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정아은 “어느 쪽이 더 가치 있는 일인가요?”

사람을 낳고, 먹이고, 입히고, 살게 하는 모든 일에는 쉽게 환산할 수 없이 많은 에너지가 쓰인다는 것을, 직접 경험해보기 전에는 모른다. 하지만 주부들을 향해 쉽게 던지는 ‘집에서 논다’는 말은 이 같은 수고를 일순간에 지운다. 정아은 작가는 왜 우리가 그런 말을 쉽게 내뱉는지, 이 말이 흘러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했다. 개인에서 사회로, 구조로 거슬러 올라가다 자본주의라는 체제에 닿는 과정을 책으로 풀어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여성과 남성 간, 미혼과 비혼, 기혼 사이에 놓인 생각의 거리를 한 뼘 좁히게 된다. 나아가 ‘인간을 살게 하는 노동’이 가진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꼭 필요하지도 않은데 한물 갔으니 다른 거 사라고 설득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과, 사람을 낳고 먹이고 살게 하는 일이 있으면 어느 쪽이 더 가치 있는 일이냐는 거죠. 사실은 이쪽이잖아요. (가사 노동은) ‘인간을 살게 하는 노동’인 거잖아요.”
- 인터뷰 중
안녕하세요. 정아은 작가님, 독자분들께 작가님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소설 쓰는 정아은입니다. 『모던하트』, 『잠실동 사람들』, 『맨얼굴의 사랑』. 그렇게 세 권의 장편소설을 썼고요. 에세이로는 『엄마의 독서』, 이번 책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을 썼습니다.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은 어떤 책인가요?
우리가 흔히 집에서 집안일을 담당하는 주부한테 “집에서 논다”고 말을 많이 하는데요. 왜 그런 말을 자꾸 주부들이 하게 되는지, 주부들이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지.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실례라고 생각하지 않고, 심지어 주부인 자신도 “집에서 논다”고 표현하는 그 현상을 파헤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 거짓말이라는 것을 열다섯 권의 책과 함께 풀어서 설명하는 책입니다.
소설가로 먼저 작가 활동을 시작하셨는데, 에세이를 쓰게 된 이야기가 궁금해요.
돈에 관한 소설을 구상하던 중에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너무 어려워서 미루고 있다가, 어디 가서 배우면서 읽었어요. 마르크스의 저서, 특히 『자본론』을 읽으면 본인에게 있는 약자성에 대해서 되게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 내재돼 있는 약자성을 직면하고, 들여다보고, 좀 더 들어가보면 그 약자성에 대해 뭔가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자본론』을 읽은 때가 제가 엄마가 된지 12년이 넘어가던 즈음이었는데 엄마로 사는 게 혼란스럽고 힘든 때였어요. 그래서 일기 쓰듯이 썼었는데, 나중에 출판사 담당자 분께서 흥미를 보이셔서 출판을 하게 됐죠.
책의 시작에 대해 여쭙습니다. 이와 관련한 강연을 먼저 진행하셨다고요.
제가 『엄마의 독서』를 쓴 다음에 강연을 많이 다녔는데요. 원래 소설 쓸 때는 그렇게 강연을 많이 안 다녔어요. 확실히 에세이를 쓰니까 강연 요청이 많이 오더라고요. 학부모님들을 뵙고 세 종류의 강연을 했었는데, 첫 번째 강연은 엄마의 애환에 관한 거였고, 두 번째 강연은 아빠들의 애환, 세 번째 강연이 엄마하고 아빠가 왜 이렇게 부모로 사는 게 힘들까 하는 것을 자본주의라는 관점에서 비춰보는 강연이었죠. 세 번째 강연이 종합이었어요. 저는 세 번째 강연이 인기가 없을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제일 반응이 좋았어요. 돈이나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우리 생활에 일어나는 일들을 풀어내는 걸 흥미로워하셨어요.
