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늙으면 누구와, 어디에서, 어떻게 살게 될까?” 후쿠오카에는 요양원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요양원이 있다후쿠오카 시 조난城南구의 주택가에 자리한 2층집. 마치 셰어하우스 같이 생긴 이곳은 ‘다쿠로쇼 요리아이’(‘다쿠로쇼’는 자택, ‘요리아이’는 모임이라는 뜻)라는 특별 노인요양시설이다. 이곳에 사는 치매 노인들은 다른 요양시설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삼시 세끼를 먹고, 잠을 자고, 느릿느릿 걸어 다닌다. 하지만 그 안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보통 알던 요양시설과는 다른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일반 요양시설이라면 ‘통제’하거나 ‘금지’하는 일들이 이곳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된다.보통 요양시설에서는 치매 노인의 외출을 허용하지 않는다. ‘요리아이’에서는 산책을 좋아하는 노인은 느린 걸음으로, 걷고 싶을 때까지 걸을 수 있다. 직원은 노인이 길을 잃지 않도록 따라가지만, 산책에 방해되지 않게 거리를 유지한다. 속도와 효율성을 중요시한다며 단팥빵도, 야채도, 흰쌀밥도 모두 갈아버린, 기분 나쁜 음식을 주지 않는다. 이가 몇 개 남지 않은 노인이 음식을 씹느라 식사 시간을 넘기더라도 재촉하지 않고 탱글탱글한 계란말이를 충분히 즐기며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린다. 직원들은 가끔 드라이브를 좋아하는 노인들을 차에 태우고 시장을 보러 간다. 매일 오후 4시에는 주방에서 직접 만든 간식을 내온다. 시폰케이크, 찹쌀경단, 슈크림, 젤라토……. 노인들은 입 주변에 얼룩을 만들며 흡족하게 맛을 즐긴다. 일주일에 한 번 개방하는 ‘요리아이’ 카페는 케이크와 빙수를 먹으러 오는 동네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치매 노인들도 손님인 듯, 주인인 듯 의아한 표정으로 테이블에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치매 노인이 있어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치매에 걸려도 ‘사람다운’ 생활을 하고 싶다마치 유토피아 같은 일상이 펼쳐지는 ‘요리아이’는 보증금만 1억이 넘는 고급 실버타운도, 인프라가 완벽하게 갖춰진 대학병원 요양원도 아닌 정원 26명의 소규모 요양시설이다. ‘요리아이‘는 1991년, 덴쇼지라는 사찰 다실에서 간병 서비스를 시작해 낡은 집을 빌려 임시로 운영하다가, 2011년 지금 자리에 땅을 매입하고 건물을 지어, 2015년에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이후 2호와 3호 ‘요리아이’도 후쿠오카에 문을 열었다. 〈도쿄케이자이〉 신문은 “새로운 간병 모델을 제시한 요리아이는 정말 눈부시다”고 보도했고, 〈서일본신문〉은 ‘요리아이’를 “지역 복지의 거점을 마련한 성공 사례”로 꼽았다. 소설가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지큐 재팬〉에 기고한 글에서 “요리아이’는 노인을 ‘물건’이 아닌 ‘인간’으로 대하며, 시설이나 사회의 시간을 강요하지 않고 노인들의 시간에 맞춘다”라고 ‘요리아이’를 관찰한 소감을 전했다.《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는 돈도 권력도 없는 사람들이 자신이 안심할 수 있는 장소는 스스로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특별 노인요양시설 ‘요리아이’를 설립한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출간 즉시 일본 아마존 정치사회 베스트셀러, 일본 대형 서점 야에스 인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맨주먹으로 출발해 돈을 모으고, 땅을 사고, 주민의 동의를 얻어 시설을 짓기까지 25년간의 과정은, 무모하지만 절실하고, 눈물겹지만 따뜻하다. 가진 건 없지만 배짱 하나는 두둑한 ‘요리아이’ 사람들과 치매 노인들이 일궈내는 유쾌한 에피소드는 치매는 ‘재앙’이라고 여겨왔던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이 책은 치매 노인을 ‘없는 존재’ 또는 ‘밥도둑’으로 치부하는 사회를 향해 따끔하게 경고한다. ‘치매 노인을 훼방꾼 취급하는 사회는 언젠가 치매에 걸리지 않은 사람도 훼방꾼 취급을 하게 된다’고. “할머니 한 분도 보살필 수 없다니 그게 무슨 복지예요!”곤경에 빠진 노인 한 명을 돕기 위해 시작했다‘요리아이’ 역사는 독특한 간병 전문가 시모무라 에미코가 이웃도, 시설도 모두 포기한 초강력 치매 노인 오바 할머니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오바 할머니는 “요양시설에 들어가지 않겠냐”는 시모무라의 제안에 “노인 요양시설이라니 뭔 헛소리야! 난 여기서 살다가 객사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야!”라며 단박에 거절한다. 낯선 곳에 끌려가느니 악취와 오물에 뒤섞여 살지언정, 죽어도 내 집에서 죽겠다는 오기이자 분노의 표출이었다. 시모무라는 이 기개 강한 할머니를 돕기 위해 동료들을 끌어 모아 사찰을 빌려 데이 서비스를 시작한다. 제도도, 시설도 없지만 ‘곤경에 빠진 노인 한 명을 위해’. 이 행동 원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요리아이’를 지탱해온 기본자세이기도 하다. ‘요리아이’ 사람들은 눈앞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앞뒤 재지 않고 일단 행동에 옮긴다. 시스템이나 규율에 사람을 맞추지 않고,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맞추려 노력한다. 오바 할머니를 돌보기 위해 시작한 간병 서비스에 관한 소문을 듣고 찾아온 노인들로 결국 사찰은 넘쳐났고, 시모무라와 동료들은 ‘자신이 안심할 수 있는 장소는 스스로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으로 낡은 주택을 빌려 더 많은 노인들을 돌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다. 한 독거 치매 노인을 돕기 위해 출발한 ‘요리아이’는 갈 곳 없는 노인들과 부모를 차마 감옥 같은 병동에 보낼 수 없는 가족에게 ‘내 집 같은 곳’이 되었다. 모든 수고를 돈 주고 살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돈으로 해소되지 않는 불안이 있기 마련이다. 