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 키만소리 “소중한 엄마가 대단하게 느껴진 시간”

옷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고 수선해 입고, 외식 메뉴는 집에서 뚝딱 해결하던 짠순이 엄마가 배낭여행 간다는 딸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불쑥 꺼내놓은 비상금 200만 원. “부러우니까 가고 싶으면 나도 데려가라.”
딸은 내내 안 된다며 거절한다. 그리고 어느 날 빨래를 개던 딸의 손끝에 몇 년 전부터 버리라고 말했던 엄마의 해진 속옷이 걸렸다. 홀로 여행을 꿈꾸던 딸은 두 손을 들었고, 그렇게 모녀의 1달간 해외여행은 시작했다.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의 키만소리 작가와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치매기가 있는 외할머니를 요양시설에 보내면서 엄마는 “우리 엄마를 버리고 왔다”며 울었다. 강하기만 한 엄마도, 엄마의 엄마에게는 아이처럼 무너졌다.
엄마라는 말은 시간이 갈수록 사무치는 말이란 걸, 많은 시간이 흐르고서야 조금씩 깨닫는다. 이맘쯤이면 효도하고 살 줄 알았는데 아직 효도를 못해서, 이맘쯤이면 호강하며 사실 줄 알았는데 평생이 고생이어서. 그래서 가슴에 점점 깊이 박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와 외할머니의 마지막 추억은 한 통의 전화였다. 어느 날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전화해 말씀하셨단다. “현자야, 엄마 좀 데려가 주라.” 엄마는 “이제 곧 큰 집으로 이사 가요. 이사 끝내면 바로 모시러 갈게요.”하고 전화를 끊었단다. (118쪽)
키만소리 작가의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에서 ‘엄마도 엄마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대목을 몇 번이고 읽었다.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가슴에 묵직하게 얹힌 통증은 몇 번을 읽어도 덜어지지 않았다. 요양원에 계신 외할머니를 모셔오지 못한 것이, 작가의 엄마에게 가장 후회되는 일이라, 그이는 첫 해외여행에서 “엄마 보고 싶다”며 울었다. 좋은 풍경을 한 번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엄마가 보고 싶어서.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는 티격태격하는 모녀의 여행을 유쾌하게 그렸으나, 그 안에는 뭉클함이 있었다. 그건 50대 현자 씨가 자신을 버리고 자식의 ‘엄마’로 살아간 독자의 숱한 엄마들을 떠올리게 한 까닭이었다. 책을 보며 유쾌했고, 뭉클했고, 부러웠고, 목이 메었다.
엄마는 (네가 좋아하는 거면) 상관없어.
엄마는 (네가 좋아하는 곳이면) 좋아.
엄마는 (네가 좋아하는 거라면) 다 괜찮아.
처음부터 엄마의 말엔 내가 담겨 있었다. 평생을 엄마 그늘 아래 살면서 엄마는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자부했지만 엄마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참 많았다. (28쪽)

- 엄마와 함께 하는 여행,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배낭여행을 가겠다니까 엄마가 반대하는 거예요. 요즘은 해외에서도 연락이 잘 된다, 걱정 마시라, 연락 자주 하겠다, 아무리 설득해도 먹히지 않더라고요. 화가 난 나머지 엄마에게 버럭 했거든요. 그제야 속내를 비치시더라고요. “부러우니까 가고 싶으면 나도 데려가라고.” 그렇게 말씀하실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많이 당황했죠. 어떻게든 혼자 떠나고 싶었는데 가만 생각하니 저는 스무 살 때 처음 해외여행을 떠났거든요. 이십 대 내내 여행이 일상이었어요. 제가 히치하이킹, 해외 봉사활동, 캠핑카 전국일주까지 하는 사이 엄마는 해외 한 번 못 나가봤다는 생각이 들자 인간적으로 미안해지더라고요. 엄마한테.
- 엄마와 함께하는 해외여행은 저도 꿈꾸지만 아직 실행해 보지 못한 일이라서, 정말 부러웠습니다. 함께 하는 여행이니만큼 걱정도 컸을 것 같은데, 가장 큰 걱정은 무엇이었나요?
