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곤란한 감정』 김신식 ‘당신의 감정은 시시하지 않다’

제목과 부제를 보고 ‘또 이런 책이야’라고 생각한 독자들에게 미리 고한다. 이 책은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는 심리학책이 아니다. 김신식 작가가 관찰한 55가지 단상은 독자를 감정의 늪에서 꺼내어, 전혀 새로운 시각에서 문제를 톺아볼 수 있게 해준다. 감정의 갈피에서 길을 잃었을 때, 자신의 감정에 어떤 이름을 붙이면 좋을지 몰라 헤맬 때 이 책은 조심스럽게 새로운 렌즈를 제안한다. 감정의 문제는 뻥 뚫린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것처럼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다. 징검다리의 돌을 하나하나 조심스레 짚어보며 나아가듯 느리지만 신중하게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법이 이 책에 담겨 있다. 당신의 감정은 시시하지 않기에, 그토록 신중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점을 몇 번이나 강조하며.
심리 전문가들이 당신과 내 삶의 가능성을 ‘일상의 사소한 체크리스트’ 안에 가두는 게 탐탁지 않다. 소박한 마음 아래 당신과 내 삶의 역동성을 (그만하면 됐다는) 자족감으로 가둬버리는 게 못마땅하다.
_『다소 곤란한 감정』, 72쪽
어느 대목을 읽다가 책을 덮고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는 독자, 눈을 감고 눈가를 마사지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독자, 잠시 걷다가 돌아오는 독자를 상상했습니다.

(이미지 제공=김신식)
안녕하세요, 김신식 작가님. 독자분들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한국 사회의 시각문화·감정문화에 대해 비평하고 강의하는 김신식입니다.
지난 3월 『다소 곤란한 감정』이 출간되었습니다. ‘어느 내향적인 사회학도의 섬세한 감정 읽기’라는 부제가 붙었는데요. 이 책은 어떤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비유하자면, 감정을 읽는다는 건 ‘운전면허 기능시험장’이라고 제안하는 책입니다. 지금은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면허 시험을 보던 당시엔 내가 잘 멈추었는지, 곡선은 잘 돌았는지 운전대를 조심스레 만질 수밖에 없잖아요. 저는 나와 타인의 감정을 살펴 읽는 데 그 같은 난관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고로 감정을 읽어나가는 작업엔 ‘다소 곤란함’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책이라고 할까요. 저부터 감정 읽기를 탄탄대로처럼 제안하는 이를 경계하는 편이고요.
책이 출간된 지 1개월가량 지났습니다.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요? 타인의 감정을 읽어내는 데에 능숙하신 작가님이 읽어낸 독자의 감정이 궁금합니다.
많은 반응을 접한 것처럼 지어내어 말하고 싶진 않네요.(웃음) 그동안 제가 눈으로 뚜렷이 확인한 반응은 온라인서점의 별점, 언론 기사 정도였으니까요. 특히 이 책을 곤란하게 대하는 반응을 인상 깊게 보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또 이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요. 감정에 관한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는 지금, ‘또 이런 책이야?’ 하고 들여다보았다가 ‘얕봤는데 뭔가 다르다’ 하시는 분도 있었고요. ‘또 이런 책이네, 이런 타입 좋아’ 하다가 ‘뭐지? 술술 넘겨서 볼 책이 아니네’ 하시는 분도 있는 듯해요. 제 책이 감정에 관한 55가지 당혹스러운 상황을 다루었다면, 제 책 자체에 대한 당혹감은 56번째 상황이겠네요.(웃음)
계층 분포상 높은 데 위치한 자들일수록 그들이 표현하는 심정은 세련된 애환으로 포장된다. 반면 그렇지 못한 존재들이 표출하는 심정은 구구절절하다는 비아냥거림의 대상이다. 누구나 겪으니 앓는 소리 좀 그만하라고 취급당한다. 이처럼 사회에서 심정이란 위계에 복속된다. 《다소 곤란한 감정》은 심정을 놓고 드러나는 여러 사회관계 속 위계에 주목한다.
_『다소 곤란한 감정』, 9~10쪽
이 책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감정사회학’이란 무엇인지 알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감정사회학이란 어떤 학문인가요? 작가님께서 말씀하시는 감정사회학의 매력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감정사회학은 제게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감정 말하기’의 양상에 대해 의심해볼 용기를 주었습니다. 감정사회학은 감정을 잘 다스리면 우리가 속한 세상의 문제를 잘 풀어갈 수 있다는 견해에 거리를 둡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에디터님과 저, 본 인터뷰를 접할 독자들은 ‘감정의 주인이 되자!’라는 모토를 수없이 접해왔습니다. 감정사회학은 그런 모토를 수긍하는 학문이 아닙니다. 왜 그런 모토가 출판 시장, 더 구체적으로 교양심리학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이처럼 감정사회학은 사회를 돌아다니는 감정에 대한 시선을 다각도로 조망하고 비평하는 학문입니다. 물론 이 같은 실천은 비단 학자만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감정사회학이 제공해준 지적인 양분을 독자들과 나누어보고자 했습니다.
