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5분의 초록』 한수정 “관찰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아버지의 식물 농장에서 일하면서 똑같아 보이던 잎이 질감과 모양까지 모두 다르게 보이는 경험을 했다. 한수정 작가와 식물과의 첫 교감이었다. 그녀는 그 이후로 꾸준히 식물을 관찰하며 현대인에게 도시 나무 관찰의 중요성을 전하는 책, 『하루 5분의 초록』을 펴냈다. 초록이 사라지는 가을에 출간했다는 게 어딘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런 생각을 지우듯 가을에는 가을 식물의 아름다움이 있고, 겨울에는 겨울눈의 신비로움이 있다고 했다. 특히 추운 겨울을 맞이하기 전인 지금, 우리 주변 나무가 펼치는 마지막 향연을 놓치지 말라고 전했다.
한수정 작가는 인터뷰 내내 봄과 여름 식물의 아름다움은 물론, 가을과 겨울 식물의 아름다움까지 생생하게 그려냈다. ‘가을부터 준비해온 겨울눈이 이른 봄 조금씩 부풀어 오르다가, 봄기운과 함께 밖으로 터져 나오는 모습’은 그녀만이 전해줄 수 있는 관찰의 기록이었다. 한수정 작가가 전해주는 초록 식물의 아름다움은 ‘관찰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었다.
안녕하세요. 한수정 작가님 소개 부탁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춘천에서 미술과 자연을 엮는 작업을 하는 한수정입니다. 식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꽤 오래되었지만, 식물세밀화를 시작하면서 식물을 관찰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어요. 미술을 전공해서 식물을 정식으로 공부한 적은 없지만, 강원도립화목원의 나무를 오랜 기간 관찰하고 그리면서 매 계절의 모습과 흐름을 이해하고 만날 수 있었죠. 화목원의 나뭇잎을 조각하여 만든 63개의 나뭇잎스탬프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나무 100종의 나뭇잎을 한정 제작한 ‘우리나뭇잎스탬프 100’은 국립수목원을 비롯한 지역의 식물원에서 체험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월에는 ‘식물 관찰’의 중요성을 알리고 우리 주변의 나무부터 만나 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하루 5분의 초록』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식물을 비롯한 자연의 생명체를 미술 장르로 좀 더 다양하고 흥미로운 방법으로 표현하기 위해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또한 아이들이나 어른들과 함께 즐기면서 자연을 관찰하고 다가가는 방법을 찾는 중이에요. 환경 이슈에도 관심이 많아서 조금씩 저의 역할을 찾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멈추지 않고 꾸준히 일하는 것이 저의 가장 큰 목표입니다.

사진 제공=어라운드 매거진

사진 제공=한수정
아버지의 식물 농장에서 일하면서 식물에 관심이 생겼다고 들었어요. 식물과의 첫만남에 대해서 듣고 싶어요.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자세하게 말씀해주세요.
처음엔 모두 똑같아 보이는 잎들이 색과 질감, 모양까지 다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저는 그렇게 처음 식물과 교감을 나누었습니다.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특별한 꿈이 없었던 저는 시골 아버지 농장에서 일을 도왔어요.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자랐지만 식물에 관심이 없어서 풀은 그저 초록으로만 보였을 때였죠. 조경용 초화류를 100여종 가까이 키우는 농장이었는데 아버지는 매일 아침 농장을 한 바퀴씩 돌면서 식물을 보라고 하셨어요. 작은 이름 팻말을 붙인 뒤 매일 식물을 바라보니 조금씩 식물들이 보이기 시작했죠. 처음엔 빠르게 지나쳤던 걸음걸이가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했고, 식물 하나하나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어요. 어느 날은 보이지 않던 꽃송이가 올라와 피었고, 어느 날은 새 줄기가 번져 작은 새싹이 돋기도 했어요. 일을 도와주시는 시골할머니들이 제 선생님이었어요. 씨앗을 받고 씨를 뿌리고 발아시켜 키워내는 과정을 모두 가르쳐 주셨거든요. 그 과정이 너무 신비롭고 즐거웠어요. 자연과 함께 하는 농장 생활은 충만함을 느끼게 해줬고, 식물들 하나하나가 보여주는 아름다움과 개별적 존재감은 조금씩 저에게 강렬한 매력으로 다가왔어요. 4년 넘게 일을 하면서 조금씩 꿈을 꾸기 시작했는데, 식물과 미술을 연결한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거였어요.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잘 몰라서 조금씩 이런 저런 일들을 찾게 된 것 같아요.
