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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홍승은 “무엇이 ‘자연스러운’ 사랑인가요?”



폴리아모리polyamory의 사전적 정의는 ‘비독점 다자 사랑’이다. 홍승은 작가의 세 번째 책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는 ‘폴리아모리 에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폴리아모리의 정의나 개념을 설파하는 책이 아니다. 물론 다자 연애를 ‘하자’며 포교하는 책은 더더욱 아니다. 그의 전작인 페미니즘 에세이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와 글쓰기 에세이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를 읽은 독자라면 그의 새 책 역시 믿고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말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서 좀더 솔직해지려는 노력”¹으로 글을 쓰는 작가이므로.


낯선 세계와 낯선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었다면, 당신은 이 책에서 보다 ‘잘’ 사랑할 수 있는 법에 관해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내 주변의 연인을, 가족과 친구를, 동거인과 반려 동물을, 오늘 스쳐 지나간 식물과 길고양이와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사랑하는 법을 고민한 나날이 폴리아모리와 함께 이 책에 담겨 있다.


1) 홍승은,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121쪽





흔히 폴리아모리는 ‘다자연애’라고만 알려져 있지만, 나에게 폴리아모리는 ‘비독점’과 ‘합의’를 위한 노력과 같은 말로 다가왔다. 상대방의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서로의 고유성을 존중하고, 설사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더라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소통하고, 소유만이 사랑의 방식이 아님을 인정하는 관계.

_『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37쪽


반갑습니다, 홍승은 작가님! 페미니즘 에세이와 글쓰기 에세이를 출간하셨고, 7월 폴리아모리 에세이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를 내셨습니다. 어떤 책을 쓴 사람인지 이외에 어떤 말로 작가님을 소개할 수 있을까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면요.


안녕하세요. 저는 글을 쓰는 집필 노동자이자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는 이야기 안내자 홍승은이라고 해요. 사회에서 소외된 이야기를 찾아서 읽고 쓰는 일에 관심이 많아요. ‘쓰는 사람’이라는 이름표도 저에겐 중요하지만, 요즘엔 ‘걷기’에 빠져 매일 2만 보 이상 걸으려고 노력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를 ‘걷는 사람’이라고도 소개하고 싶어요.


반려동물 네 마리와 함께 살면서 비인간 동물의 시선에서 사회를 보는 법을 배우는 중이에요. 공동 텃밭을 경작하면서 자연과 호흡하는 법을 배우고 있고요. 제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새롭게 알아가는 일, 낯선 세계를 접했을 때 화들짝 놀라면서 내 세계가 확장되는 과정을 좋아해요. 어떻게 하면 무해하게 관계 맺고 살아갈 수 있을지 매일 살금살금 공존하는 법을 익히는 중이에요.


(이미지 제공=홍승은)


책의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등장인물 소개를 듣고 시작할까 합니다. 함께 사는 가족 우주님과 지민님, 그리고 네 마리의 강아지의 소개를 부탁드려요. 함께 사는 일과는 어떤 모습인지도 궁금합니다.


대식구가 함께 살고 있지요? 저를 포함해 일곱 식구가 3년째 한 지붕 아래에서 살고 있어요. 우주와 지민은 함께 밥 먹는 식구이기도 하고, 함께 공부하는 도반道伴이기도 하고, 제 애인이기도 해요. 우주는 여름 햇살을 좋아해요. 우주가 토라지거나 우울해할 때, 우주의 손을 끌고 나가서 해를 보면 금방 기분이 풀려요. 우리 집 여름요정이에요. 지민은 밤과 새벽을 좋아해서 새벽에 혼자 넷플릭스로 SF드라마를 보면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사람이에요. 저희 집 여름요정과 새벽요정은 (참)이슬을 가장 좋아해서 종종 함께 술잔을 기울이곤 해요.


