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디앤루니스 모바일

서점에서 만난 사람

『남극에서 대한민국까지』 김태훈 ‘남극 여행 스릴러 에세이’



세계보건기구가 팬데믹을 선언한 2020년 3월, 전 세계는 잇따라 국경을 봉쇄했다. 세계여행이 중단되고 여행자들이 서둘러 귀국하던 그때, 남극해 한가운데 고립된 한국인이 있었다. 육지와의 연락이 닿지 않는 남극에서 머무는 동안 바이러스가 대륙을 휩쓸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알바트로스 호의 여행가들. 이 책은 남극 여행의 경이로움을 기록한 탐험기이기도 하지만, 한 치 앞을 알 수 없던 상황에서 선상을 탈출해 대한민국으로 돌아오기까지 아슬아슬한 순간을 기록한 탈출기이기도 하다. 남극에서밖에 보고 겪을 수 없는 순간의 이야기를 『남극에서 대한민국까지』의 저자 김태훈 작가에게 직접 들어보았다. 



지난 몇 주간 세상과 연락이 끊어진 채 남극을 탐험하고 돌아온 세상은, 우리가 떠나왔던 그 세상이 아니었다. 배 안에 변변한 의료시설은 없었고, 식량은 넉넉지 않았다. 주변 국가들은 서둘러 항구를 막았고, 국경을 닫았다. 마지막으로 비행기까지도. 

바닷길, 육지길, 그리고 하늘길까지 모두 막혀버렸다.

_『남극에서 대한민국까지』 6쪽



반갑습니다, 김태훈 작가님.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저는 한국과 싱가포르에서 IT 엔지니어로 20년간 일했고, 지금은 카메라를 메고 지구촌 방방곡곡을 다니고 있습니다. IT 엔지니어로 일하다 과로로 쓰러진 어느 날, 어릴 적 꿈이었던 세계 일주를 실천에 옮겨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아내와 함께한 8개월간의 세계 일주의 끝에서 남극으로 떠난 이야기와, 남극에서 만난 코로나19의 이야기를 책으로 썼습니다.


『남극에서 대한민국까지』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겼나요?


먼저 『남극에서 대한민국까지』는 100% 실화를 적은 에세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앞부분 절반은 세계 일주를 하며 남극으로 가게 되어 그곳을 여행하는 ‘탐험기’이고, 뒷부분 절반은 코로나19로 인해 배가 남극해에 고립되어 가는 곳마다 입항 거절을 당하고, 이 나라 저 나라로 바다를 떠돌아다니게 되는 ‘표류기’입니다.


남극 ‘탐험기’ 부분은 아직 국내 여행자분들에게는 생소한 남극 여행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했어요. 남극 여행을 가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남극 여행에서는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는지, 남극 탐험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알차게 넣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몇 주 만에 행복했던 남극 여행은 중단되었고,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확산하는 가운데 신속히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 세계가 잇따라 항구를 봉쇄하는 상황 속에서 저희는 배에 고립되었고, 어떤 나라도 받아주지 않는 상황에서 어렵고 힘들게 탈출을 시도하는 여행자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특히 책의 뒷부분 ‘표류기’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독자분들의 후기를 종종 받아요. 한 독자분께서는 이 책의 장르가 ‘여행 스릴러 에세이’라고 해주셨는데, 적절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스릴러’라는 표현이 잘 어울릴 만큼 아찔했던 경험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책으로 내게 되셨나요?


코로나19로 인해 아내와 함께 바다에 고립된 것이 작년 봄입니다. 대한민국과 정확하게 지구 반대편에 있는 바다에서 식량을 원조받아 생활했고, 마찬가지로 해상에 떠 있는 옆의 크루즈에서는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두려워하며 지켜보다 어렵게 구조되어 한국으로 올 수 있었지요. 탈출할 수 있었던 순간은 지금 돌이켜보아도 기적입니다.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칠레, 브라질, 호주까지 5개국의 대한민국 영사님들과 먼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힘을 모아 도와주었어요.


