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디 얀다르크』 염기원 ‘연대와 희망을 말합니다’

여기, 사이안이라는 사람이 있다. 대기업 서비스기획에서 모바일 게임기획, IT회사를 여러 차례 오가고 대출 때문에 퇴사마저도 쉽지 않은, 좀체 풀리지 않는 인물이다. 그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 『구디 얀다르크』는 과로, 야근, 갑질, 쉬운 해고, 비합리한 노동 환경 등 IT 업계의 이면을 세밀하게 비춘다. 염기원 작가는 사이안이라는 인물로 한국 사회를 살아가게 하는 희망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의 노동 혹은 목숨이 헐값에 매겨지는 오늘, 염기원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 보기를, 그 끝에 있는 사이안의 목소리를 들어보기를 바란다.
염기원 작가님, 안녕하세요. 독자분들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소설가 염기원입니다. 일산에 살고 있고, 대학교 신입생 때부터 벤처 기업을 했어요. 스타트업 관련한 곳에 있다가, 포털 회사에 근무했었습니다. 주업은 소설가고요. 그 감을 잃지 않으려고 IT 산업 전반적인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IT 업계에서 일을 오래 해오셨다고요.
대학 때는 IT를 전혀 몰랐어요. 가장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가 무엇인지 궁금했고, 고민하다가 포털 회사에 들어갔어요. 광고 관련 회사도 다니다가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관련한 회사를 만들기도 했죠. 구로디지털단지(이하 구디)에서 일한 건 다섯 번째 회사였습니다.
『구디 얀다르크』를 처음 접하는 분들께 간략하게 소개해주신다면.
제목부터 생소하실텐데요. 직관적으로 잔다르크가 떠오르실 것 같습니다. 여전사의 이야기를 기대하실 지도 모르겠는데, 얀다르크는 그냥 흔한 평범한 직장인 중에 한 명이에요. 사이안이라는 인물이 마흔 해 동안 살아온 인생 전반을 돌아보는 하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살다 보면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잖아요. 특히 약한 사람들은 변수들이 많이 생기죠. 건강이 안 좋아진다던지, 가정의 문제도 있고요. 고용이나 연애에 대한 문제도 그렇고요. 이런 것들을 극복해야 되는데, 복원력이 낮은 사람들이 많아요. 대부분 흔한 일들이고요. 그때 주인공인 사이안이 처한 환경이 최악인 상황에서 과연 그녀에게 희망은 무엇일까, 라는 것을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소설에서 엄청나게 대단한 사건들이 생기진 않아요. 사실 현실도 그렇거든요. 언젠가 기적적으로 뭔가 자꾸 좋게 될 거라는 건 바람이지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는데, 이안이 같은 경우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가 가정사를 겪은 다음에, 회사원이 되어서 잘 될 줄 알았는데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났죠. 갑자기 사업하게 되고, 노조를 들게 되고. 이런 얘기들인데 체험에서 나온 얘기들도 있어요.
겨우 출근하게 된 곳은 가산디지털단지에 있는 중견 IT업체였다. 그곳을 시작으로 가디와 구디의 회사 여럿을 거쳤다. 너 말고 일할 놈 널렸다며 일상처럼 가해지는 인격모독, 회식 자리마다 벌어지는 성폭력, 숫자로만 존재하는 휴가. 나 자신도 잃어버린 채 삼 년을 살았다. … 먹고살기 위한 투쟁을 벌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노조를 설립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구디 얀다르크’가 돼 있었다. (200쪽)
오랜 기간 IT 업계에 계신 만큼 실제 경험이 소설에 많이 녹아 있을것 같은데요.
거의 다 제가 했던 일이죠. IT 회사를 다니면서 있었던 일들, 에피소드 몇 가지도. 그 중에 겪었던 일도 있고요. 창업도 해본 경험이 있고. 그 과정에서 있었던 지난함과 멤버들과의 크고 작은 일들을 많이 녹여냈고, 팟캐스트도 했었죠. 아무래도 자연스럽게 들어간 것 같아요.
제5회 황산벌청년문학상을 수상하셨어요. 축하드립니다. 수상 소감이 궁금합니다.
