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전성배 ‘과일을 팔며 계절도 팔고 있습니다’

입 안 가득 퍼지는 달큰한 딸기 향기, 베어 물면 새콤하게 터지는 한라봉 조각, 잘 깎은 배의 새하얀 과육에서 나는 아삭한 소리…. 전성배 작가의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를 펼치면 청과상에 들어선 것처럼 신선한 과일 냄새가 훅 끼쳐오는 것 같다. 계절 과일이란 말이 무색해진 요즘이지만 과일을 파는 전성배 작가는 여전히 계절의 흐름에 맞추어 삶을 꾸려간다. 소비자에게 제철을 맞은 과일을 소개하고, 자연과 농부로부터는 계절의 목소리를 듣는 일. 그 가운데서 붙잡은 계절의 조각이 이 책에 담겼다.
“차별화를 위해 쓰기 시작했던 글이 매출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글을 쓰기 위해 만났던 농부님들의 목소리가 제게 힘이 되었습니다.”
_인터뷰 중에서
안녕하세요, 작가님. 농산물 MD로 일하고 계시다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가요?
반갑습니다. 전성배입니다. 저는 온라인으로 소비자분들에게 과일을 전하고 일을 하면서 글도 쓰고 있습니다. 철마다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농산물에 대한 이야기를, 또 작물을 기르는 농부님들의 이야기를 여건이 되는 한에서 꾸준히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의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어떤 책인지 간략하게 소개해 주신다면요.
‘농산물 MD의 우리 작물 이야기’라는 부제 그대로 그동안 제가 만났던 작물들의 여러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특이한 점이라면 수입 과일이 물밀듯이 들어오는 때이지만, 국내에서 생산되는 과일들을 추려 소개했다는 점일까요. 또한 작물들의 삶에서 우리 인간의 삶을 배울 수 있다는 점도 전하려고 했습니다.
어릴 때 나는 곶감이 그저 생기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무엇이든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곶감도 사람도 제대로 잘 익는 데에는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_197쪽, 「시간으로 빚은 정성, 곶감」 중에서
목차의 과일들,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고, 글을 쓰게 되셨나요?
사계절을 살려 구성하자는 편집자님의 의견에 따라 계절별로 과일을 배치하였습니다. 물론 하우스 재배 방식의 보편화와 기후 변화로 이제는 ‘제철 과일’이란 말이 무색해지긴 했지만, 사계절이 오래 지속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지요. 봄부터 겨울까지, 24가지 과일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이중 작가님의 ‘최애’ 과일은 무엇인가요?
저는 짭짤한 맛을 지닌 대저 토마토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대저 토마토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은 아시겠지만 ‘진짜’ 대저 토마토는 흔하지 않습니다. 대저 토마토의 진짜 짭짤한 맛을 즐기시려면, 토마토 표면을 잘 살피셔야 합니다. 거미줄 모양처럼 퍼진 섬유질 무늬가 은은하게 보이고, 꼭지 부분을 중심으로 초록색의 무늬가 진하고 넓게 분포한 것을 고르면 됩니다. 한 가지 팁을 더 드리자면 대저 토마토는 초록에 가까울수록 짭짤한 맛이, 붉을수록 단맛이 더 강하답니다.

