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티처』 서수진 “여러 문제를 유영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코리안 티처』는 다양한 문제를 끌어안는다. 일하는 고학력 여성이 놓인 환경, 정규직과 비정규직, 기업이 된 교육기관, 한류의 이면, 성 고정관념…. 한국어학당 강사들의 이야기는 지금 여기, 한국의 구조적 문제로 뻗어 나간다. 한 편의 소설이 어떻게 이토록 다양한 화두를 품을 수 있을까 궁금증이 들어 물었다. 서수진 작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주제보다는 이야기를 먼저 생각해요.” 어쩌면 가장 단순하고도 어려운 방식으로 ‘여러 문제를 유영하는’ 『코리안 티처』가 탄생했다. 공감과 연대, 희망이 필요한 오늘을 살아가는 코리안 티처들. 그들을 상상하고 응원하며 서수진 작가와 서면 인터뷰를 나눴다.
“글을 쓸 때 저는 주제보다 이야기를 먼저 생각해요. 이 책에서도 고학력 비정규직 여성들의 노동 문제를 쓰고 싶었다기보다는 대학 한국어학당 강사들의 일하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인터뷰 중에서

ⓒTanya McAleer
서수진 작가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소설 쓰는 서수진입니다.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어 반갑고 기쁩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한국은 요즘 코로나로 경제는 물론 전반적인 분위기가 다시 위축되고 있습니다. 작가님은 타국에서 지내고 계시다고요.
네, 호주에 있지만 한국 뉴스를 늘 봐요. 확진자 수가 늘어나는 것을 보고 걱정을 많이 하고 있어요. 저는 시드니에 지내고 있는데요, 시드니가 위치한 NSW주는 2주간 신규 확진자가 하루 10명 이내로 유지되고 있어서 많은 것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그러나 멜버른이 있는 빅토리아주는 아직도 상황이 좋지 않아서 스테이지 4를 겪고 있거든요. 제 동생이 멜버른에 사는데 일주일에 한 번 장을 보러 나가는 것 외에는 외출을 전혀 하지 않고 있어요. 못하는 거지요. 저도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두 달여간 스테이지 3를 겪었는데 그때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지금 한국에서도 스테이지 3이 곧 시작될 것이라는 말들이 많던데 우리가 전 지구적으로 겪는 이 어려움이 하루빨리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에요.
제2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 축하드립니다. 수상 소감을 들려주세요.
감사합니다. 어제 노을이 너무 예뻐서 하늘을 한참 보고 있었는데 문득 수상 소식을 전하는 전화를 받던 순간이 다시 떠오르더라고요. 지금도 사실 완전히 믿기지 않아요. 너무 오랫동안 글을 써 오면서 거절을 당하고 좌절하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져서 그런 전화를 받는 일이 내 인생에서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수상을 하고, 책이 나오고, 사람들에게 읽히고,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이런 순간들이 연이어 찾아오니 모든 게 꿈 같기도 하고 그래요. 살아가면서 한 번쯤 찾아온다고 하는 기적의 순간이 그때가 아니었나 싶어요.
『코리안 티처』에는 여성과 언어, 학력, 노동, 권력 관계, 한류와 세계화의 민낯 같은 다양하고 굵직한 문제들이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습니다. 이번 작품의 주된 문제의식은 어떤 것이었나요? 어떻게 얻고, 서로를 엮어 오셨는지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글을 쓸 때 저는 주제보다 이야기를 먼저 생각해요. 어떤 공간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데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그 일이 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런 식으로요. 그러니까 이 책에서도 고학력 비정규직 여성들의 노동 문제를 쓰고 싶었다기보다는 대학 한국어학당 강사들의 일하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들이 들어가게 된 것 같아요. 한국어학당 강사 중 다수인 여성 문제가 들어가는 게 당연하고, 강사들의 고용 조건이 불합리하니 노동 문제는 의도하지 않아도 핵심적인 플롯이 될 수밖에 없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직장이 배경이니 언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고, 가르치는 대상이 외국인이니 국적에 따른 위계가 생기는 것을 빼놓고 쓸 수 없었어요.
