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의 꽃』 최수철 ‘존재 자체로 한 송이 꽃’

5년 만에 소설 『독의 꽃』으로 최수철 작가가 돌아왔다. 제목을 봤을 때 어렴풋이 독과 꽃이 상충하는 이야기가 전개될 거로 생각했다. 이 소설의 첫인상이었다.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닫으며 ‘존재 자체로 모두 한 송이 독의 꽃’이라는 작가의 말에 가닿았다. 독성을 품고 태어난 사람, 보이지 않는 독에 자신도 모르게 노출되었던 사람. 독에 중독된 사람. 그는 이 모든 사람에게 애정을 쏟아낸다. 독이 약이 되고, 약이 독이 되는 그 찰나의 순간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쓰러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는 독의 영향으로 부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든 존재에게 조금만 더 관용의 시선을 드리우길 바라는 최수철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다.
안녕하세요. 최수철 작가님, 5년 만에 소설 『독의 꽃』으로 돌아오셨어요.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최수철입니다. 소설의 내용을 설명하기는 조금 어려워요. 큰 맥락에서 보면 제가 소설을 스토리텔링만으로 생각하기보다 묘사나 심리를 통해서 뭔가 본질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으로 써왔어요. 지금까지는 스토리텔링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방식이었죠. 물론 최근에는 많이 바뀌었지만요. 이번 소설이 관심받고 있는 건, 스토리텔링을 내세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스토리텔링을 내세우려면 추리 소설의 성격, 연애소설의 성격을 가져야 하거든요. 그러니까『독의 꽃』은 추리소설이자 연애소설, 심리소설, 말하자면 일종의 총체적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소설의 내용도 주인공들이 연애하는 과정에서 의문의 죽음이 발생하고, 그걸 추적하는 과정에서 심리가 드러나고 독의 꽃과 약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소설 집필 계기도 궁금한데요. 어떻게 ‘독’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두게 되셨나요?
제가 소설을 쓰는 방식이 젊었을 때는 살아온 이야기와 떠올랐던 생각에 관한 걸 썼어요. 근데 제가 글을 적게 쓰는 게 아니니까 언제부터 무엇을 쓸까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죠. 테마보다는 소재 중심으로 생각해서 상징성도 있고 이야기도 끌어올 수 있는 멋지고 리얼한 소재를 찾게 된 거예요. 소재를 잡고 그걸 풀어나가서 여러 테마로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쓰게 됐어요. 이것뿐만 아니라 『침대』라는 소설에도 침대에 관한 인간의 모든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죽음, 출산, 불면증, 꿈 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죠. 그러다가 한 10년 전에 독이라는 게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느꼈는데요. 실제적인 독뿐만 아니라 인간의 악마성도 일종의 독이잖아요. 심리적인 독도 가능하고요. 그래서 10년쯤 전에 독에 관한 소설을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제목을 떠올리는데 제목이 난감했어요. ‘독성 인간’, ‘독과 더불어 사는 남자’, 이런 제목도 떠올렸는데 굉장히 어색하고 설명적이라 어려웠어요.
그러다가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에서 제목의 영감을 받으셨네요.
우연히 보들레르 시집인 『악의 꽃』을 보는 순간, ‘악의 꽃’이라는 것이 악마들의 꽃이라는 게 아니거든요. 우리 마음속의 공포감 하나하나도 인간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고, 그게 남들이 보기에 악하고 추할 수 있지만 그것도 하나의 아름다운 꽃이라는 의미로 이야기한 거거든요. 인간은 독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어요. 우리가 외부에서 들어온 걸 소화하고 살아남으려면 독이 있어야 해요. 독이 그런 걸 중화시켜야 하니까요. 그렇다면 독을 가지고 있는 살아있는 존재는 모두 독을 가지고 있고, 그렇다면 그들도 마치 악의 꽃처럼 하나하나 독의 꽃이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을 한 거죠.