큰 신세를 진만큼 한국으로 돌아온 뒤 외교부에 감사 편지를 보냈는데, 며칠 뒤 외교부에서 저희 이야기를 외교부에서 발행하는 수기집에 싣고 싶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흔쾌히 승낙하고 짧은 수기를 적어 보내고, 인터넷에도 올렸는데 그 글이 생각보다 큰 반응을 얻었어요. 글을 올린 지 4시간 만에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이렇게 책으로 내게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글을 제대로 쓰지도 못했어요. 수만 장의 사진, 수천 개의 비디오, 무수한 메모와 녹음 파일들…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닌 만큼 많은 기록이 있었지만, 그때의 일을 복기하려고 하면 두려움과 절망의 순간이 생생하게 떠올라 글을 쓰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럴 때면 집 밖으로 나와 서울 곳곳을 걸어 다녔어요. 남산을 산책하고 잠수교를 걸어서 건너며 마음이 차분해지면 조금씩 글을 써 적어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남극에 이르기 전, 이미 8개월의 세계 일주를 하던 중이셨지요. 책에 싣지 못한 세계 일주의 여정도 들려주세요.


싱가포르에 살던 어느 날 저녁, 저는 운동을 마치고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에 가게 되었어요. 과다호흡에 공황장애 증상이었습니다. 한 번 증상이 나타나자 이후로도 종종 숨을 못 쉬고 쓰러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저는 제 일을 사랑하고 절대 놓고 싶지 않았지만, 이렇게 일하다간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걸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 부모님도 두 분 다 갑자기 돌아가셔서 덜컥 겁이 났지요. 그래서 어릴 적 꿈꾸었던 일 중에서 아직 해보지 못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았고, 세계 일주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동남아에서 10년을 살면서 날씨가 더운 주변 나라를 많이 다녔기 때문에, ‘눈’이 많이 있는 곳들을 여행하고 싶었어요. 처음엔 캠핑카를 빌려 두 달간 뉴질랜드를 여행했습니다. 이후 남미로 건너가 남미에서 8개월을 보냈어요. 원래 계획대로라면 남극을 다녀온 후에 북미를 여행하고, 알래스카를 거쳐 베링 해를 건너 러시아 방향으로 여행을 계속하려고 했는데…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갑자기 귀국하게 되어 여행이 중단된 셈입니다. 하지만 여행도 삶도 예기치 못했던 일들이 계속 생기는 법이겠죠.


직접 다녀온 사람이 말하는 남극 여행의 솔직한 감상, 어떤가요?


남극까지 가는 길은 기대 이상으로 험난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파도가 거칠다고 알려진 드레이크 해협을 건너야 하거든요. 저는 멀미가 없는 편인데도 힘들었으니, 멀미가 심한 분은 방에서 나오지도 못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드레이크 해협을 건너 마침내 도착한 남극은 믿기 힘들 정도의 장관이었습니다. 웬만한 도시 크기의 직경 몇십 킬로미터짜리 빙붕이 떠다니고, 바로 앞에는 펭귄이나 고래와 같은 남극 동물이 지나다녔죠. 가끔 호기심 많은 펭귄들이 제 곁에 와서 카메라와 휴대폰을 부리로 쪼아대던 기억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오전에 사우스조지아 섬에서 펭귄들을 보고, 흥분이 가시기도 전에 탐험대 리더가 코로나19가 유행하고 있으니 “당장 세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공지하던 날은 가장 아쉬웠던 대목입니다. 마지막 행선지인 포클랜드를 남겨둔 상황이었는데, 포클랜드에서 입항을 거부하는 바람에 서둘러 여행을 중단하고 돌아오게 되었죠. 또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건 남극 여행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많이 얻을 수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남극 여행을 준비하는 분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제가 겪은 남극 탐험 정보도 풍부하게 실으려 노력했습니다.



▲ 사우스조지아 섬에서 만난 킹펭귄 무리. 생태계를 해치지 않도록 먹이를 주거나 만지지 않는다.


일반인은 쉽게 떠나볼 수 없는 남극 여행의 매력을 독자분들에게도 잠깐이나마 나누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남극의 가장 아름다운 광경’으로 무엇을 꼽으시겠어요?


많은 분이 아시겠지만 남극 주변엔 어디에나 희고 푸른 빙하가 사방에 있어요. 그래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이 산에 있는 눈이나 빙하에 반사됩니다. 늦은 오후가 되면 태양의 고도가 낮아지고, 눈과 빙하에 비스듬히 반사된 빛이 하늘 위 구름과 어우러져 살면서 어디에서도 보지 못하던 모습을 자아냅니다. 바다에 떠다니는 유빙들이 구름과 함께 빛나던 풍경… 늦은 오후의 빛을 받는 남극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 늦은 오후, 남극의 풍경.


