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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김현아 “아름다운 직업에 슬픈 자괴감을 가져야 했던 21년 그리고 2개월”


간호사는 병원 안에 있지만, 있지 않았다. TV 속의 간호사는 몸에 붙는 유니폼을 입고 아이스 커피를 손에 들고 한가롭게 다니는데, 중환자실 간호사는 끼니를 놓친 지 한참 후 피 묻은 폐기물 더미 앞에서 삶은 달걀 한 알을 서둘러 삼켜야 했다. 선배 간호사들은 환자를 보느라 용변을 참다가 방광염에 걸렸고, 식사를 거르다 위염에 시달렸고, 화장실 갈 새가 없어서 유니폼에 생리혈이 번졌다. “백의의 천사”라는 숭고함은 현실을 말하는 입을 틀어막았다. 간호사는 숭고해야 했고 희생해야 했고 천사여야 했다. 그러나 현실의 간호사는 그저 사람이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간호사의 편지’로 신문 1면을 장식했던 간호사 김현아는 21년 2개월의 간호사 생활을 접고, 현실의 간호사를 말하는 책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를 펴냈다.
환자로부터 ‘저승사자와 싸우는 아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다부지게 환자를 지켰던 김현아는 그를 스쳐 간 환자를 기억하며 몇 번이고 눈시울을 붉혔다. 가슴에 뜨거운 용광로가 있어서 간호사로 살아온 21년 2개월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지난 4월 25일, 저승사자와 싸워온 전직 간호사 김현아를 신사역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나를 성장하게 한 건 내가 지켜야 했던 환자
환자에게 느낀 감동을 전하고 싶어 책 집필
간호사는 천사 아닌 사람인 걸 알아줬으면





가겠습니다. 지금껏 그래왔듯 서 있는 제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메르스가 내 환자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맨 머리를 들이밀고 싸우겠습니다. 더 악착같이, 더 처절하게 저승사자를 물고 늘어지겠습니다.
- 메르스 당시 간호사의 편지.

2015년 한국사회는 메르스(MERS) 공포에 휩싸였다.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이 의료진에서 쏟던 분노를 지지와 응원으로 바꾼 계기가 있었다. 환자와 함께 격리된 간호사가 보내온 이른바 ‘간호사의 편지’였다.

‘간호사의 편지’가 신문 1면에 실렸을 때 김현아의 하나뿐인 오빠는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난 내 동생이 그런 일 하는 줄은 차마 몰랐다.”

20년 넘게 환자 곁을 지키며 살아온 간호사의 시간은 가족도 알지 못했다. 간호사의 일은 가족도 알지 못했고, TV 속에 등장하는 간호사는 아이스 커피를 손에 들고 마냥 한가했다.


죽음과 분투하는 환자들, 죽음으로부터 환자를 지켜야 하는 간호사의 이야기는 간호사 외에 아무도 몰랐다. 그것이 김현아가 책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를 쓴 계기가 되었다.

피 묻은 폐기물 박스 앞에서 마음을 졸이며 껍질을 벗겨 누가 볼 새라 황급히 계란 한 알을 통째로 입 안에 쑤셔 넣었다. 마스크 안으로 다급하게 입을 오물거리고 있던 내 눈에 창가의 따스한 봄볕이 들어왔다.
제대로 씹지도 못한 계란을 급히 삼키며 잠시 내려다본 바깥엔 내가 있는 곳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있었다. 점심시간을 마친 사람들의 손에는 커피가 한 잔씩 들려 있었다. 그들은 맑고 한가로운 봄볕 아래 한가로이 웃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유도 없이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 나는 나이 39살의 평간호사였다. (31쪽)


- 간호사라는 직업에 관하여 사실 잘 알지 못했습니다. 간호사가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그토록 많은 업무에 쫓기는지 작가님의 책을 보면서 처음 알게 되었어요.

저희끼리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요. “내가 이렇게 일하는 줄 알면 우리 엄마가 나 데리고 나가실 거다, 우리 아빠는 우시겠다.”

