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닮았는가』 김보영 “모순적이게도, 우리는 얼마나 닮았는가”

소설가 김보영은 자신을 환상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소개했다. ‘가장 SF 다운 SF를 쓰는 작가’로 소개되곤 하지만 스스로는 SF 소설가보다 환상소설 작가라고 소개한다는 점이 인상 깊다. 김보영의 소설 속에서 과학은 문명의 발전을 도모하는 만능 도구로 묘사되지 않고, 인류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발판으로 쓰이지도 않는다. 과학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언어로만 존재하는 것 같다.
‘너’와 ‘나’는 분명 다른 존재다. 다르게 살아왔고 다르게 생겼으니까. 그러나 과학의 언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얼마나 닮은 존재인지 설명할 수 있다. 다르다는 점 때문에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고 싸우는 우리는, 모순적이게도 얼마나 닮았는가. 인간을 사랑하는 법을 찾아가는 과학의 대답을 김보영의 소설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은 모순으로 가득해요. 하지만 간혹 그 모순을 흩트려주고 무색하게 만드는 논리를 찾아내면 기분이 좋습니다.”
_인터뷰 중에서
반갑습니다, 김보영 작가님.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16년간 소설을 쓰고 있는 사람입니다. 환상소설을 쓰고 있고, 제가 쓰는 환상이 독자들에게는 SF로 해석되곤 해서 SF 소설가로 불립니다.
소설집 『얼마나 닮았는가』의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수록된 10편의 중단편 가운데 「얼마나 닮았는가」가 표제작이 되었는데요.
출판사의 결정이었습니다.(웃음) 아무래도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신 소설이니까요.
단편들이 발표 순서로 수록되지는 않았어요. 이것도 출판사의 결정이었나요?
수록 순서는 저와 출판사가 각각 제안하고, 제가 조정하고, 다시 출판사에서 조정하며 정했습니다. 맨 앞은 가볍고 짧은 소설을 싣고 뒤로 갈수록 무겁고 긴 소설을 실었어요. 무거운 글 사이에는 쉬어 갈 수 있는 짧은 소설을 배치했습니다. 보통 단편집을 구성할 때면 이런 식으로 하는 듯하네요. 생각이 이어지는 소설은 이어서 배치했습니다. 「엄마는 초능력이 있어」 뒤에 「0과 1사이」를 넣고, 「얼마나 닮았는가」 뒤에 「같은 무게」를 넣었지요. 스토리가 이어지지 않아도 생각이 이어지면 읽기 쉬워지지 않나 해요.
지난 10년간 발표한 작품 가운데 10편이 실렸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고른 10편인가요?
독립된 단행본으로 출간하지 않았고, 제가 미완성이라 생각하는 작품과 아주 최근에 나온 작품을 제외하고 실었습니다. 그 중 「11월 3일은 학생의 날입니다」는 SF소설이 아니라 제외했고요. 「0과 1사이」는 원래는 구작 재간본에 들어가야 했지만, 단편들을 정리하다 보니 이번 단편집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넣었어요.
어른들은 무지개가 일곱 색깔이래요. 서로 다른 파장의 흐름이 이어진 것뿐인데. 백인과 황인과 흑인을 구분해서 말해요. 그들 사이에 있는 무수한 색소의 차이를 보지 못하고요. 단어는 단지 평균값을 대표하는 상징일 뿐인데 단어에 세상을 끼워 맞추려 해요. 얼마나 많은 종류의 검은색과 흰색이 있는지 어른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0과 1 사이」 56쪽 ( 『얼마나 닮았는가』 중에서)
2009년에 발표한 작품부터 2020년에 발표한 작품까지 다양하게 실렸습니다. 오래된 작품도 실린 만큼 새로이 펴내며 고친 곳도 있을 것 같아요.
