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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가만히 부르는 이름』 임경선 “우리를 인간답게 지탱하는 단 하나는 사랑이라고 믿어요.”



한동안 사랑 이야기를 잊고 지냈던 것 같다. 애써 멀리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익숙했던 것들과 거리를 두는 삭막한 일상을 살아내느라고. 그런 오늘, 임경선 작가는 사랑 소설을 썼다. 그것도 “두려움 없이 사랑을 표현하고 상처를 온몸으로 떠안는” 이야기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는 오늘이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은 “우리를 인간답게 지탱하는 단 하나”라는 그의 믿음에 손을 얹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랑은 정말로 우리를 지키는 단단한 무언가가 되는 것 같다. 때로 슬프고 복잡하지만 아름다운 감정들이 스민 그의 문장을 따라 가을을 열었다. 이 계절을 닮은 『가만히 부르는 이름』을 두고 나눈 서면 인터뷰를 전한다.





안녕하세요. 작가님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장편소설 『가만히 부르는 이름』을 쓴 임경선입니다. 직장생활을 12년 하고서 현재는 15년째 소설과 산문을 쓰고 있습니다.


『가만히 부르는 이름』을 설명하는 구절 중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에 대해 먼저 듣고 싶어요. 어른들의 사랑은 어떻게 다른가요? 혹은, 어떤 의미로 생각하면 좋을까요?


저는 진정한 어른의 사랑은 도리어 어린아이처럼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린아이들은 자기 감정에 정직하고 몸을 사리지 않습니다. 겁도 없이 다가가고, 좋아한다는 것 외엔 그 어떤 조건도 따지지 않고, 두려움 없이 사랑을 표현하고, 상처를 온몸으로 떠안습니다.


그렇다 해도 그것은 자신의 감정만을 앞세우는 이기심이 아닙니다. 어른답게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만큼 나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하고 더 위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보다 ‘너’를 연민하는 마음. ‘나’보다 ‘너’가 마음이 아프거나 상처 입을 것을 먼저 걱정하는 마음. ‘나’의 가혹함을 덜어내고 ‘너’의 취약함과 불완전함을 끌어안는 마음, 같은 것들요. 마지막으로, 자신이 한 말과 행동에 기꺼이 책임을 질 때, 그리고 사랑하는 과정 속에서 고통과 슬픔을 겪어도 결코 상대를 탓하지 않는 것이 어른의 사랑이라 생각합니다.




때로 어떤 계절은 소설 읽는 맛을 더해주는 것 같습니다. 특히 가을의 한낮은 햇살로 따뜻해지다가도, 아침저녁으로 매섭도록 서늘한 바람이 불기에 이 소설을 읽기에 더없이 좋지 않았나 싶습니다. 주인공 수진의 감정선과 닮아 있는 것 같기도 했고요.


여름의 무더위는 사람을 조금 들뜨게 만들었다가 가을엔 모든 것들이 차분해지고 선명해지는 것 같아요. 저는 오히려 그런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계절에 감지되는 감정의 미세한 변화를 좋아합니다. 이유 없이 쓸쓸한 마음이 들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서로와 온기를 나누고 싶어 하지요. 그래서인지 그간 소설을 써오면서 대부분 가을이나 겨울로 배경을 설정해왔어요. 몸은 더 감추고 마음은 더 열게 되는 계절들이죠. 또한 거기에는 봄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도 곁들여져 있어서 더욱 애틋한 계절인 것 같습니다.


책에는 한솔, 수진, 혁범이라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중 연애관이라는 측면에서 작가님과 가장 닮은 인물, 혹은 닮고 싶은 인물은 누구인가요?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저는 한솔처럼 줄곧 사랑해왔던 것 같습니다. 마냥 어린아이처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상대가 가진 좋고 아름다운 지점들을 발견해 나가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주로 늘 더 애쓰고 늘 더 좋아하고 그래서 말미에는 아팠지만 그래도 상대가 하나도 밉지 않더라고요. 사랑에 있어서는 한마디로 바보였던 것 같은데 그런 제가 조금도 싫거나 부끄럽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수진과 혁범의 사랑도 이해합니다. 상대가 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모습을, 상대의 특별함이 평범함으로 바뀌는 모습을 연민으로 부드럽게 지켜봐 주고, 조용히 곁을 내주는 그런 사랑요.


세 명의 주인공이 사랑의 감정을 드러내는 방법은 각기 다르지만, 닮은 부분도 꽤 있는 것 같습니다. 랑하는 상대를 최대한 배려하고, 질투라는 감정을 억누르며, 상대를 탓하거나 내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일상을 성실히 살아가는 일이 몸에 밴 사람들이라, 사랑에서도 올곧고 성실합니다. 사랑을 받기보다는 주려고 하는 사람들이고, 고통이 닥쳐도 멈추지 않고 선택을 내리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제목에 대해서도 궁금했어요. ‘가만히 부르는 이름’이라 붙인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나요?


