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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미술관에 간 의학자』 박광혁 “한 점의 그림이 삶을 보듬고 위로한다”


외과는 치루에서 나왔다? 나폴레옹의 포즈는 위장병의 증거다? 독감 백신 탓에 달걀이 귀해졌다? 전혀 연결하기 어려운 분야를 이으며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는 책이 있다. 내과의사 박광혁의 『미술관에 간 의학자』가 그런 책이다. 책은 의학의 눈으로 명화를 해부한다. 화가들을 괴롭힌 질병과 명화 속에 드러난 질병들을 드러내고, 의사의 눈으로 인간의 고통을 들여다본다. 책은 그리스신화부터 심리학, 의학 등 폭넓은 분야의 지식을 품고 있으며, 그만큼 풍부한 시각을 제시한다. 지난 2017년의 마지막 금요일, 역삼역 인근 카페에서 의사 박광혁과 만났다. 박광혁은 노트북에 가득한 그림을 보여주며 미술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한 점의 그림은 수만 갈래의 삶을 보듬고 위로합니다. 때로는 한 점의 그림에서 오랜 상처를 치유할 처방전을 얻기도 합니다. 이것이 의사인 제가 그림에 매료된 이유일 것입니다.(5쪽)


근친혼에 의한 농축이골증을 앓았던 화가 툴루즈 로트레크는 그의 어머니를 몇 번 그림에 담았다. <말로메 살롱에 있는 아델 드 툴루즈 로트레크 백작부인> 등 그림에는 어딘가 우울하고 슬픈 정서가 담겨 있다. 물랑루즈의 화려함을 그린 그의 다른 그림과는 딴판이다.

박광혁은 로트레크의 그림을 장애아를 자녀로 둔 어느 부모에게 보여준 일이 있었다. 장애아의 어머니는 그 그림을 보자마자 많은 눈물을 쏟았다. “내가 힘들었던 그동안의 삶이 이 그림에 담겼다.”며 그림을 통해 치유 받았다는 말을 남겼다.

박광혁은 그림에 담긴 힘을 믿는다. 그를 포함해 숱한 사람들이 경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림에 관한 열렬한 사랑으로, 인터뷰 내내 그의 눈은 반짝거렸다.


- 책 재미있게 봤습니다. 『미술관에 간 의학자』 출간 계기를 여쭙고 싶습니다.
모나리자 스마일이라는 모임에서 1주일에 한 번 미술강연을 하고 있어요. 강연을 듣는 분 중에는 연세가 많은 분들도 꽤 많아요. 의사, 화가, 가정주부, 미술 수집가 등 직업군도 다양한데, 이분들에게 강연을 하고 난 다음에 밴드라는 모임에 항상 글과 자료를 올려 드립니다.

그런데 자료가 너무 많으면 조금 어려워하시더라고요. 강연을 듣는 어느 분이 복습할 수 있도록 강연 내용을 꼭 책으로 내달라고 말씀하신 분이 계셨어요. ‘한 번 내볼까?’ 생각하던 게 출간으로 이어졌어요.

제가 직업이 내과의사니까 의학적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지점들을 설명하고 싶은데, 대개는 의학을 어려워하잖아요. 그래서 무엇보다 쉽게 풀어서 쓰는데 집중했어요. 특히 강연 듣는 분들이 “쉽다, 재미있다”고 말씀하셨던 것들을 기억했다가 책에 넣었습니다.

그런 내용들이 책에 수록된 나폴레옹, 갑상샘과 같은 내용들이죠.

- 그림은 언제부터 좋아하셨나요?
그림을 좋아한 건 오래됐어요. 아주 어릴 때부터 미술을 좋아하고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그 이전에 이야기를 참 좋아했죠. 신화를 좋아해서 어릴 때 문고판으로 된 책들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그런데 이미지로 와 닿지 않으니까 실감을 못하다가 어느 날 도판, 삽화 한 장을 보고 정말 강렬하게 와 닿았어요.

‘한 장의 이미지가 많은 글보다도 더 강렬하게 올 수 있구나.’ 했죠. 그걸 계기로 틈나는대로 갤러리, 미술관에 가면서 그림을 더 열심히 파고든 거 같아요.

그러다 대학 배낭여행에서 책으로만 보던 미술 작품을 직접 관람하게 됐어요. 제가 40대 후반인데, 유럽 배낭여행이 저희 세대가 대학생이 되던 시기에 최초로 시작했거든요.

여행하며 미술관을 갔는데 그림책에서만 살짝 보던 걸 직접 눈으로 보게 되니까 정말 큰 감동이 밀려오더라고요.