과연 내가 낯선 외국에서 엄마를 잘 보살필 수 있을까 걱정이 컸죠. 또 혼자라면 실수해도 대충 수습하면 되는데, 괜히 엄마 앞에선 완벽해야 할 것 같은 부담도 컸고요. 막상 여행을 떠나서는 엄마가 생각보다 씩씩해서 제가 챙겨드릴 일이 별로 없었고, 저의 실수들을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 주셔서 괜찮았어요. 아마 엄마와의 여행을 준비하는 분이라면 저와 비슷한 걱정을 할 것 같아요. 너무 걱정 마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 보통 부모님과 하는 여행은 짧은 일정의 관광일 경우가 많더라고요. 1개월 일정의 배낭여행을 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처음부터 엄마와 함께 여행 갈 생각이었다면 아마 저도 짧은 일정을 계획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 여행은 저 혼자만의 여행이었다가 모녀여행으로 바뀌었잖아요. 엄마가 부러우니까 나도 데려가 달라고 하실 줄은 몰랐거든요. ‘것 봐, 내가 고생한다고 했지? 다음부터 따라오지 마’ 라는 심보로 1개월을 감행했죠. (하하) 여행의 끝에 엄마가 세계 여행가라는 꿈까지 갖게 될지는 몰랐어요.
- 여행에 설레는, 또 여행하며 도전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멋있고 또 한편으로 짠했어요. 가족을 위해 희생하시지만 마음에는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소녀가 사는구나 싶었어요. 작가님도 여행에서 어머니에 대해 새롭게 발견하신 게 많을 거 같은데 어떤가요?
엄마는 저한테 소중한 사람이지만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지진 않았거든요. 그냥 평범한 가정주부였죠. 그런데 함께 여행하는 동안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따고 상인과 흥정하는 엄마를 보면서 엄마가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엄마의 새로운 면에 놀란 적이 많아요. 엄마가 국수를 그렇게 좋아하시는지 몰랐고, 그네 타는 걸 좋아하시는지도, 수영 실력이 뛰어난지도 몰랐어요. 여행하는 순간순간 놀라움의 연속이었죠. 과일 좋아하시는지 알았어도 무슨 과일을 좋아하시는지 몰랐던 제 자신이 당황스럽기도 했고요. 반성하는 시간도 많았습니다.
- 저는 물에 들어가는 레포츠를 못해봤는데, 그래서 어머니가 스노클링 하시는 모습이 더욱 멋있게 보였어요.
저도 스킨스쿠버 다이빙에 성공한 엄마를 보면서 ‘우리 엄마 맞아?’를 넘어 ‘우리 엄마 대단하다’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당시에는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나중에 삼십대 친구들도 무섭다며 다이빙 중간에 나가는 모습을 보고서야 쉰 넘은 엄마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신 게 정말 대단한 거구나, 했죠.
- 엄마와 함께 한 배낭여행 이야기를 브런치에 올리신 것은 어떤 계기였나요?
엄마와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면 제 친구들은 저한테 ‘효녀다, 멋있다’ 이런 말들을 하지만 사실 멋있는 사람은 우리 엄마 현자 씨죠. 엄마의 용기가 아니었다면 시작되지 않았을 여행인데 한동안은 제 어깨 ‘뽕’이 장난 아니었어요. 매일 엄마랑 싸우고 잘해드리지도 못하면서 밖에서는 효녀라는 칭찬만 잘도 주워 삼켰고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효녀라는 말, 그만 듣고 싶더라고요. 스스로가 정말 효녀가 아닌 걸 아니까, 부담되더라고요. 우리의 여행을 기록해서 사람들한테 공유해야겠다, 내 실체를 알려야겠다(?) 이런 생각으로 엄마와 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브런치라는 플랫폼(brunch.co.kr/@authork)에다 적어나갔어요.
-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차지하셨어요. 많은 분이 엄마와의 여행 이야기 좋아해주신 이유,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신선함 때문인 것 같아요. 여행지에 대해서 다룬 여행기는 많잖아요. 태국이 이렇고, 말레이시아가 어떻다 같은. 저는 그런 데 비중을 두기보다 엄마와 여행하면서 느낀 것들, 엄마에 대한 시선 위주로 솔직하게 풀어내려 노력했거든요. 그래서인지 우리 엄마 보는 것 같다, 내 이야기 같다, 공감이 많이 간다는 후기가 많았습니다.
- 그림 전공자가 아닌데 책 한 권 분량의 만화를 그리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네, 처음엔 한 컷 그리는 데 한 시간 정도 걸렸어요. 한 편이 아니고 한 컷이요. 지치고 힘들 때 기성작가들 웹툰을 봤어요. 그럼 제 그림이 너무 형편없어서 더 기운이 빠지는 거예요.
