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 가자고요』 김종광 “내 부모의 인생이 귀한 것이라고 믿기에 줄기차게 쓴다”

그런 사람이 있다. 세상에 가득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하는 사람. 소설가 김종광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의 이야기를 채록하여 맛깔나게 전하는 타고난 이야기꾼을 떠올리게 된다. 김종광의 소설은 무게를 잡거나 젠체하지 않는다. 그가 최근 펴낸 『놀러 가자고요』 속 수록 소설은 대부분 시골 마을 범골을 배경으로 한다. 그가 그려내는 범골은 도시인의 시각으로 대상화하거나 주변화하는 장소가 아니다. 팔딱팔딱 뛰는 삶의 무대이다. 온갖 달인들이 재주를 뽐내는, 구제역 바람 속에서 죽어가는 송아지를 살리기 위해 분투하는, 장기판을 앞에 두고 온갖 훈수가 난무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방심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김종광은 8년 만에 펴낸 소설집 『놀러 가자고요』를 앞에 두고 “내 부모의 인생이 기록되어야만 하는 귀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줄기차게 썼다.”고 말했다. 사소한 농민들의 기록을 눈여겨보는 출판사가 없어 출간에 고전했지만, 그런데도 그는 “아직 덜 썼다고 생각하다.”며 농민으로 살아온 부모의 삶을 담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지난 6월 20일, 광화문 한 카페에서 만난 김종광과의 이야기를 전한다.
- 우리가 농촌이라는 장소를 그릴 때는 도시에서 잃은 무엇을 찾을 수 있다거나, 순박한 사람들이 있는 정겨운 곳이라는 어떤 대상화가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책에서는 그런 게 아니라 진짜 현장의 삶, 사람이 느껴져 좋았습니다. 실제 모델이 있는 건가요?
네. 소설 속에 등장한 인물은 거의 실제 모델이 있어요. 김사또는 저희 아버지, 오지랖은 저희 어머니 이야기에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판돈은 저인데, 그야말로 소를 판 돈으로 공부를 했다는 의미입니다. 「장기호랑이」에 등장하는 꼬마는 물론 제 아들입니다.
실제 모델이 있어서 약간 걱정되는 것도 있는데 물론 동네 분들이 안 읽을 거라는 자신감으로…. (웃음) 이전에 제 산문집이 나왔을 때는 마침 어머니 칠순 잔치였는데, 동네 분들에게 제 책 80권을 나눠드린 일이 있었어요.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말아야죠. (웃음)
- 소설이 생생하게 느껴져서 그만큼 취재도 많이 하셨겠다 싶었어요. 어땠나요?
어머니랑 자주 통화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한 두달에 한 번은 내려가서 이야기를 들었죠.
- 김사또, 김천소, 오지랖 등 인물의 직접적인 별호가 해학적으로 느껴지고 재미있어요.
20여 년 전에 제가 처음에 데뷔했을 때 30~40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을 쓴 일이 있어요. 인물이 많다 보니까 나중에는 제가 이름이 헷갈리더라고요. 그러다 별명을 부르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 실제 부르는 별명인가요?
저만 그렇게 지어서 부르는 거죠. 실제로는 절대 그렇게 안 부르고요. 아, 우리 아버지 별명은 정말 ‘사또’예요. 청년 시절부터 사또 노릇을 많이 하셨거든요. ‘김사또’ 별명만 실제에요.
- 표제작 「놀러 가자고요」에서 놀러 가자고 전화 돌리는 상황도 실제 상황이었나요?
네 실제 상황이었죠. 절반은 어머니께서 실제 말씀하신 것이고, 절반은 제가 꾸민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제가 꾸민 이야기도 사실은 어머니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머니께 전화 통화로 전해 듣고 내려가서 여쭙고 했던 내용을 소설로 담았어요.
- 그래서인지 이야기를 채록했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만큼 생생하게 다가와 좋았고요.
감사합니다. 저는 기존 농촌드라마나 소설에 불만이 있었어요. 누가 가르치는 느낌이 있잖아요. 저는 그것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어요. 제 소신이 ‘가르치지 말자’거든요. 제 소설에는 가르치는 사람이 없고, 가르치려 하더라도 그럴 깜냥이 되지 않는 사람뿐이라 그런 낌을 받지 않으셨을까 싶어요.
- 이전에는 농촌이 계몽의 대상으로 보기도 했고, 현대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모습을 거기 투영하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작가님께서 가르치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은데, 작가님 소설에서는 그런 게 느껴지지 않아요. TV에서 농촌이 등장하면 ‘나는 다른가? 내 소설은 다른가? 다르게 써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참 다행이네요. 다르게 봐주셔서. 사실 그런 것(대상화)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쓰는 것이기도 해요. 다행인 것이 우리 동네에 그렇게 훌륭한 분이 없어서(웃음). 제가 농담으로 ‘우리 마을에는 양반 가문이 없어서 다행’이란 이야기를 해요.
- 양반 가문이 있다면 그 집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돌아갈 텐데, 없어서 다행이란 말씀이시네요?