함께 사는 반려견 이름은 달, 부엉이, 참새, 커리예요. 달이는 산책할 때 흙 한 톨까지 탐구하겠다는 마음으로 느릿느릿 깊게 산책해서 별명이 ‘달 박사’이고요, 부엉이는 흙 한 톨이나 나무 조각, 똥까지 다 입으로 가져가는 먹보이자 뽀뽀를 좋아하는 로맨티스트예요. 참새는 몸이 약하지만 성질이 예민한 귀여운 양아치고, 커리는 모든 감정을 다양한 소리로 표현해서 ‘소리 커리’라고도 불러요.


일곱 식구가 살아가는 일과를 거칠게 단순화하면, 저는 새벽 5시쯤 일어나서 멍멍이 넷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요. 산책하고 집에 돌아오면 우주와 지민의 출근 시간이 돼요. 우주는 회사를 다니고 있고, 지민은 시험을 준비 중이라 독서실로 출근하거든요. 두 사람이 출근하면 저는 집에서 글을 쓰거나 강의를 준비해요. 그렇게 하루를 보낸 뒤에 저녁이 되면 함께 가사 노동을 하고, 저녁밥을 먹으면서 하루 살았던 이야기도 공유하고, 가끔 영화를 보거나 나들이를 나가요. 일주일에 한 번 가족회의를 하는데, 그때 돌봄 노동과 가사 노동, 회계 상황 등 생활에 필요한 부분을 조율하는 편이에요. 보통의 함께 살기와 크게 다를 것 없이 함께 지내고 있어요.


책이 나온 뒤 주변 반응은 어떤가요? 특히 책에 대한 우주님과 지민님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우주와 지민은 책을 집필할 때부터 든든하게 지지해주었기 때문에 책이 나온 뒤에도 여전히 지지하는 마음으로 책을 아껴줘요. 우리 각자의 30대의 한 조각을 책이라는 형태로 공유하는 일은 위험한 만큼 특별하기도 하니까요. 우리가 더 나이가 들었을 때, 이 책을 어떤 마음으로 읽게 될지 상상하면서 함께 웃기도 했어요. 저희와 관계 맺어왔던 주위 사람들은 더 자세하게 셋의 일상을 알게 되어서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시고요. 결혼한 어느 지인은 자기가 사는 모습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을 찾는 게 흥미롭다는 소감을 전해주기도 했어요. 물론 책을 읽지도 않고 “말도 안 된다, 이해가 안 된다, 서점에서 책을 집어 던졌다”고 비난하는 반응을 접하기도 해요. 출간하고 한 번은 모르는 분에게 메시지가 왔어요. 다짜고짜 셋이 살면 섹스는 어떻게 하냐고 묻더라고요. 책에서 충분히 다룬 내용인데, 소수적 관계 맺음은 섹스로만 상상되는 걸 새삼 실감하게 됐죠. 당연히 답장은 하지 않았어요.


지민: 관계, 하면 섹스부터 떠올리는 사고 회로를 가진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 또 한편으로는 적나라하게 섹슈얼리티의 위계를 드러내주는 것 같아요. 무엇을 정상으로 보는가. 무엇을 ‘정상’ 섹스나 관계로 보는지요.

_「인터뷰 1 악플 읽는 밤」,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180~181쪽


그래도 최근에는 다른 반응을 접할 기회가 많았어요. 한 중년의 독자에게서 “잘 몰랐지만, 더 알려고 노력하고 싶어요. 다양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면 나도 함께 해방되는 기분이어서 신나요”라는 피드백을 받았어요. 며칠 전에도 한 독자에게서 긴 메일을 받았어요. 왠지 폴리아모리는 ‘쿨병’ 걸린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거나, 바람을 합리화하는 말이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그런 편견이 깨졌다고, 새로운 세계를 알게 해줘서 고맙다는 메일이었어요. 이런 피드백을 받을 때 글을 쓰길 잘했다는 안도와 위안을 받아요.