- 어머니의 직언 중 이건 좀 너무했다고 생각하신 말이 있다면, 또 가장 도움이 된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너 그림 진짜 못 그린다.” 이거요. 처음 브런치에 ‘엄마야, 마음 단디 먹고 배낭 메라’라는 그림을 연재할 때였어요. 칭찬 받고 싶은 마음에 엄마한테 보여드렸는데, 보자마자 저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땐 저 말이 어찌나 서운하던지. 하지만 책을 출간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수정 작업을 하는 동안 깨달았죠. 아! 엄마의 말은 옳다. 나 정말 그림 못 그렸구나. (하하) 엄마한테 기어이 잘 그렸다는 말을 듣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작업에 임했던 것 같아요. 들을 당시에는 너무했던 말이지만 돌이켜 보니 도움 된 말 아니었나 싶어요.
- ‘엄마도 엄마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는 글에 독자들이 많은 공감을 하셨어요.
아마 ‘엄마’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 때문인 것 같아요. 소중하지만 늘 곁에 있다는 이유로 제일 함부로 대하게 되는 사람이 엄마인 경우가 많잖아요. 만화는 현실 모녀를 보여주고 싶어서 갈등 장면도 코믹하게 풀었지만, 글은 전반적으로 ‘엄마도 엄마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는 글처럼 뭉클해요. 저랑 처음 여행할 때만 해도 엄마가 보고 싶다던 그 엄마가 벌써 유럽여행까지 다녀오셨답니다. 첫 해외여행 다녀오신 뒤로는 뭔가에 도전하는 데 거침이 없으시고요. 자신감도 많이 붙으셨어요. 뿌듯하네요. (웃음)
- 계실 때 잘해야겠다고 생각 하면서도 늘 실천하지 못하는 게 자식인 것 같아요. 세상의 자식들에게 하고 말씀이 있다면?
‘엄마도 엄마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는 개인적으로 저도 굉장히 좋아하는 에피소드입니다. 읽을 때마다 외할머니와 엄마 생각에 마음이 시큰해져요. 책이 출간되고 엄마가 ‘엄마도 엄마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에피소드를 읽고 메일을 보내신 적이 있어요. “막내딸 책 읽다가 웃다 울다 한다. 감정이 메말라 있는 줄 알았는데, 엄마 얘기만 나오면 눈시울이 뜨거워지네. 엄마도 딸인가 봐.” 그 메일을 읽고 한참 울었어요. 엄마가 흘린 눈물이 후회의 눈물이라는 걸 알기에 더 마음이 아팠답니다. 우리 후회하기 전에, 있을 때 잘해요!

- 작가님의 다음 행보에 관해서도 여쭙고 싶어요. 작가로서, 혹은 개인으로서 앞으로 계획하신 것이 있다면?
2017년 4월부터 남편과 함께 세계여행을 하고 있어요. 태국, 라오스,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호주, 뉴질랜드를 거치면서 재밌는 에피소드가 차곡차곡 쌓였답니다. 앞으로는 브런치에 남편과의 세계여행 이야기를 담은 ‘여보야, 배낭 단디 메라’를 연재할 계획입니다. 기대해 주세요.
-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전 세계 여기저기에 제 작업실을 두는 거요. 유목민처럼 언제든 원하는 장소로 이동하며 사는 게 꿈이거든요. 허무맹랑해 보일 수 있겠지만 언젠가는 이루어질 거라고 믿어요. 남편과 세계여행을 떠나오기 전까지 저는 인천의 작은 카페 주인장에 불과했습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저지르는 성향이라 꿈꿔왔던 일들을 어설프게라도 이뤄냈어요. 카페 주인이 되고 싶다는 꿈도 제 이름으로 된 책을 내고 싶다는 꿈도 이뤘습니다. 자꾸 시도하다 보면 결국엔 그럭저럭 괜찮은 뭔가를 이루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엄마 현자 씨가 쉰 넘어 해외로 배낭여행 다녀온 것처럼요. 그리고 제가 책을 내게 된 것처럼요. 독자 분들께서 저와 엄마의 이야기를 재미나게 읽으시고 더 늦기 전에 엄마와 여행을 떠나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네요.
키만소리는…
프리랜서 피처 에디터, 니콘코리아, 엘르엣진, 기업은행 등 다수 매체의 기획기사를 담당했고 대학문화 매거진 씽굿에서 2년 가까이 칼럼을 연재했다. 카카오 브런치에 ‘엄마야 마음 단디 먹고 배낭 메라’라는 제목으로 여행 웹툰 에세이를 연재해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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