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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온전히 나답게』 한수희 ‘함께 사는 일의 아름다움’


일요일 밤에 이불을 뒤척이며 겨우겨우 잠자리에 들고, 월요일 아침에 커피를 손에 꼭 쥔 채로 출근하는 보통 사람인 우리의 나날들. 이런 사소한 오늘의 이야기가 가지런히 모여 오늘의 우리가 된다. 한수희 작가는 『온전히 나답게』에서 내일을 살아가는 법에 익숙한 우리에게 오늘을 살아가는 태도를 알려준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타인과 함께 사는 일의 아름다움을 빼놓지 않고서. 결국 온전히 나답다는 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를 씩씩하게 살아내면서도 타인과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그런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안녕하세요. 한수희 작가님, 간단하게 작가님 소개 부탁드릴게요.


자기소개가 부끄러워서 제일 싫은데요. (웃음) 한수희입니다.


『온전히 나답게』는 작가님의 어떤 시기의 기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개정판을 내려고 다시 읽어보니까 너무 싫은 거예요. (웃음) 옛날 일기장 들추는 그런 기분 있잖아요. 너무 사적인 얘기를 감추지도 않고 너무 많이 쓴 거예요. 진짜 싫더라고요. (웃음) 괜히 개정판 한다고 했나, 내가 왜 고친다고 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근데 기존 책을 읽으신 분들이 계시니까 아예 이야기를 다 뺄 수도 없잖아요. 고민이 많았죠.


무리 졸업 사진이 못 나와도 오려버릴 수는 없잖아요. 마찬가지로 과거의 내 모습이라는 걸 받아들였어요. 그때는 4~5년 전이었고, 30대 중반이었고 지금보다 더 불확실한 상황이었어요. 아무것도 정해진 것도 없고, 애들은 너무 어리고요. 발목이 묶여있는 느낌인 데다가 가계도 좋지 않았죠. 이렇게 책을 내고 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봤으니까요. 어라운드에 원고를 쓰기는 했지만, 이런 에세이를 쓴 게 처음이었거든요. 진짜 누가 보든지 말든지 모르겠다, 하고 쓴 것 같아요. 1쇄도 안 팔리고 묻힐 줄 알았어요. 그래서 멋대로 쓴 것 같은데, 지금 그런 부분을 보면 한숨이 나오죠.


어쨌든 나는 한 시기를 넘기 위해 이 이야기들을 써야만 했다. 그때의 나는 내 안에 제멋대로 뒤엉킨 채 쌓여 있던 모호한 것들을 끄집어내어 먼지를 털고 햇볕에 바짝 말린 뒤 가지런히 정리해야만 했다.

(「느슨한 연결의 위안」, 9쪽)


그만큼 진솔했던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지금 보면 참 철없기도 한 것 같고요. 왜 이렇게 유치하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지금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일들이 그때는 너무 심각하고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그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지금 제가 봤을 때는 왜 저러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이런 책을 좋아해 준 분들이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이상하게 되게 좋아해 주셔서 저도 신기했죠.

그때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해결된 문제가 있다고 하셨어요.

일단 제일 큰 건 애들이 컸어요. 이제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5학년인데 손이 덜 가면서 제가 좀 자유로워졌어요. 육아가 인생 최고의 경험이라고 말씀하신 분도 계시지만, 저는 돌아간다고 하면 싫거든요. 애들이 귀엽긴 한데 제가 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웃음) 저는 되게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인데, 그런 제가 누군가를 보살펴야 한다는 게 괴로웠던 것 같아요. 그 시기가 지나고 여유가 생겼고요.

그리고 그때는 대학을 나와서 번듯한 회사에 입사하고, 열심히 월급 받는 삶이 표준적이라는 강박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래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었던 거죠. 거기서 떨어져 나오면 죽는 줄 알았거든요. 근데 이제는 거기서 떨어져 나와도 안 죽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 회사를 나오고도 먹고 사는 다른 방법이 있고, 다양한 삶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오히려 회사 다니는 삶보다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예전보다 조금 넓어졌어요. 나이가 들어서 철이 든 게 아니라 다양한 경험으로 넓어진 거죠.



