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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인생, 어떻게든 됩니다』 박금선 “중년은 인생의 정오”


햇살이 따가워 선크림을 잔뜩 바르고 나선 한낮이었다. 유난히 무더웠던 지난 1일, 최근 『인생, 어떻게든 됩니다』를 펴낸 박금선 작가를 만났다. 조심스레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며 좌우를 살피는 유순한 표정이, 음료 한 잔 얻어 마신 일을 내내 미안해하는 마음씨가, 조곤조곤 이야기하다가 소녀처럼 활짝 웃는 표정이, 꼭 엄마를 보는 것 같았다. 1964년, 태어난 해도 꼭 엄마와 같았다.
24년 차 방송작가이자 오랫동안 MBC 라디오 <여성시대>를 맡아온 박금선에게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과 같은 편안함과 정겨움이 있었다. 그녀는 『인생, 어떻게든 됩니다』를 통해 그녀가 도달한 중년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그녀는 융을 인용하여 “중년은 인생의 정오”라 이야기했고, 중년에 겪는 마음의 지진을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라는 내면의 신호’로 받아들였다. 한껏 흔들리는 나이였고, 한껏 흔들려도 되는 나이였다.

 





연민의 우물은 뜨거운 사랑보다 깊다. 깊어서 몇 번이고 퍼내도 마르지 않는 연민의 우물을 가진 당신은 복이 많은 사람이다. (130쪽)


- 책을 보면서 ‘인생, 어떻게든 됩니다’라는 제목이 묘하게 용기를 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 제목은 어떻게 정하셨어요?
저는 50세라는 단어가 들어간 제목을 생각했는데, 출판사에서 이 제목을 제안하셨어요. ‘인생, 어떻게든 됩나다’라는 제목이 저도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딘가 편안한 느낌도 들고.

- 책에서 중년, 특히 50세라는 나이에 관해 즐겨 말씀하셨어요. 사실 생각해 보지 않은 나이였는데, 책을 보면서 저희 엄마 마음을 조금 이해할 것 같았어요.
제가 사람들이 이야기 듣는 거 좋아해요. 어릴 때 시골집에 제사를 하면 여자들이 한 방에 모여 밤새 이야기를 하곤 했어요. 주로 남편이나 이런저런 흉보는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 저는 그런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늦은 밤까지 할머니, 엄마, 고모들 사이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는 했어요.

할머니나 큰엄마가 “애가 왜 잠도 안자고 듣고 있느냐고 징그럽다.”고 그러셨어요. 저는 그렇게 남의 이야기 듣는 게 좋고, 사람들이 어떻게 사나 궁금해요. 그런데 실제 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기는 힘드니까 방송 프로그램을 위한 편지와 간접적으로 듣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거죠.

사실 『인생, 어떻게든 됩니다』를 쓰면서도 제가 너무 평범한 사람이다 보니 ‘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하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가 독자인 입장에서는 밑줄이라도 한 줄 쳐야 책값이 아깝지 않은데, 제가 쓰는 이야기가 과연 그럴까?’ 걱정이 되는 거죠.

MBC 라디오〈여성시대〉에 들어오는 편지를 받아보면 정말 현명하고 숭고하다 싶은 분이 참 많거든요. 두드러지는 일을 하거나 유명한 분이 아니어도 일상에서 참 현명하게 살아가는 분이 많이 계시더라고요. 그런 분들의 편지를 받아 보면서 ‘참 부끄럽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런 내가 이런 걸 써도 되나? 싶은 거죠.
고수들은 말없이 계시는데 내가 이 직업을 택했다는 이유로 아는 척하는 게 되면 어쩌나 싶은 거죠. 다른 분들은 알아도 이야기하지 않고 있을 뿐이고 저는 주워들은 것을 적은 것일 뿐 확실한 것을 알거나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제가 경험한 50대 분들을 보면 삶에 대한 겸허한 태도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는 잘나지 않았다는 걸, 제 아무리 잘나봐야 거기서 거기라는 것을 알 기회가 많이 생기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2030 후배들도 그래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제가 어느 젊은 친구가 올린 글을 본 일이 있는데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대. 그런데 나는 고개 숙일 필요가 없어. 익지 않았으니까.” 이런 내용이었어요. 그게 너무 귀엽더라고요. 50대가 되면 저절로 깨달아지니까 벌써부터 겸허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아요. 그런 건 시간이 해결해주는 거잖아요.

