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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며느리 사표』 영주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


착한 딸로 25년, 맏며느리로 23년을 살아온 한 여자가 있다. 시아버지는 9남매 중 장남이고, 남편은 3형제 중 장남이어서 그녀는 결혼과 동시에 ‘맏며느리’가 되었다. 집안에서 며느리 ‘서열’은 가장 아래에 있어서 다른 이의 밥상과 술상을 모두 챙긴 후 마지막에 밥을 먹어야 했고, 귀퉁이에 앉아 밥을 먹다가도 다른 이의 술이나 안주가 떨어지면 수시로 일어나 준비해야 했다. 결혼 후 첫 가족행사에서는 끼니도 챙기지 못하고 늦은 밤까지 밥상과 술상을 차리다 쓰러져 응급실에서 눈을 뜬 일도 있었다.
그리고 23년 후, 그녀는 홀연히 시집에 ‘며느리 사표’를 낸다. 주변의 모든 사람은 그녀를 비난했다. 그녀는 아무도 지지해 주지 않는 외로움을 감수한다. 며느리 역할에서 벗어나 한 사람으로서, 일 인분의 삶을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며느리 사표』는 작가 영주가 일 인분의 삶을 살기 위해 고민하고 분투한 시간을 담았다.





며느리 사표에 대해 모두 반대하고 온 세상이 반대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다. 23년 며느리로서 잘했다고 할 순 없지만 할 만큼 했기 때문에 떳떳했다. 25년은 어머니의 착한 딸로 살았고, 23년은 며느리, 엄마, 아내 역할로 살았다. 남은 인생은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고 싶다. (25쪽)

- 이름도 생소한 ‘며느리 사표’를 내밀기까지, 많은 고민을 하셨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며느리 사표를 내야겠다고 결심하신 이유, 실행하시기까지 고민이 궁금합니다.
남편에게 이혼을 선언하고 받아낸 3가지 약속 중 제게 가장 중요했던 첫 번째는 ‘역할이 아닌 한 인간으로 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며느리 아내 엄마 역할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만큼만 하겠다.’고 하고 둘째 아이 고3 졸업 후 엄마 역할도 졸업하였습니다. 주부 휴식년을 보내고 엄마, 아내 주부 역할 옷을 벗었는데 여전히 벗지 못한 역할이 며느리였습니다. 남편이 친정에 아무런 의무도 없듯이 며느리 또한 의무적인 역할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지켜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해 추석이 다가오니 별로 무거운 것도 없는데 이것마저 다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살아오면서 남편과의 관계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사실은 시댁에서의 며느리 역할이었습니다. ‘왜 며느리를 그만두는 것은 이혼하거나 죽거나 아예 인연을 끊는 것 밖에 없을까? 남편은 친정으로부터 자유로운데 왜 나는 여전히 며느리 역할에서 자유롭지 못하는가? 이게 무슨 차이 때문이지? 단지 남자, 여자이기 때문인가? 왜 여자는 그래야 하는데?’라며 고민했습니다. 23년 며느리로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고 욕을 먹어도 한 개인으로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 며느리 사표를 제출하셨을 때, 담담하게 받아들이셨던 시부모님과 달리 주변 반응은 굉장히 냉담했다고요. 이해나 지지는 없고 비난이 컸어요. 주변 모든 사람이 다 반대할 때 작가님 마음은 참 외로웠을 거라고 짐작했습니다. 실제 어떠셨나요?
질문만으로도 공감 받는 느낌입니다. 외로움뿐만 아니라 두려움이 컸는데 그 누구의 도움도 지지도 받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위험하다고 느낀 것은 이뿐 아닙니다. 딸 아들을 내보낸 것, 집을 나가 혼자 산 것. 집을 두고 돈도 안 벌면서 원룸을 마련한 것. 모두 두렵고 겁났습니다. 왜냐면 저의 선택과 결정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저 한 사람의 몫이었기 때문입니다. 결정을 하고 그 뒤의 일어날 예측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그 누구와도 의논할 수 없었고 물어볼 수 없었기에 무척 두려웠습니다. 가장 가까운 남편에게조차도. 나 혼자 결정해야 하는 일들이 돌 맞을 일이었으니까요. 그럴 때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필사즉생 필생즉사’였습니다. 죽기를 각오하면 못할 일이 없었습니다.

- 『며느리 사표』 책의 반향이 상당합니다. 책 출간 이후 독자들의 피드백도 다양하게 받으셨을 거 같아요. 어떤 반응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저의 용기에 지지와 박수를 보내주시는 분들이 가장 많았어요. ‘『며느리 사표』만으로도 시원하다.’ ‘어떻게 사표를 생각할 수 있었는지 놀랍다.’ ‘사표 말고도 도움 되는 내용이 많다.’ ‘남편들이 꼭 읽어볼 내용이다.’ 등등.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최근 특강에서 만난 독자분입니다. 중년 남자분인데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자신은 세 여자와 살고 있다. 어머니, 아내, 딸. 모두 착해서 지금까지는 별일 없이 집안일에 순응하며 잘해오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이혼선언이나 며느리 사표를 낸다면 아찔하다. 이번 명절에 작은 혁명을 만들었다. 불필요한 많은 제사 음식들을 모두 없앴다. 자신의 집에서는 그것이 혁명이었다. 그랬더니 여유로운 시간이 많았다. 앞으로도 (아내가 사표를 내기 전에) 작은 혁명들을 계속 이뤄나가려고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남자들의 반응, 그것도 중년 남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이 참 감사했습니다. 물론 부정적인 반응들도 꽤 많았지만요.