간호사라는 직업이 정말 힘이 드는데 제가 처음 간호사를 시작한 21년 전과 지금의 현실은 달라진 게 정말 하나도 없어요. 간호사의 처우를 개선하고 싶다면 간호사가 하는 일을 알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병원이라는 환경은 특수한 환경이고 하나하나의 역할이 다 눈에 보이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간호사라고 하면 주사만 잘 놓고 친절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서 속상했어요.

메르스 때 제가 쓴 ‘간호사의 편지’가 신문 1면에 게재되었는데, 저희 오빠도 신문 기사를 보고 “내 동생이 이런 일을 하는 줄 몰랐다”고 말했어요. 가족도 모르는데 정말 누가 알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 책에서 환자에 관한 사명감 그리고 현실을 알려야 한다는 선배 간호사로서의 사명감이 느껴졌어요. 간호사라는 직업에 관하여 바로 알리겠다는 마음에서 책을 쓰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어떠셨나요?
저에게 있어서 메르스는 정말 큰 경험이었어요. 당시 느낀 것이 공감할 수 있다면, 보는 시선이 달라진다는 것이었어요.

메르스 때는 의료진이 정말 많은 욕을 들었어요. 사람들이 겁에 질리니까 의료진에게까지 비난과 원망을 쏟았는데 현장에서 저도 그걸 느꼈어요. 그 분위기를 바꿀 수 있었던 건 어떻게 보면 공감이었거든요.

저는 책을 통해서 그런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간호사가 간단하고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는 것, 간호사는 그런 대우를 받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이 책은 간호사가 겪는 상황을 조금의 더함도 뺀 것도 없이 현실 그대로 담은 책입니다.

- 중환자실 간호사라서 특별히 더 어려운 건가요? 아니면 간호사라는 직업이 본래 그렇게 힘든 직업인가요?
물론 중환자실이 특수부서라 힘든 것도 있지만 일반 병동도 그에 못지않아요.

- ‘간호사의 편지’ 이후 변화를 체감하신 일이 있나요?
메르스로 인해 환자들과 2주간 격리되었고, 그 사이 쓴 편지가 신문에 게재되었어요. 그런데 격리가 끝나고 1달 정도 지나니까 다시 돌아가더라고요.

중환자의 경우 많은 사람과 접촉하면 좋지 않기 때문에 중환자실은 정해진 시간에 면회를 해야 하고 면회자 수도 제한합니다.

그런데 불쑥 찾아온 종교단체에서 십수 명이 함께 면회하겠다고 떼쓰는가 하면, 가족들이 한꺼번에 면회를 들어가려다 제재를 당하니 “내 가족 내가 보겠다는데, 너희가 무슨 상관이냐.” 삿대질하기도 했죠. 그게 메르스로 인한 격리가 끝나고 1달 뒤부터 다시 겪은 일이에요.

우리나라 특유의 간병문화 때문에 이해시키는 게 쉽지 않은데, 의료진으로서도 간호사로서도 힘든 순간이죠. 우리가 메르스를 겪었지만, 감염에 관한 인식이나 전염병에 관한 경각심은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요.

- 실제 메르스 사태 때에는 격리 상황 때문에 불편을 겪은 보호자로부터 욕설을 듣는 일도 많았다고요?
죽여 버리겠다고 전화한 분도 많았고, 욕도 많이 들었어요. 화가 나는 걸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 분노를 의료진에 푸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정말 끝까지 환자를 지키려고 노력했어요. 가족도 병원을 그만두라고 했지만 제가 끝까지 남아있었던 것은 제 환자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거기서 물러나는 것은 간호사로서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이제까지 간호사로 일하면서 저에게 자부심을 준 건 제 환자들이었어요. 그 자부심이 궁지에 몰리면 사명감이 된다는 것을 메르스 사태 때 처음 느꼈어요.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병원에 남아서 환자를 지키는 것이 저에게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 메르스가 간호사로서 사명감을 일깨운 사건이 된 셈이네요?
네. 정말 큰 사명감을 느꼈고 내가 어떤 간호사였는지, 어떤 간호사가 될 건지, 환자들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할 건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 환자들의 불안과 분노를 의료진이 흡수해야 하는 상황도 힘드셨겠지만, 특히 간호사들에게 그런 분노가 표출되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네 많아요. 그게 정말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간호사는 주사기 들고 다니면서 주사 놓는 사람이 아니에요. 간호사가 하는 일은 상상 외로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를 만든 건 미디어의 영향이 큽니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다가 그런 장면을 본 적 있어요.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데 간호사는 아이스 커피 들고 여기저기 참견하고 다니면서 한가로운, 미디어가 간호사의 이미지를 그런 식으로 고착시키는 건 정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스스로 중환자실을 선택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환자들을 만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그 경험을 드라마로 쓰고 싶어서 드라마 극본 공부와 시나리오 공부를 한 적이 있어요. 한 케이블 TV의 극본 공모에 응모해 최종심에 오른 일도 있었어요.