기린초
사진제공=한수정

곤충스탬프
사진제공=한수정

사진제공=한수정
‘숲에 가는 것’과 ‘나무를 관찰하는 것’은 다른 영역 같다고 하셨어요. 어떻게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숲을 가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거예요. 맑은 공기가 그리워서일 수도 있고, 숲 안에서 즐겁게 놀기 위해서 일수도 있죠. 조용히 산책하거나 숲의 녹음을 즐기기 위해 가기도 하고요. 숲은 나무가 만들어낸 하나의 공간이고, 사람들은 그 공간에서 활동을 즐기는 거예요. 근데 숲에 자주 가면서도 나무를 전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숲은 하나의 공간이지만, 나무는 개별적인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나무는 그 상태를 바라보고 이해할 때 만날 수 있는 하나의 생명체에요. 다가가지 않으면 군중 속의 사람들처럼 스쳐 지나갈 뿐 절대 알 수가 없죠. 나무를 관찰하는 건, 살아있는 하나의 존재를 만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숲에 가는 것보다 나무를 관찰하는 일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니에요. 숲에서의 즐거움은 그 나름의 역할이 있으니까요. 다만, 우리가 자연의 실체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숲을 즐기는 일보다 한 그루의 나무를 관찰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낙상홍
사진제공=한수정
나무를 관찰하면서 일상의 변화를 경험했다고 하셨어요. 관찰이 시간 낭비로 여겨지지만, 잠시라도 나무를 관찰하는 게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먼저 ‘관찰’의 의미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관찰은 시간을 들여 사물이나 현상을 주의하여 자세히 살펴보는 행위예요. 다른 사람의 지식이나 고정되고 해석된 걸 습득하는 게 아닌 스스로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행위를 독자적으로 이해하고 깨달아 가는 과정이죠. ‘관찰’은 시간을 포함하고 있고, 그 과정을 통해 나의 시각을 갖게 됩니다. 자연은 수많은 생명체와 현상을 가지고 있어서 ‘관찰’을 가장 유용하게 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세상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면서 ‘관찰’이란 점차 우리에게서 먼 행위가 되어가고 있어요. 나만의 시각을 갖기도 전에 넘쳐나는 지식이 나의 시각을 덮쳐 버리기도 하고요. 저는 관찰이 우리 주변의 대상을 돌아보고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자, 독자적인 관점을 갖도록 도와준다고 생각해요. 그런 관점을 잃어갈수록 관습적인 사고에 젖어 사물을 표피적으로 대하게 되죠. 우리는 자연을 이미지로 즐기지만 그 실체를 느끼기는 어려운 현대사회에 살고 있어요. 돌아보면 우리 주변에 함께 살고 있는 나무가 정말 많은데도 우리는 자연의 허상만 쫓곤 해요. 우리가 가진 관찰의 능력을 꾸준히 일깨운다면, 조금씩 자연의 실체와 가까워 질 수 있답니다. 그리고 능동적 관점으로 자연과 마주하게 될 거예요. 내 주변의 생명체에 관심을 갖고 나의 오감을 통해 만나는 시간은 작지만 우리 삶에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이 책에서는 도시 나무에 대해서만 담았어요. 현대인이 하루에 5분이라도 도시 나무를 살펴봤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건가요?
도시 나무는 사실 사람들과 가장 가까운 나무에요. 늘 함께 생활할 뿐 아니라, 많은 혜택을 주는 고마운 존재이지요. 관찰의 대상으로 도시 나무를 선택한 것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이유도 있지만, 내 곁에 살아가는 나무를 다시 한번 둘러보고 관심 두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어요. 5분이 아닌 10초만 바라봐도 우리는 느낄 수 있거든요.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있다는 걸요. 도시의 속도가 빠른 만큼 주변을 돌아볼 새가 없는 도시 사람들에게 작은 여유와 함께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에 대한 환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작가님의 그림 색감이 진하지 않아서 따뜻하게 느껴져요. 식물을 바라보는 작가님의 관점이 투영된 걸까요?
