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임재희 “우리가 마주해야 할 이야기”

하와이 이민 1세대의 삶을 섬세하게 복원해냈다는 평가를 받는 임재희 작가의 『당신의 파라다이스』. 이 소설로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받았다. 이어 펴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에서도 여전히 이방인과 주변인을 이야기한다. 그녀가 이토록 이방인과 주변인에 관심을 쏟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우리는 모두 언제든지 이방인이 될 수 있지만, 그 경험이 부정적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홀로 되었을 때 비로소 실존적인 고민을 할 수 있고, 더 단단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임재희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가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을 때, 더욱 견고해지고 깊어지길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임재희 작가님 소개 부탁드려요.
소설가 임재희입니다. 이름은 필명이에요. 제 등단작인 『당신의 파라다이스』를 조카이름으로 투고했어요. 그 이름으로 기사도 나서 이 이름을 쓰게 됐죠. 문학 번역도 하고, 문예창작학과 학생들과 소설 공부도 같이 하고 있고요. 한국의 보통 중년 여성의 삶과 비슷한데, 조금 다른 게 있다면 20대~40대 중반까지 외국에서 살았다는 점일 거예요. 그래서 관계인과 주변인, 이방인에 관심이 많아요. 그게 제 정체성이니까요. 그래서 소설도 쓰게 된 거예요. 제가 태어난 곳이 3.8선 부근이에요. 이데올로기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3.8선 부근이라 제가 경계인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혼자 해봤어요. 큰 의미는 아니지만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는 어떤 내용의 소설인가요? 독자에게 소개 부탁 드립니다.
이 소설집은 주제를 생각하고 썼어요. 하나의 단편 소설에 담기는 주제를 생각해보자는 생각이 있었고, 꼭 이민자 이야기만 다루고 있는 것도 아니에요. 공간이든 의식이든 정착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꼭 어느 곳에 이민을 가서 생기는 내면의 심리나 정서가 아니라 모든 현대인이 느낄 수 있는 소속감의 결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죠. 안과 밖이 있는 이야기, 그렇다면 안과 밖의 경계는 누가 만들었을까요? 사실 기준이 다르잖아요. 제가 이민자들의 속내를 좀 안다고 생각하고 소설을 지었는데, 깊이 들어가보니까 제 경험으로만 쓸 수 없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있었죠. 이 작품을 쓰면서 그들의 삶을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됐어요. 소설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나와요. 한국을 떠나서 외국으로 간 사람들, 외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사람들, 한국을 한번도 안 떠나본 사람들, 이 세 부류의 사람을 통해서 우리의 주변에 존재하는 이방인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었던 거예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방인의 삶, 이방인의 명칭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죠.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받은 『당신의 파라다이스』에 이어 이주민, 이방인에 대한 주제로 소설을 쓰신 것 같아요. 작가님이 이주민, 이방인, 주변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궁금해요.
어떻게 보면 비슷비슷하면서도 달라요. 이주민은 공간의 이동이 전제돼요. 그래서 이주민의 뜻은 확실하죠. 그런데 이방인이나 주변인은 사실 우리 삶 곳곳에 굉장히 많아요. 이주민들이 이방인이기도 하지만, 이방인이 이주민은 아니거든요. 대부분 보통의 사람들과 이주해온 사람들은 ‘다르다’는 표현을 쓰잖아요? 근데 그들은 우리랑 ‘틀려’라고 말을 해요. ‘다르다’와 ‘틀리다’는 건 굉장한 차이가 있잖아요. 다른 건 어쩔 수 없는 거예요. 근데 그걸 옳고 그름의 문제로, 틀리다고 말하는 건 다른 거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에 나오는 주변인, 이방인과 『당신의 파라다이스』에 나오는 이방인이 좀 달라요. 시대적 배경이 100년 정도 차이가 나거든요. 『당신의 파라다이스』 이주민은 한국에서 정식으로 처음 허락 받고 하와이로 떠난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를 말하는 거예요. 한국을 떠난 20세기 초 이주민의 공통점이 있어요. 가난했고, 희망 없는 조선을 떠나서 잘 먹고 사는 게 거의 큰 목표였죠. 현대에는 현대사회가 굉장히 세분화되었기 때문에 이주민 개개인의 목적이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좀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건 똑같죠.