이제 인간의 영역이던 의술을 기계가 넘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의술에서 완벽함과 정밀함을 요구하는 부분은 기계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유하는 사람으로서 의사는 필요할 것입니다. 환자와 마찬가지로 불완전한 인간인 의사만이 불안과 고통을 공감하고 이해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41쪽)


- 우리는 의사에게 냉철하고 이성적인 면을 크게 기대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책을 보면서 감성적 지능, 공감할 수 있는 능력도 의사로서 중요하겠다 싶었어요.
레지던트 거쳐 봉직 의사가 되고, 개업의로 넘어가면서 막연히 어렵게만 생각하는 의학적인 지식을 쉽게 설명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또 그림에 있다는 걸 실감했어요. 의학적인 눈으로 해석할 수 있는 그림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런 그림들을 쉽게 풀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 쓰는 의사들이 꽤 계시는데요. 미술의 경우 음악이나 오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창피하지만 조심스럽게 제가 그 역할을 해보려 했습니다.

- 책을 보면서 신기했던 것이 명화를 보면서 질병을 찾아낸다는 것이었는데요. 의사의 눈에는 이런 것도 보이는구나 싶어 감탄했습니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초상화 등을 보면 조끼 단추 몇 개를 풀고 그 안에 손을 집어넣은 일명 ‘나폴레옹 포즈’가 등장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것이 ‘프리메이슨’ 의 포즈라고 해석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제 의견은 ‘속 쓰려서 그런 것 같다’는 것이죠. 실제 나폴레옹의 사인에 관해서 의사들은 질병으로 사망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부검 당시 간과 위가 유착되어 있고 그 부위에 구멍이 관찰되었는데, 위궤양에 의한 천공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죠.

- 나폴레옹의 사인에 관한 연구 논문이 지금까지도 나오고 있다고 하지요. 서양에서는 그림을 의학적으로 연구한 자료가 꽤 있는 듯 합니다.
네 많이 있습니다. 책에 등장한 의학적 소견들은 제가 순수하게 발견한 것이 아니고요. 이미 연구된 자료들을 제가 쉽고 재미있게 재구성한 것입니다.

제가 순수하게 찾은 것은 주세페 데 리베라의 <프로메테우스>가 있겠네요.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위해 불을 훔쳐서 제우스에게 벌을 받았습니다.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벌을 받는데, 그림을 보니 왼쪽 복부를 쪼이고 있는 겁니다. 간은 우상복부에 있는데.

이건 그림을 그린 화가가 간의 위치를 잘 몰랐거나, 양쪽에 있다고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겠지요.

- 해부학적인 지식이 부족한 때였으니까 간의 위치를 모르고 실수한 게 아닐까요?
이전에 제가 어느 제약회사와 함께 간장 보조식품을 만든 일이 있었어요. 그때 그 보조제 이름을 ‘프로메테우스’로 하자고 제가 제안을 했죠. 재미있잖아요. 간이 다음날 다시 재생되니까. 그때는 반대 때문에 다른 이름으로 바뀌었는데, 최근에 찾아보니 다른 제약회사에서 프로메테우스라는 건강보조식품이 나왔더라고요. 정말 놀랐어요. 인문학 열풍의 영향인가 싶었죠.

여담이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간과 간에 찾아오는 질환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2016년 간학회에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86퍼센트가 A형, B형, C형 간염의 차이를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A형 간염은 주로 어릴 때 생기고 급성으로만 찾아옵니다. 힘들더라도 잘 먹고 잘 쉬면 자연적으로 완치가 되지요. B형 간염은 가장 흔한 간염인데 간경변이나 간암의 가장 큰 원인이 됩니다. C형 간염은 한 번 감염되면 대다수가 만성 간염으로 악화되기 때문에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합니다.

-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에 관해서도 다루셨는데 실제 영화 <러빙 빈센트>가 반 고흐의 죽음에 관해 다루고 있어요. 아직도 반 고흐의 죽음이 타살인가 자살인가에 관한 논란이 분분합니다.
네. 그건 아무도 모르죠. 다만 확실한 것은 가셰 박사는 의사로서 직무유기를 했다는 겁니다. 자기가 치료를 못했다면 적어도 근처 다른 의사에게 전언하고 치료하도록 했어야 하는데, 그는 반 고흐를 환자로 여기지 않고 외면한 겁니다.

다만 가셰 박사가 뛰어난 건 고흐가 먼 훗날 인정받을 화가라는 것을 알고 있던 것이죠. 고흐가 죽자마자 다락방에 있는 그림을 훔쳐서 나중에 그의 아들이 고흐의 그림을 기증하며 프랑스최고 훈장을 받기도 하지요.