융은 “중년은 인생의 정오”라는 말도 남겼다.
정오라면 하루의 절반이니, 반이 남은 셈이라고 반가이 여길 수도 있겠지만, 융이 말한 정오는 시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전환점’의 의미라고 했다. 자신의 내면에 치중하게 되는 전환점이 되는 시기가 중년이고, 그런 의미에서 오후로 가는 전환점인 정오를 말한 것이라나.
그는 중년이 되면 마음에 ‘지진’이 일어나는데 이것은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라는 내면의 신호’라고도 했다. (101쪽)

- 나이가 들면서 경험이 쌓이잖아요. 어느 분은 건축가는 나이를 먹을수록 좋은 건축가가 된다는 말씀 해주셨는데, 작가 입장에서도 나이듦으로 인해 독자에게 더 깊이 공감하는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어떤가요?
그런 점도 있을 수 있지만 저는 두려움이 많아지는 거 같아요. 그래서 글을 쓰려면 일찍 쓰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합시다’라는 글을 쓴다고 하면 제 나이에는 여러 경험 때문에 오히려 한 가지 목소리를 내기가 참 힘들어졌어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졌어요.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 그런 게 있을 수 있겠네요. 책에서 “중년은 인생의 정오”라는 융의 말을 인용하셨는데, 실제 그런가요
? 나이가 들면서 달라지는 감정이 있나요?

제 나이에는 화가 잘나요. 갱년기 증세일지도 모르겠는데, 제 자신에 대해서도 화가 잘 나고 주변의 문제나 사회적인 문제에도 화가 확 나요. 젊은 시절에는 한 번도 못 느껴본 그런 느낌이에요. 그때는 화가 나는 감정이 분노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등줄기까지 뜨거워지는 감정이에요.

그런 생각이 참 많이 들죠. ‘나이가 들면 예측불가능한 일들이 정말 많아지는 구나’하는. 예전에 우리나라 여자들이 홧병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참 안타깝다 정도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느껴지는 게 달라요. 많이 참고 살지 않은 나도 울컥 치미는 화가 있는데, 억눌려 살았던 분들이라면 정말 속병 났겠구나 싶어요.


- 방송 편지에도 안타까운 사연이 많은데, 사연을 받다보면 울컥하실 때가 많겠어요? 실제 편지를 읽다가 눈물 흘리는 일도 많다고요?
다들 자기 설움에 운다고 하잖아요. 저희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는 정말 엄마에 관한 사연을 읽을 수가 없었어요. 청취자 편지를 읽다가 복받쳐서 화장실에 들어가 통곡한 일도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화장실에 들어와서 왜 우느냐고, 누가 괴롭혔느냐 묻더라고요. 그게 아닌데.

내 아픔을 떠올리게 하는 사연이라 그럴 때도 있고, 그 자체만으로도 흠뻑 눈물이 나는 사연도 있지만 보통은 확 슬프거나 기쁘거나 하는 게 아니라 뭔지 모르겠는데 찔끔 눈물이 난다 싶죠.

사는 게 이런 건가 보다 그런 생각 많이 해요. 요란하게 즐겁거나 행복하거나 그런 게 아니라 웃는 거 같은데 눈물도 찔끔 나는,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

- 〈여성시대〉가 갖는 독특한 위치가 있는 거 같아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본인이 치유 받는다고 하잖아요. <여성시대>가 옆집 누구와 이야기하는 것 같은, 그런 방송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그런 역할을 한다고 정신과 의사들도 그렇게 이야기하더라고요.

지금은 SNS나 휴대폰 등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분이 많지만, 이전에는 그런 통로가 많지 않았잖아요. 그래서인지 <여성시대>에 보내주시는 편지를 보면 상당히 길고 어느 때는 공책 한 권 분량을 써서 보내주시는 분도 계셨어요. 자신의 마음을 표출하지 않고 길게 쌓아 두신 까닭에 편지를 통해 그렇게 격렬하게 토해내셨나 하는 그런 생각도 해봐요.

