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의 우주공부』 이명현 ‘쉬운 과학보다는 친절한 과학을’

오전 내 쏟아진 눈이 하얗게 쌓이고 감쪽같이 그친 오후, 삼청동 갈다 책방에서 이명현 작가를 만났다. 변함없이 자연스러운 풍모와 수줍은 웃음으로 맞이한 이명현 작가는 출간 소식이 없어 인터뷰 요청을 못 드렸다는 말에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제가 책 쓰는 걸 귀찮아해서…” 갈다 책방 대표로, 과학 저술가이자 커뮤니케이터로 바쁘게 활동하는 그의 귀한 신간이 나왔다. 현대 우주 과학의 최전선에서 쓴 『지구인의 우주공부』다. 친절한 우주 과학 수업을 듣는 기분으로 그와 인터뷰를 나눴다.
“‘어려운 개념을 비껴가지 않고’ ‘할 수 있는 한 친절하게’ 글을 쓰기. 이게 제가 글을 쓰는 태도입니다.”
_인터뷰 중에서
반갑습니다, 이명현 작가님. 요즘 갈다 책방의 근황은 어떤가요?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쳐서 올해부터는 갈다에서 진행하던 프로그램들을 전면 온라인으로 진행하기로 했어요. 상황이 좋아지면 그때 오프라인으로 전환하려고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동시에 진행하기보다 온라인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온라인으로 진행해보니 어떠세요?
상상하시는 온라인의 불편함은 당연히 있고요. 온라인의 장점은 해외나 지방에서 참여하는 분들이 늘었다는 거예요. 갈다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듣기 위해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접속하는 분들도 있어요. 또 다른 장점은 오프라인에서 아무래도 편향되기 쉬웠던 발언권이 온라인에서는 민주적이고 평등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걸까요.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 나이 많은 사람 위주로 주어질 수밖에 없던 발언권을 모임의 리더가 적절히 통제하기 쉬워졌다는 장점도 있어요.
오랜만에 단독 저서가 나왔습니다. 공저나 앤솔로지로 참여한 책은 자주 만났는데요.
제가 책 쓰는 걸 귀찮아해서….(웃음) 이번 책도 출간 얘기가 나온 지는 10년이 지났는데 이제야 겨우 나왔어요. 제가 과학 저술가로 불리곤 하지만 사실 제게 작가로서의 사명감이나 책을 내야겠다는 강력한 의지는 없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학교 공부 외에도 야구며 문예반이며 아마추어 천문학 같은 외부 활동을 하느라 바빴거든요. 연구소에 있던 시절에도 마찬가지로 외부에서 원고나 강연 요청이 들어오면 사양하지 않고 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현장을 떠나서도 전업 작가가 됐어요. 지난 몇십 년간 청탁 외에 자발적으로 쓴 글은 한 편도 없네요.(웃음) 글을 쓰는 게 제 생활 속에 녹아 있긴 하지만, 제 인생 목표는 아닌 거죠. 원고가 쌓여 있어도 책으로 내질 않고 자꾸 미루고…
그래서인지 몇 년 사이 공저나 앤솔로지로 내신 책은 굉장히 많고요.
단독 저서에 대한 미련이나 절실함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이명현의 별 헤는 밤』이 제 가장 많이 팔린 단독 저서인데, 이 책을 낼 때도 제가 하도 원고를 안 쓰니까 출판사에서 신문 연재를 시켜서 원고를 마련했죠. 책으로 낼 만큼 원고가 쌓였을 때 제가 출판사에 내건 조건이 ‘책이 나올 때까지 연락하지 않기’였어요. 제목도 나올 때까지 몰랐고.
이번 책을 내기까지도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20년 전에 《별과 우주》라는 잡지에 ‘Astronomy Now’라는 코너를 연재했는데, 당시 발표되는 논문 중 이슈가 되는 주제를 다룬 것을 골라 쟁점을 살펴보는 코너였습니다. 이후 경향신문에서 비슷한 컨셉으로 연재를 했고, 그렇게 해서 모인 원고로 이번 책이 나왔어요. 최초에 구상한 책은 ‘Astronomy Now’에서 쓴 옛날 글과 경향신문에서 쓴 요즘의 글을 비교하며 새로이 발견된 사실이나 달라진 쟁점을 논문과 함께 살펴보는 책이었습니다. 무엇이 해결되었고, 무엇이 틀렸고, 무엇이 교정되었는지 확인하며 과학의 유동성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출판사의 의견은 ‘과학이란 정확해야 하는데, 독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거였어요. 결국 출판사의 의견을 따라 최근에 쓴 글을 중심으로, 과거의 글은 함께 실어 참고할 수 있도록 편집하기로 했습니다. 저도 세분화된 연구 비교는 일반서가 아니라 전문서나 학술지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하는 고민이 생기기도 했고요.