그런 극본 공부까지 하게 된 건 간호사에 관한 잘못된 인식, 그것을 바꾸고 싶다는 열망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 돌이켜보니 간호사나 승무원들은 성적으로 대상화되거나 보조적인 역할로 그려지는 일이 많네요. 전문성이 반영되지 않은 그런 장면들이 작가님 입장에서 마음 아픈 장면이었겠어요.
저는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를 병원을 그만두고 쉬는 석 달 동안 썼어요. 원고를 쓰고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 투고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던 시기였어요. 할 줄 아는 게 간호사밖에 없는데 간호사를 그만두고,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는 현실은 남은 상황이었죠. 책을 정말 많이 울면서 썼습니다.

그중에 병원과 관련한 여러 사건이 터졌어요. 제가 다니던 병원 간호사들이 민망한 옷을 입고 장기자랑을 했고, 이대 목동병원에서 신생아 사망 사건이 발생하고, 아산병원 간호사가 숨진 사건이 발생했어요. 그런 일들이 발생하면서 제가 했던 간호사 일에 관해 많이 돌아보게 됐어요.


간호사가 가족조차 꺼리는 사망한 환자를 양치시키고 열린 항문으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대변을 씻겨주며 소독약으로 얼룩진 몸을 구석구석 닦이고 면도를 하는 것은 돈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지금껏 그래왔고 내 후배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쳐왔다. 그건 ‘인간에 대한 예우’였다. (280쪽)

- 수익을 창출하는 일이 아니란 이유로, 간호사의 일들이 인정받지 못하는 환경에 많은 안타까움을 표하셨어요. 전반적인 의료 시스템에도 개선이 필요할 것 같은데, 어떤 변화가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의사는 모든 행위가 돈이 돼요. 하다못해 피부를 봉합하는 것도 병원 입장에서는 다 돈이 돼요. 하지만 간호사가 사망한 환자를 양치하고, 면도하고, 열린 항문으로 대변을 씻겨주는 일은 돈이 되지 않아요. 따로 돈이 안 되기 때문에 병원에서 홀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거죠.

사망한 환자를 정갈히 하는 게 간호사가 꼭 해야 하는 의무는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그게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고 해왔습니다. 지키고 싶지만 지키지 못했던 환자를 보낼 때, 마땅히 해드려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만약 환자 입장이었다면 흉한 모습으로 떠나고 싶지 않을 것이고, 가족 입장에서도 흉한 모습이 상처가 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까지 정갈한 모습으로, 조금 편해 보이는 모습으로 보내는 게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그렇게 했고, 제 후배들을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런 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간호사를 이런 열악한 처우와 인권 유린에 처하게 하는 현실 자체가 너무 속상했죠.

- 책을 보면서 참 비통한 순간이 많았어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병원에서 일하셨는데, 글로 보아도 비통한 일들을 현장에서는 얼마나 크게 느끼실지 감히 상상이 가질 않았습니다. 의료인이라는 직업 자체가 경험의 밀도가 다른 일인데, 일하시면서도 ‘이건 인간으로서 너무 힘들다’고 생각하는 참담한 순간이 참 많았을 것 같습니다. 가장 울컥하고 슬픈 순간이 있다면 언제였나요?
우리나라에 간호사가 많긴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간호사가 없다 보니까 다른 나라에 비해서 많은 수의 환자를 봐요. 중환자실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지켜야 하는 환자가 사망했을 때, 그때마다 울컥해요. ‘내가 조금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내가 이 환자에게만 집중했더라면’ 그런 생각이 계속 들어요. 그런 현실이다 보니 간호사들도 현장에서 많은 상처를 받아요.

