성코드와 같은 양상으로 퍼져나갑니다. 우리 세대가 겪는 동일성의 양상을 느낀 경험이 있었나요?
동일성 문제는 같은 지식의 공유, 정보의 민주화가 됐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그것은 동시에 다양성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엄청난 기본 베이스가 생긴 셈인데 아쉽게도 인터넷을 보면 사람들 스스로 그렇게 다양한 의견과 생각, 철학을 수용하려고 들지 않는 것 같아요. 인터넷을 보면 뭔가에 프레임을 씌우는 행위가 만연한데 놀라운 건 그런 게 통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A라는 사람에게 어떤 프레임이 씌워지면 A가 기차 바퀴는 둥글다고 말해도 무시당하고 조롱당해요. 그런 게 싫어요. 과거 TV세대의 빅브라더는 매체가 주도했는데, 지금은 우리 스스로 그런 걸 하는 거죠. 그런 걸 시도하는 이들을 무시하고, 프레임부터 씌우는 행위를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스페이스 보이』에서 신은 어떤 문화적 코드의 합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본적으로 제 성격이 직설적이라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고요. 거창한 것도 좀 싫어하고요. 문화적 허영심 그런 것도 싫어하는데 그렇다고 앞에서 티 내진 않고요.

- 『스페이스 보이』에서 스타가 된 신의 책, 『20세기 보이』에서 호세의 책은 가짜 이미지를 소비하기 위하여 기획되고 출판되는데요. 문화, 책이 소비되는 과정을 책을 통해 보여주시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스타가 되면 그런 책들을 내니까요. 그리고 독자들이 책을 읽는 순간 액자식 구성을 느낄 수 있는 게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부분에 대해 좀 더 들어가면 단순히 책에 대한 거라기보다 상품을 말하는 거겠죠. 인간을 성장하게 한다는 책들은 사실 별로 보탬이 안 되잖아요? 그런 책보다는 소설을 읽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만약 돈을 벌고 싶다면 몇 억원을 벌게 해준다고 장담하는 책보다 전혀 상관없는 장르의 소설을 읽는 게 나아요. 본질적으로 소설 한 권을 읽는 게 창의력이나 상상력을 자극하고 결국 그런 사람들이 남들과 다른 아이디어로 돈을 버는 거죠.

- 앞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어떤 이야기인가요?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나 『트레인스포팅』 같은 청춘 소설 하나는 쓰고 싶어요.

-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자유롭게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카시아 향기가 부는 5월의 밤,
세르주루텐 향수 같은 『스페이스 보이』를 읽어 보세요.
책 뒤에 BGM을 먼저 체크하시고 보셔도 됩니다.

박형근은…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11년 『20세기 소년』으로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대상을 수상했으며, 2018년 『스페이스 보이』로 세계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Editor - 송보배

최근본상품
닫기

최근 본 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