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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어디서 살 것인가』 유현준 “좋은 건축은 우리를 화목하게 한다”


유현준의 『어디서 살 것인가』를 읽는 것은 물리, 지리, 패션, 문화… 사람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통해 건축이라는 코끼리를 더듬는 일 같았다. 통찰과 통섭이 어우러져 지금껏 생각하지 못한 건축의 입체가 손에 잡혔다. 건축은 세우는 일인 줄 알았는데, 건축은 연결하는 것이었다.
지난 12일 유현준건축사사무소에서 유현준을 만났다. “제가 좀 산만하죠?” 라며 웃는 해맑은 표정이 TV 속 모습과 같았다. 글쓰기의 즐거움을 깨닫고 있다는 유현준 교수와 최근 펴낸 『어디서 살 것인가』를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건축은 인간의 본질을 반영하는 행위이자 결과물이다. 건축은 우리와 연결되어 있고 우리의 모습을 비춘다. (10쪽)



- 책 『어디서 살 것인가』 분량의 1/5은 비행기 안에서 쓰셨다고요? 바쁜 일정에 책을 집필하는 게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그렇죠.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까 되더라고요. 그때 마침 마일리지 업그레이드를 해서 비즈니스석에 탔는데, 그 좋은 자리에서 잠도 못 잤죠.

- 비행기 안에서 그야말로 ‘마감의 기적’을 경험하셨네요.
네네. 그렇게 쓰고 나서 보니까 말이 안 되는 내용도 있고, 나중에 원고 고치느라 고생도 많이 했어요.

-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건축과 공간에 대해서 조망하는 한편 우리 일상공간에 대해서도 많은 언급을 했어요. 책을 보면서 정말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많이 했습니다.
다행이네요. 의도했던 바에요(웃음).

-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는 전작에 이어 도시에 관하여 다루셨지요. 사람이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이 또 사람의 삶과 생각을 만드는 까닭에 우리가 사는 공간, 건축, 도시에 관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주시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가요?
저는 사람에게 관심이 많아요. 건축을 좋아하는 것도 건축을 통해 사람을 이해할 수 있고, 건축을 통해 사람 간 관계를 조율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또 건축을 통해 저를 표현할 수 있고요.

여담이지만 요즘 저를 표현하는 방법이 하나 늘었어요. 이전에는 건축 설계를 통해서 저를 드러냈다면, 최근에는 글을 통해서 저를 표현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있어요. 어제는 마침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 지금까지 글쓰기에 관해서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는. 이전에는 글 쓰는 걸 싫어했거든요.

- 의외네요.
학교 다닐 때 글쓰기는 일기잖아요. 나름 학교 다닐 때 모범생이었고 공책 정리도 잘했는데 일기만큼은 잘 안 썼어요. 그랬던 제가 왜 이렇게 이걸(글쓰기) 좋아하나 생각해 보니까 저 자신을 표현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학교 다닐 때 성실하게 공부를 했지만 공부가 재미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거든요. 그림을 좋아했죠. 돌아보면 유일하게 나를 표현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림을 좋아한 거 같아요. 지금은 글에서 그런 표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글을 쓰면서 많이 해소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글을 통해서 제가 관심 있는 사람, 건축, 공간에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 같습니다.


- 『어디서 살 것인가』를 읽다 보면 건축, 우리 삶을 다각도에서 보고 다면적으로 연결해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특히 권력의 크기를 건축물의 위치에너지로 측정하면서 이를 현대의 머리 모양과 연결하거나, 후드티를 통해서 사적인 공간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읽어내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수평적 연상 작용을 잘하는 사람인 거 같아요. 그게 제 사고의 패턴이란 생각이 들어요. 학교 공부를 할 때는 그게 좀 어려웠어요. 자꾸 다른 생각이 나니까. 어떤 면에서는 제가 교회를 다녀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어릴 때는 성경을 참 열심히 공부했는데, 성경은 비유를 통해 이야기하잖아요. 그래서 자꾸 본질이 뭔가를 생각하고, 비교할 수 있는 다른 대상을 계속 찾는 게 아닌가 싶어요.