그런데 이건 한국어학당만의 특성은 아닌 것 같아요. 우리 삶을 들여다보면 그렇잖아요. 우리 삶의 문제를 하나로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 삶의 주제를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너무 많은 역할을 가지고 무수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데 그 안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들과 감당하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대하는 우리의 얼굴조차 매 순간 모두 달라요.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삶이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하나의 문제를 향해서 뾰족하게 달려가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여러 문제 사이를 유영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고학력 여성이 놓인 환경을 들여다보면서, 부술 수 없는 한계나 천장을 다시금 확인하고 같은 것이 느껴져서 갑갑하고 막막한 심정으로 책을 읽어나갔습니다. 실제 어학원 강사들의 삶은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가요? 실제 어떤 모습인가요.
얼마 전에 한 독자분이 메시지를 보내셨어요. 대학 어학당에서 일하는 한국어 강사 분인데 소설을 읽고 펑펑 울었다고 하시더라고요. 메시지를 읽으면서 저도 울컥하더라고요. 어떤 마음인지 아니까요. 실제 어학당 강사의 삶은 책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는 후기들도 많이 보았어요. 저 역시 자신의 문자에 제때 답장하지 않았다고 해서 수업 도중에 제 강의실에 들어와 학생들 앞에서 소리치던 주임도 겪었고, 영하 10도에 난방이 안 되는 교실에서 수업하면서 학생들이 행정실에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제 능력 부족이라는 말도 들었어요. 다른 강사들은 더한 일들도 겪었어요. 사실 너무 거짓말 같아서 책에 쓸 수 없었던 일들이 많아요. 하나부터 열까지 부당하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을 지겹게 들었죠. 일하려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는 거죠. 그래서 아예 강사인력풀을 만들어놓고 인력시장에서 하루 일하는 사람을 구하듯이 학기마다 강사를 부르는 학교도 있어요. 학교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모두 계약직인지라 대부분 침묵하면서 불합리한 일들을 감당하지요. 길 가는 어느 한국어강사를 붙잡고 물어도 비슷하게 대답할 거예요. 슬픈 일이에요. 책을 쓸 때도 슬펐고, 책을 읽을 때도 슬펐어요.
폭발적으로, 비정상적으로 학생들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절대로 뽑히지 않았을 사람, 그게 선이였다. (36쪽)
“그런데 ‘코리안핫걸’이라는 말은 좋은 말 아니에요? 예쁘고 매력있다, 그런 칭찬 아닌가요?” 형사가 얼굴에 미소를 띠고 물었다. (58쪽)
“다른 강사분들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교육도 서비스입니다. 학생들이 돈을 내고, 여러분은 그 돈으로 일자리가 보장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학생이 갑이고 여러분이 을입니다. 학생이 없으면 여러분은 여기서 일할 수도 없어요.”(120, 121쪽)
소설에는 선이, 미주, 가은, 한희라는 서로 다른 배경과 성격을 지닌 네 명의 다양한 여성이 등장하지요. 그중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이 있나요? 그 이유는요.
소설을 쓰기 전에는 선이를 주인공으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소설의 시작과 끝에 선이가 있어요. 선이는 이제 막 한국어학당에서 일하기 시작한 신입 강사인데, 제가 신입으로 일을 시작할 때의 마음을 많이 떠올리면서 썼어요. 캠퍼스를 걸을 때 설레던 마음,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 오래 버텨야겠다는 마음이 아직도 생생하거든요. 책에서 선이의 간절한 기대가 배반당할 때 저도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그래서 선이 부분인 봄학기를 마쳤을 때 에너지를 다 쓴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미주를 쓸 때 다른 소설을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었고, 가은을 쓸 때는 정말 더 쓸 말이 없었어요. 가은에서 더 힘들었던 것이 가은을 처음 구상할 때 그늘이 없는 사람으로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저 스스로 그늘이 많다 보니 가은을 이해할 수가 없더라고요.(웃음) 왜 이렇게 순진하게 생각할까. 불만이 들기도 하고요. 그렇게 며칠간을 한 줄도 못 쓰고 지내면서 친구에게 괴로움을 토로했더니 친구가 “이 세상에 그늘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열쇠가 되었어요. 가은은 그늘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도 보지 못하게 그늘을 숨기고 사는 사람이었던 거죠. 그렇게 글을 쓰면서 가은을 점점 더 이해하게 되었달까요. 그래서 지금은 가은에게 가장 애착이 가요.