그러다 어느 날 강연을 마쳤는데, 어떤 분이 강연 내용에 대해서 굉장히 좋았다고 말씀하시면서 방금 하신 강연이 선생님이 쓰신 어떤 책이냐고 읽어보고 싶다고 하시는 거예요. 순간 이 내용을 책으로 써야겠구나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게 한 2년 전쯤이었는데, 그때부터 생각을 해서 쓰게 된 거죠.
세 번째 강연이 한 권의 책이 된 셈이네요. 그간의 경험을 열다섯 권의 경제, 사회학 도서에 담긴 이론들을 엮어 풀어내셨는데, 어떤 방식으로 집필을 이어가셨는지 궁금합니다.
이 책을 쓰려고 다 읽었던 건 아니고 다른 필요에 의해서 읽던 책들이었어요. 소설을 쓰기 위해서, 아니면 다른 글을 쓰기 위해서. 그런데 그런 강연을 하면서 가사 노동을 경제학적 관점에서 풀어가야겠다 생각을 하고, 이런 책들을 다시 찾아서 다시 읽었어요. 다시 읽고 포커스를 가사 노동에 맞춰서 읽으니까 또 다르더라고요. 그렇게 하나의 키워드로 가사 노동과 연계시켜서 그렇게 쓰게 됐어요.
가사 노동에 대한 감정적인 호소가 아니라, 주장을 뒷받침하는 부분들이 탄탄하면서도 객관적이에요.
주부라는 대상에 있어 기존의 태도, 말, 마음에 대한 책은 많잖아요. 사실 주부로 산다는 건 수많은 가사 노동과 대면하는 일이고, 내가 하는 일을 인정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딜레마와 계속 부딪히는 일이에요. 그런 것들, 어떤 불안이나 망설임, 고통 같은 것은 남편이나, 남자들, 사회 전체를 향해 정서적이거나 태도적으로 접근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더라고요. 존재 기반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핵심적인 ‘돈’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해보고 싶었어요. 정서적인 것보다는 물질적인 관점에서요.
쓰고 나서 후련했을 것 같아요. 어떠셨어요?
네, 그런 것도 있었어요. 쓰면서 되게 많이 생각하게 되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이 책 쓰면서 주부이신 분들 인터뷰도 많이 했었거든요. 밖에서 회사에서 취업해서 일하시는 분, 전업으로 집안일 하시는 분도 만나봤고. 여러 분들 만나봐서 이야기 해봤는데, 그런 과정에서 저도 되게 새롭게 알게 되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많이 바꿨던 부분이 있어요. 약속을 잘 어기거나, 어겨도 눙치고 지나가는 어떤 분들에 대한 글. 작가님께서도 그런 분들을 처음에는 멀리했지만 나중에는 더 가까워졌다고, 좋아졌다고 하는 글을 읽고 보니까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넓어지는 것 같았어요. 주부의 세계가 넓고 다양하다는 것도 처음 상상해보게 됐고요.
저도 전업주부가 되고서야 알았는데, 정말 다양해요. 요즘에는 고학력층이 많잖아요. 교육 받고, 자기 나름의 꿈이 있었고. 뭔가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이 일순간에 주부가 돼요. 특히 아이를 낳은 다음에는 그 많은 것들을 그만두고 가사일을 주로 하는 삶을 살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이 한 동네에서 자기 일상을 집안에서 지내는 삶이 갑자기 펼쳐지는 거죠.
어떤 사람들은 그걸 굉장히 즐겁게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되게 황당해하고, 패닉 상태에 빠지기도 해요. 굉장히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주부라는 이름으로 똑같은 일상을 영위하게 되는 거죠. 그 주부들도 다른 동료라는 사람들을 보면 되게 서로 황당한 거예요. 회사처럼 하는 일이 정해져 있거나, 월급을 받는다거나, 언제 퇴근한다거나, 퇴사를 한다거나 하는 규칙이 없으니까. 너무너무 다양한 관계가 생겨날 수 있고, 다양한 갈등도 생겨날 수가 있는 거죠. 잘 지내면 너무 친하게 잘 지낼 수 있고.