중력파 검출은 현대 물리학이 축배를 들어 마땅한 쾌거였다. 그 신호의 검출로부터 비로소 시작된 중력파 천문학의 핵심 타깃 중 하나는 블랙홀이다. (「중력파 천문학의 의미」 中)
2019년과 2020년에도 허블 상수를 측정한 논문들이 계속 발표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시기에 영문판 위키피디아 ‘Hubble’s law’의 허블 상수 논문 목록에 올라와 있는 11편의 논문에서 측정한 허블 상수값을 살펴보면 요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허블 상수 전쟁과 우주 망원경」 中)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얼마나 쉽게 설명할지’의 고민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책을 쓸 때 독자층을 타깃으로 잡지는 않아요. 방송에 나갈 때마다 요구받는 것 중 하나가 ‘중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게’ 쉽게 설명해달라는 건데요. ‘중학생 수준’이라고 표현해도 편차가 굉장히 큽니다. 한창 과학에 관심이 있어서 알아보는 중학생이라면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그렇다고 중학교 교과서를 기준으로 삼자니 중학교 교과서 정도면 성인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날이 갈수록 방송이 요구하는 수준은 낮아져서 요즘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연구를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달라는 요구를 받기도 하는데, 무척 곤란하죠.
그래서 저는 ‘쉽게’보다는 ‘친절하게’ 말하려고 해요. EBS에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연구를 설명하며 블랙홀의 이론과 관측을 설명할 일이 있었는데요. 일반상대성이론을 이야기하지 않고 이 이론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알고 보면 굉장히 어려운 개념을 가능한 한 디테일하고 친절하게 설명하려고 했어요. ‘어려운 개념을 비껴가지 않고’ ‘할 수 있는 한 친절하게’ 글을 쓰기. 이게 제가 글을 쓰는 태도입니다. 완전히 낯선 것은 어렵고, 완전히 아는 것에 대해서는 흥미가 생기지 않죠. 약간 낯설고, 어렵고, 신기한 걸 익숙한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지점을 찾으려 해요. 일반상대성 이론을 설명하되 ‘일반상대성이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설명하려는 것처럼요.
‘SF가 현실이 되는 이 시대의 우주 이야기’라는 부제가 흥미롭습니다. 픽션을 말하는 SF와 사실을 밝혀내는 과학이 친한 사이일 수 있는 건 왜일까요?
의외로 과학자들은 SF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오류 찾기 같은 건 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픽션이라고 생각하고 너그럽게 보지요. 칼 세이건이 한 말 중에 이런 것이 있어요. “우리는 SF 소설의 발상들과 함께 자란 첫 세대이다. 나 자신을 포함한 많은 과학자들이 SF 소설 때문에 맨 처음 이 길로 들어섰다. SF 소설 중 일부의 수준이 최상이 아니라는 사실은 상관이 없다. 10세 소년은 과학 문헌을 읽지 않는다.” 칼 세이건의 어린 시절인 1940-50년대는 미국에서 B급 SF가 성행하던 시절입니다. 개연성도 뭣도 없는 B급 영화지만 아이들에게는 자기가 가진 상상력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콘텐츠였던 거죠.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과학적으로는 사실관계도 맞지 않고 문제가 많지만, 몰입하고 흥분하고 호기심과 열정을 자극하기엔 충분하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 마치 산타클로스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듯, 과학자들은 SF와 결별합니다. 엄밀하게 나아가기 시작할 때 과학이 되지요. 과학자들은 SF가 픽션이라는 걸 알지만, SF에 가졌던 열정은 고스란히 가지고 있어요. 말도 안 된다고 비난하고 따지기보다 그들의 동력이 되어주는 거죠. 모든 과학자는 SF에 빚지고 있는 셈입니다. 단지 상상력에 함몰되지 않는 사람들이 과학자가 되는 거예요.
과학자와 예술가가 닮았다는 말씀을 하신 걸 본 적이 있어요.