그런데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간호사의 현실은 무시당합니다. 메르스 당시 제가 본의 아니게 유명해지면서,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병원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간호사 처우 개선에 대해 병원에 이야기했던 거죠.제가 직접 겪은 일이고 간호사들이 너무 힘들어 하는 걸 저도 주변에서 봤기 때문에요. 그런데 받아들여지지 않았지요. 간호사 처우는 간호사가 병원 내에서 주장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7년 5월에는 후배 간호사가 사소한 오해로 환자 보호자에게 멱살 잡혀 끌려나간 일이 있었어요. 병원 입장에서 보면 환자와 보호자는 고객이기 때문에 한 발 뒤로 물러나 빠지고 싶었겠지요. 실제 그렇게 했고요.

그러나 간호사가 부당한 폭력을 당할 때 병원은 뒤로 빠지는 게 아니라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간호사는 약자에 불과한데,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병원이 모른척한다면 어떻게 그 부당함에 맞설 수 있겠어요.

그리고 중환자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한 사람의 간호사가 멱살 잡혀 끌려 나가면 다른 환자들은 방치되는 겁니다. 그건 굉장히 위험한 거예요. 그런 것을 일반 환자나 보호자는 모르고 병원도 크게 생각을 안 해요.

다른 병원도 마찬가지이고,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을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이제까지 아무 문제 없는데 넌 왜 그래?” 이런 태도로 잘못된 관행이 계속 이어 온 겁니다.

그러니 누가 이의를 제기해도 “너만 왜 그러냐?”가 되는 거지요. 제가 간호사 처우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에도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결국 터질 게 터지더라고요.

제가 현장에서 느낀 것은 간호사가 살아야 환자가 산다는 것입니다. 간호사가 살지 못하는데 어떻게 환자가 살 수 있겠어요.

이 책이 포털에서 사전 연재될 때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이 참 많았어요. 그 내용을 보니 어떤 간호사분이 새벽 6시에 출근해서 새벽 3시에 퇴근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게 너무 당연하게 되어 버린 현실이 안타까워요. 제 책이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켜서 간호사 처우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초석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 후배가 멱살 잡혀 끌려나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결국 병원을 나온 계기가 되었습니다. 책을 보면서 저 역시 정말 놀랐던 게 간호사가 폭언, 폭력을 당하는데 거기에 대한 아무런 보호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었어요.
병원 입장에서는 끼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어떤 환자들은 사소한 것을 빌미로 병원비를 문제 삼아 깎으려 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부당한 일에 관해서 강력한 제재가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간호사들도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고요. 사소한 오해로 멱살 잡혀 끌려 나가는데 아무도 간호사를 지켜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간호사가 내 환자를 지킬 수가 있겠어요? 그건 문제가 있는 거죠.


- 죽음을 일상적으로 접하는 일이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나요?
많이 힘들죠. 저는 처음부터 중환자실을 택해 들어갔는데 그게 20대 초반 나이였습니다.

처음에 들어갔을 때는 너무 헷갈렸어요. 20대 초반에는 하고 싶은 일이 많고, 희망에 차 있잖아요. 그런데 중환자실에 가면 그 반대인 거예요. 죽음이 너무 가까이 있으니까.

저보다 어린 대학생이 아침에 등교하다가 죽어 나가는 게 일상이었으니, 가치관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어요. 몇 년 동안 해외여행을 가겠다고 돈을 모으다가 한순간 사고로 중환자실에 올 수 있는 게 사람의 운명인데, 대체 뭐가 중요할까 싶었죠.

그러다 병원에 들어온 지 1년여 되었을 때 어느 환자가 저에게 말씀해주신 말이 묵직하게 남았어요. 그분은 말기 암 환자셨는데 제가 옆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걸 처음부터 지켜보셨어요. 그분이 저에게 “저승사자와 싸우는 아이”라 말씀하시더라고요.