절대 과장이 아니라 ‘독의 꽃’이라는 제목을 떠올리는 순간 소설이 굉장히 빠르게 진행됐어요. 그전에는 독이라는 소재가 칙칙하니까 긍정성을 가지지 못한 소설, 표면적인 부분만 전달하는 표현주의 소설이 될 것 같아서 어려웠거든요. 모두가 독의 꽃이고, 독과 약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들의 그 자체의 아름다움 슬픔, 이런 걸 이야기하면 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악의 꽃』이 도움을 주었고, ‘독의 꽃’이라는 제목이 떠오른 순간 빠르게 진행됐죠.
독과 꽃은 상충하는 이미지라고 생각했어요.
살아 있으려면 독이 없어서는 불가능해요. 만약에 독이 없다면, 세상의 모든 독을 당해낼 수가 없죠. 우리가 매일 마시는 커피도 사실 독이에요. 과하게 말하면, 심장이 약한 사람이 과도하게 마시면 심장마비로 죽을 수도 있죠. 꽃은 긍정성이고 독은 부정성이죠. 이런 걸 모순어법이라고 해요. 독은 꽃일 수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독과 약 사이는 결국, 인간이 그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느냐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때로는 부정성이 찾아왔을 때 끌어안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예를 들어, 우울증에 걸렸다고 했을 때 정상적인 생활에서 ‘우울증’이라는 독이 들어온 거거든요. 들어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겠죠. 우울증을 끌어안기보다 들어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약으로 승화시키겠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예요. 이런 생각을 못 하면 굉장히 어려운 상태가 돼요. 세상을 총체적으로 경험하지 못하고 자기 한계에 빠져버리니까요.
누군가에게 찾아온 어떤 독이라도 그것과 관계를 잘 맺고, 균형을 잘 잡으면 얼마든지 약으로 승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요. 저도 이 소설을 쓰면서 확실히 알게 됐어요. 세상의 독은 없어요. 문제는 그 독을 약으로 승화시키려는 에너지가 있는지에 관한 문제인 거죠. 독이라면 독을 경계하고 잘 다스리려는 신중함이 있느냐의 문제일 뿐인 거예요. 커피 같은 것도 독이지만, 잘 승화시켜서 우리의 일상이 됐잖아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하나하나가 곧 ‘한 송이 독의 꽃’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하셨어요. 자세한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총체적인 소설이기 때문에 인물보다 소재를 떠올리면 인물이 나오는 방식이에요. 그래서 독을 활용해서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 선천적으로 독을 타고나는 사람, 독이라는 기질에 저절로 이끌리는 사람, 살면서 독에 계속 노출되는 사람. 이렇게 유형이 나뉘는 거죠. 독에 관한 소설을 쓰다 보면 독을 긍정적으로 보는 인물과 부정적으로 보는 인물, 긍정에서 부정으로 빠지는 인물이 나오는 거예요. 이런 인물들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만나고 헤어지고 부딪히고, 싸우고 화해하면서 소설이 진행되는 거거든요. 독을 이용해서 남을 해치고 자기 뜻을 이루려는 인물인 광수가 나오는데요. 사실 광수도 어렸을 때부터 실제적인 독은 아니지만 가정의 불우함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독에 노출된 인물이거든요. 눈에 보이지 않는 독에 노출된 사람이 실제 독에 눈이 돌아가는 이야기인 거죠. 그럼 그 사람이 사실 희생자라고 볼 수도 있거든요.
긍정성이 살아나든 부정성이 살아나든 그 또한 다 하나의 꽃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꽃은 화려한 아름다운 꽃도 있겠지만, 광수 같은 칙칙한 보랏빛의 꽃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 또한 꽃이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그렇게 나름대로 독과 약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살아가려고 하는 거예요. 식물도 그렇잖아요. 즙이 나오는 거나 개체 수를 늘리는 것 모두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인 거죠. 지구상의 모든 존재가 생존하기 위해 자기를 지켜야 해요. 생존 경쟁이라는 게 결국 독과 약 사이의 싸움인 거예요.