작가님이 보시기에 지금 시대의 경계인, 주변인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을 주목하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사실 저희가 경계인, 주변인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외국인’이잖아요. 더 심각한 건 외국인 사이에도 주변인이 존재한다는 거예요. 사이트에도 회원가입이 있어요. 이미 자본에 의해 안과 밖이 정해져 있는 거죠. 어떤 사회에서는 속하는데, 또 어떤 사회에서는 속하지 못 하는 이중적인 상황을 많이 맞닥뜨리게 돼요. 요즘은 대부분의 현대인이 경계인, 주변인의 심리를 많이 느끼는 거죠. 경계인과 주변인이 소외된 사람이라고 했을 때 빈부차이, 교육의 차이를 충분히 볼 수 있죠. 경계인은 양쪽의 경계에 선 사람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바라보기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양쪽을 다 볼 수 있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는 거예요. 중심에서 밀려난 사람을 주변인이라고 하는데, 우리 안에서 주변인이 아닌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 어떤 것이 기준이 되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요. 한국에서 경계인이나 주변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외국인 노동자를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게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주변인은 우리 안에도 존재하고 있거든요. 심지어 가족 안과 학교, 직장에도 존재하죠. 우리보다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나 정규직, 비정규직도 그렇고요. 사회가 세분화될수록 사람들을 분류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준이 점점 많아지니까 주변인 경계에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중심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 겉돌게 되는 거죠. 단톡방에 초대받지 못해도 10대 청소년들은 아싸(Outsider)가 된 기분이라고 하더라고요. 단톡방을 만드는 건 은근히 권력인 거거든요. 누구든지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해요. 단톡방에 초대되지 못했을 때, 뒤로 밀려나는 기분이 들지만 아이러니한 건, 그때 자기의 실존적인 질문과 맞닥뜨리게 되는 거죠. ‘내가 저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춰지지?’ 이런 실존적인 물음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변인, 경계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딘가에 속하지 못했다는 거니까요. 그런데 제가 눈 여겨 보는 경계인은 사실은 우리가 자주 만나는 가난한 사람, 불우한 청소년들, 주변인들이라고 생각해요. 경제적이나 육체적, 심리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그들이 이 사회에서 느낄 소외감을 생각하면 우울해요. 삶의 질이 아니라 이제는 죽음의 질까지도 생각해야 하니까요.
이민에 대한 생각도 궁금합니다.
결론은 나쁘지 않아요. 제가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사라지는 단어 중 하나가 ‘향수’래요. 저만 해도 85년도에 이민을 갔으니까 어떤 그리움이나 향수 같은 게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어디에 있든지 sns에 올리면 돼요. 그리움이나 향수를 느낄 틈이 없죠. 이민은 결코 나쁜 경험이 아니고, 떠나봐야 비로소 있던 곳에 가치를 깨닫게 되기도 하거든요. 밖에 나가면 엉뚱한 게 괜히 그립고 생각나잖아요. 삶의 거리를 두고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니까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근데 또 막 권하고 싶지는 않아요. 개인마다 삶이 다르기 때문에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말을 일반화해서 말하기가 예민한 부분이긴 해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와 『당신의 파라다이스』에서 작가님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담은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실제 경험을 살려 쓴 에피소드도 있는지 궁금해요.
어떤 공간을 보면, 공간에 대한 특별한 이미지가 있잖아요. 특별한 이미지가 마음에 남으면 인물을 구상하게 되는 거죠. 모든 인간은 한 번 태어나고 죽지만, 작가는 자기가 만든 인물들 덕분에 여러 번의 삶을 살다가 죽거든요. 그게 매력이긴 해요. 인물의 삶을 형상화하면서 여러 번 산 듯한 느낌이 들 거든요. 이 소설집은 9편의 단편인데, 타인의 이야기를 써도 작가의 몸과 정신을 통과하기 때문에 체화된 나의 이야기라고 볼 수밖에 없어요. 제 삶의 어떤 부분이 닿아있는 이야기를 꼭 쓰게 되죠. 실제 경험을 살려 쓴 에피소드 중 한 작품만 꼽으라면, 「동국」이에요 제 작은엄마의 세계를 많이 담았어요. 물론 픽션인 부분이 많죠. 소설로 담아낸다고 담아냈는데, 다 담아낼 수 있는 픽션은 없어요. 작은엄마의 일부분을 담아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까지 작은엄마에게 보여주지 못했어요. 작은엄마와 정말 가깝거든요. 그런데도 내가 과연 작은엄마의 삶을 한 인간으로 정말 이해했나, 스스로에게 묻게 돼요. 소설이 아니면 이 사람이 살다간 흔적 조차 아무도 기억하지 못 할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형상화하고 싶었어요. 기억하고 싶어서요. 하지만 그녀의 삶을 과연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스스로에게 묻는 거죠. 누군가의 삶을 소설에서 형상화 한다는 게 어떨 때는 주제 넘기도 하고요.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소설가에게 ‘쓰고 싶은’ 이야기와 ‘써야 할’ 이야기가 있다면 『당신의 파라다이스』는 써야 할 이야기라고 하셨어요.