나무를 관찰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게 있어요. 그건 매 순간이 의미있고 매 순간이 아름답다는 것이었어요. 저도 나무를 관찰하기 전엔 꽃이 피거나 단풍이 들 때만 바라봤었어요. 그런데 거의 매일 나무들을 관찰하기 시작하니 꽃과 단풍은 나무에 있어 한순간일 뿐 무수한 삶의 과정이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했습니다. 이른 봄의 새싹이나 겨울눈, 갓 태어난 초여름의 열매와 한겨울에 매달린 마른 열매, 열매가 익어가는 사이의 색들은 아름다움뿐 아니라 생명의 신비도 담고 있어요. 그래서 전 나무의 모든 모습을 좋아해요. 모든 잎이 떨어진 겨울의 모습까지도요. 그래서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는 나무의 숨은 모습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런 저의 애정이 그림에 투영된 것 같아요.

개암나무
사진제공=한수정
‘우리가 자연을 풍경으로 바라보는 데 익숙하다’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왔어요.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는 게 좋을까요?
우리는 자연을 풍경으로 바라보는 데 익숙해요. 차를 타고 달리며 먼 산을 보거나, 천천히 걸으면서도 나무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주로 보지요. 매일 만나는 나무들도 큰 이미지만 스치듯 보는 경우가 많아, 꽃과 열매 혹은 잎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를 놓치기 쉬워요.
자연을 그저 풍경으로만 바라보는 건, 마치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 한사람이 아닌 군중으로 만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일 대 다수로 만남을 갖는 거죠. 그럼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개별성이나 특이성을 찾아낼 수 없고 특별히 눈에 띄는 것들 위주로 눈길이 가요. 한 사람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라던가 그 사람만이 갖는 특별함은 느낄 수가 없죠. 그건 진정한 만남이라고 말할 수 없지요. 자연도 마찬가지 같아요. 풍경으로서 자연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절대 그 안의 개별적 존재들이 갖는 특이성을 알 수 없어요. 그것은 만남이 아니라, 말 그대로 그냥 보는 것에 그칠 뿐이에요. 표피적으로 보는 관점은 아무리 자주 보아도 깊이를 가질 수 없고 만남을 통한 충만함을 느끼기 어려워요. 작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작은 곤충 한 마리에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고 이해하는 과정은 우리가 거대한 자연을 알아가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렇게 알아가는 과정이 내가 속해 있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자연이라는 큰 공동체 속에서의 나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답니다.
메타세쿼이아
사진제공=한수정
작가님이 꼽는 자연의 가장 아름답고 세밀한 변화도 궁금합니다.
사실 어느 부분, 어느 순간을 꼽기가 어려워요. 생명체는 늘 변화하고 매 순간 의미가 있기 때문이죠. 다만 전 개인적으로 이른 봄 나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가장 좋아해요. 따뜻해지는 기온과 함께 나무에 물이 오르면 나뭇가지의 색도 조금씩 변하고 나뭇가지 끝의 순들이 조금씩 부풀어 올라요. 그때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해요. 메말랐던 가지 끝에 윤기가 돌고 조금씩 겨울눈이 부풀어 오르다 탁, 하고 꽃과 잎들이 터져 나오지요. 그 과정을 목격하면 봄이라는 계절이 정말 기적같이 느껴져요.
봄의 칠엽수 모습
사진제공=한수정
출간 일정에 대해서도 궁금했어요. 초록이 사라져가는 10월에 출간했어요.
사실 의도된 것은 아니에요. 책의 내용을 정하고 그림을 그리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고, 마음에 안 드는 글과 그림을 몇 번에 걸쳐 수정하느라 좀 늦어졌어요. 하지만 출간이 꼭 봄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없기도 했어요. 물론 봄이었다면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나무를 바라보는 데 계절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느낀 것이지만 출간이 가을인 덕분에 우리 주변의 나무가 떨어뜨리는 열매를 독자들이 더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겨울에도 관심을 두고 나무를 만나 보셨으면 해요.
책에 관한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책에서 식물과 친해지는 법을 알려준다고 하셨어요.