- 책에서도 건축을 다각도에서 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지요?
건축 스튜디오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면, 네모난 공간을 하나 만든다면 어디서 모티프를 얻었고 왜 그것이 네모여야 하는지 설명해야 해요. 그런데 건축의 문제를 건축으로 설명할 수는 없어요. 그건 물에 빠진 사람이 자기 머리를 끄집어내는 꼴이 되어 버려요. 다른 데에서 가져와 객관화하다 보니까 그것이 자연스럽게 생각의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된 거 같아요.

건축이란 분야는 자연스럽게 통섭이 되는 분야에요. 기술적인 문제만 해결되면 그 밖의 것에 관해서는 자유롭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 폭이 다른 분야보다 폭넓은 것 같아요.

제대로 설계된 공간은 갈등을 줄이고 그 안의 사람들을 더 화목하게 하고, 건물 안의 사람과 건물 주변의 사람 사이도 화목하게 하고, 사람과 자연 사이도 더 화목하게 한다. 좋은 건축은 화목하게 하는 건축이다. (370쪽)



- 기존에는 건축은 세우는 것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었는데 책을 보면서 ‘건축은 연결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맞아요. 건축은 연결하는 거예요. 모으고, 연결하고, 복잡한 충돌들을 조율하고. 그래서 건축을 정의할 때 “건축은 관계를 설계하는 것” “건축은 관계를 디자인하는 것”이란 말을 많이 해요. 제가 책에서도 화목하게 하는 게 좋은 건축이란 말을 했는데, 연결하고 관계를 좋게 하는 건축이 좋은 건축입니다.

- 그런 맥락에서 우리나라 아파트나 학교 건축을 비판적으로 해석하신 것 같아요. 자연과 단절하는, 이웃과 단절시키는 형태의 건축이라고 보신 것 같습니다. 특히 책 전반에 아파트에 관한 많은 문제를 지적하셨는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파트의 가장 큰 문제는 사적인 외부공간이 없다는 겁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 책정 방식에서 불거진 문제인데, 실내 면적만으로 가격을 책정하기 때문에 아파트에 외부 공간이 만들어지지 않아요.

저는 항상 부동산 가격을 면적이 아닌 체적으로 책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실내 면적뿐 아니라 실외면적까지 측정해 부동산 대장에 넣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통 실내 높이 2.4m 아파트에 살고 있어요. 부분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질이 거기에서 결정이 나는 것 같아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게 되어 있는데, 환산 방식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가치가 제대로 반영이 되지 않은 거죠.

질적으로는 차이가 나는 걸 우리가 아는데 그게 돈으로 환산되지 않기 때문에 삶의 질적 향상이 권장되지 않는 사회가 되는 거죠. 그게 우리나라 아파트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가격 책정 방식이 바뀌어서 외부 공간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고, 또 하나 덧붙인다면 책에도 썼듯이 방에서 방으로 연결되는 창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우리 도시를 더욱 소통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웃 지역과 걷고 싶은 거리로 연결될 때 지역 간 경계는 모호해지고 격차는 줄어들 것이다. (298쪽)

- 또 하나 아파트에 관해 지적하신 것이 자기만의 성이 되어 간다는 것이었어요. 아파트 단지 벽면이 마치 성의 해자와 같이 보행자의 접근을 차단하는 길이라는 점도 지적해 주셨거요. 걷기 길의 중요성은 책을 통해 거듭 강조하고 계시는데, 왜 우리 도시에서 걷기 길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그건 걸을 때 경계가 모호해지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차 또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도시는 역세권을 중심으로 발달했습니다. 그렇게 지역이 명확하게 나뉘게 되었어요. 청담동에서 논현동으로 가려면 지하철을 타야 갈 수 있고, 같은 강남이라 해도 두 지역의 분위기가 다르죠. 환경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은 다른 지역 사람은 나와 관계없다고 생각해요. 집단 이기주의가 심화될 수밖에 없는 공간구조가 되는 것이죠.

만약 우리 길이 걷는 길로 연결된다면 어디까지가 논현동이고 청담동인지 어디부터가 왕십리인지 모호해지거든요.