조금 뒤처지는 것도 살아 보니 괜찮았다. 세상에 잘나고 성실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된다. 세상은 넓고 나는 조그맣다는 것을 수시로 확인하니, ‘세상 학교’에 다니며 배움을 갈망하는 영원한 학생으로 살 수 있다. 그리고 뒤처지는 부분이 많지만, 뒤처지지 않는 부분도 있다고 애써 자신을 끌어 올리는 시간을 만들게 되니, 그 또한 소득이다.
-에필로그에서


- 아마 그분들도 자신의 마음을 편지로 정리하면서 치유 받는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요?
네. 저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게 초등학교 2학년 가을이에요.

담임선생님이 원고지 쓰는 법을 처음 가르쳐 주시면서 가을에 관한 글짓기 숙제를 내셨어요. 제가 원고지 10장 정도 썼나 봐요. 초등학교 2학년생이 쓰기에는 긴 분량이었는데, 그걸 다 쓰고 나니까 속이 시원한 거예요.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시원한 느낌을.

그러고 잊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칭찬하시면서 다른 친구들에게 읽어주셨어요. 그런 보상이 있어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속이 시원한 그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요.

저희 프로그램에 글을 보내주시는 분들도 꼭 선정될 거라고 생각하고 쓰시는 건 아니잖아요. 글을 쓰면서 치유가 시작되는 어떤 지점을 느낀 게 아닐까 싶어요.

- 작가로서 MBC 라디오 <여성시대>를 오랫동안 함께 하셨는데, 일상에서 청취자를 만난 일은 없었나요?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저희 애가 어릴 때 어린이집이 꽤 멀었어요. 보통은 버스를 타고 등원하는데 그날은 아이가 헤어지기 싫다고 눈물 콧물 범벅에 막 뒤집어지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택시를 잡아탔어요. 어린이집에 와서는 기사 아저씨께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하고 아이를 데려다주는데 그때도 애가 뒤로 젖혀지면서 아주 난리가 난 거예요. 우리 애가 말이 늦어서 당시에는 말을 못 했어요. 말도 못하는 애를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안기고 다시 택시를 타고 출근하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내가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말도 못하는 애를 이렇게 두고 가나’ 싶어서. 그때 아저씨가 라디오 볼륨을 높이면서 저에게 그러더라고요.

“아줌마, <여성시대>에 아줌마보다 더 힘들게 사는 사람 많으니까 이거 한 번 들어보세요.”

제가 막 울다가 너무 고맙더라고요. ‘아, 고맙다. 이렇게 우리 프로그램을 들어주시고, 프로그램을 들어서 나에게 보수도 주시고, 이렇게 위로도 주시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 <여성시대> 작가라는 건 밝히셨나요?
아니요.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요. 조심스러워요. 저로 인해서 <여성시대>에 대한 편견을 가지실 수도 있잖아요. 제 외모가 너무 평범하잖아요. 세련된 인상도 아니고요.

그런데 그런 건 좋았어요. 지방에 인터뷰를 가면 제 등짝을 퍽퍽 때리면서 “서울 방송국에서 왔다더니 옆집 똘이엄마 같아.” 이러실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더 좋은 거예요. 친구처럼 편하게 생각해주시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시니까. 그럴 때 ‘나처럼 생긴 건 때때로 유리해’ 이런 생각도 하죠.

- 외모에 관한 말씀은 뜻밖인 게 웃는 표정이 참 예뻐요. 인상 좋다는 이야기 많이 듣지 않으세요?
동글동글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동글동글해서(웃음).

- 24년차 방송작가인데 처음부터 <여성시대> 프로그램을 하셨나요?
그건 아니에요. 처음에는 TV 어린이 프로그램으로 시작했어요. 쇼 프로그램도 하다가 라디오로 옮겨 라디오 어린이 프로그램, 시사 프로그램을 맡았죠.

<여성시대>를 맡은 건 1993년부터예요. 제가 맡은 프로그램 중에서 제일 오래 했죠. 제 나이에 이제 청소년프로그램이나 유행에 민감한 프로그램을 맡는 건 어려울 거라 생각해요.