『온전히 나답게』 개정판이 출간됐어요. 조금 추가된 이야기가 있다고요. 어떤 이야기가 추가로 담긴 건지 궁금해요.


저에게는 4~5년 전 이야기라서 그 이후로 있었던 일에 관한 내용인데요. 카페를 그만두고 어떻게 되었는지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살고 있나 그런 이야기가 쭉 이어져요.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살고 계신가요?


지금은, 말하면 안 되는데요. 남편이 혼자 사업하다가 혼자 할 수 없는 상황이라 같이하고 있어요. 그래도 꾸준히 3년을 엎치락뒤치락하니까 결과가 괜찮게 나와서 그걸 통해서 이런 세상이 있는지 배운 것 같아요.


『온전히 나답게』에 이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도 작가님의 소소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는데요. 소한 이야기를 말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질문을 보고 생각해봤거든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당황스러운 게 제가 소소한 이야기를 쓰려고 쓰는 게 아니에요. 다양하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일단 제가 이런 이야기를 되게 좋아해요. 제가 처음에 『온전히 나답게』를 쓸 때만 해도 이런 내용을 다룬 책이 별로 없었어요. 너무 사적인 이야기를 쓰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있었고, 책을 쓴다고 하면 자기를 미화하는 느낌이 있어서 재미없었거든요. 근데 이건 저의 착각일 뿐, 박완서 작가님은 이미 오래전에 그렇게 에세이를 쓰고 계셨더라고요. 단지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고요.


에세이는 뭔가를 주장하려고 쓰는 건 아니잖아요. 에세이라는 장르는 가능한 자기의 어떤 사적인 부분을 되게 용기 있게 드러낼 때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주장하는 글을 쓰는 건 어색하고, 되게 자기를 꾸미게 되잖아요. 있는 그대로 쓰는 게 글쓰기에서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어.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신념이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기보다는 하루하루의 작은 생활들이 모여서 그게 하나의 덩어리가 되는 거잖아요. 그걸 의도하고 쓴 건 아닌데, 제가 그렇게 쓰는 게 재밌어서 그렇게 쓴 것 같아요.


계속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쓰고 있어서 그래도 이건 책이니까 그냥 내 한풀이가 되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뭔가 그 안에서도 읽는 사람들이 재미를 느낄만한 부분을 위해 나름대로 시도를 많이 했어요. 한번 훑어보고 버리는 책이 아니라 여러 번 곱씹어서 읽었을 때 다른 느낌이 나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일기장처럼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처럼, 독자에게 작가님의 사소한 이야기가 전달될 때 우려되는 점도 있을까요?


사소한 이야기가 자기 혼자 방에서 즐거워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없고 나만 행복하면 그만, 이런 의미로 잘못 받아들여질까 걱정되더라고요. 건 아니잖아. 우리가 사는 삶은 사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요.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으면, 우리 삶도 위협을 받잖아요. 나만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느낌은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얘기를 할 만큼 제 나이가 어리지도 않고요. 제가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지만 30대 후반 이상이라면 나이로도 어른인데, 어른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물론 잔소리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아. 그래도 그렇게 무책임하게 비칠까 봐 조금 걱정됐던 것 같아요.



사소한 이야기를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요?


사소한 이야기를 그대로 즐기셔도 좋지만, 그게 너무 ‘나’라는 개인의 문제로만 넘어가지 않았으면 해요. 조금 더 폭넓게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겠어요. 사람 관계에 관한 책이나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사실 제일 무서운 건 나 자신이 아닐까요? 세상에 무슨 저런 인간이 존재하냐고 욕하지만, 누군가는 저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인간은 누구나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고, 큰 기대를 품으면 안 되는 존재이긴 하죠. 근데 이렇게 이상한 우리끼리 지구에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저는 그런 태도를 좋아해요. 남에게 큰 기대도 없고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지만, 그런데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끼리 큰 싸움 없이 이렇게 참아가면서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사는 일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부분을 담고 싶어요.