네. 우리 동네도 그렇고 제가 살면서 사람을 만나보니 성인이라 할 만한 사람이 많이 없더라고요. 사람에게는 어딘가 설명하기 힘든 성격이 있잖아요.
다만 저도 자식이다 보니 소설 속에서 부모님을 좋게 그리려는, 나쁘게 그리지 못하는 면은 있어요. 물론 점점 탈피하고 있습니다. (웃음)
- 오늘날 농촌은 그야말로 주변적인 공간으로 치부되는데, 소설집에 수록된 소설 대부분이 농촌을 무대로 하고 있어요. 우리 사회에서 잊힌 공간, 잊힌 사람들을 소설 전반에 내세운 이유는 무엇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이상하게도 도시를 배경으로 하면 소설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시골이 배경이 되는 일이 많은 것 같아요. 이전에도 촌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많았지만, 시골을 기록하겠다는 원초적인 욕망을 가진 사람은 제가 좀 독특한 것 같아요. 이걸로 특허를 내야 하나. (웃음)
- 「『범골사』해설」에 보면 개인의 일지, 농사일기 등 잡다한 기록이 등장해요. 어쩌면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기록들을 비중 있게 다룬 이유가 있나요?
지엽적인 것이 세계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범골이라는 공간에 대한 기록이지만, 그것은 범골만이 가진 내용이기 때문에 그만큼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예능 프로그램, 농촌 드라마가 농촌을 다루는 방식과 어떻게 하면 차별화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해요. 제가 볼 때 그런 프로그램은 항상 주제를 잡고 희망 같은 것을 도출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희망을 도출하기 위해 정겹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고요. 그건 화면에 보이는 모습일 뿐 진실은 그런 게 아니라는 주장을 저는 하고 싶은 거죠.
- 「범골 달인 열전」 등 소설에서 기계에 의해 대체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농기계로 인해 뒤안길로 사라지는 달인들의 재주가 못내 아쉽게 여겨졌어요. 인공지능이 인간의 모든 자리를 대체할 것이라 예견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밀려나는 범골 달인들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이 느껴졌어요.
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사실 범골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는 제가 10년 동안 쓰고 있는 이야기에요. 이전 장편소설 『별의별』 등장한 인물은 빼다 보니 「범골 달인 열전」이 총 4명의 이야기로 압축됐어요.
사실 이 소설집에 「처녀 이장 탄생기」를 넣었으면 딱 맞았겠다 싶은데 넣지 못했어요. 「『범골사』해설」에 등장하는 이덕순이라는 인물 이야기인데, 이덕순은 라디오 방송에 160장의 엽서를 보내지만 단 한 번도 채택된 적이 없어요. 「처녀 이장 탄생기」는 이덕순이 마을 이장이 되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에요.
- 그런데 왜 안 넣으셨어요?
「장기호랑이」를 너무 사랑한 우리 아들 때문에…. (웃음) 그걸 꼭 넣어야 한다고 해서요.
- 「장기호랑이」는 그럼 아들 이야기인가요?
네. 아들이 지금 청소년 기사에요. 이전에는 한게임을 통해서 장기를 뒀는데, 이제는 카카오 장기가 대세가 되었어요. 그런데 이 애가 카카오 장기를 시작하고 순식간에 최고수가 되더라고요.
한번은 늙은 호신선과 젊은 방과외가 인터넷 바둑 사이트 대국장에서 만났다. 호신선의 대화명은 ‘늙은범골’, 방과외의 대화명은 ‘범골호랑이’였다. 두 사람은 공연히 반갑고 친밀한 느낌이 들었지만, 실제 거리 50여 미터를 사이에 두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99쪽)
- 수록 소설에 장기와 바둑이 자주 등장합니다. 알파고 대전으로 인해서 뒤안길로 밀려나는 바둑이, 도시화를 통해 주변화된 농촌이라는 장소와 잘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래도 제가 농촌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 주로 노인분들을 많이 그리잖아요. 그분들은 아직도 바둑, 장기를 많이 두시고요. 장기, 바둑은 그래서 제가 소설의 주력 아이템으로 장착한 거 같아요.
많은 사람이 알파고가 인간을 뛰어넘은 것에 충격받으셨는데, 저는 아무렇지 않은 게 우리는 자동차보다 빨리 달리지 못하잖아요. 기계가 더 센 건 맞거든요.
소설 속 장기 이야기는 실화이고 그중에서 「장기호랑이」는 사실 제가 한이 맺혀 쓴 소설이에요. 애가 장기를 두면서 짜증을 내면 다독거리면서 해야 할 텐데 혼내고 꿀밤 때리고…. 애를 데리고 뛰쳐나오지 않은 게 한이 되어서 쓴 소설입니다. (웃음)
할아버지들 이기고 대회 나가서 프로가 되니 어찌나 기쁘던지(웃음).
아이구, 나 생전 처음 알았어. 너무 좋아도 눈물이 철철 난다는 걸. 좋은 일이 생겨봤어야 알지. 자꾸만 눈물이 나. (107쪽)
- 입말, 대화의 형식을 그대로 살려서 소설을 읽는 동안 실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입말을 살리는 비결이 있나요?
