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디앤루니스 모바일

서점에서 만난 사람

『B급 며느리』 선호빈 “다큐멘터리는 성찰하는 매체”



“명절에 시댁에 안 갔어요. 그래서 완벽한 명절을 보냈죠.” 고부갈등을 유쾌하게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 전국의 며느리들에 큰 공감을 사면서 호응을 얻었고, 같은 제목의 책 역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B급 며느리』가 위로와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선호빈 감독.
유난히 화창했던 4월 10일,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 영화 〈B급 며느리〉 파장이 상당했습니다. 대한민국에 만연한 고부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고, 이에 당당하게 맞서는 ‘B급’ 며느리 김진영 씨의 모습을 속시원하게 비추었지요. 세대를 막론하고 공감을 얻어 내면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또 책에서 덧붙여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영화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기 보다는, 도저히 상식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 세대 갈등을 보면서 제가 느꼈던 무력감, 패배감을 담고 싶었습니다. “어른이 뭔데? 왜 그렇게 해야 되는데?” 이런 질문을 하면, “그냥, 원래 그런 거야.” 라는 식의 답변이 돌아오잖아요. 그런 대답들이 정말 절망적이었어요. 차라리 ‘논어’나 ‘맹자’라도 들고 와서 얘기한다면 이해하겠는데 말이에요. “원래”라는 말로는 진영이를 설득할 수도 없고요.

책은 다큐멘터리 제작 일지나 에세이 같은 느낌으로 영화에 넣지 못하는 것들, 넣지 못했던 부분들을 풀어 쓰려고 했어요. 사회구조적인 측면에 관한 생각과 어머니 이야기가 많이 들어갔어요. 대한민국의 평범한 어머니이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설명을 안 했는데, 책에 들어가면 좀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창작자로서는 생각한 것이 많아요. 책이 잘 됐고, 영화보다 더 재미있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사실 마음 놓고 편하게 썼는데 말이죠. 조금 당황하긴 했죠. 수타 짜장면 집에서 탕수육이 더 맛있다고 하는 느낌이랄까요. 영화는 의사 결정 과정이 복잡하거든요. 반면 책은 훨씬 자유롭죠. 그래서 나름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창작자로서 굳이 어떤 것에 얽매이거나 영역에 제한을 둘 필요는 없구나 하고 벽을 허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진: 영화 〈B급 며느리〉 포스터

- 〈B급 며느리〉 이후 선호빈 감독님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가족을 다루니까 성찰의 기회가 되었어요. 어머니는 잊고 잘 살고 있는데 왜 굳이 다시 파헤치냐며 불쾌해 하시기도 했고요. 그리고 인터뷰나 관객과의 대화에서 많은 걸 느꼈어요. ‘이게 옳다, 저게 옳다’ 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다른 맥락에서 볼 수 있구나 하고요. 저보다는 진영이가 많이 느꼈을 것 같아요. 상당히 폐쇄적인 사람인데 여러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긍정적인 균열이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영화에서 바라보는 시선하고, 책을 쓰면서 보는 것은 좀 다르더라고요. 제작 과정을 되돌아보고, 관객과의 대화 속에서 약간의 거리감을 갖고 멀리서 보기도 하고요. 영화를 제작할 때는 고통 속에 있어서 잘 안보였죠. 관객을 만나고, 책 쓰는 과정을 거치면서 좀 더 입체적으로 생각하고 넓게 보게 된 것 같아요.

영화 〈B급 며느리〉는 우리 부부의 어려운 경제적 상황을 설명하는 데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다. 영화의 주제에서 조금 벗어난 이야기임에도 중요하게 다룬 것은 이것이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어떤 사람이, 설령 경력이나 기술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도 주 5일, 하루 8시간 성실하게 노동하면 먹고 살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이 정상적인 사회가 아닌가?’ (97, 98쪽)

- 요즘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결혼, 출산을 꺼리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감독님께서는 이런 경제구조 때문에 고부갈등이 더욱 깊어진다고 말씀하셨지요. 이에 대해서 제도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어떤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시나요?

서울에서 최소 생활 수준을 충족하고 사는 게 쉽지 않아요. 제 직업이 프리랜서라서 그런 것이 아니고 대부분이 그런 것 같아요. 구조에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해요.

이런 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았어요. 영화는 철저하게 감정의 전달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서예요.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해법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요즘 출산율이 낮다고들 하는데, 지원 제도 자체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어린이집 운영을 예로 들면 어린이집은 정부의 지원금으로 유지가 되고, 정부에서 교육과정도 짜 주고 있어요. 사실상 공교육인데 운영은 사익을 추구하죠.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의 정치적 영향력이 작아서 그런지 보육, 교육 시스템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것 같아요.