사는 일의 아름다움을 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하셨어요. 자세하게 듣고 싶은데요.


저라는 개인에게서만 나오는 이야기는 사실 소재 고갈이 있어요. 할 이야기는 있지만, 그게 그렇게까지 큰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서 요즘 제가 쓴 책에는 제가 본 사람들이나 제 주변 사람 이야기가 많아요. 제 나름대로 이 세상을 파악하는 방식인 것 같아요. 아주 먼 곳의 이야기까지 하는 건 저한테 안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내 주변 사람을 통해서 내가 아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아무리 자기가 이렇게 살아야겠다고 해도 타인과의 관계라는 게 되게 중요하잖아요. 타인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지가 굉장히 중요한데, 설교조로 쓰고 싶지는 않아요. 그럼 재미없고 따분하잖아요. 저도 읽기 싫을 것 같아요. 저도 인간관계 잘 못 하거든요. 그래도 인간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저도 많이 고민해요. 그런 이야기를 제가 만난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집어넣는 것 같아요.


책 내용 중에 <주머니와 소지품>에 관한 이야기 앞에 한참 머물러있었어요. 지금 작가님의 주머니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요?


지금 제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없는데요. (웃음) 제일 좋은 건 20대가 아니라는 거요. 늙어서 행복하다는 느낌이 아니라 다시 돌아가면 진짜 죽고 싶을 것 같아요. (웃음)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계속 달리고 있는 기분 있잖아요. 앞날은 너무나 깜깜하고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고요.하고 있어도 마찬가지예요. 대부분 처음 만나는 상황이 너무 많으니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잖아요. 관계를 맺는 것도 어렵더라고요. 직업도 내가 이 일을 하는 게 맞는지도 고민 많이 했어요. 어딜 가든 경력이 없으니까 자꾸 저를 설명해야 하고요. 나를 어필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 너무 싫었어요.



30대가 되고서는 조금 편해지셨나요?


남들보다 결혼도 빨리 아이도 빨리 낳은 편인데요. 그러면서 정신적 안정감을 많이 얻었어요. 세상에 무서운 게 별로 없더라고요. 밖에서 남들이 저를 욕해도 상관없어요. 집에 가면 나만 보면 환장하는 애들이 둘이나 있잖아요. 엄마를 목놓아 부르는 이런 미칠듯한 사랑이요. (웃음) 일에서어필할 필요가 없어져요. 내가 한 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잖아요. 20대 때는 보여줄 게 없으니까 ‘그냥 나 좀 한번 믿어봐요, 나 잘할 수 있거든요?’ 이렇게 말해야 하는데, 게 싫었어요. 젊었을 때 날렸다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에요. (웃음) 제 생각에는 70~80%는 나이 든 자신의 모습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병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정신적으로는 나이 든 게 훨씬 좋아요. 20대에는 자존감이 너무 없어서 힘들었는데, 그때는 자존감이 없는 게 정상이더라고요. 지금은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자존감이 높아졌다고 생각해요.


또 다른 하나는 경험이 많이 쌓여서 좋은 점인데요. 어떤 일이 생기면 1부터 10까지라고 하면, 10 정도로 충격받고 놀라서 죽을 것 같았다면, 그런 경험을 3~4번 해보니까 5 정도 놀라고 바로 가라앉게 됐어요. 일주일 정도 지나면 지난번에도 그랬으니까 좀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또 괜찮아지고요. 그런 경험이 쌓이는 건 좋은 것 같아요. 이제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옛날처럼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 같아요.


