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Nez입니다』 김태형 “향香을 하다”

책을 손에 쥔 순간, 마치 서로 다른 책 두 권을 한꺼번에 들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책을 펼칠 때 손에 닿는 새하얗고 매끄러운 표지와 책을 받칠 때 손바닥에 닿는 부드러운 천으로 감싼 책등. 선명히 대조되는 두 부분은 이 책이 가진 두 가지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조향사 김태형이 풀어놓는 프랑스에서의 배움과 경험이 담긴 에세이는 향기처럼 스며들고, 조향과 향수에 관한 정제된 정보를 담은 사전의 부분은 책의 한 축을 이룬다. 향수에 대해 잘 몰라도 괜찮다. 향을 통해 추억을 떠올린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당신만의 향을 찾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테니.
Nez〔네〕: 코를 의미하는 프랑스어지만 비유적인 표현으로 조향사를 가리키기도 한다. 프랑스인에게 향수를 배운다고 이야기하면 “아, 그러면 너도 ‘네’가 되고 싶구나!” 하는 반응을 쉽게 접할 수 있다.
_『나는 네Nez입니다』, 251쪽
김태형 선생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향을 하고 있는 김태형입니다.
‘향을 하다’라는 표현은 처음 들어봤어요. 무척 신선하네요. 조향사로 일하고 계신데, 조향사라는 직업이 낯선 독자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설명해주시겠어요?
‘조향사’라고 하면 보통 향수를 만드는 사람으로만 알고 계신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조향사는 우리를 둘러싼 향이 나는 모든 것에 그 향을 입히는 작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비누, 세제, 샴푸부터 향수에 이르기까지 모두 조향사의 손을 거쳐 태어나지요. 식품향의 세계에서는 과자나 아이스크림부터 향을 낸 술까지도 조향사의 손길이 닿아있습니다. 향료 회사에 소속된 조향사는 이처럼 제품에 향을 넣거나, 업체가 원하는 이미지에 맞춘 향을 빚어내기 위해 갖가지 원료와 함께 하루를 보냅니다. 저처럼 향료 회사에 소속되지 않은 조향사는 본인의 브랜드나 특수한 고객을 위해 향을 빚어내지요. 제 하루는 주로 개인 공방에서 작업에 몰두한다던지, 의뢰인을 만나 원료나 조향된 샘플을 함께 시향하며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의논하는 일로 채워집니다.

(이미지 제공=김태형)
책 『나는 네Nez입니다』에는 ‘향을 하는’ 사람이 되기까지의 일이 주로 나와 있습니다. 향을 하며 가장 보람찬 일과, 가장 어려운 일을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신기하게도 저는 한 상황에서 큰 보람과 스트레스를 함께 느끼는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조향사들이 만나는 고객은 향에 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작업에 들어가면 그들이 원하는 향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향은 눈에 보이지도 손에 만져지지도 않으니 정확히 어떤 향을 원하는 것인지 소통하는 과정이 어렵습니다. 계속해서 미팅하고 시향하고 함께 목적지로 나아가야 하는데, 이 긴 과정 속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요. 하지만 결국 그 고지에 다다른 순간에는 그간의 고통이 모두 씻겨나가는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요. 게다가 이런 힘겨운 작업을 한 고객과는 함께 고생한 시간이 쌓여 동질감까지 느끼게 됩니다.
Famille Olfactive 〔파미 올팍티브〕 : 향 또는 후각 계열을 의미한다. (…) 원료 훈련을 할 때 향 계열을 찾아보고 그 향을 떠올리게 해주는 몇 가지 형용사를 정리해놓으면 효과적으로 후각 기억력을 발달시킬 수 있다.
_『나는 네Nez입니다』, 190쪽
향을 기억하기 위해 형용사를 활용한다는 점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향이라는 형태가 없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이요.
그 언어를 ‘퍼퓨머리 랭귀지Perfumery language’라고 합니다. 조향계에서는 어떤 원료를 익힐 때 ‘디스크립션Description’을 통해서 그 향기를 기억하는데요. 무형의 상태인 향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정해진 언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향을 표현하는 데에 정답은 없지만, 향을 하는 사람들끼리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특정 향의 느낌은 특정 형용사로 표현하자’라고 정해놓은 일종의 규칙인 셈입니다. 다만 이 언어가 너무 정형화되면 한 향기를 완벽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에 한계가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향적 표현을 넘어 그 향을 접했을 때 스쳐 지나가는 색깔, 떠오르는 형태, 감촉이나 온도 등으로 확장시켜 향을 개인화하는 작업을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주관적인 인상은 때로 타인과 소통하기 힘들기도 하지만, 그 향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됩니다.