과학의 많은 분야 가운데 자연과학자가 된다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지요. 과학자는 과학을 잘해야 하기도 하지만, 그 분야에 끈질기게 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하거든요. 대학을 졸업하고도 황금 같은 수년을 경제적으로 안정되기 어려운 활동에 투자해야 하고, 공부의 시기를 졸업하고서도 더 치열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지요. 직업으로서의 성공을 기대하기 힘든 일이고요. 이런 길을 감당할 수 있는 소양이 있는 사람들이 자연과학자가 되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과학자는 남의 일에 전혀 관심이 없고, 자기 일만 하기에도 너무 재밌고 바쁩니다. 세상에 모르는 게 너무 많고 그것들을 알아가는 일이 너무나 재밌는 사람들. 물론 모르는 게 많아서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해결했을 때의 희열이 있거든요. 그 희열을 아는 사람들이 과학을 하는 것 같아요. 예술가들이 예술을 할 때의 경이로움과 닮아 있죠.
SF에 너그러워진다는 것도 이해가 되네요. 같이 좋아하는 걸 말해주는 분야니까.
맞아요. 그리고 대신 말해주니까 좋잖아요. 과학자는 엄밀하게 논문이라는 작업을 통해서 말해야 하잖아요. SF가 그 욕심을 대리만족시켜주는 거죠.
과학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SF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하나요?
그럼요. 정말 ‘덕후’도 있고요. SF 소설을 쓰는 사람도 많아요. (저도 작년에 한 편 썼고요.) 과학자들이 모이면, 이를테면 이런 이야기를 해볼 수 있죠. ‘양성자의 질량이 2배라면 어떤 우주일까’ 같은 상상을 해보는 거예요. 어떤 물질이 먼저 생길까부터 시작해서 지금과는 엄청나게 다른 세상이 될 걸 상상해보는 거죠. 직업적으로 훈련받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렇구나 하고 지나갈 일을 과학자들은 머리 맞대고 앉아서 계산을 시작합니다. ‘양성자가 2배 커진다고? 그럼 중력도 전하량도 달라지겠네.’ 앉아서 이러고 노는 거예요.
작가님의 전공은 전파천문학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지구인의 우주공부』에서는 그보다 훨씬 넓은 분야에서 천문학과 우주론의 다양한 갈래를 다루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당시에 발표된 논문 중 관심 가는 것들을 택하다 보니 다루는 주제들이 다소 편중된 경향이 있습니다. 우주론이나 최근 이슈인 중력파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했지만, 별의 일생이나 행성에 관한 연구는 거의 다루지 못했어요. 책에 실린 글이 전반적으로 큰 스케일에 경도되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요즘의 천문학계에서 가장 이슈인 주제가 오리진(기원)이라는 영향도 있어요. 천문학에서 말하는 ‘오리진’에는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기원이라는 두 개의 큰 축이 있는데, 그쪽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게 되었습니다.
우주의 생명체를 찾는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SETI KOREA 대표를 맡고 계신다고요.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은 ‘우주인’과 ‘우주 생명체’를 찾는 것이 좀 다르다는 겁니다. SETI 프로젝트는 우주 지적 생명체 탐사 프로젝트예요. 반면 화성에 박테리아나 미생물이 있을지 살펴보는 걸 우주생물학이라고 해요. 우주생물학이 훨씬 더 넓고 큰 분야이고, 우주생물학의 0.5퍼센트 정도가 우주 지적 생명체를 찾는 SETI라고 보면 되겠네요.
SETI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시작되셨나요?
해외에 비하면 우리나라에는 외계 지적 생명체를 찾는 단체가 없다시피 했어요. 개별적인 연구만 있던 가운데 2004-2005년 무렵에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하면서 SETI 과학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죠. 저도 전파천문학 출신이다 보니 의기투합이 됐습니다. 이후 2009년 세계 천문의 해를 맞아 한국에서도 SETI KOREA가 발족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SETI를 대표하는 기관이 처음 생긴 거죠. 우리나라에서 나온 전파망원경을 가지고 우리나라에서 전파 관측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다만 이 조직은 독립된 조직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정권이 바뀌거나 지원이 끊기는 등의 문제로 활동 역시 흐지부지되었다가 작년에 독립된 조직으로 복원하여 활동 재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나 제프 베조스의 ‘블루오리진’ 등, 민간의 우주 기업이 대두되며 우주 비즈니스 시대가 열렸습니다. 우주 비즈니스에 투자 붐이 일고 있는 요즘의 상황을 어떻게 보시나요?