서른다섯 즈음 되었을 때, 나는 내가 가진 것을 생각했다. 주머니 속에 든 소지품을 하나하나 꺼내어 늘어놓는 기분으로. 주머니였다. 가방이 필요할 일도 없었다. 내가 가진 것들은 주머니 하나면 충분할 정도로 수량 면이나 부피 면에서 보잘것없었으니까. 나는 바닥에 늘어놓은 내가 가진 것들 것 하나씩 살펴본다. 그중에서 내가 이 험난한 숲길을 헤쳐나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것이 있을까 하고. (100쪽)



주머니 속 물건 중에서 관계나 사회가 될 수도 있는 숲길을 헤쳐나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도 있을까요?


호기심이 있었는데요.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손해가 될 것 같아서 안하고 싶다는 느낌보다 어떤 일이든 나한테 손해는 안 될 거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망할 수도 있지만, 망하는 과정에서 내가 무언가를 배울 거라는 생각이 있었죠. 경험으로 자신을 발견하게 되잖아요. 내가 이런 사람이었고, 나한테 이런 능력이 있구나를 알게 되죠. 이런 부분은 못 한다고 생각했는데, 잘하는 부분도 있다는 걸 걸 배워가게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경험하는 걸 즐길 수 있었고요. 물론 다 즐기지만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겁도 많고 예측 안 되는 것들을 싫어하고 부정적인데도요.


사람은 다층적이잖아요. 한가지의 모습있지 않아요. 옛날에 항상 엄마가 저한테 너는 낯가림도 심하고 부정적이라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런 모습의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지, 그 안에 호기심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숨어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했던 거죠. 나이가 들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내가 발견했던 모습이 점점 더 커지고, 그 전의 모습을 덮게 되면서 나를 받아들이게 됐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싫어하는 건 적극적으로 안 하려고 노력했고, 좋아하는 건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어요. 운도 좋았던 것 같고요.


좋아하는 건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셨다고요.


글 쓰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근데 작가가 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책을 내는 것에 부담감이 없었죠. 제가 잡지 기자를 오래 했는데, 잡지 기자 출신들은 뭘 많이 내잖아요. 그래서 저도 하나 내자는 생각에 겁도 없었고, 큰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계속 책을 내면서 살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 못 해봤어요. 근데 글만 써서 먹고살 수도 없고, 또 그 일만 하고 싶지는 않아요. 자아와 친밀해지는 시간을 피하고 싶은 것도 있고, 제가 안 살아본 삶을 살고 싶은 욕구도 있거든요.


모든 사람이 가슴속에 가난을 품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가난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에서 ‘우리 동네 가난한 할머니’ 이런 식으로 썼는데요. 교정 보는 분이 ‘가난’이라는 말이 굉장히 부정적이고, 사회적 약자를 지칭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거든요. 생각지도 못했어요. 시대적 차이인 것 같기도 해요. 우리가 어렸을 때는 가난하다는 말이 욕이 아니었어요. 물론 제가 주변 원조를 받아야 할 정도로 가난했다면, 상처일 수도 있어요. 그건 저의 오만이었겠죠. 근데 저는 동화에 나오는 ‘청빈’ 느낌의 가난을 이야기한 거였어요. 그때 제가 가난하다고 여기면 충분히 가난한 정도의 상태였어요. 근데 저는 그런 게 별로 부끄럽지 않았거든요.