그래서 제가 꿈꾸는 도시는 걸어서 서울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곳입니다. 지하철 2호선처럼, 서울이 걷고 싶은 거리로 하나로 연결된다면 지역 간 갈등도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도시가 자꾸 소유하는 방식으로 발달하니까 우리가 공동으로 쓸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부동산 가격 책정 방식으로 인해 아파트에 실내 공간만 늘어나는 것처럼, 내 것만 자꾸 만들려고 하다 보니까 공동의 공간이 없는 것이죠.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돈 안 내고 쓸 수 있는 곳은 인도와 차도밖에 없어요. 다른 곳은 내가 소유하거나 돈을 내고 빌려 써야 하는 공간이죠.

그런데 인도와 차도는 이동하는 공간이잖아요.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에요. 그러니 이 도시에서 공짜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는 공간을 즐기려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게 집값이든 월세든 카페의 커피 값이든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소유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몇 평’으로 계산되는 공간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삶의 질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었다. (91쪽)

우리 도시에 벤치도 더 만들어야 하고, 공원도 더 만들어야 하고, 도서관도 더 만들어야 한다는 건 그런 의미입니다. 돈을 안 내도 앉아 있을 수 있는 벤치와 돈을 내지 않아도 자연 속에서 쉴 수 있는 공원, 머무를 수 있는 도서관이 있어야 해요.

가진 돈이 많지 않은 사람이 지금 청담동 한복판에 오게 되면 거부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겁니다. 앉아 쉬려면 카페라도 들어가야 하잖아요. 그런데 커피 한 잔만 해도 8,000~9,000원 하는 곳도 수두룩하고, 발렛파킹 맡긴 사람만 올 수 있는 그런 공간에서 거부당하는 일이 어떤 사람에게 기분 좋은 일이겠어요? 그러니 나를 거부한 공간, 사회에 대해 적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죠.

- 지금 우리 도시 공간이 인간을 소외시키고 사회 갈등을 심화하는 공간이란 말씀이시네요. 그런 소외를 줄이기 위한 공간으로 공원에 관해 비중 있게 다루셨는데, 책을 보면서 우리에게 공원이 그렇게 부족하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공원은 접근성, 빈도가 중요한데 우리는 지금까지 규모에 치중해 왔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죠. 어디의 센트럴파크 그런 것만 강조하고 있어요. 크고 대단한 공원 하나보다는 작은 공원 여러 개가 훨씬 좋은데, 우리는 보여주기식 정책을 펼치는 까닭에 그런 장소를 적재적소에 마련하지 못하는 겁니다.

뉴욕 시민은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7분 정도만 걸으면 어느 공원이든 걸어갈 수 있으며 그 공원이 지겨우면 13.7분 정도만 걸으면 다른 공원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서울 시민의 경우에는 보통 30분 정도는 걸어야 공원에 다다를 수 있다. (93쪽)

도서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많은 장서를 가진 도서관인지에 집중하는데, 우리 사회에 지금 책이 부족한 게 아니잖아요. 이전에는 책이 부족한 사회였으니 장서 수가 중요했지만, 지금은 인터넷만 검색해도 어지간한 지식을 찾을 수 있어요.

지금은 시민이 편안하게 앉아 머무르는 공간이라는 게 중요한 것이죠. 도서관은 조용하잖아요. 내가 배려받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거든요. 현대 도시에서는 그런 조용한 공간이 별로 없어요. 조용한 공간, 다른 사람이 나를 존중한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좀 더 많아져야 한다고 봐요.



- 『어디서 살 것인가』의 첫 장이 학교 건축입니다. 처음에는 의외였다가 책을 읽고는 이해했어요. 우리 도시 공간이 삶을 황폐하게 하고 획일적 사고를 유발하는데, 그 시작점이 학교 건축인 까닭에 첫 장에 등장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어떤가요?
네 맞아요. 사람이 건축을 만들고 건축이 사람을 만드는데, 우리가 처음으로 영향을 받는 공간이 바로 학교거든요. 물론 아파트도 그런 영향을 주지만, 우리가 사회생활을 처음으로 하는 공간이 바로 학교잖아요. 성장기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인데, 그 공간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이 다양한 생각을 존중하는 아이로 자라기 힘들겠죠. 그게 우리나라 사회에서 가장 처음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 대안으로 학교 건축의 저층화를 제안하셨어요.
근본적인 목적은 아이들에게 자연을 돌려주자는 거예요. 지식은 책에서 배우고, 지혜는 자연에서 배운다고 하잖아요. 지혜를 가르치는 자연을 아이들에게 돌려줘야지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100% 가르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있었어요. 과연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100% 가르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봐요. 그리고 누가 누굴 가르친다는 것은 사실 기분 나쁜 일이죠. 그 안에 내포된 것은 가르치는 내가 가르침을 받는 저 사람보다 옳다는 것이잖아요. 그것은 사실 위험한 발상이죠.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고 변할 수 있다는 유연한 생각을 가져야 하는데, 학교 건축에서는 전체주의적인 사고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려는 면이 보여요.