사회학 서적이나 에세이의 분류로 나눠떨어지지 않는 ‘사회학적 글쓰기’를 시도한 책이라고요. 사회학적 글쓰기와 에세이적 글쓰기는 상정하는 독자의 성격이 사뭇 다를 텐데요. 어떤 독자를 상상하며 이 책을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국내에는 감정사회학 연구자들이 번역해주신 이론서가 있습니다. 먼저 그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감정사회학 연구자들이 학문 사회에서 자기 입지를 다지는 용도로만 감정 연구를 행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계에선 통용되는데, 일반 독자들에겐 감정사회학이 생소해지는 작금의 상황을 곱씹게 됐습니다.
그때 사회학자 정수복 선생님이 말씀하신 ‘작가로서의 사회학자’란 용어를 떠올렸습니다. 뒤이어 감정사회학을 일반 독자에게 알릴 글쓰기 형식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감정을 사회학을 중심으로 논한다고 해서 제가 일반 독자에게 나누려는 바를 웅변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김소연 시인의 『마음사전』, 파스칼 키냐르의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롤랑 바르트의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를 읽으며 책의 형식을 ‘단상’으로 정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단상의 효능은 짧은 분량, 쉽게 읽힘이 아닐 겁니다. 단상은 ‘일시 정지의 몸짓’을 유발합니다. 어느 대목을 읽다가 책을 덮고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는 독자, 눈을 감고 눈가를 마사지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독자, 잠시 걷다가 돌아오는 독자를 상상했습니다.
55개의 단어를 통해 포착해낸 ‘단상’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평소 어떤 식으로 단상을 기록하시는지, 포착한 단상과 이론/학문의 결합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궁금합니다.
가령 저는 대화 중 상대가 세상사에 대해 흥미로운 관점을 던지면, 귀가 중 휴대폰 메모장에 입력해두는 습관이 있습니다. 포착한 단상과 이론/학문의 결합은, 음…… 이건 학창 시절 자주 한 사전 놀이 같다고 할까요? 선생님이 어떤 단어를 불러주면 종이사전을 펼쳐 그 단어가 있는 페이지를 펼친 사람이 이기는 놀이 말입니다. 이 놀이에서 사전을 딱 폈을 때 그 단어가 적힌 페이지가 바로 나오던 경험과 유사합니다. 감정에 관한 궁금한 지점이 생겨, 이를 이론적으로 추적할 때 저는 제 직관을 믿는 편입니다. 그래서 우연찮게 제 손에 쥐어진 문헌을 펼치면, 마침 보려는 견해가 그 책에 담겨 있는 순간이 잦았습니다.
책 속에서 단상과 함께 언급되는 이슈는 정치, 종교 등 거시적인 것부터 연애와 사랑 등 미시적인 것까지 다양한데요. 작가님께서 유독 관심을 갖고 살피는 분야는 무엇인가요?
사실 책에선 마지막 부로 배치되었지만, 지식사회를 구성하는 감정의 풍경에 관심이 많습니다. 비평가·연구자와 대화해보면요, 자신의 작업 속에서 자기감정을 펼쳐 이야기하는 시도에 대해 여전히 겸연쩍어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학자 혹은 비평가로서 자신의 캐릭터를 신경 쓰는 전략인가?’ 하는 의문을 품죠. 물론 그들에게 제 의구심을 드러내면 손사래 칠 게 분명합니다.(웃음) 이는 지식사회에 속한 사람들의 습성, 그리고 그 습성이 있어야 도태되지 않는다는 지식사회 내 속성과 연계해서 봐야 합니다.

(이미지 제공=김신식)
요즈음 우리 사회의 이슈 또한 감정사회학을 통해 읽어볼 수 있겠지요. 저는 N번방 사건 보도 이후 들려오는 “모든 남자가 그런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감정사회학의 렌즈로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모든 남자가 범죄자는 아니다, 26만이란 숫자가 정말 정확한 거냐 라는 말을 듣는 사람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에디터님이 언급해주신 표현과 함께, ‘단순시청자는 법적 처벌을 받기 어려울걸요. 사람들이 왜 그걸 모르지’하는 말이 자주 올라옴을 같이 곱씹어봐야 할 듯합니다. 한 사회에서 법을 잘 읽어내는 주체가 여전히 남성으로 간주되고, 반면 여성은 법을 감성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시선이 지금도 굳건히 작동 중입니다. 감정사회학에선 남성은 합리적, 여성은 감정적이라는 사회적 선입견의 역사를 주목해왔습니다. 선동이라는 렌즈로 N번방 사건에 대한 정당한 요구와 호소를 폄하할 것이 아니라, 이 사건에 스민 젠더적 고정관념, 그 고정관념에 따라 사람들이 자연스레 취하는 ‘의견의 동선’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여성이 법적 체계를 무시하고 사람들을 선동하려 한다, 반면 남성은 이 사안을 제법 냉철하게 본다는 구도를 극복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무개는 다른 아무개에게 기다리라고 말함으로써 본인의 말을 듣는 사람에게 권위를 인정받는다고 생각한다. 권위에 취해 자신의 주관을 멋대로 휘두른다. 그리하여 누군가의 삶을 끊임없는 ‘대기 상태’로 만들어놓는다.