(일러스트 조한샘)
대저 토마토는 시설 재배를 통해 사시사철 만날 수 있는 일반 토마토와 달리, 2월 말부터 시작해 4월 말까지 약 두 달 동안만 즐길 수 있다. 이 때문에 대저 토마토는 ‘봄의 전령’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_16~17쪽, 「고난이 낳은 산물, 대저 토마토」 중에서
농산물을 판매하면서 글도 쓰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처음 글을 쓰게 된 것은 ‘과일을 남들과는 다르게 팔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상품도 마찬가지겠지만, 농산물을 파는 일도 경쟁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소비자가 보기에는 판매처가 유사해 보이기 때문에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죠. 따라서 반드시 차별화가 필요했습니다. 제게는 그것이 ‘글’이었습니다. 서툰 글이지만 브런치에 글을 꾸준히 발행했습니다. 편집자님이 그것을 보고 연락을 주신 것이 출간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책 만드는 일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부족함을 깊이 깨닫는 시간이었고 출간에 힘써주신 많은 분께 보답하고 싶은 마음으로 열심히 작업했습니다.
때때로 ‘맛이 없다’는 이유로 열을 내는 고객을 만나기도 한다. 포장 실수나 배송 시 부주의로 인한 파손은 사과하고 보상이나 교환 등의 조치를 하면 된다. 하지만 ‘맛’을 이유로 불만을 제기하는 일은 참으로 곤란하다.
_37쪽, 「맛을 판다는 것」 중에서
과일에 관한 음식 에세이로도 읽을 수 있지만, 과일을 파는 사람의 직업 에세이로써도 무척 즐겁게 읽었습니다. ‘농산물 MD’라는 일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처음에는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 일에 뛰어들었습니다. 물론 지금이야 경쟁이 워낙 치열해 처음에 일을 시작하게 했던 목적은 무색해졌지만요. 그럼에도 제가 이 일을 계속해나가는 건 농부님들 덕분입니다. 차별화를 위해 쓰기 시작했던 글이 매출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글을 쓰기 위해 만났던 농부님들의 목소리가 제게 힘이 되었습니다.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드리는 것뿐,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늘 감사하다고 말씀해 주세요. 그게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계속해 나가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죠.
과일의 역사와 비화, 효능 등 과일에 대한 지식도 풍부하게 담겼습니다. 생산이나 판매로는 얻을 수 없는 이러한 지식은 어떻게 공부하고 계신가요?
대부분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만났던 선배들과 농부님들의 인터뷰를 통해 얻은 지식입니다. 다만, 구전되는 지식은 오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매번 농업계에서 제공하는 검증된 정보를 살펴봅니다. 그리고 글을 쓸 때도 가급적 정확한 정보를 넣으려 애썼습니다.
▲ 전성배 작가가 만난 농가
과거와는 과일을 파는 모습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요. 유통업자로서 달라진 유통 방식을 체감하는지, 또 어떤 모델을 추구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온라인 유통 경로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소비자가 주문하는 상품은 산지 아니면 도매시장, 소매업장 등에서 발송되고 있죠. 그러나 소규모 중개업자의 유통 방식은 많이 위태로워진 것 같습니다. 대형 유통 업체들의 영향도 있지만, 산지 농부가 소비자와 직접 거래하는 일이 더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비교적 젊은 농부님들이 스스로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블로그, 오픈 마켓 등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되면서 중개업자의 필요성이 줄어든 것이죠. 여기에 일부 소비자들이 갖는 중간 유통망에 대한 불신도 농부와 소비자의 직거래를 활발하게 하는 한 요인입니다. 중간에 있는 저로서는 낙심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농부에게는 좋은 변화이므로 저는 그저 제 다음 행보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농산물 에세이만이 아니라 농부 인터뷰와 농산물에 국한되지 않는 에세이까지. 브런치에서 폭넓은 글을 연재하고 계신 걸 보았어요.
글을 쓰는 것은 제게 일이기도 하면서 취미이기도 합니다. 농부님들의 이야기나 업계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은 일에 가깝지만, 일상에서 얻은 글감으로 에세이를 쓰는 것은 취미라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수익과 직결되지 않는 글쓰기지만 즐겁게 쓰고 있습니다. 거기다 한때 취미로 시를 썼는데, 그 영향도 있는 듯합니다. 시로는 다 할 수 없는 이야기를 긴 글로 쓰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 책을 어떤 분에게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익숙하지만 소홀한 관계’라는 말을 듣고 누군가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는 언뜻 과일 이야기 같지만, 자세히 그 안을 들여다보면 반복적으로 농산물과 우리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쭉 함께여서 그동안 알려고 하지 않았던, 익숙하지만 실상은 모르는 것투성이인 관계들. 농산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부모, 자식, 연인, 친구 등 소홀했던 관계들을 되짚어 보고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이 되셨으면 합니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책에서 밝힌 목표 외에 또 하나는 책을 내는 것입니다. 좋은 기회로 농산물 에세이를 냈으니, 다음에는 일상에서 얻은 글감으로 가득 채운 에세이를 한 권 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보고 있을 독자분들에게 자유롭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코로나로 모두가 끝나지 않는 밤을 걷고 있습니다. 언제 아침이 오는지 시간이라도 알 수 있으면 좋겠지만, 어디를 봐도 시계는 보이지 않죠. 그래도 힘내시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식상한 말이지만, 꼭 힘내시어 필히 밝아올 아침을 함께 기다립시다.

전성배
계절에서 인간과 작물의 순환을 배웠다. 땅에서 나고 자라는 모든 것에 애정이 생겼고 농부를 존경하게 되어 기꺼운 마음으로 장사꾼이 되었다. 현재는 온라인으로 과일을 판매하면서 농부와 소비자 사이를 연결하고 있다. 앞으로는 단순히 작물을 파는 것을 넘어 땅에서 나고 자라는 생명들의 소중함과 농부들의 마음을 전하는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
|Editor - 임채원
chaewon418@bnl.co.kr
이미지 제공 - 큐리어스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