(이미지 제공=홍승은)


책을 받아 들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정말 멋진 표지라는 점이었어요. 폴리아모리라는 말이 주는 흔한 첫인상 대신 ‘세 개의 칫솔’이 주는 일상성과 평범함이 멋졌습니다. 책에서도 말했듯 폴리아모리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살아가는 모습과 태도라는 걸 말해주는 그림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빨간 칫솔 세 개, 강렬한데 왠지 편안하죠? 저도 표지가 마음에 들었어요. 저희 편집자님과 일러스트 작가님, 외주 북디자이너까지 세 사람의 공동 작업으로 일궈진 결과예요. 편집자님은 처음 표지 컨셉을 잡을 때 폴리아모리를 상상하는 편향적인 이미지를 깰 수 있는 표지를 고민했다고 해요. 흔히 폴리아모리는 ‘일탈적이고 문란하고 이기적인 성애적 관계’로 상상되는데, 그게 아니라 ‘의외로 평범하게 함께 살아가는 것뿐인 셋’이라는 점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하면서요.


폴리아모리라는 포장지는 무척 자극적일지 모르겠지만, 까고 보면 크게 다를 게 없는 모습이에요. 한 독자로부터 비슷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어요. 막상 책을 읽으니 폴리아모리에 초점이 맞춰지기보다는 ‘함께 사는 생활과 태도’에 가까운 책이 아닌가 싶었다고요. 자기가 요즘 가족이나 연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게 되었는데, 타인과 동거하면서 겪는 갈등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이 책의 내용과 연결돼서 공감됐다는 피드백이었어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칫솔이라는 친숙한 물건을 통해서 매일 양치질하듯 함께 살며 부딪치고 배우는 일상성을 드러냈다고도 생각해요. 표지를 통해서 그 부분이 잘 표현된 것 같아서 기뻐요.


“하, 두 사람을 사랑한다니 그게 말이 되나요? 지금 정치적 실험을 하는 거죠?”

“실험이요? 저는 제 삶을 갖고 실험하지 않아요.”

_『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11쪽


책의 초반, 동거인 ‘우주’와 ‘지민’에 대한 정보가 거의 주어지지 않지요. 지정 성별이나 나이 등, 많은 사람이 가장 먼저 묻고 싶어 하지만 가장 편견을 주기 쉬운 정보들을요. 이런 부분 외에도 각별히 책에서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어떤 점일까요?


몇 해 전 여름, 교사들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질의응답 시간에 한 선생님이 자기 학생이 폴리아모리라는데 어떻게 상담을 해줘야 될지 모르겠다고 고민하더라고요. 청소년 폴리아모리, 중년 폴리아모리 등 폴리아모리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연령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꽤 많이 존재해요. 그런데 폴리아모리를 상상하면 그려지는 스테레오 타입이 있잖아요. 청년-남녀 구성의 모습. 아마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같은 모습을 투영해서 그런 걸까요? 그 잣대를 벗어나려고 제 애인 중 한 명이 남성이 아니라 젠더퀴어(genderqueer: 남성과 여성으로 자신의 성별을 규정하지 않는 사람)라는 점을 머리말에서부터 밝혔는데, 여전히 ‘남자 둘에 여자 하나’로만 입력하는 분들이 있어서 아쉽긴 해요. 로맨스와 섹슈얼리티를 상상할 때, 형태뿐 아니라 구성원의 성별, 연령, 인종과 장애 여부 같은 것들이 보다 열린 상상력으로 넓어지길 바라요.


책을 집필하면서 무엇보다 폴리아모리 관계가 편향적으로 해석되지 않도록 경계했어요. 바깥의 비난에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다 보면 글과 삶이 미화될 수 있으니까 그 부분도 조심했고, 그렇다고 힘든 점만 부각하자니 그것도 진실이 아니었으니까요. 이상적으로 추켜세워지거나 이상한 관계로 낙인찍히거나.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려고 구체적인 일상과 캐릭터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어요. 저는 책을 통해서 지금 내가 맺는 관계는 얼마나 평등한지, 우리는 어떤 합의를 맺으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랐어요.


