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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책갈피의 기분』 김먼지 ‘책을 만드는 마음’



김먼지 편집자는 작가의 원고를 책이라는 그릇에 잘 담아내기 위해 9년의 시간을 보냈다. 9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책갈피의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책 만드는 일에 담긴 피, 땀 눈물에 관한 이야기, 『책갈피의 기분』을 출간했다. 편집자로 일하면서 책갈피의 기분을 느끼지만, 여전히 편집 일을 하는 이유는 그만큼 그녀가 책을 무척 사랑하기 때문이다. 『책갈피의 기분』은 편집자 김먼지의 고된 시간의 기록이자 치유의 결과물이었다. 김먼지 작가는 처음 자신의 책을 만들며 느낀 황홀감을 원동력 삼아,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오늘도 먼저 남의 글을 매만진다.




김먼지 작가. 사진제공=김먼지


안녕하세요. 김먼지 작가님, 간단하게 작가님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책갈피의 기분』을 쓴 김먼지입니다. 책에선 8년 차 출판편집자로 소개되어 있으나, 시간이 흘러 지금은 9년 차가 되었어요. 작은 출판사에서 어린이 책부터 자기계발서, 실용서까지 다양한 장르의 책을 기획하고 편집해서 세상에 내보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김먼지’라는 필명을 고양이 이름에서 가져왔다고요.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특별한 에피소드나 뜻은 없어요. 제가 키우는 고양이는 러시안블루라는 종인데, 털이 예쁜 회색빛이에요. 지금은 윤기 나고 고급스러운 털인데, 뽀시래기 시절엔 털이 아무렇게나 삐죽삐죽 나서 먼지 뭉탱이 같았어요. 그리고 자꾸만 먼지가 많은 가구 틈이나 구석으로 들어가더라고요. 먼지처럼 생긴 녀석이 자꾸만 먼지 구덩이로 들어가네, 라고 하다가 자연스럽게 먼지가 됐어요. 사실, 러시안블루 중에는 ‘먼지’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들이 꽤 있어요. 황구 이름이 대부분 ‘누렁이’이고, 검정 푸들 이름 중엔 ‘까미’가 많은 것처럼요.


고양이 먼지와 책사진. 사진제공=김먼지


편집자로 일한 지 9년이 되셨어요. 9년의 시간을 되돌아볼 때 어떤 게 떠오르시는지 궁금해요.

질문과는 방향이 좀 다른 대답일 수 있는데요. 1년 차엔 이랬고, 3년 차엔 이랬고, 연차가 쌓일 때마다 저절로 레벨업이 되는 구조는 아닌 것 같아요. 그보다는 어떤 가치를 가진 회사에서 일했는지, 어떤 책을 누구와 함께 만들었는지가 더 큰 영향을 줬어요. 저는 이직도 자주 한 편인데요, 어떤 회사에서는 비겁한 꼼수를 배웠고 또 다른 회사에서는 공장처럼 책을 찍어내는 법을 배웠죠. 다행히 지금은 비교적 자유롭게 기획을 하고 부끄럽지 않은 책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해주시는 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그 모든 기억이 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이겠지만, 다른 에디터 후배들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책갈피의 기분』은 어떤 책인가요?

『책갈피의 기분』은 부제와 같이 ‘책 만드는 일’에 담긴 피, 땀, 눈물에 관한 이야기예요. 간혹 드라마의 소재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여전히 출판업은 대중에게 생소한 분야고, 그래서 어떤 환상 같은 것이 존재하잖아요. 세상에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듯이,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 어떤 수고와 과정이 담겨 있는지를 주로 하소연과 함께 조금의 위트를 곁들여 풀어냈어요. 출판편집자의 일뿐만 아니라 책을 쓰는 작가의 마음도 함께 담으면서 ‘책을 만든다는 것’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책갈피의 기분’이 어떤 기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해요.

책 때문에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기분이었어요. 과로하면 몸이 망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마음까지 너덜너덜해진 이유는 제가 너무 좋아하고 신념을 가지고 하는 일로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에요. 책이 좋아서 지금까지 버텨왔건만 결국 그놈의 책들이 위아래에서 저를 눌러 숨 쉴 틈조차 주지 않았어요. 책이 뭔데, 이까짓 게 대체 뭔데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속이 상하면서도 결국엔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납작한 책갈피가 되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죠. 저는 책을 만들어야 하는 편집자니까요.

책을 만들며 이 책 저 책 사이에서 치이고, 결국 너덜너덜 납작해져버린 그날, 나는 책갈피의 기분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52쪽)


책을 준비하면서 걱정이 많으셨던 것 같아요. 그중에서 가장 고민스러웠던 부분이 있었나요?


