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이길보라 “지속가능성을 찾아 떠난 길”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이길보라는 농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이다. 부모로부터 수어를, 세상으로부터 음성언어를 배운 그는 농인과 청인의 경계에서 자랐다. 코다라는 정체성을 유산 삼아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만들었고 동명의 책을 냈지만, 예술가로서의 지속가능성이라는 고민은 여전히 그의 숙제로 남아 있었다. 무엇을 찍을 것인가? 무엇을 만들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그는 실행에 옮긴다. 명문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배낭 여행길에 오르고, 해외를 넘나들며 영화를 찍고, 학비부터 시작해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네덜란드 유학을 감행한다.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는 경계에 서 있던 한 예술가가 경계가 지워진 세계를 경험한 이야기다. 그의 책을 읽고 인터뷰를 나눈 지금, 이길보라의 다음 작업이 몹시 기다려진다. 이길보라는 ‘소수’와 ‘다수’의 구별짓기를 거부한다. 소수자나 다수자가 아니라 모두가 개인으로서의 고유성을 존중받는 세계. 이길보라가 이국땅에서 보았던 세계와, 앞으로 그려낼 세계를 들어보았다.
물론 세상에 유토피아는 없다. 네덜란드에도 인종차별을 비롯한 무수한 구별짓기가 존재한다. 다만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을 뿐이다. 그곳에서 배운 건 그 시도와 모험들이었다.
_이길보라,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9쪽

(이미지 제공=Martijn de Vos)
반갑습니다, 이길보라 작가님. 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글 쓰고 영화 만드는 이길보라입니다.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 〈기억의 전쟁〉을 연출했고 책 『길은 학교다』 『반짝이는 박수 소리』 그리고 최근 나온 산문집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를 썼습니다.
책이 나온 지 한 달여가 지났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서면 인터뷰를 하는 지금, 국내 코로나19 상황도 무척 심각해졌는데요. 저는 지금 네덜란드에서의 석사 유학을 마치고 파트너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려던 중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한국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원래 제 목표는 네덜란드와 한국, 일본을 오가며 작업하고 생활하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삶과 작업의 모양과 형태를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시기인 것 같고요. 이제는 지구와 환경을 덜 소모하는 방식으로 지속가능성을 고민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 책이 단순히 ‘네덜란드에서 사는 것이 좋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이었다면 유학은커녕 여행도 장담할 수 없는 시기에 책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유학기 혹은 헬조선 탈출기라기보다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직접 다 해본 경험의 기록이다.
_이길보라,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273쪽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로 세 번째 단독 저서를 내셨습니다. 책이 나온 소감은 어떠신가요?
일단 무사히 이 책의 출간을 마주할 수 있어서 기뻐요. 올해 봄에 출간 예정이었는데 여러 사정으로 미뤄졌거든요. 이러다 영영 나오지 않는 건 아닐까, 코로나19 시대에 누가 네덜란드에서의 유학기를 읽으려고 할까, 고민이 많았는데 무사히 나와서 기쁘고, 또 너무 재밌게 읽었다는 독자들의 반응을 받아서 기쁩니다.
이전 저서들 『길은 학교다』와 『반짝이는 박수 소리』가 영화 내용을 바탕으로 스크린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담았다면, 이번 책은 순수한 에세이가 담겼어요. 처음부터 출간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쓰셨나요?
어떤 책이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썼어요.(웃음) 네덜란드 유학을 떠나며 ‘이길보라의 작업자로서의 지속가능성을 찾아 떠나는 유학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했는데요. 이 크라우드 펀딩의 목적과 의도에 대한 이야기를 당시 연재하고 있던 신문 칼럼에 썼고, 그때 그 시도와 모험을 지켜본 문학동네 편집자님께서 출간을 제안했습니다. 대부분의 원고는 유학 1년 차에 쓴 것이고, 2년 차와 졸업 이후에는 단어와 문장을 고르며 고쳐나갔어요.
붙어도 걱정, 떨어져도 걱정. 비행기표를 끊고 숙소를 예약했다.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가봐야 알 수 있으니까 무조건 가라.”
엄마다웠다. 눈으로 직접 봐야만 알 수 있으니 가라. 당신들이 지닌 삶의 철학이었다. (…) 귀로 들을 수 없고 눈으로 정보를 습득하기 어려운 부모가 할 수 있는 건 직접 가보고 만져보고 만들어보고 몸으로 해내는 일이었다.
_이길보라,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43쪽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결심한 유학을 다녀온 지금, 이길보라의 어떤 점이 가장 달라졌다고 느끼시나요? 실제로 해보았기에 알게 된 것이 있다면요.
본문에도 여러 차례 나오지만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요. 작업자로서의 지속가능성을 찾아 떠난 유학이었는데, 처음에는 그게 경제적인 걸 말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글을 쓰고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그러기 위해 월세도 내고 장도 보고 책도 사 읽어야 하는 경제적인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을요. 그런데 알고 보니 ‘지속가능성’에 대한 질문은 ‘나는 어떻게 작업을 지속할 수 있을까’라는 작업자로서의 질문이더라고요. 네덜란드필름아카데미 석사 과정에서는 끊임없이 그걸 가르쳤어요. 결과보다 과정을 공유하고, 그 과정을 통해 낯설게 다르게 볼 것.
경계는 네덜란드필름아카데미에서 유학을 시작하면서 지워졌다. (…) “사진 속 수어를 하고 있는 사람은 저희 부모님이에요. 저는 농부모에게서 태어나 수어를 배우고 세상으로부터 음성언어를 배웠어요.”
이 말이 끝나면 모두들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봐야 했다. 그러면 나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청중의 관심을 끌며 다음 문장을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다들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 농문화는 이곳에 존재하는 수많은 문화 중 하나가 되었다. 나는 나 자체로 존재할 수 있었다. 그 어떤 설명도 필요하지 않았다.
_이길보라 외, 『우리는 코다입니다』, 교양인, 218~219쪽
한국 사회와 네덜란드 사회를 모두 경험한 작가님이 보기에, 오늘날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판단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기요. 그냥 모두가 다르고 고유하다는 걸 받아들이고 그 어떤 판단도 비교도 하지 않을 것.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 물론 너무 어려워요. 저도 네덜란드에서 유학을 시작한 지 1년이 되어서야 몸의 긴장이 풀어질 정도였으니까요.
이길보라에게 글쓰기란 무엇일까요? 예술가로서 이미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들고 있음에도 또다시 글을 쓰고 책을 내게 만드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영화를 만들고 글을 쓰는 일을 통해 ‘낯설게 보기’ ‘새롭게 질문하기’를 합니다. 제게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출발점은 질문이에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영화 제작이 되고, 글쓰기가 되고 책 출판이 됩니다. 그래서 여전히 저는 과정 가운데 있어요. 그 여정을 계속해서 영화를 통해, 책을 통해, 강연을 통해, 이야기를 통해, 인터뷰를 통해 공유하고 있고요. 그럴 수 있는 힘이라면 아무래도 낯설게 보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질문을 가질 수밖에 없게 했던 저의 출발점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요. 농인 부모에게서,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출발점이 제게 끊임없는 질문하게 만드는 힘이 됩니다. 저의 첫 번째 언어, 모어가 수화언어라는 것 역시 큰 힘인 것 같아요. 세상을 다르게, 낯설게 볼 수밖에 없었거든요.
앞으로 이길보라가 세상에 던질 질문들이 기대됩니다. 감독으로서, 혹은 작가로서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어떤 꿈을 이루겠다, 하고 살아오지 않았어요. 목적 지향형 인간이 아닌가 봐요. 유학을 떠나기 전에는 ‘좋은 영화’ ‘지구에 폐를 덜 끼치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얘기했는데요. 갑자기 반성하게 되네요. 나는 정말 지구에 폐를 덜 끼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글을 쓰고 있는지.
계속해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연대하고 활동하는 작가, 감독, 예술가이고 싶어요. 요새는 책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를 홍보하는 모드로 살고 있고요. 올해 초에 개봉했던 영화 〈기억의 전쟁〉의 아카이빙북을 제작진과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여러 매체에 연재했던 글을 엮어 칼럼집으로 낼 준비도 하고 있고요. 네덜란드필름아카데미 석사 과정에서 시작했던 연구에서 출발한 영화 〈우리의 몸〉의 기획개발도 진행 중입니다. 여성의 몸과 재생산권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인데요, 책의 마지막 챕터에서도 다루고 있으니 살펴봐 주세요.