집필하신 작가님에게도, 본인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게 된 지민님과 우주님에게도 ‘어떻게 읽힐까’가 가장 큰 불안이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네. 아무래도 걱정되었고, 걱정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에요. 글을 쓸 때마다 체념과 희망 사이를 왕복해요. 작가가 아무리 방향성을 잡고 써도 해석은 독자의 몫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제 의도와 독자의 해석 사이에 갭이 크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포기할 수 없으니까요. 이전에 써왔던 책 역시 페미니즘이나 소수자와 관련된 주제였지만, 이번 주제는 워낙 편견이 두터운 주제였기 때문에 읽히지도 않고 오해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어요. 우주와 지민 역시 함께 느끼는 두려움이고요.


그래도 국내에 폴리아모리 관련 책이 몇 권 없는 상황이니까 소수적 관계 맺음에 대한 아카이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었고요.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책을 접하고, 책을 통해 사랑과 관계에 대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더불어 폴리아모리 관계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밀려난 다양한 관계들이 투명하게 존중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쓸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폴리아모리는 ‘내가 내 욕망대로 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을 소유하고 독점하지 않고도, 인정하고 존중하고 믿을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일에 가깝다.

_홍승희, 『붉은 선』 260쪽


▲ 국내에서 폴리아모리에 대해 말하는 책은 많지 않다. 한국에서 폴리아모리스트로 사는 이들의 디테일한 일면이 궁금하다면, 홍승은 작가의 동생이자 폴리아모리스트임을 고백한 홍승희 작가의 섹슈얼리티 에세이 『붉은 선』과 폴리아모리스트 심기용, 정윤아 두 작가가 폴리아모리에 대해 심층 연구하고 있는 『우리는 폴리아모리 한다』를 권한다.


정상이라는 환상을 강화하는 규범은 애인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곳곳에 스며 있어서, 눈길이 닿는 흐름에 따라 질문을 이어 가다보니 성소수자와 청소년의 욕망과 권리, 가족구성권, 종 차별 문제까지 언급하게 되었다. ‘두 애인과 살아도 괜찮다’는 비교적 뾰족하던 처음의 메시지는 점점 ‘누구와 어떤 형태로 함께해도 괜찮아야 한다’는 메시지로 나아갔다.

_『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13쪽


성소수자, 청소년의 욕망, 다양한 가족구성권, 종 차별 문제… 어떤 사람에게는 이 중 하나만 받아들이기에도 ‘딸꾹질’을 일으킬 만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폴리아모리를 이해하는 게 훨씬 더 어렵겠지요. 작가님이 생각하기에 폴리아모리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선행되어야 할 태도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사랑에 정말 정답이 있는지 질문하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정말 이성애 일대일 관계만이 정상적이고 유일한 사랑법인지, 이성이 아니고 일대일이 아닌 연애는 일탈적이고 이상한 관계이기만 한지. 그 이상하다고 구분 지은 기준은 누가 정했으며, 그게 ‘자연스러운 건지’ 묻는 태도겠죠. 폴리아모리뿐만 아니라 다른 소수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중요한 태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다음은 아무래도 들으려는 태도겠죠. 낯선 건 불편하고 때론 불쾌하게 다가오잖아요. 하지만 구체적으로 알면, 의외로 나와 연결되거나 공감되는 지점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사랑을 상상하기 힘들 테고, 비독점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폴리아모리를 상상하기 힘들 테지요. 우리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이해하기 위한 상상력을 어디서 얻고,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요?


앞의 이야기와 연결될 것 같아요. 상상력은 ‘내가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모든 걸 다 알고, 내가 아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면 다른 것을 받아들일 여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겠죠. 저도 항상 경계하는 태도예요. ‘나는 내가 경험하고 보고 들은 내 경계 안에서만 알뿐이고, 그 외에는 모른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차별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영화나 글, 강연을 통해 다른 삶의 모습을 꾸준히 보려고 해요. 그때마다 ‘정말 모르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때부터 다시 공부가 시작될 테니까 모르는 걸 직면하는 순간이 즐겁기도 해요.