가장 큰 고민은 정체가 드러나면 어쩌지, 하는 것이었어요. 아무래도 출판업계에서 제가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하고 느낀 것을 솔직하게 썼으니까요. 특히 책을 엉망으로 만들어야 했던 에피소드 같은 경우, 제 정체가 드러나면 제가 근무했던 회사도 공개될 테고, 과거에 그 엉망진창 책을 산 독자들이 받을 상처가 염려되었죠. , 무례한 저자나 독자에 관한 에피소드도 실려 있는데 당사자가 직접 보면 어쩌나 걱정이 됐어요. 전부 사실을 기반으로 했지만, 이런 부분 때문에 조금씩 가공한 내용도 있어요.


또 하나의 고민은, ‘나 같은 게 이런 책을 써도 되나?’ 하는 것이었어요. 아무래도 출판편집자의 에세이가 흔치 않다 보니 제가 출간한 책이 하나의 기준이 될까 봐 겁을 많이 먹었습니다. 8년 차라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부족하고 실수투성이거든요. 대형 출판사에 다닌 적도 없고 초대박 난 베스트셀러를 만든 적도 없는 무존재감 북에디터인데, 내로라하는 업계 선배님들이 내 책을 보고 비웃으시면 어쩌나 하고 마음고생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독립출판을 준비하면서 느꼈던 마음을 더 자세하게 듣고 싶어요.


독립출판은 그야말로 ‘자유’였어요. 기존에 제가 회사에서 하던 상업 출판은 제 생계 수단이기도 하지만 명예가 달린 일이기도 하죠. 어떻게든 잘 팔리는 책을 만들어야 하기에 결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그렇다고 실수가 없는 건 아니지만), 철저한 분석이 수반되어야 하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일들이었죠. 반면 독립출판은 뭐든지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었어요. 글도 제 마음대로 쓰고, 교정도 제가 보고 싶은 만큼만 보고, 제목이나 디자인 그리고 출간 일정까지 자유롭게 정할 수 있으니 부담도 없었죠. 잘 팔아야겠다는 생각도 애초에 갖지 않았으니까요.


공중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나만의 생각과 느낌을 정성껏 고른 언어로 만드는 작업. 이것이야말로 나를 정성껏 가꾸고 돌보는 시간.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208쪽)

독립출판물 『책갈피의 기분』. 사진제공=김먼지


타인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다가 내 이야기를 담은 책을 만들었어요. 어떤 변화를 느꼈는지 궁금해요.


저는 항상 글을 쓰는 사람이었어요. 출간제안서, 편집기획안, 보도자료뿐만 아니라 필요에 의하면 책에 들어갈 내용도 조금씩 집필했죠.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한 번도 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어요.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내 이야기를 써서 뭐해? 그걸 어디다가 써?’ 그러다가 마침내 쓸모를 찾은 거예요. “독립출판으로 내 책을 내 볼까?” 하고요. 명분이 생기자 그때부터 손에 모터가 달린 것처럼 제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어요. 8년 동안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글로 풀어내는 시간이 얼마나 황홀했는지 몰라요. 내가 그동안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구나, 그래서 지금의 내가 이렇게 살고 있구나, 나 자신의 마음에 노크하고 귀를 기울이는 소중한 시간이었거든요. 행복감으로 마음이 충만해졌어요. 직장에 다니며 시간을 쪼개서 글을 쓰느라 몸은 고단했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더라고요.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드는 변화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평생 남의 글을 만지던 내가 마침내 내 글을 썼다. 리뷰도, 보도자료도, 기획안도, 제안서도 아닌 나의 이야기. 심지어 그것이 책으로 나오고, 누군가가 읽어준다는 것이 이렇게 황홀한 일인 줄 전에는 미처 몰랐다. 내 이야기를 쓰면서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던 그 순간들은, 그 어느 때보다 큰 만족감과 치유를 선물했다. (231쪽)


편집자에게 어떤 부분이 제일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생각보다 일이 많아요. 갑보다는 ‘을’의 위치일 때가 잦아서 상처받을 일도 많고요. 일에 비해 연봉이 높지도 않죠. 그런데도 편집자로의 삶을 유지하려면, 버티는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힘의 원동력은 조금 뻔하지만, ‘보람’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세상에 마땅히 나와야 하는 목소리를 알아보고 다듬어서 꺼내는 과정이야말로 무엇보다 의미 있는 일이니까요. 내가 만든 책이 사람과 세상에 주는 선한 영향력을 향한 믿음, 이 자부심을 잃으면 버틸 수 없을 것 같아요.

독서인구는 줄었는데도 독립출판으로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비교적 많아진 것 같아요. 이런 현상을 편집자 관점에서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해요.