맞춤법과 서술상의 모순이나 오류 외에는 거의 고치지 않았습니다. 그건 제 첫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는 『미래로 가는 사람들』을 재간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어요. 저는 작품을 완성하는 데에 오래 걸리는 대신, 완성했다 싶으면 시간이 지나도 고치지 않으려 합니다. 고칠 곳이 없을 때까지 쓴 것이 완성이니까요. 어떤 소설을 썼을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고치는 건 다른 사람이 손을 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기분이 들어요. 또 세상에 나온 이상 독자의 것이 되었다고도 생각합니다.
다만 「로그스 갤러리, 종로」(2018)는 비교적 최근작이고, 당시 개인 사정으로 충분히 몰입하지 못한 소설이라 중간중간 서술이 튀는 부분을 다소 고쳤습니다. 말하다 보니 ‘완성’과 ‘미완성’은 제 주관적인 판단이라 독자 입장에서는 어느 것이 완성이고 미완성인지 알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7인의 집행관』도 미완성이라는 기분이 커서 개정판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작품을 고친다는 건 다른 무엇인가가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그것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인 듯합니다.
「작가의 말」에서 각 작품의 집필 계기나 구상 단계에 대해서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평소 작품의 소재나 영감은 어디서 얻으시나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늘 ‘소재’는 큰 의미가 없다는 답을 하곤 해요. 글쓰기는 갑자기 찾아온 번뜩이는 영감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널린 흔한 소재 중 하나를 갖고 긴 시간을 들여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일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실은, 우리는 이미 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대부분의 소재가 소설로 다 쓰여버린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밖에는 일상 전체가 소재가 됩니다. 친구를 만나 놀다가도, 책을 보다가도, 신문 기사나 과학 기사를 보다가도 많은 생각이 떠오르지요. 또 소설을 쓰는 시간이 제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소설을 쓰는 동안에 떠오른 생각이 다음 소설에 쓰인 일이 많습니다.
책 소개 대신 쓰인 문목하 작가의 추천사가 인상적이었어요.
문목하 작가님의 아름다운 수사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과학은 자연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안엔 인간도 포함되는데, 김보영이 그리는 인물들을 볼 때마다 이 사실을 반복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작품 속 인물들은 과학을 하는 인간이 아니라 과학 속에 존재하는 인간이다.
_소설가 문목하의 추천사, 『얼마나 닮았는가』 뒷표지 중에서
‘과학 속에 존재하는 인간’이라는 표현이 특히 와 닿았어요. 흔히 사람들은 과학을 특별한 수단이나 기술로 인식하지만, 김보영 SF 속의 인물은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과학을 발견하는 것 같습니다.
현실은 모순으로 가득해요. 하지만 간혹 그 모순을 흩트려주고 무색하게 만드는 논리를 찾아내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 논리에 우리가 평이하게 아는 평이한 과학을 덧붙여서 설득력을 더할 수 있는 서술을 찾으면 더 기분이 좋아요. 이를테면 흔히 말하는,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라는 생각을 일상의 언어로 설득하려면 기나긴 토론과 논쟁이 필요할 것이고, 그럼에도 그리 성공적이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사람이 양자적으로 혼동되어 있고, 우리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원자가 교환된다는 서술을 찾아낸다면, 몇 줄의 문장만으로도 혈연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 혈연을 넘어서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지요.
내 몸을 구성하는 것은 8할이 너야.
네 몸을 구성하는 것은 8할이 나야.
날이 갈수록 너는 나를 닮아가고, 날이 갈수록 나는 너를 닮아가지. 하나도 닮은 점이 없던 우리 둘을 보며, 이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어쩐지 닮았더라.’ 하고 감탄하듯 말하곤 하지. 날이 갈수록 너는 나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나는 너처럼 말하고 행동하지.
「엄마는 초능력이 있어」 15쪽 ( 『얼마나 닮았는가』 중에서)
근 몇 년 사이 한국 문학에서 SF가 출간 비중이 급격히 늘어나고, 독자 호응도 크게 증가했습니다. 오랜 세월 한국 SF계에서 활동해온 분으로서 달라진 독자 반응을 체감하시나요?