“싫어요.” 이 말은 건방져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사람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며 존중하는 김진영의 방식이다. … 진영이는 그들을 진정한 대화 상대로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김진영의 방식은 피곤하다. … 하지만 나처럼 문제를 회피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73쪽)

- 그동안 당연시해온 관습에 의문을 제기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 해결하는 김진영 씨의 모습이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는지 궁금했고, 우리는 언제부터 그런 것에 익숙해진 걸까 해서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동안 제가 기만적인 거였죠. 싫으면서도 알겠다고 하고. 사실은 저도 상당히 깜짝 놀랐어요. 눈앞에서 진영이가 부모님께 “안 보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옆에서 보면 입이 떡 벌어지고 다리가 휘청해요. 사실은 진영이 아버지, 장인어른의 교육 방법이 특이했다고 해요. 논리 정연하게 어떤 주장을 펼치면 인정을 다 해주셨대요. 그렇게 자라서 사고방식이 자유로운 것 같아요.


사진: 영화 〈B급 며느리〉 스틸컷



- 김진영 씨는 부모님의 무한한 기대 때문에 결혼 전까지 타의적으로 살아왔다고 하셨어요. 반면 감독님이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부럽다고도 하셨지요. 서로 극과 극인 두 분이 만나 서로의 시야를 넓히고, 서로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요.
김진영 씨의 논리 정연하고 똑 부러지는,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성격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바보 같다고 생각했어요. 어른한테 그런 말을 하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서로 굉장히 힘들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바뀌더라고요. 고부관계라고 하더라도 의사표현을 안 하면 모르는 거죠. ‘얘는 이런 걸 좋아하는 구나, 싫어하는구나’ 까진 아니더라도, 포기해 버리면 ‘얘는 내가 하라는 대로 하는구나’가 되는 거예요. 이런 무력한 상태로 체념하고 ‘저 사람들이 바뀌겠어?’ 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건 좋은 태도가 아닌 것 같아요.

진영이도 사실은 틀린 게 많거든요. 삶은 복잡한 맥락이 있는 것이고, 모순이 없는 사람은 없잖아요. 진영이가 법 공부를 해서 그런지 남을 재단해 버려요. “당신은 이런 잘못을 했기 때문에 이런 죄를 졌고, 이건 잘못됐어.” 이렇게요. 사실 이 세상은 합리적인 인과관계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잖아요. 많은 사람이 모순된 상황 속에서 삐뚜룸하게 존재하는 거죠.

〈B급 며느리〉는 성장 영화라고 생각을 하고 만들었어요. 어머니도, 진영이도 너무 단순하고 단호하고 좁은 세계에서 자기 생각만 맞는 것이라고 따지다가, 어느 정도 융통성을 갖게 되었다고 할까요. 인간으로서 그런 것들을 인정하는 과정을 담았다고 생각해요.

-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시면서 편집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하셨지요. 영상에 담은 부부싸움 과정을 수십 번이고 되돌려 봐야 하기 때문이라고요. 반면에 제작하시면서, 또는 제작 이후의 일 중에 행복했던 때, 보람찼던 때는 언제인가요?
영화를 제작하면서 부모님과 정말 많은 대화를 했어요.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으면서 원래는 안 하던 대화를 하게 된 거죠. 어머니에 대해서는 이모나 고모, 삼촌하고 많이 이야기했어요. 중, 고등학교 때의 어머니 이야기도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우리나라 남자들은 평소 아버지와 딱히 할 얘기가 없어서 무슨 길 얘기 하거든요. “어디 IC 뚫렸다.” 하면서요. (웃음) 아버지와도 이전보다 많은 얘기를 하게 된 것 같아요.
지금은 서로 좀 알게 되었고, 많이 바뀌었어요. 아버지께서 이제는 좀더 조심스럽게 대해 주세요. 다큐멘터리는 이런 면에서 성찰의 매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괜찮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나는 이 과정이 우리 가족에게 부족했던 소통의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은 필요로 인해 자신들을 찾아오는 나를 타박했지만 내심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특히 아버지와는 이 시기에 평생 해온 대화보다 훨씬 많은 말을 주고받은 것 같다.
다큐멘터리는 잔인하고 따뜻하다. (108쪽)


- 감독님께서 영화를 제작하면서 세웠던 목표가 있었을 것 같은데, 어느 정도 달성을 하셨나요?
사실은 중압감이 컸어요. 흔치 않은 기회였거든요. 영화의 흐름도 소재도 괜찮았고요. 대중적으로 인정을 받겠다는 욕심도 있었어요.