그렇게 다양한 이들로 주부라는 세계가 꾸려진 것에 비해서 미디어에서는 주부라는 것을 굉장히 납작하게 그리는 것 같아요.
미디어에서도 그렇지만 현실에서도 되게 납작하게 많이 그려져요. 예를 들어서 학교에서 하는 학부모 교육을 가면, 선생님 분들이 되게 주부를 가르치려고 해요. 물론 모든 교사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요. 예를 들어서 “어머님들, 아이들한테 이러면 안되겠죠?” 하는 식으로. 그럼 되게 황당한 거죠. 왜냐면, 제가 봤을 때는 저기 서있는 교사나 저나 하는 일은 다르지만 성인이잖아요. 그런데 근데 대부분 교사들이 주부를 대하는 게 미디어를 통해서 드러나는 부분들, 흔히 별 생각 없고 편안히 집에서 놀고 먹고, 아이들을 달달 볶기만 하는 사람, 너무나 정형화된 주부상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보여요. 주부에도 정말 다양한 주부들이 있는데 말이죠. 비단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든지 주부라고 하면 어떤 가정을 갖고 저를 대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게 되게 흥미롭기도 했고, ‘이걸 내가 한 번 파헤쳐봐야 되겠다’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주부가 아닌 사람들, 미혼이나 비혼의 사람들에게 이 책이 어떻게 읽힐 수 있을까요?
얼마 전에 최지은 씨가 지은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를 되게 재미있게 봤어요. 되게 좋은 책이었어요. 주부이지만 엄마는 아닌 사람들, 또는 주부도 아니고 엄마도 아닌 사람들, 40대 중반의 비혼 여성들을 대할 때 실례를 했을 수 있겠구나 하는 것들을 알게 됐어요. 제가 주부로서 받는 사람들의 선입견 때문에 힘들어 했듯이. 우리 사회는 여자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걸 장려하고, 그렇게 해야만 완성된 인생을 사는 것 같이 많이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여성은 그 여성대로 박탈감을 가지고 그렇지 않은 여성들을 봐요. ‘좋겠다, 네 시간은 다 네 거겠구나.’ 하는 식으로 생각했었는데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를 읽음으로써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았다는 이유로 편견에 시달리고 있었구나, 힘들었겠구나 하는 걸 알게 됐어요.
제 책을 통해서는 결혼한 여성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는지, 어떤 시선을 받는지, 어떤 침해를 받게 되는지 알게 되고, 그렇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서로 대면했을 때 무심결에 상처를 주는 일들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책도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비혼인 분들도 많이 읽고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책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 2, 3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본주의와 가사 노동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해주신다면요.
2장_핵심은 ‘돈’에 있다
3장_자본주의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성별 분업은 태곳적부터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반대예요. 원래 인류는 집안일과 바깥일의 구분이 없이 살았거든요. 밖에서 나무하던 사람이 집에 와서 바느질하고, 집에서 밥하던 사람이 밖에 나가서 농사일 하는 식으로 혼용돼서 했던 거죠. 밖에 나가서 돈을 받고 일을 하는 사람이 바깥일을 하는 거고, 남은 사람은 집안일을 하는 것. 성별분업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보이게 된 건 산업혁명 때문이에요. 그전까지는 사람들이 집안, 혹은 집 주변에서 일했어요. 산업혁명으로 물건을 엄청나게 빠른 시간 안에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생겨나면서 집안 가족 중에 누구 하나가 나가서 자기 노동력을 팔아서 돈을 받아서 집으로 갖고 돌아오고, 남은 사람은 집안일만 하는 형태가 시작된 거죠.