할머니가 그런 이야기를 하셨을 때 ‘아, 내가 할 일이 이거구나’ 깨달았어요. ‘나는 죽음으로부터 내 환자를 지켜내야 하는 사람이구나. 저승사자와 싸워야 하는 사람이구나’하고요. 그 말이 간호사 생활을 하는 데 있어 중심이 되었어요. 메르스 사태 때 쓴 ‘간호사의 편지’도 저승사자와 싸우겠다는 말 덕분에 더 회자되기도 했었지요.

- 책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는 글을 쓸 당시의 심정이 글의 곳곳에서 전해져요. ‘간호사의 편지’도 가장 진솔한 순간에 터져 나온 글이었고 그래서 더욱 공명을 일으켰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는 정말 절망스러웠어요.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었고 격리가 끝나도 비난하는 사람들이 변할 거 같지 않았어요. 다른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면 격리 기간이 연장되어야 했고요.

무엇보다 스스로 ‘나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끝까지 환자를 지키는 게 옳은 일이라는 걸 알지만 주변 시선이 내 마음을 흔들고 있는 저에게, 환자를 지키기 위해 남아 버티는데 주변의 비난에 흔들리는 저에게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요.

그만둘까 하는 생각 한편으로는 “그래도 내 환자를 끝까지 지켜야지”하는, 두 가지 마음이 얽혀있는 상황이 힘들어서 새벽에 일기를 쓴 거죠. 핸드폰 메모장에 일기를 쓰면서 이제까지 만났던 환자들을 생각했어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나를 찾아준 고마운 사람들, 그분들이 나에게 자부심을 줬는데 내가 여기서 물러날 수 없다는 그런 생각. 나는 나름 건강한 사람이고 중환자들은 몸이 안 좋아서 병원을 찾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건강한 내가 어떻게든 내 환자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

- 특히 임종하는 순간 작가님을 찾았다는 환자 이야기가 인상 깊어요. 임종할 때는 정말 가까운 사람들을 보고 싶어 하잖아요. 그게 간호사였다는 건 참 특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환자분이 처음에 오면 가장 먼저 인적사항을 작성하잖아요. 그런데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이 저희 엄마와 동갑이라는 거였어요. 그분도 저희 엄마처럼 남편이 없었고 저희 엄마처럼 슬하에 남매를 두고 있었어요.

그분이 처음 위암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을 했을 때 인상적인 것이 생활한복을 곱게 입고 오셨어요. 환자들은 몸이 안 좋기 때문에 뭐든지 자기 먼저 해달라고 하시는 경우가 많고 특히 항암치료 받는 분들은 정말 예민하기 때문에 더 그런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그분은 항상 다른 분에게 양보하고, 배려하고,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민폐 끼치는 일은 없는지 항상 염려하셨어요. 그런 마음이 보이니까, 저는 너무 안쓰러웠던 거예요.

항암치료를 받느라 숨소리가 거칠어지니까 다른 사람에게 방해된다며 침대를 복도로 빼달라고 하신 일도 있었어요. 너무 걱정되니까 바쁜데도 자꾸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마지막에 입원하셨을 때는 경과가 안 좋아질 거 같다는 예감이 들었어요. 그런 환자를 많이 봤기 때문에. 돌아가실 때 호스피스 병동에 계신 줄은 몰랐어요. 저를 부르셨는데,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쉬는 숨이 있어요. 보통 사람과는 다르거든요. 그리고 눈을 뜨고는 있지만 눈빛이 달라요. 텅 비어버린, 초점이 없는 눈빛을 하고 계시죠. 그분이 그런 상황이셨어요. 마지막 모습이 정말 힘들어 보였어요.

그런데 가족과 지인 그 어떤 소리에도 반응하지 않았던 분이 제 목소리에 반응하시고, 순간 제가 아는 그분의 눈빛이 다시 돌아왔어요. 눈동자를 천천히 맞춰서 저와 눈을 맞추고 저를 향해서 웃어주셨을 때, 그게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미소였을 때, 저는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뭐라고.”

저는 마음을 열고 공감하는 방법을 그분들에게 배운 거죠. 그렇게 저에게 하나하나 가르쳐 주신 분들이 제가 돌보던 환자들이었어요. 백 권의 책을 읽을 때보다 더한 감동을 그렇게 한 명 한 명의 환자를 볼 때마다 느꼈어요.