그게 제 재주인가 봐요. 제가 희곡으로 등단하기도 했고요. 소설은 문장을 많이 따지잖아요. 문체 주의 전통이 있고요. 그런데 이야기는 본래 입말의 향연이거든요. 그것이 저와 잘 맞았던 것이죠.
제 소설 등단작이 『경찰서여 안녕』인데, 그것이 제가 최선으로 할 수 있던 규범 소설이에요. 대화가 적고 지문이 많죠.
등단 이후 청탁을 받았는데 이전에 써둔 습작은 쓸모가 없고 새로 소설을 써야 할 형편이 되었어요. 뭘 써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때 아버지와 동생이 오토바이 면허 시험을 보고 온 거예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게 소설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 이야기를 받아 적다시피 했어요. 그 소설을 출판사에 보내고 정말 떨었어요. 당시에는 작품이 좋지 않으면 반환당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실어주셨고, 만나는 분들이 참 재미있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때부터 구애받지 않고 입말을 살리면서 썼어요. 사투리의 경우는 독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다듬고요. 입말 100%를 담는 것이 아닌데도 소설의 모델이 된 분들조차 “어떻게 얘는 보지도 않고 이렇게 똑같이 썼대?”라 하신다고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우리가 개념어 관념어로 뭔가 규정하려고 하면 실제 삶과 맞지 않는 부분이 발생하는 거 같아요. 뭉클하게 읽은 소설이 「산후조리」였는데, 소설에서 수의사가 “희망”이라 말하니까 할머니가 “그놈의 희망 타령 듣기 싫어. 요새는 희망 안 들어가면 말이 안 되나?”라 타박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희망이라는 말로 규정되지 않는 희망이랄까요. 그런 내용이 「산후조리」에 담겨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소설 주인공은 제 어머니가 모델인데, 어머니 이야기 중에 제가 가장 감동적으로 들은 이야기이기도 했어요. 난산을 겪는 소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고민도 많이 했죠.
“풍부한 기록물을 가진 조선통신사인데, 대놓고 쓴 조선통신사 소설이 그토록 드문 까닭은? 영웅화할 만한 인물이 없다. 여자가 없어 사랑타령이 어렵다. 당파싸움도 권모술수도 전쟁도 없다. 나는 바로 그 없음에 매료되어 조선통신사를 쓴 게 틀림없다.” (김종광,『조선통신사』, 다산책방, 2017)
- 소설의 소재, 독자가 참 다채롭다는 생각을 합니다. 역사소설, 청소년소설까지 고정된 어떤 것을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계시는데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작가님의 색깔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궁극적으로 먹고살려다 보니까 벌어진 일이고요. 어떤 식으로든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면 다 받아서 일을 하다 보니 그런 거죠(웃음).
역사소설을 쓸 때는 제가 영웅주의적인 시각을 너무 싫어해서 힘들었어요. 『조선통신사』 같은 경우는 영웅적 인물이 없음에 매료돼 쓸 수 있었고요. 저는 이거 정말 잘 썼다고 생각하는데(웃음). 『조선통신사』처럼 자잘한 인간들의 역사를 저는 계속 쓰고 싶어요.
청소년 소설의 경우는 내 책의 독자가 한 명이라도 늘어나게 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웃음). 사실은 제 소설 속에서 청소년 주인공이 많이 등장하다 보니 청소년 소설이라는 범주에 들어간 거 같아요.
동화 중에서 『조선의 나그네 소년 장복이』는 『열하일기』를 박지원의 하인인 장복이의 시각에서 재구성한 이야기에요. 제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야기이기도 한데, 잘 안 팔린 게 씁쓸한 일이죠.
- 사람은 누구나 폼을 잡고 싶어 하잖아요. 다른 사람과 비교 우위에 있고 싶어 하고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하는데 작가님 소설에서는 그런 게 보이지 않아요.
왜 그런가 생각을 해봤는데 제가 평소에 그렇게 살아와서 그런 거 같아요.
집에서 농사 하나를 지어도 한 번도 제대로 하는 일이 없더라고요. 아버지에게 늘 혼나고. 제가 생각해도 합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요. 그렇게 못났기 때문에 제 소설에는 잘난 척하는 사람이 등장할 수가 없는 거예요. 제가 1인칭 주인공으로 등장해 세상을 성찰하는 소설이 없는 이유도 사람은 그렇게 될 수 없다는 부정적 인식도 있고, 근본적으로 제가 못난 사람이다 보니 그런 거 같아요.
- 독자분들에게 한 말씀 남겨 주시자면.
제가 20년 동안 20여 편의 소설을 썼는데 『놀러 가자고요』 도서 리뷰에 김종광이라는 소설가를 처음 알았다는 내용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제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 실감했는데, 아무튼 지금이라도 저를 아시게 된 분에게 깊이 감사드리고, 혹시 괜찮으시면 사시는 지역 도서관에 구매 신청도 좀 해주십사(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