선정되고 상을 수상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려서, 여러 차례 나눠서 축하를 받았어요. (웃음) 발표날 때가 저로써는 작가로서 갈등이나 회의감을 느낄 때였어요. 저는 그런 때에 걷거든요. 지난겨울에 일산에서 김포까지 걷는데 꽃이 펴 있더라고요. 영하 12도에. 물론 진짜 꽃은 아니고 씨앗이 펴 있는 거였죠. 『구디 얀다르크』를 탈고한 이후였는데, 다시 창작을 할 의욕을 갖게 됐죠. 선정 소식이 들려서 작은 위안이 됐습니다.
작가의 말에서 세월호 사건 이후로 소설을 쓰게 됐다 하셨어요.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듣고 싶습니다.
그때 타자의 슬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고 너무 화가 났어요. 분노 때문에 불면증 정도가 아니라 매일을 울면서 살았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도, 왜곡돼서 보도되는 것에도 화가 났고요. 생각해보니까 글은 쓸 수 있겠더라고요. 자본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동료가 필요한 것도 아니잖아요.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바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팟캐스트 방송도 비슷한 차원에서 한 거였고요. 처음에는 분노가 너무 커서 비판적인 내용으로만 글이 많이 나왔었는데, 생각이 좀 달라지더라고요. 특히 이 글을 쓰면서 위로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죠. 저도 열아홉 살부터 사업을 하면서 살았으니까 사실 필요했던 게 위로나 교감이었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시게 된 건가요?
그때부터 전업 작가 일을 시작했어요. 근데 너무 대책이 없었어요. 글을 쓴 다음에 어디다 글을 보내야 하는지도 몰랐었고요. 지금도 모르지만, 그냥 썼어요. 그러다 보니까 남들 하는 것처럼 공모에 내고 등단 준비도 했죠. 그러다가 웹에 소설을 썼어요. 사실 웹소설은 장르문학 시장인데, 제 글을 좋아하는 독자분들이 계셨어요. 정말 감사했죠. 그런 감사한 마음이 힘이 돼서 계속 글을 쓰려고 했어요. 글을 쓰는 지구력을 테스트하고 싶어서 7~8개월 동안 11권을 썼어요. 습작으로요. 하루도 쉬지 않고 글 쓰면서 틈틈이 강의하고 팟캐스트 만들고 했던 것 같아요.
장소성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구디, 가디에는 판교엔 없는 것들이 있죠. 이곳이 지닌 특성이 이 소설의 진정성을 좀 더 채워준 것 같습니다.
판교의 느낌은 첫 벤처거품 있을 때 테헤란로 같아요. 제 사무실이 양재동에 있었는데, 그때 거기에 사무실이 있다는 것 자체로 상징적으로 이미 성공했다는 의미가 있어요. 제가 볼 때 판교도 그래요. 땅값도 비싼데, 그게 되게 중요한 거 같아요. 노동자들은 거기 살지 않기 때문에 먼 곳에서 교통 지옥을 맛보며 사는 거죠.
반면에 구디와 가디는 50년 전부터 공장지대였어요. 누군가의 누나, 엄마, 이모, 할머니가 섬유 공장에서 먼지 맡아가며 일하다가 병에 걸리기도 하고. 가리봉동은 가발공장이 많았죠. 물류 창고 같은 것도 있었고. 거기서 진짜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고생하던 여공들의 눈물이 있는 곳이에요. 제 관점에서 구디와 가디도 50년전의 그곳과 많이 비슷한 것 같아요. 그동안 우리나라는 되게 많이 좋아졌지만 먹고살 수 있는 선, 딱 거기까지만 허용이 된다는 점에서요.
수많은 공장노동자가 근무했던 가리봉동, ‘공순이’가 눈물을 흘리며 미싱을 돌리던 동네다. 가산동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높은 빌딩이 들어섰지만, 공장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미싱 대신 노트북으로 장비가 교체됐고 섬유 공장이 IT 공장으로 변했다. (207쪽)
연애, 야구 등 다양한 소재가 등장하고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이런 것들을 서사에 들여온 이유가 있나요?