치매에 걸리면 집을 떠나 낯선 곳에 끌려가는 건 아닌지, 가족 입장에서는 믿고 맡긴 시설에서 부모가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건 아닌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존재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돌보지 못하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이 책은 ‘복지’를 시행하는 국가와 전문가가 잊지 말아야 할 질문을 던진다. 간병은 서비스가 아닌 ‘생존’의 문제로 다뤄야하지 않는가? 도움이 필요한 한 사람도 돕지 못한다면 과연 그것을 복지라 할 수 있는가? 죽기 하루 전날도, 누군가에겐 소중한 일상이다 삶의 기본을 포기하지 않는다시설에 들어간 노인들은 사회에 격리된 채,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하는 걸까?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는 없는 걸까? ‘요리아이’는 치매 노인들이 자택에서와 같이 생활하도록 지원하는 곳이다. 먹고, 마시고, 수다를 떨고, 이웃의 얼굴을 보는 것. 삶의 기본을 지키는 일은 어렵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세 끼 모두 직접 조리한 음식을 내놓는다 차가운 배식판 말고 밥은 밥공기에 된장국은 대접에, 반찬은 접시에 담아 집밥 다운 밥을 먹는다. 잘 씹지 못한다고 해서 믹서에 갈아 만든 음식을 내놓지 않는다. 노인들과 직원들은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즐긴다. 주방은 음식 만드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탁 트여 있다. 덕분에 호기심 많은 노인들은 ‘오늘 점심은 뭘까?’하며 주방을 기웃거린다. 소독약 냄새가 아닌 나무 냄새가 난다 ‘요리아이’ 직원들은 아무리 보아도 시설로 보이지 않는 시설을 원했다. 소독약 냄새가 나고 차가운 하얀 바닥이 깔린 병원 같은 공간에서는 아무도 편안함을 느낄 수 없다. 계절 변화를 볼 수 있는 창문, 따뜻한 조명, 빗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방, 위치에 따라 벚꽃이 보이는 방……. 한가로운 오후에는 모두 거실에 둘러앉아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운다.동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시설에 들어간 사람이 격리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딱딱하고 우울한 시설에 놀러가고 싶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요리아이’는 과자와, 케이크, 커피, 점심식사를 파는 카페를 운영해 주민과의 벽을 허물었다. 매주 이곳을 찾는 단골이 생겼다. 마당이 넓어 아이를 데리고 오는 부모도 있다. 치매 노인들도 ‘케이크를 여기저기 흘리며 조용히 음미’한다. 카페와 건물은 넓은 데크로 연결되어,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노인들도 사람들 말소리를 들을 수 있다. 돈은 늘 부족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아직 따뜻한 돈이 존재하기에 ‘요리아이’는 빈손으로 시작해 1억 2천만 엔을 모아 땅을 사고, 추가 보조금 1억 1천1백만 엔을 받아 건물을 지었다. 그러는 사이 직원은 두 배로 늘었다. 노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추는 간병 방식은 변함이 없다. ‘요리아이’ 같은 곳이 한 동네마다 하나씩 있다면 좋겠는데, 과연 가능할까? 노인은 많고, 돈은 부족하다. 급료가 적고 일이 고된 간병가가 되겠다는 사람은 적다. ‘요리아이’가 제시한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직원의 힘만으로는 이런 시설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간병을 공동체의 몫으로 돌리려는 것이다.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사회 안전망’을 만들자는 것이다. ‘요리아이’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101명의 후원자들을 비롯해, ‘금액이 너무 적어서 미안합니다’라며 기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직원들이 손수 만들어 파는 딸기잼과 바자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가게에 모금함을 놓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요리아이’ 사람들이 원하는 집을 짓기 위해, 밤을 새어가며 설계도를 그리는 건축가가 있다. 까다로운 건물 규정을 차근차근 상담해주는 시청 직원이 있다. 그리고 한여름에도, 한겨울에도 모금 활동을 멈추지 않는 ‘요리아이’ 직원들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간병이나 치매 세계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어쩌다보니 ‘요리아이’ 돌보미가 되어 치매 잡지까지 만들고 있다. 치매를 앓던 어머니를 모신 경험이 있는 일본 국민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는 우연히 ‘요리아이’와 인연이 닿아, 자선행사 때마다 즉흥시를 지어 재능기부를 한다. 맡겨지고 싶지 않다 안심할 수 있는 곳에서, 아는 얼굴과 살고 싶다 우리는 누구나 늙는다. 슬프지만 피할 수 없다. 치매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노인요양시설에 들어가지 않고 안심할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면, 지금부터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미래에 내가 받을 돌봄을 ‘저축’하는 것과 같다. 꼭 거창한 일을 하지 않아도 좋다. 주변에 있는 노인들을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보고, 뜻이 맞는 곳에 기부를 하고, 치매 노인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서슴없이 말을 건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한 것처럼, 힘없는 노인 한 명을 돌보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도, 여럿이 모이면 가능하다. 치매 노인도 ‘품위를 유지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더 많은 사람이 나눈다면 우리도 곧 ‘요리아이’ 같은 곳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