책의 2부에 해당하는 18일간의 선상 고립 시간. 입항과 하선이 번번이 취소되는 동안 무력감과 절망감이 생기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긴 괴로움의 시간을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눈을 감을 때까지 어떻게 하면 배를 탈출할 수 있을지 생각만 했어요. 하지만 탈출이 실패한 지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계속해서 탈출이 무산될 때마다 그 상황이 점점 더 가슴을 압박해 오는 기분이었어요. 분명히 탈출에 성공하리라 믿었고, 성공해야 했을 계획이 우루과이 출입국 관리소 직원의 어이없는 실수로 좌절되었던 때에는 온몸에 힘이 빠져 제가 그 자리에 어떻게 서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실패가 거듭되었지만 ‘무조건 배를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어요. 당시엔 어찌나 상황이 긴박했는지 슬퍼할 시간도 없으니 ‘일단 지금은 빠져나가고, 나중에 슬퍼하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우루과이의 앞바다에 고립되어 있을 때, 매일 같이 찾아와 항구에서 손을 흔들고 안부를 물어주신 대한민국 영사님이 큰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일단 배만 빠져나가서 대한민국 대사관으로 간다면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저를 버티게 했습니다.




여행에 대한 트라우마나 두려움이 생겼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예상치 못한 일을 겪고 세계 일주를 중단하게 되었지만, 여행이나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 보려 노력하는데요. 그때마다 떠오르는 건 여행의 순간들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도시락을 싸고, 사람이 많지 않은 멋진 풍경이 있는 곳을 찾아가 도시락을 꺼내 먹던 기억들이에요. 그런 순간들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다시 가방을 메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물론 코로나가 괜찮아지면요.


함께 알바트로스호를 탔던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시나요?


무척 다행스럽게도 배에 탔던 승객들은 모두 고국으로 무사히 돌아갔습니다. 승객 중 한국인은 저희 부부밖에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과 아직도 연락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어머니 아버지처럼 친근하게 대해주시던 호주의 제니 아주머니와 마크 아저씨도 무사히 집에 도착하셨고, 대만과 싱가포르에서 온 친구도 모두 안전한 곳에서 머무르고 있고요. 대만에서 왔던 한 예술가분은 남극 탐험에서 받은 영감으로 얼마 전 그림 전시회도 열었습니다. 배에는 저희처럼 세계 일주를 하는 분들도 있었는데요, 지금은 팬데믹 시기인 만큼 모두들 자신의 국가로 돌아가 안전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 남극 땅을 밟는 랜딩(landing) 활동을 위해 조디악 보트를 이용하는 승객들.


여행을 ‘잠시 멈춘’ 지금,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집필을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몇 가지 있지만, 지금은 아직 구상 단계라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시 여행이 가능한 시기가 오면 계속해서 세상을 돌아다니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싶어요. 여행을 재개하는 건 사회가 충분히 안정되었다는 판단이 들 때까지 신중하게 살피고 있습니다. 2021년에 다시 여행을 떠나는 건 어렵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읽는 독자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책을 읽어주시고 함께 가슴 아파해주신 분들께 무척 감사드립니다. 책을 읽고 남겨주시는 피드백과 후기를 보며 많은 위로를 받고 있어요. 아직 책은 접하기 전이지만, 제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이 인터뷰를 읽어주신 독자분들께도 반갑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책을 낸 뒤로 갚아나가야 할 사랑만 늘어가는 기분이에요.


마지막으로, 살면서 한 번쯤 남극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으시거나, 굳이 힘든 곳을 여행하고 싶지는 않지만 간접 여행을 희망하는 분이 있다면 이 책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남극에서 대한민국까지』이 더 많은 사람에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김태훈

사진작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무선통신 연구원, 프로그래머, IT엔지니어로 한국과 싱가포르에서 일했다. 쥘 베른의 책을 읽으며 지구를 꿈꾸었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창백한 푸른 점』을 접하며 우주여행을 다짐했다. 지금은 지구별의 아름다움을 느끼려 카메라를 메고 세계를 여행 중이다.

Email hoon703@gmail.com

Instagram @freekimp


|Editor - 임채원

chaewon418@bnl.co.kr


|사진 제공 - 김태훈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김태훈(instagram @freekimp)에 있습니다.


최근본상품
닫기

최근 본 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