우리는 흔히 나무를 보면 도감을 통해 그 나무를 알고자 해요. 일종의 프로필처럼 나무의 이름과 특성, 역할 등을 한눈에 쉽게 알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과연 지식으로 아는 것이 나무를 아는 걸까요? 저는 나무를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관찰’을 꼽아요. 다른 사람의 눈과 지식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내 눈과 내 오감을 이용해서 만나는 거죠. 관찰은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 촉각, 후각 등을 이용한 거예요. 내가 만나는 대상을 살피는데 나의 모든 감각을 활용하고, 그 과정으로 얻은 경험은 비로소 한 그루의 나무와 만났다는 느낌을 줘요. 오감을 통한 자연과의 만남이야 말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겨울엔 초록 식물이 없잖아요. 겨울에 식물과 친해지는 방법도 있을까요?
겨울날의 만남은 더욱 특별해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몸뚱이인 나무는 오직 겨울에만 만날 수 있으니까요.

사진제공=한수정
풀과 나무에서 초록을 보길 원하는 마음은 사람의 관점이에요. 나에게 좋은 것을 보여주고 기쁨을 주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죠. 그것이 사라지고 나면 가치가 없어져 애써 보려고 하지 않아요. 아마 그것이 대부분의 사람이 겨울나무에 관심이 없는 이유일 거예요. 하지만 나무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겨울은 길고 긴 추위를 버텨냄과 동시에 다시 다가올 봄을 준비하는 기간이에요. 나무로서는 무척 힘들고도 중요한 시기이지요. 그런 나무의 상황을 이해하면 좀 다른 시각으로 나무를 바라보게 돼요. 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몸통과 가지만으로 겨울을 견뎌내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지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빈 몸뚱이의 모습도 나무 생의 일면이어서 그걸 바라보면서 얻는 정서가 있어요. 무성한 잎 사이에서는 보이지 않던 나뭇가지의 구조나 몸통의 거친 질감들, 나뭇가지 끝에 아직 매달려 있는 지난가을의 열매와 채 떨어지지 못한 잎사귀들, 나뭇가지 마디마다 준비 중인 겨울눈 등 가까이 다가가면 만날 수 있는 겨울나무의 모습이 분명 있답니다. 나무가 가진 생의 매 순간에 애정을 갖고 바라보면, 우린 생각보다 많은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어요.
요즘은 카페에서도 식물을 많이 볼 수 있어요. 현대인이 식물에 대해서 가져야 할 중요한 태도로 꼽는 게 있을까요?
도시에 사는 식물들은 사람들에 의해 선택되어 심어진 것들이에요. 그래서 대부분 녹음이 좋거나 공해에 잘 견디거나 꽃을 오래 피우는 등의 장점이 있죠. 만약 이런 장점이 사라지거나 식물의 어떤 부분이 사람들에게 불편을 초래하면 바로 베어지거나 다른 식물로 대체되곤 해요. 아무래도 도시가 사람이 우선인 공간이라 식물이 초래하는 작은 불편도 용납되지 않는 것 같아요. 얼마 전 비 온 뒤 잎이 떨어지고 나서 시민불편신고가 많이 접수되었다는 뉴스를 보았어요. 낙엽 때문에 길이 미끄럽고 지저분해서 보기 싫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고요. 사실 그 나뭇잎들이 봄, 여름, 가을 동안 우리에게 준 혜택이 무척 큰데도 잠깐의 불편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아요. 나무를 생명으로 여기고 그 활동을 조금만 이해한다면 나무가 주는 작은 불편함도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나무는 인공물이 아니니까요. 도시를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로 좀 더 따뜻한 시선과 애정을 주셨으면 해요.
가장 좋아하시는 식물도 궁금해요.