산업화가 점점 가속화되면서 돈의 힘이 점점 세졌어요. 그렇게 되면 공장이나 회사에서 ‘돈으로 바꾸어지는 노동’을 하는 사람만 일을 하는 것처럼 되고, 집안에 남아서 밖에서 일하고 온 사람의 의식주를 돌봐 주고 보살펴 주는 사람이 하는 일은 일이 아닌 것처럼 되는 거죠.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일이니까. 그래서 밖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집에 남아서 일하는 ‘재생산자’ 간의 뚜렷한 위계가 만들어진 거예요. 자본주의의 힘이 세지면 세질수록 더더욱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의 지위가 올라가게 되겠죠. 그래서 자본주의가 굉장히 이런 측면에서는 여성을 집에서 가사 노동을 전담하면서 집에서 논다는 말을 듣게 되는 거죠. 안 노는데. 그런 자본주의가 여성에게 가한 부작용 중에 하나예요.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자본주의가 여성에게 도움이 된 부분도 있어요. 여성도 능력만 있으면, 또는 어떤 기회만 잡으면 자본주의 체제 안에 들어가서 가사 노동자로 살지 않아도 되는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하죠. 그런 면에서는 여성의 지위를 끌어올려준단 얘기예요. 그런 의미에서는 자본주의가 정확하게 여성에게 양가적인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이렇듯 성별 분업은 전근대의 잔재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본질 그 자체이다. … 저자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노동자와 자본가라는 양대 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자본가와 재생산자(여성, 자연, 식민지)라는 세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138쪽)
책에서 가사 노동이 지닌 가치를 발견해서 좋았습니다. 주부란 누군가를 먹이고 돌보는 역할이자, 노동자가 무언가를 재생산할 수 있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요.
‘집에서 논다’ 또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노동을 하는 사람은 별 거 아닌 것 같은 취급을 받도록 우리가 익숙해져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집안일이나 가사 노동의 성격을 보면 이런 거잖아요. 사람을 낳고, 낳은 사람을 계속 자라게 하고, 성장하게 하고, 아픈 사람이 있으면 돌보고. 아니면 죽음의 시중을 들거나, 간호하거나. 사람의 생명과 깊은 관계가 있는 거잖아요. 가장 기본적인 일이고 어떻게 보면 가장 사람에게 필요한 일인 거죠. 감정적으로 돌봐준다거나 하는 일들. 근데 그런 일들이 무시 받게 된 것에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돈의 힘이 세진 측면이 있어요. 사실 사람들이 회사에 가서 하는 일은 아주 비약해서 말하자면 사장님의 호주머니를 불리는 일이에요. 또는 몇몇 주주들의 배를 불리는 일이거나.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많은 회사에서 하는 활동은 그닥 필요하지 않은 일일 수도 있어요. 물론 필수품을 만드는 회사도 있으나, 전자제품이라던가, 장신구라던가, 별로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만드는 곳도 있죠. 꼭 필요하지도 않은데 한물 갔으니 다른 거 사라고 설득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과, 사람을 낳고 먹이고 살게 하는 일이 있으면 어느 쪽이 더 가치 있는 일이냐는 거죠. 사실은 이쪽이잖아요. ‘인간을 살게 하는 노동’인 거잖아요. 반대쪽은 돈이 돈을 낳게 하는 노동인 거고. 이 쪽이 훨씬 고귀하고 가치 있는 일인데, 현실에서는 돈을 벌어오는 사람만 일을 하는 사람이고, 책임지는 사람은 그냥 논다거나,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편하게 사는 거다, 이런 말을 듣게 되는 거죠.
4장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제도, 가사 노동에 임금을 제공하는 방법 등 다양한 논의로 이어나갑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혹은 어떤 방법을 제안해주신다면요.