독립 영화 중에서는 굉장히 복 받은 경우지요. 많은 관객을 만날 기회가 있었고, 굉장히 화제가 되기도 했고요. 인터뷰도 많이 했는데, 사실 영화 감독으로 이렇게까지 주목 받긴 쉽지 않거든요. 1000만 영화라고 해도, 보통은 배우가 주목 받잖아요. 앞으로는 전보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실 독립 영화 감독들이 원하는 것은, 금전적인 것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담론’이에요. 영화를 놓고 담론이 형성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에요. 그런데 독립 영화 감독들은 거기에서 소외되어 있거든요. 주류 영화들에 생산적인 담론들이 있고, 많은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굉장히 부러웠어요. 물론 〈B급 며느리〉에 악플이 달릴 때도 있었는데, 그래도 기분이 좋았어요. 정말 대중이 보고 있구나 싶었죠.

- 며느리로 살아가는 것의 어려움, 부조리함에 대한 목소리가 커져 가고 있습니다. 선호빈 감독님의 『B급 며느리』를 비롯해서, 며느리로서의 고충과 불합리한 삶을 짚어 내고 공감을 이끌어 낸 웹툰 『며느라기』, 자신의 꿈을 찾아 며느리로서의 삶을 그만두고 홀로서기를 선언한 『며느리 사표』까지.
이런 사회적 흐름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로 인해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보시나요?
진영이는 “아니, 이게 이제야 되는 게 이상한 거 아냐?”라고 해요. 너무 늦은 거죠. 왜냐면 가족의 일이라서, 이 분야만 성역처럼 남아 있던 거죠. 어떤 분은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질문하다가 울컥 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진영이보고 통쾌하다고 하시고요. 근데 진영이는 우울하다고 해요. 사실은 반대로 굉장히 억눌려서 살아 왔다는 거잖아요.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던 거냐고 해요.

확실히 그런 흐름이 있는 것 같아요. 『82년생 김지영』부터, 크게는 미투 운동까지. 진영이도 82년생이거든요. 이 세대들은 당연시해온 부당한 것들을 참지 않는 세대 같아요.

서양으로 치면 ‘68혁명’하고 비슷하지 않나 생각해요. 베트남전쟁 반전 운동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모순에 대한, 권위와 권력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생활 깊은 곳을 많이 바꿔 놓았다고 해요. 그래서 저도 요즘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런 움직임을 희망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기존에 유지되던 가치관이나 질서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을 갖는 것. 이런 것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 아닐까요?

- 앞으로 감독님의 행보도 궁금합니다. 어떤 작품을 준비 중이신지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서울의 개발사를 소재로 준비 중입니다. 1960년대 ‘불도저 시장’이었던 김현옥 서울시장 이야기가 흥미로워요. 한강, 세운상가, 서울역 고가도로 등 그때 구상하고 세웠던 것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잖아요. 『만주 모던』을 비롯해서 이것저것 참고하고 있습니다.

- 독자 분들께 자유롭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총각 때는 몰랐거든요. 그런데 막상 겪어 보니까 동시대에 결혼하고 아이 기르며 사는 사람들에게 동지애, 연대의식이 많이 생겼어요. 먼저 아이들을 키우고 살아온 선배들한테도 경외감도 생겼고요. 이 책을 통해서 30~40대 동년배들이 연민이나 혹은 비슷한 감정들을 공유했으면 좋겠어요. 이 책을 보고서 ‘한심한 놈’ 하고 비웃기도 하면서, 열심히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선호빈은…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학창시절에는 영화제작 동아리에서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재학 중 학교에서 일어난 학내 분규를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레즈>로 2011년에 데뷔해 주목받았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에 이 책의 주인공인 김진영과 결혼한 후, 가정 내의 심각한 고부갈등을 경험하고 다큐멘터리 제작을 결심하게 되었다. 2017년 아내와 어머니의 갈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발표했고, 제4회 춘천다큐멘터리영화제 장편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전형적인 고부갈등’이라는 심리 상담사의 말에 위안을 얻었던 것처럼, 이 책이 비슷한 일을 겪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 Editor - 조은혜
zzonis@bnl.co.kr





최근본상품
닫기

최근 본 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