아직 못 만나 본 식물이 너무 많아서 어떤 식물을 특별히 좋아한다는 생각을 해보진 않았어요. 그보다는 새로운 식물을 만날 때 생기는 호기심이 저에겐 더 큰 것 같아요. 굳이 꼽아 본다면, 전 어떤 수종을 특별히 좋아한다기보다는 어떤 장소에 있는 그 나무를 좋아해요. 같은 수종의 나무도 장소마다 여건에 따라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요. 전 강원도립화목원의 보리수나무를 무척 좋아해요. 그 나무를 만나면 가슴 전체가 꽉 차오르는 기분이 들어요. 우리가 흔히 들어본 불교의 보리수나무, 혹은 노래 제목으로 알려진 보리수나무와는 다른 나무로, 우리나라 자생종이에요. 가지 끝에 무성히 달리는 노란빛의 꽃은 가까이 다가가야 찾아볼 수 있어요. 멀리서 보면 잎들과 섞여 오묘한 색을 보이고 형체도 알아보기 어렵죠. 어른 손톱 반만 한 열매는 노랑, 주홍의 빛을 보이다가 붉게 익어요. 신기하게도 보리수나무의 잎과 꽃, 열매엔 작은 흰점들이 촘촘히 박혀 있어요. 그 점들이 빚어내는 신비로운 아름다움은 언제 봐도 마음을 설레게 해요.
보리수나무
사진제공=한수정
칠엽수
사진제공=한수정
늦가을인 이 계절에 보면 더욱더 좋은 식물이나 도시 나무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이맘때면 주위의 모든 나무가 단풍이 들어 저마다의 가을 색을 보여주는 시기에요. 나무들은 단풍이 드는 색과 느낌이 모두 달라요. 노란빛이 돌다가 갈색으로 변하는 느티나무잎과 노란 듯 주홍색과 붉은빛을 머금는 벚나무의 단풍은 서로 다르답니다. 초록빛을 머금다가 잎의 안쪽부터 노랗게 물드는 은행나무와 황금색 빛이 나는 백목련의 단풍은 분명 차이가 있어요. 나무마다 단풍이 들어가는 특징을 살펴보는 것은 늦가을의 가장 큰 즐거움이지요. 그 외에도 잎이 모두 떨어진 뒤 나무에 매달린 열매를 찾아보세요. 산수유의 붉은 열매와 어쩌면 이미 땅에 떨어져 버렸을 칠엽수의 동그란 밤톨들, 쥐똥나무의 쥐똥처럼 검은 열매와 주목의 터질 듯한 빨간 열매 등 너무나 다채로운 모습의 열매들을 주변에서 만날 수 있어요. 추운 겨울을 맞이하기 전 우리 주변의 나무가 펼치는 마지막 향연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되겠지요.
쥐똥나무
사진제공=한수정
사진제공=한수정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어느새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어요. 잎을 모두 떨군 나무들을 보면 왠지 우리 마음까지 스산해지는 것 같아요. 겨울나무들이 잎을 모두 떨구고 추위를 보내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지마다 겨울눈을 만들어 내년에 틔울 잎과 꽃을 준비하고 있답니다. 우리가 이른 봄에 만나는 꽃과 잎은 그냥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길고 긴 준비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전 겨울이면 나무의 겨울눈을 찾아 신기한 듯 바라보게 되고 도대체 그 속에 뭐가 들어있는 건지 무척 궁금해져요. 가을부터 준비해온 겨울눈이 이른 봄 조금씩 부풀어 오르다가 봄기운과 함께 세상 밖으로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모습을 목격하면 봄이라는 계절의 충만함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게 된답니다. 주변 나무의 가지 끝에서 겨울눈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함께 기다리며 봄을 맞이해 보세요. 우리에게 봄이란 어떤 의미인지 조용히 가슴으로 와 닿을 거예요. 삶의 기쁨이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산수유의 겨울눈
사진제공=한수정

사진제공=어라운드매거진
한수정…
아버지의 작은 식물 농장에서 일하면서부터 식물을 좋아하게 되었다. 영국의 SBA(Society of Botanical Artists)를 통해 식물 세밀화에 입문했고, 이후 춘천에 자리 잡으면서 강원도립화목원의 협력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화목원의 나뭇잎을 그려 조각한 나뭇잎 스탬프 63종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의 나뭇잎 100종을 담아 한정 제작한 ‘우리 나뭇잎 스탬프 100’은 국립 수목원과 지역 식물원 등에서 체험용으로 사용 중이다. 아이들을 위한 자연관찰교육에도 힘을 쏟고 있다. @soo_garden
| Editor - 채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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