사람들이 너무 가난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해서 오히려 더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가난하지만 멋진 사람’, ‘가난하지만 굴하지 않는 사람’, ‘가난해도 자유로운 사람’ 이렇게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을 텐데, 오히려 한정적으로 생각하는 거죠. 가난을 넓은 의미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서울에서 떵떵거리며 살지만, 어렸을 때는 단칸방에서 복닥거리면서 밥 비벼 먹었지, 라는 따듯한 느낌의 가난처럼요. 가난하게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알았으면 좋겠어요. 가난을 모르면 가난한 사람을 전혀 생각하지 않잖아요. 평생 모은 전 재산 5억을 누구에게 기부한 김밥 할머니 이런 기사도 나오잖아요. 그 할머니는 자기가 가난한 게 뭔지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가난에 공감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가난 외에도 꼭 품었으면 하는 게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없어요. 저나 잘살아야죠. (웃음) 사람들이 이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건 다 저에게 하는 말이에요. 제가 모든 걸 급하게 생각하는 편이라서 지금 당장 이걸 이루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조금 더 천천히 차분차분 길게 보고 가고 싶어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모든 책을 살 만큼 팬이시라고요. 가장 좋아하는 책도 궁금해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제일 좋아해요. 제가 이 책을 읽고 이 사람을 되게 좋아하게 됐어요. 또 좋아하는 책은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라는 단편소설이 있어요. 최근에 나온 책으로는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이렇게 세 권을 제일 좋아해요.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하루키 작가의 매력이 뭘까요?


20대 때는 스파게티를 삶는 남자가 멋있었어요. 그때 소설책을 읽었을 때 일상적인 묘사가 좋았어요. 착 달라붙는 느낌의 책이었죠. 동경하게 되고요. 이 작가의 책은 ‘나 멋있지’ 이런 느낌이 없어서 좋았어요. 제일 재밌었던 건 이 사람은 계속 인간의 마음 깊은 어둠이나 악을 평생에 걸쳐 탐구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와서 다시 읽어 보면, 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요.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가볍게 나를 생각하면서 읽을 수도 있는데요. 옛날에 이렇게 왕따를 당해서 절교했던 경험이 있잖아요. 왜 인간과 인간은 서로를 모르는 걸까,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죠. 근데 깊게 생각해보면 완벽한 관계와 사회 공동체를 추구하는 인간의 이상적인 생각이 결국 어떤 식으로 변질되는지 계속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하루키가 70대가 다 되었는데, 죽음을 미리 준비는 것 같아요. 하루키의 아버지가 일제 시대 전쟁 때 중국에서 포로를 참수하는 부대에 있었대요.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내 아버지는 그런 짓을 할 수 있었을까’, 이게 그 사람이 끝까지 이런 이야기를 하는 모티브가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그런 세계를 같이 지켜보면서 늙는 게 정말 좋아요.


한수희 작가님의 계획이 궁금해요.


당분간은 책을 안 쓰려고 노력해요.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무리하지 않기 위해서요. 그런데도 책이 나올 것 같긴 한데요. 어라운드의 원고를 7년 동안 쓰고 있는데, 원고가 너무 많이 나왔어요.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가 초창기 원고를 모은 건데, 그 이후로는 쌓여 있어서 남은 원고를 책으로 만드는 작업을 할 것 같아요. 다른 곳과도 계약하고 왔는데 여러 필자와 함께 옴니버스 형태로 작업할 것 같아요. 안 써야지 했는데 재밌더라고요. 제안을 주실 때 본인이 좋아서 하는 건 이메일인데도 기운이 느껴져요. 그런 거에 혹하거든요. (웃음)




한수희

‘에런라이크는 똑똑하고 도발적이고 재미있으며 무엇보다 온전한 정신을 가졌다.’ 방송인 다이앤 소여Diane Sawyer가 작가 바버라 에런라이크Barbara Ehrenreich에 대해 한 말을 좋아한다. 똑똑하고 도발적인 건 아무래도 불가능하니까, 재미있고 온전한 정신이라도 가진 사람으로 나이 들어가기를 바라며 산다. 1978년 12월 진해에서 태어나 바다와 군함과 세일러복과 벚꽃에 둘러싸인 채로 산과 들과 바다를 뛰어다니며 자랐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잡지사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촌스러운 구호를 마음에 새기며, 매일 조금씩이라도 달린다. 매거진 《AROUND》에 3년째 책과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그 글을 묶어 『우울할 때 반짝 리스트』라는 책을 펴냈다.


| Editor - 채지선

chaeulip@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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