[댓글] 자연스러운 사랑이고 비독점이라면, 상처받는 사람이 없어야지. 정신 수양을 해야만 가능한 게 사랑이냐. 한 명의 이기심으로 세 명이 어거지로 같이 모여 있는 거지. 그럴싸한 말로 욕망을 합리화하지 마라.


우주: 저는 ‘정신 수양’에 꽂혔습니다. 이 댓글에서 정신 수양은 노력이라는 의미로 읽히거든요. 노력을 통해서만 유지할 수 있는 관계가 어떻게 사랑이냐고 되묻는 거잖아요? 저는 정신 수양이든 뭐든 노력을 통해 가꾸지 않는 관계는 폭력이나 불평등으로 연결되기 쉽다고 생각해요.

_「인터뷰 1 악플 읽는 밤」,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187~188쪽


모든 형태의 사랑과 마찬가지로 폴리아모리 또한 꾸준한 노력을 필요로 하지요. 작가님께 두 명분의 사랑을 유지하게끔 하는 에너지는 어디서부터 나오나요?


저는 틈 없이 밀접한 관계보다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관계를 바라요.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저는 한때 연애 상대에게 ─정확하게는 사람을 통해─ 구원받고 싶었어요. 상대도 나도 나약한 존재일 뿐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을 땐, 구원받고 싶다는 욕망이 서로를 착취하는 관계로 나아갔던 것 같아요. 지금은 내 일상의 루틴을 소중하게 여기고, 연애 관계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과의 교류를 소중하게 여기고 가꾸고 있어요. 연애 관계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 연애도 망가지고, 채워지지 않는 빈틈에서 고독과 절망이 자라게 되기도 하니까요. 함께 살면서 서로 에너지를 뺏지 않으려면 노동의 분배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어떤 관계든 노동이 한쪽으로 쏠리면 불평등해질 수 있어요. 그게 가사노동이 될 수도 있고, 관계에 필요한 감정 노동이 될 수도 있고, 돌봄 노동이 될 수도 있겠죠. 서로가 서로의 성장을 돕는 관계가 될 수 있도록 적절한 틈과 노동으로 일상을 채우는 일이 나에게도 에너지가 되고, ‘우리’의 에너지가 된다고 생각해요.


(이미지 제공=홍승은)


작가님이 쓴 세 권의 책을 읽으며, 작가님이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알고 싶어졌습니다. 홍승은 작가가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한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요!


저는 가지와 고수를 좋아해요. 올해 공동 텃밭을 시작했는데, 초여름에 고수를 수확해서 먹었고, 이번 주에 드디어 가지를 수확했어요. 봄에 땅을 고르고, 씨앗을 심었어요. 그 뒤로는 가끔 물을 주고 잡초를 뽑으면서 식물들이 매일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관찰했어요. 그 모습이 신기하고 멋졌어요. 매번 사 먹기만 했는데, 직접 키우니까 더 꼭꼭 씹으면서 맛을 음미하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신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계기는 동네에 사는 멋진 언니들 덕분이에요. 지금 텃밭은 열 명의 동네 언니들과 함께 공동으로 경작하고 있어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다 보면, 내가 원하는 좋은 방향으로 어느 순간 삶이 흐르게 되더라고요. 저는 그런 순간을 가장 좋아해요. 내가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이끌려 새로운 곳에 발 딛게 되는 순간을요. 또, 매일 차곡차곡 자라는 식물들처럼, 저도 욕심부리지 않고 조금씩 성장하고 싶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대상은 단연 멍멍이들인데요. 멍멍이를 포함한 다양한 비인간 동물들을 사랑해요. 제 주위엔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유기 동물을 봤을 때,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누군가를 봤을 때, 성차별과 폭력이 끝없이 반복되어도 포기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어요. 한 친구는 가방에 항상 사료를 소분해서 간직하고 다녀요. 언제 길고양이를 마주칠지 모르니까 미리 준비하는 거죠. 살다 보면 ‘나’의 고민에 빠져 몰입하게 될 때가 많잖아요. 그런 순간에도 가방 한 구석에 다른 존재를 위한 작은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사람들이 많은 세상을 꿈꿔요. 상상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져요.