선생님께 향을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작품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이 질문을 받으니 두 분이 떠오릅니다. 한 분은 제 어머니인 함정임 작가님이고, 다른 한 분은 오성은 작가님입니다. 저는 문학적인 소양이 깊지 않지만, 가끔 어머니께서 보내주시는 구절이나 추천해주신 책을 읽곤 합니다. 이 책을 쓰면서는 반대로 제가 쓴 글을 어머니께 보여드릴 수 있었는데, 제 글을 보고 어머니는 가끔 ‘나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라며 본인의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어느 날은 등단작 「광장으로 가는 길」을 툭 던져 주셨는데, 그 속에 제가 쓴 라일락과 같은 라일락이 들어 있었습니다. 제가 쓴 라일락과는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서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을 어머니의 라일락은 어떤 향기였을지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어머니는 당신의 글에도 라일락이 담겼다며 소설책의 한 구절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어머니는 나의 라일락과 당신의 그것이 닮았다고 하였다. 멀어지기 위해 그렇게나 반항했지만 어느 순간 나는 어머니의 가치와 꽤나 닮아 있었다. 나의 향기는 문학을 닮아 있던 것이다.
_『나는 네Nez입니다』, 103쪽
오성은 작가님은 제게 영화, 음악, 식도락 등 다양한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작가님인데요, 그중에서도 특히 여행을 굉장히 사랑하는 작가님입니다. 여행을 향한 그의 열정은 책 『여행의 재료들』에서도 강렬히 드러납니다. 저는 오성은 작가님과 함께 국내외를 누비며 여행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는데요. 이 책은 그렇게 함께한 세월 중에서도 제가 함께하지 못했던 호주에서의 여행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제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호주의 이야기인 데다가, 애정하는 사람의 여러 순간을 담고 있는 책이다 보니 이 책을 읽을 때면 그가 겪고 느꼈을 호주의 향기를 깊이 상상해보게 됩니다.
『나는 네Nez입니다』라는 책을 소개하기에 에세이란 말로는 조금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책의 전반부는 에세이지만, 후반부는 향수와 조향업에 대해 풍부한 지식이 담긴 사전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니까요. 이러한 형태는 원고 작업 초기부터 구상하신 건가요?
이 책은 제가 일기처럼 편하게 써 내려간 글을 묶은 것입니다. 책의 큰 틀을 구상하는 전반적인 아이디어는 편집자님과 소통하며 정해졌고, 그 틀을 채워나가는 게 순전히 저의 몫이었죠. 처음 편집자님께 사전의 형식을 빌려보자는 제안을 받고서 A부터 Z까지 제가 아는 단어들을 모두 나열해보았습니다. 이 책의 목적은 제가 배우고 경험한 모든 것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에, 제가 아는 것이라면 남김없이 끄집어냈습니다. 단어의 목록을 추린 다음에는 하나하나 채워나가면서 잘못된 정보가 들어가지 않게끔, 그리고 무엇보다 읽는 이로 하여금 너무 딱딱하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게끔 신경 써가며 집필했고요.

(이미지 제공=난다)
책 표지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기 드문 천으로 감싼 표지인데요. 제작으로나 유통으로나 어려움이 많은 결정이었을 텐데, 편집자님의 책 소개에서 ‘읽는 순간의 향이 스밀 수 있도록’ 천을 골랐다는 말을 보았습니다.
무척 반가운 이야기를 꺼내주셨네요. 난다 출판사의 대표이자 편집자이신 김민정 시인께서 이 책의 겉면을 하나의 작품처럼 꾸며 주셨습니다. (덧붙여 김민정 시인께서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데 진심을 담아 응원과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독자분들에게 이 책이 어떤 향기로 기억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제게는 책의 향기가 곧 부모님에 대한 기억으로 환기되곤 합니다. 부모님께서 모두 문학계에 종사하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집에는 늘 책으로 가득한 서재가 있었고, 서재의 향기가 제게는 곧 부모님 그 자체였어요. 서재와 함께 떠오르는 퀴퀴하고 먹먹한, 그러면서도 고소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그 향기가 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줍니다. 제게 책이 서재와 부모님의 향기로 기억되듯이, 독자분들에게도 이 책이 어떤 향기와 함께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더 향이 잘 스며드는 천으로 된 표지와 함께요.