저로서는 너무 당연한 건데요. 사이안이라는 사람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았는지 보여줘야 하잖아요. 직장에서의 얘기, 노동이 제일 중요하고, 제 기준에서는 그만큼 연애가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누군가 의지하고 기대고 공감하는 대상이잖아요. 때로는 가족보다 더. 특히 이 친구는 의지할 대상이 없기 때문에 사이안에게는 큰 의미를 차지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고 야구 같은 경우는, 제가 야구를 좋아해요. 그래서 소재로 많이 써먹습니다. (웃음)
작중 야구선수 오영일이라는 인물이 지닌 의미도 큰 것 같습니다.
독자 서평을 봤는데 오영일을 ‘구원자’ 같은 존재로 해석을 하신 분이 있더라고요. 그건 생각하기 나름이죠. 사실 오영일은 사이안이 기댈 만한 인물은 아니에요. 오영일은 20대 후반의 나이에 2군에 있어요. 운동선수 치고 굉장히 많은 나이죠. 사이안처럼 경제적으로도 힘든 사람이 기댈 구석이 없잖아요. 본인보다 나이도 어리고 세상 물정 모르고, 비전 없는 오영일을 왜 사랑하겠어요. 굉장히 아이러니한 거죠. 그런 사람에 의지했다는 것 자체에, 생각해 볼 거리를 주는 거예요.
근데 야구란 게 우리나라 경제와 많이 닮아있어요. 가디나 구디도 그렇고요. 압축성장의 부산물인데,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유망주가 없죠. 야구, IT 업계 둘다요. 구조적으로 기형적인 것도 있고, 유망주가 없다는 것도, 이탈하는 사람에 대한 장치가 없다는 점에서도 비슷하죠.
등장인물 중 사이안이 가장 작가님과 닮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실제 어떠신가요?
성향은 많이 다르죠. 반대에 있다고 봐도 될 정도로요. 저는 좀 일을 주도적으로 만드는 편이고, 사고도 치고 즉흥적인 성격인데, 사이안은 수동적으로 살아왔고, 여러 사건들에 아파한 적이 많아요. 다만 그녀가 힘들어한 일들은 저도 같이 겪은 거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어요. 제 안에 있었거나 억압되었거나 숨어있던 의식이 사이안에게 있었죠. 계속 사이안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저와는 다르지만 그녀의 판단을 존중해요. 비슷한 점이 많아요. 저도 사이안하고 성격이 다르지만 불면증이 되게 심했고, 여전히 심해요. 결벽증도 있고요.
“약자, 비정규직 노동자, IT 종사자, 여성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이 책이 읽힐 수 있을까요?
사실은 이 네 가지 표현을 합치면 사이안이거든요. 근데 약자, IT 노동자라고 하면 힘들 거라 생각하는 건 편견일 수 있어요. 소수라고 해서 보호받아야 된다는 것도 그렇고요. 다만 이런 삶이 있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그녀의 입장에서 귀를 기울여보고, 사이안과 공통점이 있는 당신이 어떤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해보자는 메시지를 드리고 싶습니다.
IT 업계에 깊게 뿌리내린 구조 때문에 생겨나는 수많은 문제들은 쉽게 해결되거나 바뀌지 않는데요.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산업 공통적으로 자주 나오는 얘기 같은데요. 압축성장을 하다 보니 나오는 문제인 것 같아요. 그리고 자본의 논리이기 때문에 쉽게 바뀌기는 어려워요. 일할 사람이 줄 서있는 판이기 때문이에요. 개발자 뽑기 힘들다고들 하지만 사실 개발자가 되고 싶은 대학생, 예비졸업생, 취준생은 엄청 많거든요. 근데 기업은 굉장히 많은 걸 요구해요. 예를 들면 자바를 어느 정도 해야 되고, 어떤 프레임웍을 사용하고. 근데 학생이 어떻게 그런 경험을 쌓겠어요. 자본은 항상 약자보다 성실하고, 치밀하기 때문에 바꿀 수 없어요. 이걸 바꿀 수 있는 건 행정, 제도의 문제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정치에 좀 관심을 가져야 되는 것이기도 해요.