처음부터 소설가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이나 생각은 없었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냐면, 하와이 주립대학을 졸업하려면 소수민족사 관련 수업을 의무적으로 들어야 해요. 제 딴에는 학점 쉽게 받겠다, 라는 생각에 한국 이민사회 과목을 신청했죠. 우리가 흔히 알던 거니까 하고 수업에 갔죠. 수업에서 단체로 탐방 같은 걸 갔는데, 거기에 초기 이민자 무덤이 있었어요. 충격적이었던 게 무덤 묘비명에 ‘Born in korea’라고 써있는 거예요. 그때 저도 모르게 전율이 일어났어요. 묘비명이라는 게 자기 생년, 이름과 자기를 가장 상징하는 걸 쓰는 거잖아요. 한번도 만나본 적도 없고 이름도 낯선 그 묘비명 앞에서 꼼짝없이 죄의식에 붙들려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때 막연하게 역사책에도 나오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쓰고 싶다는 느낌과는 다른 거였어요. 쓰고 싶다는 건 작가의 개인적인 욕망에 가깝다면, 저건 꼭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아무도 이 사람들을 기억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이런 마음이 있었던 거예요.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저 사람의 이야기를 끌어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당차죠. 그때는 어떻게 소설을 쓰는지도 몰랐을 때였거든요. 역사책의 어떤 영웅들은 아니지만, 분명히 우리 옆을 스쳐 지나간 사람들인데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좀 그랬어요. 제 안에 이런 생각들이 오래 남았던 것 같아요. 그런 느낌이 점점 강렬하게 쌓여가면서 대학원에서 논문 쓸 때, 교수님이 작품을 써도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망설이지 않고 글을 썼죠. 정말 거짓말 같지만 초고를 한달 반 만에 썼어요. 그때 막 이야기가 터져 나왔어요. 수없이 퇴고를 거쳤지만요. 아쉬운 건 그때는 정말 소설에 대해 몰랐거든요. 물론 여전히 잘 모르지만요. 그런데도 첫 작품이라 너무 아쉬움이 남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는 여러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특히 폴의 이야기에 주목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소설집은 표제작이 중요하잖아요. 표제작은 처음에 이게 아니었어요. 편집자가 이 단편을 소설 표제작으로 뽑았는데,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화자들의 정체성을 대변하기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표현보다 정확한 게 없거든요. 제목이 소설집에 담긴 모든 화자의 심리를 총체적으로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폴은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이잖아요. 젊은 경계인으로 특정된 이야기를 할 만하다, 싶었어요. 아줌마 아저씨의 넋두리 같은 이야기는 싫어하고 밀리잖아요. 지금 생각하니까 아주 잘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폴의 하루였는데, 너무 밋밋하더라고요. 쓰다보니까 저도 모르게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라는 문장을 쓰고 있었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제목을 바꿨죠.
소설에서 ‘소설이 한 시대를 아무런 흔적 없이 살다간 사람들에 대한 애도의 방식’이라고 하셨어요. 어떤 부분을 애도하는 걸까요?
사실 저는 소설이 애도의 한 방식의 글쓰기인 것 같아요. 인물을 불러오고, 공간과 시간을 불러오고 내 안에서 살다가 보내잖아요. 소설이란 장르 자체가 기막힌 애도의 방식인 거죠. 한번도 만나지 못한 역사적인 사실 외에는 인물을 100% 만드는 거잖아요. 인물을 만들 때 하와이 이민사를 공부하면서 구체적인 인물이 쌓이기는 했지만, 분명 이 시대에 이런 인물을 가지고 이런 일을 했던 사람이 있었을 것 같아서 애도라는 말을 쓴 거죠.
| Editor - 채지선
chaeulip@bn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