어떤 독자를 상상하며 이 책을 썼는지도 궁금합니다.
아직도 누군가가 이 책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부끄러운 기분이 듭니다. 그 정도로 개인적인 기록이라 독자를 상상하면서 쓰지는 않았어요. 굳이 이 책과 어울리는 독자를 상상해본다면, ‘조향’이 아직까지 대중에게 생소한 분야이니 이 분야가 대체 어떤 일을 하는지, 조향사란 뭘 하는 사람인지, 혹은 프랑스에서 향을 공부했다는 사람의 인생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네요.
이 책을 읽고 향수와 조향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진 독자에게 어떤 책을 권하시겠나요?
한국에서는 아직 조향이나 조향사에 관한 책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 같아요. 이미 유명한 책이지만 장 끌로드 엘레나의 『나는 향수로 글을 쓴다』는 향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만족할 수 있는 책입니다. 엘레나는 저도 굉장히 존경하는 조향사인데, 이 책은 그의 철학을 문학적으로 풀어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또 조향의 세계에 관해 설명하는 책은 아니지만, 『예술가들은 이렇게 말했다』(함정임, 원경 저)라는 책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오로지 예술가들의 명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누군가의 한마디를 곱씹으면서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도록 도와줍니다. 향을 예술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제가 그랬듯 이 책에서 향수에 대한 여러 단상을 떠올릴 수 있을 거예요. 책으로 부족하게 느껴지는 분들께서는 해외 포럼이나 기사를 통해 향수에 대해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물론 새로운 향수를 찾아 시향 여행을 떠나거나, 애용하던 향수의 조향사가 누군지 찾아보는 일도 향수의 세계를 알아가는 좋은 방법이고요.
다음 책도 계획하고 계시나요? 조향사로서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신다면요.
아직 다음 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책이 나온 것도 실감이 나질 않는걸요.(웃음) 그저 앞으로 충분한 시간을 가지면서 제 경험들을 곱씹다 보면 언젠가 다음 책으로 여러분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섞인 상상을 가끔 할 뿐입니다. 이제부터 제가 해야 할 일은 향쟁이로서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향을 통해 더 많은 분과 소통하는 것이 제 꿈이자 목표입니다. 저는 향 이야기를 할 때 흥분을 가라앉히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 제가 만든 향을 시향하고 그의 감상을 듣는 일도, 누군가가 빚어낸 향을 맡고 그것이 전해주는 흐름에 섞이는 일도 정말이지 매번 황홀한 경험입니다. 그런데 아직 이런 향의 매력을 깊게 맛보지 못하거나 그럴 만한 기회가 많지 않았던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한동안은 제 브랜드와 강연을 통해서 더욱 많은 사람에게 향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일에 매진할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보고 계신 독자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항상 느끼지만 글을 쓰는 행위는 참 쉽지 않습니다. 저는 매력적인 문장을 쓰거나 문장에 기교를 부리는 재주는 갖고 있지 않은 듯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솔직하고 담담하게 제 모습을 담았습니다. 멋진 문장을 쓰는 재주는 없지만, 다행히 향의 말을 빌리는 법을 조금 배워 글 위에 조금의 꾸밈을 넣어보았습니다. 한 가지 자그마한 바람이 있다면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 여러분의 곁에 향기가 맴돌기를 소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미지 제공=김태형)
김태형
2013년 프랑스로 떠났다. 곧이어 향을 시작했다. 파리에 위치한 향수대학교 에꼴 슈페리오르 뒤 파팡Ecole Superieure du Parfum의 향수 제조 및 관리 과정에서 공부하고, 베르사유 소재의 이집카ISIPCA로 편입하여 이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 『한국의 니치 향수와 브랜드 개발에 대한 연구Analyse de la parfumerie de niche coreenne et Creation de la marque』를 발표한 바 있다. 2019년, 서울로 돌아와 향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조향 아카데미 아뜰리에 드 가브리엘Atelier de Gabriel을 설립하고, 향을 가르치는 ‘프라그랑스 튜터’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향수 브랜드 에트르라ETRE-LA의 대표 조향사로 일하고 있다.
Editor - 임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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