민간에서의 우주개발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습니다. 크게 ‘우주 여행’과 ‘소행성 채굴’ 산업으로 나눠볼 수 있고, 저도 여기에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흐름에 따라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를테면 아랍에미리트(이하 아랍)은 작년에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번째로 우주 탐사선을 띄웠습니다. 아랍은 화성으로의 이주 100주년 계획을 발표했는데, 우주 관련 부서를 설립하고 이 부서의 장관에 30대의 젊은 여성을 앉혔어요. 화성 이주 계획과 관련된 직책의 반절 이상을 여성이 맡고 있고요. 지금 아랍은 석유 국가지만 앞으로는 우주개발 국가가 되겠다는 계획이죠. 실제로 100년 뒤에 화성으로 이주할 수 없더라도 이 프로젝트를 통해 관련 기술을 많이 확보할 수 있는 셈입니다. 또 다른 사례로 룩셈부르크는 소행성 채굴 산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해, 담당할 장관을 임명하고 우주 과학 학교를 세우는 등 정책적으로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룩셈부르크가 전 세계 민간 우주 산업의 메카가 된 거죠. 아랍은 국가가 주도하는 프로젝트이지만, 룩셈부르크는 국가가 방향을 제시하고 민간이 주도하는 사례입니다. 미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민간이 판도를 바꿔가는 판국입니다. 우리나라는 뒤처진 상황이고요.
긍정적인 소식을 하나 전하자면 며칠 전 과학기술부 장관이 한국천문연구원에서 개최한 포럼에 참석해, 한국에서의 탐사선 계획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2039년에 지구 근처를 지나는 소행성이 있는데, 여기에 직접 탐사선을 보내는 계획이지요. 드디어 우리나라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우주 산업을 하던 벤처기업들을 국가 단위로 뭉치는 움직임이 시작된 겁니다. 아주 상징적인 행사라고 볼 수 있어요.
최초에 우주 산업은 국가 위주였죠. 민간으로 넘어오면서 생기는 문제점은 없을까요?
과다경쟁을 걱정할 단계는 아직 아닌 거 같고요.(웃음)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우주 산업을 대표할 국가단체가 없다는 점이에요. 미국의 나사(NASA)나 아랍의 UAE 첨단과학기술부 같은 기관이 없는 거죠.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한국항공우주원이나 천문연구원이 이러한 역할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이들은 연구소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대표성이 부족해요. 예산을 통과시키고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우리나라의 민간 기업이 해외의 기관과 협의와 협력할 때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문제까지 있습니다.
우주 산업에 있어서 한국의 현주소는 어떤가요?
우리나라는 우주 탐사에 있어서 세계 7~8위권쯤 됩니다. 우주개발을 한다는 건 발사체가 있어야 하고, 인공위성 등 쏘아 올릴 것을 만들 기술력이 있어야 하고, 쏘아 올린 것을 운영할 줄 알아야 하죠. 이 모든 게 가능한 나라는 6개국뿐입니다.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일본, 인도, 유럽연합. 우리나라는 발사체만 없는데, 현재 발사체를 완성해 실험 단계에 있으니까요. 그게 완성되면 7위권이 됩니다. 물론 1위와 2위의 격차가 아주 크고, 5위와 6위의 격차가 아주 크지만요. 우리나라의 우주개발 기술에 대해서는 폄하된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외국과의 파트너십이 강화되면서 점점 우주 산업에 대한 투자와 정책도 활성화될 거라 봅니다.
한편 현실적인 어려움을 뚫고 이뤄낸 성과가 몇 가지 있습니다. 미국과 협업해 만든 태양관측기구가 있는데, 이 데이터가 처음 나왔습니다. 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데이터지요. 스나이프(SNIPE, 한글명 도요샛)라고 하는 인공위성이 있는데, 기존의 커다란 인공위성이 아니라 작은 인공위성 여러 대를 드론처럼 띄워 서로 통신할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우리가 미국에 제안했고 통과되어 테스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올해 발사가 예정되어 있고요.
고무적인 소식이 많네요.
아무래도 우리나라 1세대 천문학자들은 연구 성과를 내기보다는 잘 가르치고 후학을 양성하는 역할이 컸지요. 그분들이 외국에서 학위를 받고 돌아와 자리를 잡았고, 그 사이에 국력을 키워 경제적으로 뒷받침이 되자 이제 성과가 나오고 있다고 봅니다. 제가 학생일 때만 해도 국내에서 천문학을 해도 어떤 지원도 없어서 모두 유학을 갔지만, 지금은 국내에서 박사를 하는 것이 여러모로 훨씬 좋거든요. 스나이프가 이런 성과를 대표하는 소식입니다. 해외에서 주도하는 프로젝트에 우리가 참여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제안해서 저쪽에서 승인하는 프로젝트니까요.
갈다의 프로그램 운영부터 SETI KOREA, 한국의 우주 정책까지 이 많은 일을 해내려면 몸이 하나로는 부족하시겠어요.