제 첫 단편집은 10년 전에 나왔는데, 초판이 다 소진된 지 얼마 안 됐어요. 그런데 이번 단편집은 며칠 사이에 그만큼 나간 듯합니다.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다른 글을 쓰지 않는데 말이에요. 어쩌면 그때 더 잘 썼을 수도 있고요. 지금은 독자들이 제 소설을 그때보다 훨씬 더 쉽게 이해한다는 기분이 듭니다. 사실 그동안은 온 힘을 다해 아무리 쉽게 써도 독자들이 어려워한다고 느꼈어요. 그때는 아직 독자들에게 SF문법이 익숙하지 않았고, 10년이 흐른 지금은 SF가 대중에게 좀 더 익숙해졌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독자들이 이 장르에 익숙하도록 만들어 주신 많은 훌륭한 작가님들이 있어 준 덕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주목하고 있는 SF 작가가 있나요?
최근에는 김초엽 작가가 가장 많이 알려졌지만, 지난 2~3년 사이에 나타난 작가들 다수가 제게는 감탄스럽기만 합니다. 문목하, 심너울, 천선란, 이산화 작가는 놀랍습니다. 기존 작가들도 계속 왕성하게 활동하는 한편, 훌륭한 작가들이 동시에 나타나 준 것이 지금의 SF 붐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외에도 손장원 작가가 포스타입에 연재하는 SF 단편 만화가 훌륭합니다. 한국적이고 따듯하고 사랑스러워요.
요즘은 어떤 작품을 작업하고 계신가요? 출간 계획도 함께 여쭤봅니다.
장편 판타지 〈사바삼사라〉를 완결해야 합니다. 이 말을 2015년부터 하고 있는데요…. 그때 완결까지 썼어야 하는데 이런저런 일로 집필이 이어지지 않았어요. 다른 일을 병행하면서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하지만 계속 쓰고 있어요.
그 외에는 동화와 청소년 소설, 절판된 옛 소설들의 재출간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여건이 된다면 어느 시점부터는 어릴 때부터 쓰고 싶었던 소재와 작품을 긴 시간을 들여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고요.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보고 있을 독자분들에게 자유롭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어릴 때는 만화나 소설을 보고 있으면 ‘그런 것 보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세월이 지나니 제가 어릴 때 보고 자란 것과 비슷한 소설을 쓰며 먹고 살고 있네요. 무엇보다 그때 제가 좋아했던 작품 대다수가 지금은 세기의 명작이자 전설로 길이 회자되고 있어요! 여러분도 누가 뭐라든 지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의 가치를 믿어 주셨으면 합니다.

김보영
한국을 대표하는 SF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팬들에게 “가장 SF다운 SF를 쓰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2000년대 이후의 신진 SF 작가들에게 여러 영향을 끼쳤다.
2004년 〈촉각의 경험〉으로 제1회 과학기술 창작문예 중편부문에서 수상하며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7인의 집행관》으로 제1회 SF 어워드 장편부문 대상,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으로 제2회 SF 어워드 중단편부문 우수상, 〈얼마나 닮았는가〉로 제5회 SF 어워드 중단편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2015년 미국의 대표적인 SF 웹진 〈클락스월드(Clarkesworld)〉에 단편소설 〈진화신화〉를 발표했고, 세계적 SF 거장의 작품을 펴내 온 미국 하퍼콜린스, 영국 하퍼콜린스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저 이승의 선지자》 등을 포함한 선집 《I'm waiting for you and other stories》가 동시 출간될 예정이다. 둘 다 한국 SF 작가로서는 최초의 일이다.
소설가가 되기 전에는 게임 개발팀 ‘가람과바람’에서 시나리오 작가/기획자로 활동했다. 《이웃집 슈퍼히어로》, 《토피아 단편선》, 《다행히 졸업》, 《엔딩보게 해주세요》 등 다수의 단편집을 기획했다.
글 Editor - 임채원
chaewon418@bnl.co.kr
사진 아작 출판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