평소엔 목소리가 저음이고 성격도 건조하고 말투도 퉁명한 편인데요, 유독 딸아이의 이름을 부를 때만큼은 제 목소리가 부드러워지고 말투가 고와지는 상당히 낯선(!)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웃음). 그렇게 조심조심 가만히 부르는 이유는 아마도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이겠지요. 한솔이 연상의 수진에게 연서를 보낼 때마다 매번 이름을 먼저 부르고 시작하는 것에서도 착안했습니다. 상대를 사랑하기에 사람이 섬세해지고 조심스러워지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내년 혹은 당장 다음 주를 내다보기 어려운 시대이자, 사랑은 사치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시대이죠. 그렇기 때문에 특히 이번 작업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였는지 궁금했습니다.


코로나 시국은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를 떼어놓고, 나와 가깝게 지내는 사람을 그 누구도 아닌 내가 해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주는 아주 잔인한 시대입니다. 상대를 좋아할수록 거리를 둬야만 하니 얼마나 가혹한지요. 외로움과 단절감이 모르는 사이 마음을 잠식해버릴 수 있는 이런 때일수록, 계산 없이 질주하는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한편 그와 별개로, 소설이라는 관점으로 놓고 봤을 때, 저는 이번 소설에서 사랑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대가를 치를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일. 내가 얼마만큼 나를 놔 버릴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얼마만큼의 실패와 좌절을 사랑에게 허용할 것인가. 얼마만큼 견뎌낼 준비가 되어 있는가, 같은 문제들이요.


아무리 사람들이 말려도 차마 버리지 못하는 것. 그 어떤 말을 들어도 상관없다고 느껴지는 것, 바로 사랑이었다. 그 마음을 당해낼 재간은 없었다. 사랑 앞에선 좀처럼 면역이 생기지 않았다. (186, 187쪽)



요조 작가님과의 교환일기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에서 사랑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어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매우 큰 동기부여인 것 같”(180쪽)다고요. 그런 작가님께 특히 사랑 소설을 쓰는 일은 다른 글쓰기와는 조금 다른 온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떠신가요?


산문의 문체는 담백하고 건조한데, 소설의 문체는 부들부들한 순두부 같다고들 합니다(웃음). 그것은 제가 사랑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문제(예로 일)에 대해서는 스토익하고 엄격한데, 사랑에 있어서 만큼은 너그럽고 관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할 자유마저 없다면 팍팍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나갈까 싶고요, 세속적으로 삶을 몰아가는 환경 속에서 우리를 인간답게 지탱시켜주는 단 하나가 사랑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을 쓰는 동안은 마치 제가 사랑에 빠진 것처럼 저는 내내 심장이 시큰시큰한 상태로 지내게 됩니다. 평소보다 더 예민해지고 쉽게 울컥하거나 눈물이 나기도 하고요. 건전한 일상생활에 매우 곤란합니다(웃음).







『가만히 부르는 이름』을 특히 어떤 사람에게 권하면 좋을까요? 사랑을 이제 막 시작하려는 사람, 깊어가는 사람, 안정적인 선 위에 있는 사람, 끝무렵에 선 사람 중에서요.


순위를 매길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면, 한껏 최선을 다해 사랑한 후,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견디고 계시는 독자분들께 가장 먼저 권하고 싶습니다. 그 사랑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고, 그 모든 일들에는 의미가 있다고 소설을 통해 가만히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사랑을 이제 막 시작하려는 독자분들께는 부디 상처받을 것을 미리부터 두려워하지 말아달라고,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바대로 거짓 없이 따라가보라고 용기를 불어넣어드리고 싶습니다. 사랑의 용기는 한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며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밖에, 지나간 사랑의 빛이 마음 한편에 남아 있을 분들에게 이 소설은 그리움이라는 감정에 인사를 나눌 계기를 만들어줄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어 나올 책은 어떤 책이 될까요?


그간 소설과 산문을 번갈아 내왔으니 다음 책은 산문이 될 텐데요, 아직은 확고하게 주제를 정하지 않고 연말까지 여러 가지 주제들을 탐색해볼 생각입니다. 산문을 건너뛰고 바로 단편 소설을 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한동안 소설을 읽지 않고 지냈는데 『가만히 부르는 이름』 때문에 다시 소설책을 집어 들었다는 독자분들의 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접했고, 또한 기뻤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가만히 부르는 이름』이 소설, 혹은 한국 소설이 막연히 재미없다고 속으로 느끼셨던 독자분들을 다시 매혹시킬 수 있는 그런 소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항상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임경선

소설 『곁에 남아 있는 사람』, 『나의 남자』, 『기억해줘』, 『어떤 날 그녀들이』, 산문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공저), 『다정한 구원』, 『태도에 관하여』, 『자유로울 것』, 『나라는 여자』, 『엄마와 연애할 때』,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일하는 여성에게 들려주는 『월요일의 그녀에게』, 그리고 여행서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임경선의 도쿄』등을 펴냈다. 『가만히 부르는 이름』은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



사진 | 저자 제공


| Editor - 조은혜

zzonis@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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