단언하지 않으려는 노력, 경청하는 자세, 더 섬세해지려는 집중이 긴 시간 내내 두 사람을 감쌌다. 그 모습에서 우리의 지난날이 압축적으로 보였다. 사랑이 뭘까? (…) 멍멍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수고했다고 다독인 다음,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매일 밤처럼 같은 인사를 나눴다.

“잘 자요.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어요.”

_『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327~328쪽


목에 걸리는 ‘가시를 하나씩 빼내며’ 글을 써왔다고 하셨습니다. 책이 나온 지금의 기분은 어떠신가요?


일단 원고를 마무리했으니까 가장 먼저는 후련해요!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 많은 사람과의 약속과 책임과 노동이 엮여 있으니까요. 어려운 주제였지만, 그래도 조심스럽게 써냈다는 점에서 저를 칭찬해주고 싶어요. 기꺼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지지해준 제 반려인 우주와 지민에게도 고맙고, 제 주위의 많은 관계들에게도 고마운 감정이 커요. 반면 예상은 했지만 무턱대고 날아오는 비난을 접할 때는 여전히 마음이 쓰이고 속상해져요. 익숙해지지 않는 것 같아요. 악의적인 반응에 익숙해질 필요는 없겠지만요. 한편으로는 악평들을 보면서 ‘내가 이래서 글을 쓰고 싶었던 거지’라는 생각도 하게 돼요.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시기는 가만히 있다고 주어지진 않을 테니까요. 저는 제 몫의 이야기를 세상에 툭 던졌어요. 이제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로 연결될 수도 있겠죠. 제 몫의 이야기 다음에 이어질 또 다른 이야기의 가능성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을 하면 시끄러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아요.


(이미지 제공=홍승은)


작가님께서 요즘 고민하는 화두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요즘에는 다양한 몸의 서사에 관심이 있어요. 저는 메니에르, 황반변성, 공황장애 등 다양한 만성질환을 갖고 있어요.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도 다양한 몸의 조건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곤 해요. ‘누구도 같은 몸을 살지 않는다’는 걸 실감하는 거죠.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몸이 아플 때 가장 힘든 건 몸 자체의 고통보다도 ‘차별’이었다고 해요. ‘건강한 몸’이 정상이고, 아픈 사람은 자기 관리를 못해서 아픈 거라는 식의 ‘건강 이데올로기’가 힘이 센 사회잖아요. 그 이데올로기에서 비껴간 만성질환, 정신질환, 아픈 몸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가요. 그 연장선에서 장애학에도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고요.


다음 책으로 이런 제 이야기를 쓰게 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구술생애사나 인터뷰 작업을 하게 될지도 몰라요. 타인의 삶을 더 구체적으로 듣고 기록하는 일을 하고 싶기도 해서요. 다음으로 쓰게 될 책의 주제는 아직 뚜렷하지 않지만, 아마 이런 관심들을 오랜 시간 응시하고 공부하면서 생각이 무르익으면 자연스레 다음 글을 쓰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보고 있을 독자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낯선 사람의 낯선 이야기에 놀라셨지요? 그래도 끝까지 인터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번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겠어요? 책을 통해 제가 사는 세계로 초대하고 싶어요.


승은: (…) 우리 모두 비난이 따를 건 예상했잖아요? 그럼에도 우리를 드러내기로 다짐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지민: (…) 취향이란 단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관계 맺음의 방식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싶었어요. 어떤 사람들의 좁은 상상력에 대항하고 싶기도 했고.

우주: 간단합니다. (…)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생각이 늘 옳은 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말해 주려고 우리가 굳이 이 노동을 하고 있는 겁니다.

_『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206~207쪽




홍승은

페미니즘 에세이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와 글쓰기 에세이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폴리아모리 에세이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를 썼다. 누군가 남긴 이야기를 주우며 소외된 경험의 언어를 찾았듯, 헨젤과 그레텔의 빵 조각처럼 내 몫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 “함께 해방될 수 없다면 내 자유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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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임채원

chaewon418@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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