고흐의 초상화에 등장하는 의사는 가셰 박사와 함께 펠릭스 레이가 있습니다. 고흐가 아를에 있을 때 정말 인간적이고 따뜻한 마음으로 고흐를 치료해 주었지요. 펠릭스 레이의 초상화는 고흐가 정말 마음을 다해 그려준 그림인데 펠릭스 레이는 그 그림의 가치를 몰라보고 다소 실망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그의 어머니가 고흐가 그려준 초상화를 닭장 막는데 사용하기도 하지요.

딱 두 명의 의사가 고흐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데 저는 그 두 명의 의사 그림을 보면서 레이의 따듯한 마음과 가셰 박사의 그림 보는 안목을 가진 그런 의사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1987년 6월 항쟁 때 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목격하셨다고요.
당시엔 이한열 열사라는 사람을 알지는 못했어요. 제가 고등학생일 때 신촌에 누나를 만나러 가는 길에 시위 행렬을 만났어요. 밀려오는 인파에 휩쓸리다보니 어느 순간 시위 중심에 서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빨리 이 자리를 피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던 때에 제 눈 앞에서 한 청년이 피를 흘리면서 쓰러졌어요. 나중에 의사가 되고서는 죽음을 수없이 봤지만, 사람이 죽는 걸 본 건 그때 처음이었습니다.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 자리에서 도망쳤어요. 신촌에서 아현동 쪽으로. 며칠간 너무 많이 아팠습니다. 이한열 그 분이 쓰러졌을 때 누군가는 옆에서 부축하고 도와주었는데, 저는 그냥 피하기만 했어요. 옆에서 부축하던 분도 이한열 그 분과는 안면이 없던 분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옆에 있었음에도 그냥 하염없이 도망치기만 했습니다.

몇 년 후에 대학교에 들어가서 배낭여행으로 미술관을 가게 됐는데, 그때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그림이 정말 보고 싶더라고요. 들라크루아가 7월 혁명을 그린 그림인데, 그 역시 혁명에는 나서지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미안하게 생각했고 그림으로 자신의 모습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 그림을 보는데 어릴 때 생각이 나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정화라고 하잖아요. 한참 울고 나니까 마음이 굉장히 치유가 된다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습니다. 미술이 정말 치유가 되는구나 하는 걸 느끼고 미술을 더욱 좋아한 계기가 됐죠.


툴루즈 로트레크, <말로메 살롱에 있는 아델 드 툴루즈 로트레크 백작부인>


- 그림 강연을 하시다보면 그림을 보면서 감동을 받는 분도 꽤 계실 것 같아요.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데 장애를 앓은 화가로 툴루즈 로트레크가 있어요. 가문이 대단한 명문가였는데, 당시 명문가에서는 근친혼이 꽤 많았습니다. 이 분이 근친혼에 의한 질병으로 농축이골증을 앓았어요.

휴가철이나 몸이 많이 힘들 때는 어머니에게 찾아가 어머니를 모델로 한 그림을 그렸지요. <아침을 먹고 있는 화가의 어머니> 등 그림이 어머니를 그린 그림인데, 그림에서 슬프고 처연한 정서가 느껴집니다.

자신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고 자기 동생은 태어나자마자 죽고 그런 상황에서 어머니를 슬픔이 묻어나는 시선으로 그린 겁니다.

이 그림을 장애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에게 설명해 줄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이 정말 하염없이 우는 겁니다. 지금까지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었던 게 이 그림 한 장에 다 묻어 있다면서 “됐다. 내 힘들었던 모든 게 이 그림 한 장으로 치유가 됐다.” 이러시더라고요.

박광혁은…
진료실에서 보내는 시간 다음으로 미술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어찌 보면 괴짜 의사다. 그는 청진기를 대고 환자 몸이 내는 소리뿐만 아니라 캔버스 속 인물의 생로병사에 귀 기울인다. 명화를 만나 의학은 생명을 다루는 본령에 걸맞게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감성이 교류하는 학문이 된다. 의학자의 시선에서 그림은 새롭게 해석되고, 그림을 통해 의학의 높은 문턱은 허물어진다. 그는 병원 생활로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틈틈이 화집을 펼쳐 들어 해소하고, 긴 휴가가 생기면 어김없이 해외 미술관을 순례한다. 진료를 마친 후에는 의사와 일반인, 청소년, 기업 경영진 등을 대상으로 ‘의학과 미술’, ‘신화와 미술’을 주제로 강연한다.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한림대학교 성심병원 소화기내과 전임의를 역임했다. 네이버 지식인에서 소화기내과 자문의사로도 활동했다. 위대장내시경학회 총무이사와 임상초음파학회 사업이사를 맡고 있으며, 내과와 건강검진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 Editor - 송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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