자본주의의 성격 자체가 바뀌고 있기 때문에 이미 가사 노동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할 수밖에 없고,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게, 천연 자원을 발견하고 가공해서 많은 상품을 파는 대로 이윤을 창출해왔잖아요. 하지만 이제는 저개발국가에서도 환경파괴적인 산업을 왜 자국으로 끌어와야 하냐는 논의가 일어나고 있죠. 한계가 생긴 거예요. 그리고 이제는 단순히 상품을 팔아서 이윤을 낼 수 없으니까, 인간의 몸이나 어떤 공간 같은 것들을 상품화해서 팔고. 또 이제 그렇게 해도 이율이 많이 안 나오죠. 그래서 이제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냐면, 해고를 당하고 정규직 일자리는 줄게 됐어요. 예전에는 한 명의 남성이 나가서 가족임금을 벌어왔다면, 이제는 그게 아닌 거죠. 특정한 장소에 가서 일하고 임금을 받아오는 형태의 노동은 점점 사라지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산업혁명 이전과 같은 형태가 될 수도 있어요. 집에서 일하면서 회의할 때만 만난다던가 하는 식의 일자리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잖아요. 거기다 요즘엔 코로나까지 가세했죠. SNS에서도 흥미롭게 지켜본 게 뭐냐면 남자들이 재택 근무를 하면서 본인들이 한 요리를 찍어 올리는 게 많이 늘어났어요. 코로나19라는 전염병도, 사실은 자본주의가 자연을 파헤쳐서 온 거라고 본다면, 코로나로 인한 이런 변화들도 결국은 자본주의에서 파생된 부작용이잖아요. 그런 것들로 인해서 이제 노동의 형태가 바뀌고, 그렇기 때문에 결국 가사 노동이 남녀에게 고르게 제공되는 현상이 이미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가속화될 것 같아요. 집안일에 대한 개념이 바뀔 수밖에 없는 거죠. 이런 것들이 굉장히 희망적인 요소인 거 같아요. 자본주의 자체에서 일어난 변화 때문에요.
요즘에 빨래와 같은 집안일을 대신해주는 유료 서비스들이 많이 늘었어요. 그런 것도 가사 노동의 변화라고도 볼 수 있을까요?
그럼요. 그게 바로 가사 노동에 임금을 부여하는 방식이에요. 왜냐면 누군가에게 돈을 주고 서비스를 받는 거잖아요. 그 비율이 옛날보다 훨씬 많이 늘어났고요. 이제 그런 식으로 가사 노동이 임금노동화 되어가고 있는 거예요. 오로지 집안에서 주부가 할 때만 무임금인 거죠. 문만 열고 나가면 다 돈인데, 집에서 부인이 하면 무료인 거죠.
그런 일들을 돈 내고 한다는 거는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뜻이죠.
그렇죠. 하지만 돌봄 노동에 속하는 것들, 예전에 주부가 무상으로 했던 것들에 관련된 사업들은 아직도 굉장히 월급이 낮아요. 그 이유는 그게 여성이 주로 무상으로 했던 노동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드는 돈은 안 줘도 된다고 생각하거나, 조금만 줘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책을 읽고, 더 깊은 독서로 이어가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어떤 책을 권하시겠어요?
두 종류인데요. 잘 읽히고 너무 어렵지 않으면서도 가사 노동에 대한 대안적인 비전을 갖고 싶으면 저는 『보이지 않는 가슴』이라는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제 책에도 나오는데요. 내용은 상당히 깊이 있는데, 풀어가는 방식은 굉장히 개인적이거든요. 어렵지 않게 깊이 있는 내용을 얻을 수 있는 책입니다.
만약에 어려워도 공부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면 저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권해드리고 싶은데 그 책이 너무 어려워서 원문으로는 쉽지 않을 거예요. 저는 지금도 원서의 절반도 이해 못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해설서가 많이 있는데, 고병권 선생님이 쓰신 『다시 자본을 읽자』 라는 책이 있어요. 마르크스의 ‘자본’ 시리즈거든요. 10권 정도인데, 1권부터 차근차근 읽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자본론』을 정식으로 읽고 싶은 분이 있으면 이 시리즈로 먼저 접근하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다른 자본론 해설서들은 약간 더 딱딱하게 풀었다면, 이 시리즈는 문학적으로 풀어서 해설을 잘 해주셨어요. 쉽게 접근하고 싶은 분들은 『보이지 않는 가슴』. 어렵더라도 도전하고 싶은 분들은 『자본론』, 『다시 자본을 읽자』 시리즈. 그렇게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기억에 남는 독자의 반응이 있나요?