정책은 열심히 추진하시는 분들이 따로 있고요.(웃음) 대신 저는 민간에 있으니까 이렇게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는 대로 관련된 이야기를 자주 하려고 하죠.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들을 제가 꾸준히 말해서 보다 많은 분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구인의 우주공부』가 우주에 대한 관심의 초석이 되면 좋을 텐데요. 이 책을 좀 더 자세히 읽는 방법으로 추천하고 싶은 것이 있으신가요?
다른 책을 통해 더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요즘은 책 말고도 유튜브로도 좋은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신뢰하기 어려운 채널도 많지만 저희 갈다와 꾸준히 교류하는 분들의 믿음직스러운 채널도 여럿 있습니다. ‘안될과학’이나 ‘과학쿠키’, ‘1분과학’, ‘지식인미나니’ 같은 채널은 제가 이 책에서 말한 내용을 좀 더 감각적으로 접할 수 있습니다.
2021년 국제천문연맹 총회가 부산에서 열린다고 들었어요.
올해 부산에서 예정되어 있던 국제천문연맹 총회는 코로나로 인해 내년으로 연기한다는 공지가 얼마 전에 내려왔어요. 국제천문연맹 총회는 3년마다 열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열리는 겁니다. 미뤄지긴 했지만 우리나라 천문학자들이 무척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행사예요. 전 세계에 있는 13,000여명의 천문학자 중 3,000~4,000명의 천문학자가 모이지요.
전 세계의 천문학자가 13,000명이라고요?
국제천문연맹 총회가 열리기 전에 연맹에 가입된 천문학자들의 명단을 업데이트하거든요. 새로 박사 학위를 받거나, 석사·학사 학위가 있고 오래 근무해 유의미한 실적을 쌓은 분 등이 신청한 명단을 정리합니다. 2019년에는 국제천문연맹에서 ‘허블의 법칙’을 ‘허블·르메트르 법칙’으로 이름을 바꾸는 온라인 투표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투표권이 있는 사람을 국제천문연맹에 등록된 인원으로 한정했을 때 13,000명 남짓이었습니다. 저처럼 현장에서 연구하지 않지만 과학관이나 천문대에서 일하는 사람도 연맹에 소속되어 있다는 걸 감안하면, 현장에서 연구하는 천문학자는 만 명 정도 되지 않을까요?
전 세계에 만 명이라니, 생각보다 적네요. 그에 반해 일반인의 우주에 대한 관심은 큰 것 같아요.
거기에 더해 일반인이 주로 관심을 갖는 블랙홀, 우주론 같은 분야는 천문학자 가운데서도 소수만이 연구하고, 많은 천문학자들은 응용천문학을 연구합니다. 행성탐사나 소프트엔지니어 등에 많은 인원이 분포하고, 우주론을 연구하는 학자는 별로 없지요.(웃음) 우리나라의 천문학자도 300명이 채 안 넘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보고 있을 독자분들에게 자유롭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대중과 만나는 일을 하고 있고, 또 과학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보니 일반 독자와 만나는 일이 잦습니다. 그러면서 느낀 건 사람들이 과학이란 단어를 잊어버릴 때 가장 즐겁게 과학을 향유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저희는 과학으로의 문턱을 낮추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해나갈 예정입니다. 너무 겁먹지 마시고 그 문턱을 넘어오셨으면 해요. 요즘의 젊은 필자들은 글부터 쓰지 않고 유튜브를 시작하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하기 시작했어요. 여러분도 과학을 다양하고 즐거운 방식으로 소비하고 향유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인터뷰는 과학책방 갈다(galdar.kr)의 도움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명현
칼 세이건을 사랑하는 천문학자. 과학 저술가이자 커뮤니케이터로서 우주 과학 지식에 목마른 사람들과 성심껏 소통해 왔다. 외계 생명체를 찾는 과학 프로젝트, 세티의 한국 책임자(SETI KOREA 대표)와 메티 인터내셔널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전파 망원경으로 은하를 연구하는 중심지,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교에서 나선 은하의 물리적 특성과 암흑 물질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네덜란드 캅테인 연구소 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원, 연세 대학교 천문대 책임연구원을 지냈다. 지은 책으로는 《이명현의 별 헤는 밤》 《이명현의 과학책방》 《시민의 교양과학》(공저) 《과학은 논쟁이다》(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침묵하는 우주》(공역) 등이 있다.
어릴 적 별을 보며 자랐던 삼청동 옛집에 과학책방 갈다를 열었다. 이곳에서 ‘시민의 과학화’를 꾀하는 다양한 문화 행사를 꾸리며 사람들을 만나고, 이어 주고 있다.
글|Editor - 임채원
chaewon418@bnl.co.kr
사진|Editor - 조은혜
zzonis@bn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