자연은 스스로 자(自)에 그러할 연(然)이잖아요.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는 공간, 자연의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건축공간이 모든 것을 다 가르치려고 하고 자연의 공간이 하나도 없는 게 지금의 학교 건축인 거죠.

- 교육에 관해서는 보통 교육 프로그램, 내용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을 건축으로 풀어주시는 부분이 새롭네요.
저는 직업이 건축가이다 보니까 건축공간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항상 고민해요. 사람마다 세상을 보는 필터가 있는데 저에게는 그것이 건축공간인 것이죠.

저는 교육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교육의 내용과 프로그램은 잘 모르지만, 건축공간을 통해 아이들에게 가르치려는 게 전체주의적이라는 게 제 눈에는 보이는 거죠.

다행히 이런 이야기를 들으시는 분들은 많은 분이 공감을 해주세요. 공감하는 분이 많아질수록 그런 요구가 생겨나겠죠. 그러면 자연스럽게 바뀌어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책을 보면서 특히 서글펐던 내용은 왜 골목길이 관광 명소가 되는가에 관한 내용이었어요. 우리가 얼마나 자연으로부터 멀어졌는지 실감나는 대목이었어요.
어마어마하게 멀어졌어요. 여름 더위, 겨울 추위를 잘 모르고 살잖아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겨울에는 항상 내복을 입고 다녔어요. 그런데 내복을 입지 않고 다닌다는 것은 그만큼 외부를 접할 일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지요.

자연과 분리된 삶이라는 게 편리한 삶이라고 생각해서 우리가 한 방향으로 발전해 왔는데, 삶의 질을 측정하는 방식이 조금 잘못되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요. 자연과 분리된 삶이 편리하기만 하면 왜 우리는 주말마다 등산을 하러 가고, 쉴 때마다 익선동에 가서 골목길을 걷겠어요?

그것이 주는 중요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찾는 거잖아요. 그런 가치에 대해서 우리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버릴 수 있던 거겠지요.

- 그 가치를 몰랐기 때문에 이제까지 골목, 자연을 쉽게 버려온 거네요.
그렇죠. 익선동이나 경리단길에 가면 멸종위기종이 있는 동물원 같아요. 골목길이나 마당이 현대사회에서 멸종되는 동물과 같은 거죠. 단층집이나 마당이 있는 집을 보기 위해서는 삼청동까지 나가야 하는 게 현 사회인 겁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다 그렇게 마당과 골목이 있는 환경에서 살 수는 없어요. 21세기에 맞지 않는 생활방식이잖아요. 그러니 중요한 부분은 남겨두고 선택과 집중을 지혜롭게 할 필요가 있는데, 우리는 선택과 집중을 잘 해오지 못한 거 같아요.

아파트단지나 상업공간을 개발한다고 이전에 있던 공간을 다 밀어버리잖아요. 개발한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남기고 그 주변만 저층화한다면, 고층아파트에 살다가도 골목길을 걷고 동네 사람도 만날 수 있잖아요. 그런 공간을 하나는 남겨둬야 해요.

제 책 리뷰 중에서 제가 정말 감동적으로 본 내용이 있어요.

- 어떤 내용인가요?
어떤 독자분이 쓴 리뷰인데, 아파트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 때문에 두 달 동안 엘리베이터 없이 살았대요. 그러니 아파트 계단이 골목처럼 변했대요. 할머니들이 나와 쉬고, 사람들이 나와 서로 이야기하고…. 많은 일이 골목길에서처럼 일어났대요. 그분은 그게 너무 좋았다고, 엘리베이터가 재개되면 사라질 풍경이라 아쉽다는 내용이었어요.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그 공간이 달동네 골목길처럼 되는 거예요. 저는 그 내용을 아주 감동적으로 보았어요.