비혼인 분들, 혹은 20대 분들이 ‘그렇게 한번도 생각을 못했는데 엄마나 주부를 보는 소견이 바뀌었다’는 말씀을 들을 때가 너무 좋더라고요. 결국 우리는 책을 통해 나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기회를 가지게 되잖아요. 근데 제 책이 그런 통로가 됐다는 것이 되게 좋았고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기억에 남았어요. 아니면 남자분인데 이 책을 읽고 가사 노동에 대한 생각이나 아내를 보는 관점이 바뀌었다는 반응을 하는 분들이 있었어요. 되게 기뻤죠.
앞으로의 목표, 또는 계획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지금 소설을 쓰고 있고요. 제 계획은 이 소설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초반 단계라 1년, 2년. 모르겠어요. 해 봐야 알 것 같아요. 무사히 쓸 수 있기를 바라고요. 한편으론 『자본론』을 읽고 난 다음에 논픽션으로 쓰고 싶은 게 많이 생기더라고요. 머릿속에는 되게 많은 논픽션들이 있어요. 인물비평도 있고. 온갖 상상을 많이 하고 있는데 가장 쓰고 싶은 거는 소설이에요. 한동안 안 읽고 안 썼더니 다시 끌리더라고요. 써보니까 에세이는 자기 치유적인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소설은 나와 게임을 벌이는 느낌이라면, 에세이는 제가 저를 많이 돌봐주고, 치유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읽고 있을 독자분들께 자유롭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살면서 얼토당토 않은 말에 대한 공격을 받을 때가 많아요. 비혼 여성의 경우에는 ‘언제 결혼할 거니’ 주부들에게는 ‘집에서 논다’거나. 남자의 경우에는 돈을 안 벌고 있으면 ‘빨리 나가서 밥벌이 해야지.’ 하는 말들. 존중 받지 못하는 말이 날아올 때, 비합리적이고 공격적인 말이 날아올 때 그걸 안 넘기셨으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싸우라는 건 아니지만, 그 말을 뒤끝 길게 갖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왜 저런 말을 할까, 계속 두고두고 생각을 해서 끝까지 그걸 밝혀내시고, 그걸 하나의 무기로 가져갔으면 좋겠어요.
그 사람이 왜 그랬는지를 파헤쳐보고 추적해보면 그 사람이 강자여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것들을 알아보면 훨씬 더 여유 있게 그 사람을 대할 수가 있거든요. 적대감도 누그러지고, 사회의 지형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러니 그런 말들을 들었다면 넘겨 버리지 않고, 자신의 물음으로 갖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집에서 논다’는 말의 연원을 찾는 것은 자본주의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일인 가사 노동을 폄하하고, 한쪽 성에게 미루고, 보상받지 못하는 하찮은 일로 만들어온 내력을 추적하는 과정이었다. (252쪽)
정아은
헤드헌터, 번역가, 소설가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살아왔지만 제1정체성은 언제나 ‘엄마’였다. 엄마 경력 12년에 접어들던 어느 날, 좋은 엄마가 되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너무 아등바등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엄마의 독서』(2018, 한겨레출판)를 썼다. 이후 엄마들이 얼마나 힘든지를 토로하고 공감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이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를 현실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고자 공부와 사유, 글쓰기를 쉬지 않았다. 엄마, 주부들의 문제가 ‘돈’이라는 시커먼 물건과 연관된 것임을 선명하게 드러내고자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을 집필하였다. 2013년 『모던 하트』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고, 이후 장편소설 『잠실동 사람들』, 『맨얼굴의 사랑』을 펴냈다.
글 | Editor - 조은혜
zzonis@bnl.co.kr
사진 | Editor - 임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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