결국, 이 소설의 주제 의식은 ‘독은 독이면서도 약’이라는 걸까요?
세상의 모든 것이 독이면서 약이니까 문제는 그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냐는 거죠. 그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하다는 게 주제 의식이에요. 사랑도 생각해보면 사실 우리에게 약처럼 작용하지만, 과도해져서 압박하는 때도 있죠. 실연을 당해서 슬픔에 빠지기도 하고요. 그럼 독이 되는 거예요. 무조건 사랑이 아름답다는 게 아니라 심해지면, 순식간에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독이 돼요. 사랑이 처음 시작된 때는 마냥 아름답고 선하지만, 나중에는 모르는 거예요. 따져보면 독과 약 사이에 간격은 거의 없다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 양날의 칼인 거죠. 그러니까 독과 약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그럼 독에 빠져서 삶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존재에게도 더 관용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작가님께서 요즘 관심 있는 소재도 궁금하네요.
요즘 제가 관심 있는 소재는 바퀴에요. 바퀴가 만들어지면서 인간 문명이 생겼잖아요. 불교에서는 팔정도의 상징이기도 하고요. 바퀴는 실생활에 친근한 소재잖아요. 하지만 어떤 때는 바퀴로 마차를 만들어 정복자들의 수단이 되기도 했죠. 독과 마찬가지로 여러 이야기가 가능한 소재예요. 바퀴 이야기도 그럴듯한 소설이 나올 것 같아요.
작가로서 갖고 싶은 수식어도 있을까요?
늘 중요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해요. 저 작가는 아주 재밌게 소설을 쓰거나 정말 유명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중요한 소설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말하고 나니 민망하네요. (웃음)
소설가로서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다면 부탁드릴게요.
소설 세계라는 건 말하자면, 물속에 들어가면 무수한 물고기가 있듯이 다 다른 거예요. 내가 읽는 소설은 어떤 물고기에 속할까를 생각하고 읽으면, 더 잘 이해하게 될 것 같아요. 내가 읽는 소설이 송사리라고 하면 꿀꺽 삼키면 되는 거고, 큰 건 잘라서 먹어야 해요. 근데 의식하지 않고 많은 소설을 똑같은 속도로 읽는 것 같아요. 큰 물고기를 한입에 삼키려니까 소화 불량이 걸리고, 힘들고 가시를 삼키는 거예요. 어려우니까 결국 던져버리게 되고요. 어떤 작가가 세상을 연구해서 뭔가 작품을 만들어냈다고 한다면, 거기에 맞는 속도로 읽어야죠. 천천히 읽으면 어려울 게 없잖아요. 문제는 모든 소설을 똑같은 속도로 읽으려니까 어렵다고 느끼는 거예요.
중요한 소설을 읽어달라는 것보다 소설에 맞추어 다른 속도로 읽는다면, 세상의 모든 문학을 이해할 수 있어요. 많은 독자분이 소설의 다양한 세계를 섭렵해서 전체적으로 인생을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세상에는 찰박찰박한 얕은 물의 문학도 있고, 잠수할 정도의 문학도 있죠. 다 각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내가 읽는 소설이 지금 어디에 속한 건지 생각해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최수철
소설가. 198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맹점>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공중누각》 《화두, 기록, 화석》 《내 정신의 그믐》 《분신들》 《모든 신포도 밑에는 여우가 있다》 《몽타주》 《갓길에서의 짧은 잠》을 지었다. 장편소설로는 《고래 뱃속에서》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랑》(4부작) 《벽화 그리는 남자》 《불멸과 소멸》 《매미》 《페스트》 《침대》 《사랑은 게으름을 경멸한다》가 있다. 윤동주문학상, 이상문학상, 김유정문학상, 김준성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14년 현재 한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번역서로는 《저주받은 시인들》(공역), 《매혹》 《황금 물고기》 《우연》 《불타는 가슴》 《사랑의 대지》《이방인》이 있다.
| Editor - 채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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