우리가 취준생일 때, 또는 비정규직으로 일할 때의 심정과, 막상 취업을 하거나 정규직이 되었을 때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것도 자본의 논리거든요. 이런 시스템 때문에 이득을 보는 기득권 입장에서는 너무 재미난 거죠. 얼마나 좋아요. 인건비는 절약되고. 그 피해는 누적돼서 최말단에 불행한 사람들이 생기는 거죠. 그렇다면 행정, 법률 같은 제도의 문제만은 아니죠. 이건 관성이거든요. 자본의 관성을 개개인이 이기기는 쉽지 않아요. 근데 다행히도 연대해서 이를 극복하려는 개개인이 나올 것이고, 나아질 것이라고 저는 기대해요. 또 좋은 일터, 안정된 일자리를 주려는 회사들도 많아지고 있어요. 주4일제를 시작하는 IT회사도 생기고 있고요. 희망은 있어요.
작가님의 소설이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기를 바라시나요?
사실 글로 사회에 변화를 주려면 대단해야 하는데 제 글은 아직 그런 힘이 없고요. (웃음) 저는 ‘시선’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항상 우리는 나보다 앞서 가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바라보는 게 익숙하잖아요. 나를 내려다보는 상사에 길들여져 있고요. 경쟁에서 떨어진 사람들의 사정을 돌볼 여유가 없는데, 저는 그런 것들을 생각해보고 싶었어요. 넘어져있는 사람 손을 잡아주는 게 힘들다면, 그냥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응원해주자 라는 생각이에요. 또 한편으로는 그런 사람들을 보호할 장치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구디 얀다르크』 이후로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으신지 여쭤봅니다.
제가 관심 있는 주제는 과학이나 물리학이에요. 그런 얘기들을 쓰고 싶고. SF가 아니더라도. 가족이나 AI같은 것을 인문학적으로 다루고 싶어요. 1인 미디어, 사이코메트리, 마약에 대한 이야기 등 다양하게 떠올라요. 허구적이고 소설적인 것보다는 현실에 맞닿은, 직접 겪거나 잘 알고 있는 글들을 쓰고 싶어요. “여기에 이런 사람 혹은 이런 일이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결국은 작가의 문제가 어디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아무래도 IT 쪽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자꾸 떠오르는데 누르고 있어요. 쓰고 싶은 소재가 많아서 빨리빨리 쓰고 싶어요. AI가 있으면 빨리 쓸 텐데 말이죠. (웃음)
끝으로 수많은 사이안에게, 또 인터뷰를 읽고 계신 독자분들께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먼저 사이안에게 주고 싶었던 건 사랑과 위안이에요. 그리고 “지금으로도 괜찮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어찌 보면 그건 저한테 하는 말이었겠죠. 저도 사이안 같은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희망이라는 것은 기적처럼 누군가 나타나서 구원해주거나 하는 건 아니에요. 그걸 스스로 찾아가는 게 인생의 중요한 숙제라고 생각해요. 독자분들께도 마찬가지로 위안을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사이안과 오영일의 관계에 공감하면서 읽은 분들은 다른 관점으로도 책을 한번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어딘가에 숨겨놓은 이야기들이 보일 수도 있거든요. 많이 읽어주시고 주변에도 많이 추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앞에서 희망을 말씀드렸는데, 제가 걷지 못할 정도로 아파 봤거든요. 지금 걷는 거 자체가 엄청난 기적이에요. 걸으면 무조건 희망이 있는 것 같아요. 걸을 수 있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엄청난 행복인데 우린 그걸 못 느끼고 사는 것 같아요. 책에 숨겨둔 것들도 여기에 힌트가 있어요.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사이안이 희망을 보았듯이 희망을 발견하시면 좋겠습니다.
염기원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오랜 기간 IT 업계에서 일하다가 2014년 봄, 소설을 쓰기 위해 스타트업을 정리했다. 2014년 제1회 융합스토리 단편소설 공모전에서 〈15 MINUTES〉로 최우수상을, 2015년 단편소설 〈지옥에 사는 남자〉로 《문학의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현재 일산에서 소설을 쓰며 강의와 컨설팅을 한다. 2019년 《구디 얀다르크》로 제5회 황산벌청년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