저는 다행히 제 나이 또래 분들이 또 제 아들딸 같은 분들이 보내주시는 편지를 읽을 수 있어서 참 행운이죠.

- 처음부터 작가가 되고 싶으셨어요?
그런 건 아니었어요. 사실은 공부를 계속했으면 했어요. 이 일은 잠깐 하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하다보면 그게 잘 안되잖아요. 대학원을 다니면서 저를 냉정하게 돌아보니까 제가 엉덩이가 무겁지가 않더라고요. 책상에 오래 앉아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그렇지 않았고, 공부를 업으로 삼기에는 아닌 거 같다는 뼈아픈 결론을 내리고 좀 더 작가 일을 열심히 하게 됐죠.

- 공부를 그만 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요?
시간이 흘러서 보니까 학업을 업으로 삼겠다고 해왔던 게 허영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전에는 이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닌 것 같고, 꼭 다른 할 일이 있는 거 같고,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 같다는 그런 알 수 없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게 허영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나니까 조금 편해졌죠.

한편으로 허한 마음도 있어요. 가질 수 없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 그게 없다고 생각하니까 어쩔 수 없이 허전하더라고요.

그 두 가지 마음 속에서 살겠거니 그런 생각을 해요.


- 김이윤이라는 필명으로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을 쓰셔서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신 일이 있어요. 오랫동안 작가로서 사셨지만 소설을 쓰는 일은 도전이었으리란 생각도 듭니다. 어떠셨나요?
어릴 때 화가 겸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그림 그리는 것, 글짓는 것을 좋아했거든요.

방송 작가로서 글쓰기도 좋지만, 다른 글에 관한 욕구가 늘 있었나봐요.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동화를 만들어 선물하는 걸 좋아했어요. 아이가 목이 올라오는 티셔츠를 안 입으면 그걸 입게 하려고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려 동화를 만들어 읽어주는 거죠. 그러면 아이가 이야기를 듣고 입을까 말까 고민이라도 하잖아요.

애들이 조금 크고 나서는 생일이나 어린이날에 예쁘게 그림을 그려서 선물하기도 하고, 인쇄소에 맡겨 책으로 엮어 주기도 했어요. 인쇄소 아주머니가 감탄하면서 “이렇게 좋은 엄마가 다 있어요?” 하시는데 우리 딸은 그 선물을 휙 던지면서 “엄마, 이런 거 만들 시간에 나랑 놀아!” 그러더라고요. 사실 아이 말이 맞죠. 그것도 지금 생각하면 다 허영인 거예요.

그런데 그 말을 듣고 반성하면서도 꼬박꼬박 또 이야기를 썼어요. 왜냐하면 1년에 몇 번 이런 이야기라도 쓰지 않으면 내 마음 속에서 허함이 채워지지 않는 거 같아서….

꾸준히 쓰다가 우리 딸 고1 생일 무렵 그 소설을 쓴 거예요. 그런데 이건 조금 더 다듬어서 어디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이가 들다 보니까 어디서 칭찬을 더 이상 받을 일이 없잖아요. 칭찬받고 싶어서 그걸 냈어요. 웃긴 거죠. 나를 칭찬해 줄 엄마도 더 이상 없는 상황에서 칭찬 한 번 받고 싶어서 소설을 썼다는 게. 그런데 다행히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이 수상을 했어요.

그때 정말로 기뻤고 계속 써야 하겠다고 결심했어요.

- 마음 속에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창작의 원천이 되었던 거네요.
슬픈 고백이긴 한데 제 나이쯤 되니까 제가 엄청난 작가가 될 수 있으리라는 그런 생각은 안 하게 되더라고요. 내 그릇이 너무 작다는 걸 깨달아요. 엄청난 작품은 쓰지 못할지 모르지만 마음을 나누는 글을 쓰고 싶어요. 왜냐하면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쓰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어요. 갈증 같은 거죠.