- 쥬쥬 동물원, 청운대 도서관, 신안군복지회관 등 여러 건축 설계를 하셨는데, 건축을 설계하실 때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걸 만들어서 사람 사이가 좋아질 건지 나빠질 건지요. 그다음 사람과 자연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자연과 내가 사적으로 대면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고요. 우리가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서도 나의 가치를 찾지만, 자연 속에서 혼자 있을 때 나만의 흔들리지 않는 가치를 찾잖아요. 그 조화가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건축공간에서 서로 바라보고 소통하는 한편 혼자 쉴 수도 있어야 해요.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과 르 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아’를 비교하면서 건축의 장소성도 강조했는데, 실제 건축 설계에서 장소성도 고려하시나요?
그렇죠. 당연히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죠. 관계 설정을 고민하다 보면 가장 처음으로 고려할 요소들이 대지가 가진 환경이거든요. 그게 기후가 될 수도 있고 주변 도로 환경이 될 수도 있고 빌딩이 될 수도 있고요. 거기에서 첫 단추가 끼워져요. 과거에는 자연 속에서 집을 짓다 보니까 기후가 제일 중요했다면 현대에서는 인공 환경이 중요하잖아요. 인공의 환경이 주는 것을 제2의 기후라고 봐야 해요. 그걸 통해서 디자인을 풀어나가는 게 당연한 거죠.

모든 사람은 세상에 한 명뿐이기에 모든 사람의 인생은 각각 가치가 있고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내가 사는 집이 있는 땅은 타 장소와 다른 색을 가진 하나뿐인 장소다. (369쪽)

제가 이 책을 통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은 다양성입니다. 왜냐하면 다양성이 있을 때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서로를 존중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다양성이 사라지고 획일화되면 줄을 세우게 돼요. 네가 먼저냐 내가 먼저냐 줄을 세우고, 학생들이 다 똑같아 지니까 성적으로 줄을 세우고, 아파트가 다 똑같으니 가격으로 줄을 세우고요.

각각 다른 가치를 갖고 있다면, 돈으로 환산할 수가 없는 나만의 가치가 되겠죠. 건축은 그게 가장 쉬워요. 모든 땅은 하나밖에 없거든요. 위도와 경도가 다르고 주변 환경이 다르고 다 달라요. 그래서 그 가치를 반영한 건축을 만든다면 그것은 유일무이한 리미티드 에디션이 되는 거죠. 지금은 리미티드 에디션이 없고, 대량생산이 되어 버렸잖아요.

대전의 브랜드 아파트를 가나 부산의 브랜드 아파트를 가나 똑같아요. 차이는 가격밖에 없어요. 지역성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나만의 고유한 가치를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 지금까지는 주택공급, 대량생산을 해오던 시기라면, 지금은 자신만의 가치를 반영하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발아하는 시기인 거 같아요.
그렇죠. 점점 요구가 생겨나겠죠.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나도 큰 집에 살 수 있을 거 같고, 나도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 같던 시절이었단 말이에요. 내가 자본주의 계단을 올라갈 수 있을 거로 기대했는데, 그 턱이 점점 높아지면서 좌절이 생기니까 ‘이제는 줄 세우기만으로는 올라갈 수가 없고, 나만의 고유한 가치를 찾아야 한다’는 욕구가 점점 생겨나는 것 같아요.

돈으로 채우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가장 손쉽게 일어나는 것이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는 일이죠. 내가 좋은 집에서 살 수는 없지만 호텔 사진을 찍어 올리고, 푸켓에서 살 수는 없지만 풀빌라 사진을 찍어 올리잖아요. 그것을 소유는 못하더라도 경험한 것은 내 것이 되는 거고, 그것을 통해서 나 자신을 데코레이션하는 거잖아요. 사이버 공간을 꾸미면서 어느 정도 나만의 가치를 충족하는 거죠.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이 가치를 두는 것은 무엇을 소유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경험하느냐입니다.