한국어학당이라는 장소에 대한 현장감과, 네 명의 인물에 대한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 쓰기에서 그 부분에 가장 무게를 두시나요? 집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글을 쓸 때 치우치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요. 좀 전의 질문에서 하나의 주제로 뾰족하게 달려가는 이야기보다 많은 주제 사이를 유영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었잖아요. 그것과 이어지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글을 쓰면서 어느 한 사람의 입장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한 사람 안에서도 그 사람의 다양한 얼굴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여주고자 노력해요. 감정적이지 않으려고 해요. 제 글이 서늘하다 싶을 정도로 사실적이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책에서는 더 담담하게 쓸 수 있다면 좋겠어요.
책에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한국어에 대해 낯설게 보는 부분이 많아서 신선했습니다. 한국어에서 미래는 의지와 추측으로 존재한다는 것, 결과보다는 이유를 묻는 형태의 말이 많다는 것, 영어적인 표현도 그렇고요. 이 부분에 대해 조금 더 들려주신다면요.
한국어의 시제가 과거, 현재, 미래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지요. 나는 어제 학교에 갔다. 지금 학교에 간다. 내일 학교에 갈 것이다. 이렇게요. 그런데 미래로 분류되는 문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문장이 말하고 있는 것은 미래라는 시간이 아니라 의지에 가깝거든요. 내일 학교에 가겠다는 나의 의지요. 내 의지가 꺾여서 내일 학교에 안 가면 그 문장은 사라지겠죠. 다른 문장을 볼까요? 어제 비가 왔다. 지금 비가 온다. 내일 비가 올 것이다. 이때의 미래 문장은 추측이라고 봐야 해요. 지금 다른 나라에서는 비가 올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과 똑같아요. 모르는 사실을 추측하는 거지요. 추측이 빗나간다면? 이 역시도 사라지고 말아요. 그래서 한희의 입을 빌려 한국어에는 미래 시제가 없다고 썼어요. 한국어 강사 일에서 미래를 보지 못하는 한희가 간절히 미래를 원하면서 ‘우리에게는 미래 시제가 필요하다’라는 문장이 나온 거예요.
이유 문법의 경우, 가르칠 때 많이 애를 먹어요. 배우는 학생들도 너무 어려워하고요. 한국어에는 왜 이렇게 이유가 많냐는 말을 많이 해요. 책에는 동사와 형용사에 붙는 이유 문법만 써서 14개지 명사까지 확장하면 더 많아요. 때문에. 덕분에. 탓에. 이 세 개만 생각해 보세요. 이유를 뜻하는 단어만 가지고도 정말 많은 의미를 전달할 수 있잖아요. 이러니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입장에서 얼마나 어렵겠어요. 그런데 동시에 이유 하나에도 수많은 감정과 태도를 담고 있다니 재미있고 매력 있기도 하죠. 그래서 저는 한국어가 정말 좋아요. 그런 이야기를 책에서 조금이나마 담고 싶었어요.
작가님께 ‘쓰기’란 어떤 의미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특히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에서 살고 계신 만큼 조금 특별한 이유가 있을지도 궁금했어요.
소설의 마지막 장 ‘겨울 단기’에서 선이가 ‘불꽃’이라는 단어를 가르치는 장면이 나와요. 불 fire, 꽃 flower, 라고 가르치지요. 호주에 오기 전에 한 번도 불꽃이라는 단어를 쪼개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호주에서 불꽃, fireworks를 보면서 영어에 비해 한국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발견하게 되었어요. 다른 언어와 문화를 겪으면서 도리어 나의 언어와 문화를 더 깊이 생각하게 될 때가 많아요. 앞으로 얼마간은 그렇게 ‘한국인’에 대해 쓰고 싶어요. 호주를 살아가는 한국인이 다음 책의 주인공이 될 것 같아요. 한동안은 내 안에 있는 우리를 깊게 들여다보는 과정이 저의 쓰기가 될 것 같네요.
작가로서 앞으로의 지향점이 있다면요.
‘작가의 말’에 언제나 읽히기를 바라면서 글을 써 왔다고 했거든요. 진심이에요. 그래서 잘 읽히는 소설을 쓰는 것이 저의 가장 큰 목표예요. 잘 읽히는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네요.
마지막으로 자유롭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힘들게 버텨내고 있는, 일하는 모든 분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를 이렇게 매 순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시스템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안심할 수 있는 사회, 모두가 존중받으면서 행복하게 일하는 사회를 꿈꾸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면 뭔가 잘못된 것 아닐까요?
서수진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현재 호주에서 살고 있다.
글 | Editor - 조은혜
zzonis@bnl.co.kr
사진 | 저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