- 나이 먹을수록 칭찬 받을 일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조금 서글픈 일이네요.
저를 좀 떠나서 이야기하면 자녀들이 부모님에게 표현 해드리는 게 참 중요한 거 같아요. 어제 읽은 독자 편지에도 그런 내용이 있었어요. 고등학생 아들, 중학생 딸, 유치원에 다니는 막내 이렇게 삼남매를 둔 삼십대 엄마 이야기였어요.

자기 생일인데 중학생인 딸이 핸드크림과 립스틱을 선물하면서 “비싼 건 아니지만 엄마가 맨날 맨 손으로 설거지하고 항상 똑같은 색 립스틱만 바르는 걸 봐서 이걸 샀다.”고 하더래요. 그 엄마는 조금 일찍 결혼을 하셨던가 봐요. 그래서 이십대를 다른 친구와 비교하며 아쉬워했던 거예요. 다른 친구는 대학에 가서 청춘을 즐길 때 자기는 우는 애를 업고 다니며 고생해서 자신의 이십대를 돌아보기 싫었는데, 아이의 선물이 나의 이십대가 의미가 있었다는 걸 깨닫게 해줬다고 하더라고요.

- 자녀에게는 어떻게 보면 사소한 일인데 엄마에게는 참 큰 의미가 될 수 있는 일이었네요.
그런 편지가 참 많아요. 어떻게 보면 평범한 일인데도 내 자식이 해주었기 때문에 그게 평범하지가 않은 거예요.

사정이 되지 않아서 선물을 하지 못할 수도 있고, 매년 있는 어버이날 매년 있는 생일이니 올해는 넘어가자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럴 때 그냥 넘기지 말고 편지라도, 긴 문자라도 보내드리면서 기억하는 게 중요할 거 같아요. 부모님에게는 비상 시 필요한 에너지 포 같은 게 될 수도 있거든요.

- 『인생, 어떻게든 됩니다』에서 아이들에게 너무 기대거나 참견하지 말자는 그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저는 우리 엄마들이 아이를 돌본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강요하는 게 참 많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어떻게 보면 경제적인 지원을 한다는 이유로 아이를 통제하려고 하는 거거든요.

제 주변 엄마들을 보면 애들에게 바라는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애들 때문에 속상하다고 하면 저는 “애도 너에게서 태어나서 무척 힘들 걸.” 이런 말을 해주곤 했어요.

- 『인생, 어떻게든 됩니다』에서 아이들이 결혼하면 분리된 가정이라 생각하자고도 쓰셨지요.
네 그렇게 썼어요. 그런데 저도 막상 아들이 결혼하면 변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제가 다른 가면을 쓰고 아이들 가정에 참견할 수도 있겠죠. 그래도 지금은 아이에게 집착하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해요.

저희 세대는 열심히만 하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오는 고성장시대를 살아왔잖아요. 그래서 우리 아이도 그럴 것이라고 기대하는 거예요. 하지만 지금 시대는 그렇지 않잖아요. 저도 아이에 대한 기대를 덜어내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런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할 거라 생각합니다.

말을 걸다가 상처를 받기도 하고, 말을 쏟아놓은 뒤에 한없이 허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 걸기는 계속 되어야 한다. 그리고 말 걸기를 할 때는 로버트 카파라는 유명한 사진작가가 한 말을 떠올리는 것이 어떨지.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충분히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파는 생전에 전쟁터를 누비며 아픈 현장을 생생히 담아온 사람이다.
그의 말처럼 나도 조금 더 다가가 말을 걸어보려 한다. 충분히 다가가 말을 걸면 아름다움을 많이 발견할 수 있으리라.
사는 일은 결국 다가가는 일인가 보다. (70쪽)


박금선은…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와 같은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MBC 라디오 <여성시대> 방송 작가로 24년째 활동 중이며 ‘MBC 방송연예대상 작가상(1993·2016)’ ‘한국방송작가상(2005)’ ‘한국PD대상(2018)’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 200만 통의 독자 편지 속에서 찾아낸 인생의 교훈을 추린 《여자가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들》, 탈성매매 여성의 자활 이야기를 다룬 《축하해》와 《내가 제일 잘한 일》이 있다. 또 ‘김이윤’이라는 필명으로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을 써서 ‘제5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 Editor - 송보배
10rim@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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