_『다소 곤란한 감정』, 92쪽
작가님의 책을 읽고 난 뒤로 제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언어에 대해 멈칫하고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나는 이 단어로 내가 느낀 감정과 상황을 너무 평평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성찰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책을 읽은 뒤 성찰을 시작한 독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추천해주신다면요.
저는 어떤 점이 힘겹다면, 그 힘겨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을 계속 만나기보단 때론 자제하길 권하는 편입니다. 그 제어에서 오는 공백·여백의 시간이 도움 될 때가 많았거든요. 만약 누군가와 감정 문제로 끙끙대는 가운데 감정에 관한 책 읽기로 실마리를 찾고 싶다면, 저는 오히려 독서를 멈추고 다른 일을 하시길 조심스레 제안해 드립니다. 이렇게 말하면 제 책 판매에 도움은 안 되겠지만요….(웃음)
책을 덮은 후 다시 표지를 보니 표지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누리끼리한 빛과 어둠의 유령이 사진으로 스며들어 친구의 절반을 가리고 있었다.”(314p)라고 묘사한 사진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표지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언급해주신 글귀는 에필로그 ‘절반을 위한 몸짓’에 나와 있는데요. 에필로그를 준비하면서 평소 좋아했던 이옥토 작가님의 작업을 생각했습니다. 타인의 고통과 상처를 잘 헤아리시는 작가님의 시야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표지 디자이너 UNMOOR 님께서 지금의 표지 이미지를 제안해주셨습니다. 흔쾌히 작업을 수락해주신 이옥토 작가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심정 3부작’의 첫 번째 단행본입니다. 앞으로 출간될 2부와 3부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 예정인가요?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설레발치게 될까 봐 일단은 2부로 준비 중인 작업만 소개할까 합니다.(웃음) 민감성을 사회적 맥락에서 고찰하는 기록입니다.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를 도닥이는 기존 심리학 도서 유형 대신, 저는 민원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민감성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주조되고 있는지 살펴왔습니다. 일례로 층간소음 민원부터 스터디카페에서 서로를 ‘마우스층’ ‘키보드충’으로 호명하며 발생하는 민원까지…. 이를 ‘민원민감성’이라 명명할 수 있다면, 저는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민원에 대한 민감성, 거기에 담긴 심정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2부의 다른 내용은 함구하겠습니다.(웃음)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읽고 계실 독자분들에게 자유롭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행복하자’, ‘행복하고 싶다’라는 말을 자주 할수록 행복감에 내가 너무 종속되고 있는 건 아닐까 돌아볼 때가 많아집니다. 당신을 갈수록 시시하게 만드는 행복 이야기하기의 지배에서 벗어날 계기. 같이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다소 곤란한 과정일지라도.
김신식
198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양장점 주인이었던 외할머니, 그래픽디자이너인 외삼촌과 함께 유년기를 보냈다. 두 사람 밑에서 대중문화를 부지런히 접했다. 대학과 대학원에선 신문방송학, 시각문화연구를 전공했다. 1990년대 한국에서 비디오로 영화를 보던 이들의 열정에 대한 논문을 쓰다가 감정사회학을 접했다. 이후 인간의 마음과 감정을 사회학적으로 접근하는 비평 및 강의에 매진하고 있다. 예술 작업자들의 속마음을 챙기는 ‘풀죽은 작업자를 위한 인문학 강의’, 사람들이 맞닥뜨리는 감정의 양상을 영상으로 풀어보는 ‘영상시대의 이해’로 수강생들과 함께해왔다. 인문사회비평지 《말과 활》, 문예지 《문학과 사회》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사진잡지 《보스토크》의 단행본 편집장으로 재직 중이다. ‘심정 3부작’이라는 출간 프로젝트를 통해 사회현실 속에서 감정, 민감성, 질병으로 힘겨워하는 이들을 위한 기록을 나눌 예정이다. 《다소 곤란한 감정》은 그 첫걸음이다.
|Editor - 임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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