왜 맛집에 가서 줄을 서느냐면 줄을 서서 먹는 식당들은 돈만 있어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이에요. 시간이 있어야 가능하죠. 대기업 회장도 맛집에 가면 똑같이 1시간을 기다려야 요리를 먹을 수 있어요. 내가 1시간을 기다려 맛집의 요리를 먹는다면 남들은 가지지 못한 레어 아이템을 획득한 게 되고 그게 나의 인테리어가 되는 거죠.

안타까운 것은 그것이 우리 공간을 더 좋게 만드는 것이면 좋겠는데, 그게 안 되다 보니까 다 여행으로 때운다는 거예요. 우리 도시에 멋진 건축 공간이 없으니까 유럽에 가서 멋진 건축물 앞에서 사진을 찍어 때우는 것이고, 그것을 사이버 공간에 붙여 넣는 것이죠. 그런 것들이 아쉬운 거예요. 왜 우리나라 새로 지어지는 공간에서는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공간이 없는가. 그것은 우리가 이 시대에 책임을 다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우리가 지은 건축물은 후대로 다 넘어가잖아요. 우리가 죽은 다음에도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가 만드는 공간구조는 어떻게 보면 후대에 선물하는 것인데, 우리가 그런 걸 잘 못 하고 있는 거죠. 우리는 아파트와 다세대 주택만 넘겨주게 될 겁니다.

- 앞서 글쓰기의 즐거움을 실감한다고 하셨는데 글쓰기를 통해서 다음에 보여주실 내용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굉장히 많아요. 다만 고민스러운 점은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콘텐츠에는 한계가 있잖아요. ‘한 이야기 또 하네’ 하실까 봐 걱정이 되고 부담스럽죠.

전작에서는 제가 과거와 현대를 종횡무진으로 이야기했다면, 다음에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건축공간과 인간사회에 관한 통시적인 이야기에요. 건축공간이 환경에 영향을 주고, 그것이 인간사회에 영향을 미쳐 사회변화를 유발하고, 그것이 또 다른 건축을 만드는 그런 단계에 관하여 책을 쓰고 있어요.

- 이전에 도시를 유기체에 비유하셨는데 그에 관한 심화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나요?
전작은 도시 자체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는 인간에 좀 더 초점을 맞추려고 해요. 도시와 사람에 관하여 반반 정도의 비중으로 다루고, 동등한 관계에서 서로 대화하는 것과 같은 그런 책이 될 거 같아요.

유현준은…
홍익대학교건축대학 교수 및 (주)유현준건축사사무소(Hyunjoon Yoo Architects) 대표 건축사. 미국 건축사. 하버드대학교, MIT, 연세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하버드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한 후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하였다. MIT 건축연구소 연구원 및 MIT 교환교수(2010)로 있었다. 그는 2017년 시카고 아테나움 건축상, 독일 디자인 어워드, 아시아건축가협회 건축상, 아시아 시티스케이프 어워드, 서울시 건축상, 2013 올해의 건축 Best 7, 2013 김수근건축상 프리뷰상, CNN이 선정한 15 Seoul’s Architectural Wonders, 2010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 대통령상, 2009 젊은건축가상 등 30여 차례의 각종 국제 및 국내 건축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훌륭한 건축은 건축주와 함께 만들어 간다는 생각으로 <명견만리>, <알쓸신잡2>, <어쩌다 어른>, <20세기 소년 탐구생활> 같은 방송 출연과 「조선일보」에 ‘도시 이야기’, 「중앙선데이」에 ‘유현준의 도시와 건축’, 「매일경제」에 ‘I ♥ 건축’ 같은 칼럼으로 일반인에게 알기 쉽게 건축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그의 글은 통섭적이고 통찰력이 있다는 평을 얻고 있다. 그의 홍익대 인기 교양 수업 ‘현대건축의 흐름’은 정부의 KMOOC 프로젝트로 선정되어 동영상으로 제작되었고, 전 세계에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제공되고 있다. 저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2015년 ‘작가들이 선정한 올해의 책’ 최종 4권의 후보에 들기도 하였다.

그 외 주요 저서로 『현대건축의 흐름』, 『52 9 12』, 2008 문화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모더니즘: 동서양문화의 하이브리드』가 있다. 『모더니즘: 동서양문화의 하이브리드』는 상하이 동제대학교 출판부에서 주요 도서로 선정되어 중국어와 영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 Editor - 송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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