워라밸 시대잖아요. 이제는 사람들이 ‘나의 삶’을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사실 베스트셀러만 봐도 그 시대의 흐름을 대강 읽을 수 있는데, 10년 전만 해도 재테크를 독하게 하라든지, 자기계발에 목숨을 걸라는 메시지의 책이 잘 팔렸다면, 요즘엔 내 마음을 우선으로 위로하고 치유하는 에세이가 잘 팔리고 있죠. 요즘 독립출판 붐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행에서의 추억, 직장에서 겪었던 일, 우울증을 앓으며 생긴 일 등 지극히 개인적인 마음속 깊은 이야기들을 꺼내놓을 수 있는 아주 좋은 창구가 되어 주거든요. 저 역시 독립출판에 도전한 가장 큰 이유가 ‘자기만족’이었던 것 같아요. 내 글을 쓰고 책으로 만들어 파는 소확행 같은 것. 그런 재미로 삶이 조금은 더 윤택해지니까요.

미래의 편집자 후배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책이 좋아서 시작한 일인 만큼 책으로 인한 상처도 많이 받게 돼요. 잘 팔리는 책을 만들어야 하다 보니 대체 어떤 가치를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맞는지 회의감도 많이 들죠. 그래도, 가능하면, 부디, 단단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 단단한 마음으로 버티면 언젠가 정말 기쁘고 깊은 책을 만들어낼 기회를 잡을 수 있으니까요.

요즘은 편집자의 책과 콘텐츠를 많이 찾아볼 수 있잖아요. 특히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편집자도 있을까요?


훌륭한 선배님이 많이 계시지만 『책갈피의 기분』이 출간된 제철소 출판사의 대표님이자 편집자이신 김태형 소장님을 꼽고 싶어요. 작가인 저보다도 제가 쓴 원고를 깊이 있게 고민해주시고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해주셔서 원고를 새로 쓰거나 정리하는 과정이 정말 수월했어요. 진심이 담긴 에디팅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감동을 느낄 수 있었고요. 그래서 처음 소장님이 말씀하신 출간 일정보다 계속 시간이 늦어졌는데도 전혀 불안해하거나 재촉하지 않은 채 믿고 기다릴 수 있었어요.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요즘 즐겨 읽거나 관심 가는 책도 있는지 궁금해요.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신 헤엄출판사 『일간 이슬아 수필집『의 이슬아 작가님을 정말 좋아해요. 작년부터 지금까지 매일 메일링 서비스로 한 편의 글을 받고 있는데요, 날마다 꾸준히 글을 완성해내는 성실함이 정말 존경스러워요. 그냥 지나치기 쉬운 세상의 단편적인 조각들을 이슬아 작가님만의 시선으로 끄집어내 하나의 우주로 만들어내는 필력을 정말 닮고 싶어요.



편집자로 8년 정도 일하셨어요. 작가님이 그리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저는 사실 야망 없는 편집자예요. 독립해서 나만의 1인 출판사를 차리겠다는 포부라든지, 억대 연봉을 받는 편집장이 될 욕심은 없습니다. 다만 나이가 들어서도 오래오래 천천히 좋은 책들을 만들고 싶어요. 훗날 육아라든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직장생활을 할 수 없게 되어도 프리랜서로 계속 일하고 싶고, 그러기 위해 오늘을 더 열심히 살고 있어요. “대표님, 저한테 나중에 꼭 일 주셔야 해요! ” 하는 농담 같은 진담도 한 번씩 던지고요.


『책갈피의 기분』 일러스트. 이미지 제공=제철소


독자분에게 전할 말이 있으시다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책갈피의 기분』으로 책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아요. 작가, 편집자, 디자이너, 마케터 등 출판사에서 책 한 권이 만들어지는 데 필요한 많은 사람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을 기억해주세요. 그리고 책을 많이 사주시면 좋겠어요! 출판시장이 활성화될수록 더 많은 좋은 책을 읽을 수 있게 될 거예요.


더불어 나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는 기회도 가져보시면 좋겠어요. 제가 느낀 황홀함을 여러분도 느끼셨으면해요. 가장 고요하고 깊고 충만한 치유를 경험할 수 있을 테니까요. 혹시 저처럼 명분을 못 찾으셨다면, 독립출판으로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 마음이 공허하고 외롭다면 책상 앞에 앉아 자기만의 글을 써보길. 당신은 곧 사랑받게 될 것이다. 최초의 독자인 당신 자신으로부터. (247쪽)

고양이 먼지. 사진제공=김먼지


김먼지

작은 출판사에서 책을 기획하고 편집하는 북에디터. 책을 좋아하지만 그 대가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간신히 버티고 있다. 피와 땀 그리고 눈물까지 쏟아가며 만든 책이 매번 사랑스러운 것은 아니라서 괴롭다. 하지만 이것이 책갈피의 숙명임을 받아들인 뒤로는 위경련이 조금 나아졌다. 쓰고 싶은 글이 아주 많지만, 오늘은 일단 당신의 글부터 매만지기로 한다.


| Editor - 채지선

chaeulip@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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