▲ 네덜란드필름아카데미 졸업 발표회 (이미지제공=이길보라)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보고 있을 독자분들에게 자유롭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책을 만들고 영화를 만드는 일, 더 많은 독자들에게 가닿기 위해 책을 홍보하는 일. 이 과정에 정말 많은 이들의 노력과 노동, 애정과 사랑이 담긴다는 걸 계속해서 배워나가고 있어요. 첫 책을 낼 땐 잘 몰랐던 것 같은데 점점 그 수고와 노력이 눈에 보여요. 이번 책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는 정말 멋진 이들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요새 주변에 책 많이 사라고, 5권 사고, 10권씩 사서 주위에 홍보하라는 말을 진심으로 하는데요. 왜냐면 이 한 권의 책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고가 들어가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제게 이번 산문집은 작업자로서의 지속가능성을 찾아 네덜란드필름아카데미로 떠난 배움의 기록을 담은 책이지만 동시에 어떻게 편집자와 마케팅 담당자, 디자이너, 대표님들과 함께 재밌게 일할 수 있는지 협업의 가능성을 배운 책이기도 해요. 그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마케팅부에서 수어로 북트레일러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주셔서 저의 모어인 수어로 이 책을 소개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제게도 매우 흥미로웠던 작업입니다.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의 수어 북트레일러도 보시고, 책 속의 ‘네덜란드에서 수어로 전하는 인사’(121쪽)도 읽어봐 주세요. 무엇보다 이 책에서 끊임없이 전하고 있는 메시지, “괜찮아, 경험”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해본다” “도전과 시도!” 기운을 받아 가시길 바랍니다.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까요.
▶ 이길보라 작가가 직접 소개하는 수어 북트레일러

이길보라
글을 쓰고 영화를 찍는 사람. 농인 부모 이상국과 길경희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1학년 재학중 아시아 8개국으로 배낭여행을 떠났고, 여행에서 돌아온 후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학교 밖 공동체에서 글쓰기, 여행, 영상 제작 등을 통해 자기만의 학습을 이어나갔다. ‘홈스쿨러’ ‘탈학교 청소년’ 같은 말이 거리에서 삶을 배우는 자신과 같은 청소년에게 맞지 않다고 판단해 ‘로드스쿨러’라는 말을 제안했고, 그 과정을 자신이 제작하고 연출한 첫 다큐멘터리 〈로드스쿨러〉에 담았다. 농인 부모의 시선으로 본 세상을 담은 장편 다큐멘터리 〈반짝이는 박수 소리〉,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주체의 기억을 담은 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을 만들었다. 지은 책으로 『길은 학교다』 『반짝이는 박수 소리』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우리는 코다입니다』(공저)가 있다.
|Editor - 임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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