그래서 책을 정말 쓰고 싶었어요. 제가 그분들에게 느꼈던 감동을 다른 분들에게 전해드리고 싶어서.

- 한 분 한 분의 환자를 진심으로 대해주시는 게 작가님에게 인생의 성장, 감동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어떤 면에서 굉장히 힘든 일이기도 해요. 돌아가시거나 경과가 좋지 않을 때 그 상처가 더욱 크게 다가오잖아요?
간호사는 정말 진심을 다해야만 환자가 좋아지기 때문에 환자의 삶으로 들어가야 해요.

환자들을 알고, 더 가까이 가고, 그분들을 몸과 마음으로 돌봐야 하는 게 간호사입니다. 그분들이 아플 때 저도 아프고 그분들을 끝까지 지켜드리지 못했을 때 저도 비통한 마음이 들고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아요.

간호사가 자기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여건도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처우는 너무 열악하고 누구도 간호사를 보호해주지 않아요.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건도 어떻게 보면 간호사의 열악한 처우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누구의 삶에도 죽음은 가까이 있어요.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는데 내가 환자가 되었을 때 누군가 나를 지켜주길 원한다면, 정말 간호사를 살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 책에도 식사할 시간이 없어서 숨어서 삶은 달걀을 먹는 일화가 등장하죠.
정말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그게 제가 39살, 평간호사 때였어요.

간호사의 현실이 그렇습니다. 승진도 안 되고, 월급도 적고, 업무에 관해 존중받지 못해 잡역부 같은 일에 동원되기도 해요.

제가 병원에 소속되어 있을 때는 그런 걸 잘 못 봤던 거 같아요. 선배들도, 주변 사람들도 다 그렇게 일하고 있었으니까요. 어딜 가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사람이 길드는 거죠. 정말 그 길이 맞는 길인지 틀린 길인지 감을 잃게 되고요.

병원을 나오면서 보는 눈이 더 정확해졌어요.

수익만을 위해 간호사들을 사지로 내모는 행동은 더 용납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근래 뉴스에 나오고 보도가 되었지만 보는 분들 입장에서는 그저 기사 몇 줄입니다. 그 안에서 “간호사들의 열악한 처우”라는 말이 등장해도 그 열악한 처우가 어떤 건지 알기가 힘들잖아요.

저는 간호사들이 이런 일까지 당하고 있다는 것을 제 경험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실제 제가 당했던 일이고 제 주변의 선후배들이 다 겪었던 일이니까.

- 사회복지사도 그런 이야기가 많이 들리지만, 간호사도 어찌 보면 사회적으로 희생을 당연시해온 면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직업이라 오히려 현실적인 처우를 이야기하기가 더 어렵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맞아요.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말이 “백의의 천사”라는 말이거든요. 정말 숭고하고 희생, 봉사하는 천사라는 이야기인데, 천사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간호사는 사람입니다.

똑같이 고통받고 똑같이 비통함을 느끼는 사람인데, 백의의 천사라는 말 때문에 희생을 더욱 강요당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저는 간호사도 사람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간호사는 희생해야 하는 천사가 아니라 아픔도 느끼고 상처도 받는 똑같은 사람입니다. 같은 사람으로 봐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김현아는…
외과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하며 21년 2개월 동안 환자를 돌봤다. 제주 한라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한 뒤 환자를 더 잘 보살피고 싶은 마음에 한림대학교 대학원에서 임상간호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또한 환자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간호사의 삶을 글로 풀어내고 싶어 틈틈이 글을 쓰며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간호사의 편지’로 전국을 감동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편지는 “저승사자 물고 늘어지겠습니다. 내 환자에게는 메르스 못 오게”라는 제목으로 2015년 6월 12일 <중앙일보> 1면에 실렸다. 2011년부터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칼럼을 연재하면서 병원 생활 전반에 대한 정보를 많은 독자들과 나누려 노력했다. 오랫동안 간호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 인권 수호와 처우 개선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으며, 2016년 간호 전문직 위상 정립에 기여하고 간호 정신을 구현한 사람에게 주는 ‘올해의 간호인 상’을 수상했다.

Editor - 송보배
10rim@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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