- 시아버지는 9남매 중 장남, 남편께서는 3형제 중 장남입니다. 결혼과 동시에 시댁에 편입되어서 개인이 아닌 ‘며느리’로 삶을 사셨어요. 개인의 시간과 공간이 무엇보다 절실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저희 어머니도 맏며느리로 사신 분이라 상당히 공감하며 책을 보았습니다. 어쩌면 60년대(어쩌면 그 이후에도)에 태어난 여성 대부분은 그렇게 개인의 삶을 버리고 ‘며느리’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며느리로서 살아가실 때 작가님에게 있어 ‘개인의 시간과 공간’ 혹 개인의 삶은 어떤 의미였을지 궁금합니다.
저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냥 좋아했지 왜 좋아하는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제주도를 매년 많게는 5,6번에서 최소 2번씩은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왜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행은 나를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합니다. 밥 걱정할 필요도 없고 무엇을 해야만 할 일도 없습니다. 아무런 의무도 책임도 없는 곳. 그래서 좋아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행에서만이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유로운 곳이었고, 온전한 나로 있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책에서도 집 밖이 편하다고 언급했는데 여행을 좋아했던 것은 집 밖에서 확보된 시간과 장소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반대로 여행이나 집 밖이 아니면 나 개인의 시간과 공간, 개인의 삶을 온전히 누리기 힘들었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이제는 굳이 여행지를 찾지 않아요. 지금 이곳에서 여행지처럼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집 안이든 나가든 홀가분하고 자유롭습니다.

- 지난달 설 연휴가 지났습니다. 끼니도 챙기지 못한 채 집안 행사를 준비하다 쓰러진 일화가 책에 등장하기도 하지요. 이번 명절은 어떻게 보내셨는지, 여쭤보고 싶었어요.
책에 나온 대로입니다. 남편은 먼저 일어나 시아버님 시동생과 함께 시조부모님의 납골묘를 가고 저는 느지막이 일어나 준비하고 11시쯤 시댁에 갔습니다. 12시쯤 납골묘에서 돌아오면 함께 점심을 준비해서 먹고 커피를 마시고 오랜만에 시누, 동서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쑥쑥 커가고 있는 쌍둥이들을 보고 각자 편히 있다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작년 설부터 친정을 다녀와서는 남편, 딸 아들 넷이 고스톱과 루미큐브를 했습니다. 명절마다 늦은 밤까지 고스톱을 치고 함께 맥주도 마십니다. 명절 전날엔 남편과 영화를 보고, 이런 일들이 우리 가족의 명절놀이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제는 명절의 즐거움을 누린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입니다.

왜 여자들은 순진한가? 너무 순진해빠진 것은 이용당하기 딱 좋은 사냥감이 된다. 스스로 배에 접근한 남방참고래처럼, 도와주고 헌신하려는 순수한 마음 때문에 좋은 이용감이 된다. 게다가 여성 자신을 죽이는 ‘여자는 ~해야 한다’는 내면의 목소리도 한몫 거든다.
가부장 문화에서 여자들에게 은근히 강요되는 것이 ‘여자는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자는 순수(순진)하고 착해야 한다, 예의 바르고 상냥해야 한다, 참고 헌신적이어야 한다, 남자에게 순종적이어야 한다, 목소리가 크면 안 된다…. 그래야 여자답고 아름답다, 그런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받는다고 가르친다. (104~105쪽)


- ‘왜 여자들은 순진한가?’ 문답하시는 부문을 보면서 저도 자문해 보았어요. 저에게도 순진하고 착해야 한다는 내면의 목소리가 있더라고요. 착해야 한다, 순진해야 한다는 내면화된 족쇄를 끊기 위해선 자신을 알고 이해하고 표현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할 것 같습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끊어내기 위해 작가님은 어떠한 과정을 거치셨는지 궁금합니다.
가장 먼저 착한 아이의 뿌리를 두고 있는 친정어머니께 착한 딸 역할을 그만두었습니다. 어느 날 보니 제가 어머니의 엄마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문제해결 해주려고 하고 무슨 일만 있으면 달려가고 여전히 어머니가 좋아하는 것을 해주려고 하고 있는 나! 서서히 그만두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주 찾아뵙지 않는 나에게 외롭다며 하소연할 때 죄책감도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지금은 여든으로 혼자 사시는데도 외로움을 자식들에게 의존하지 않으시고 열심히 운동 다니시며 친구 분들과 맛집도 다니며 바쁘고 즐겁게 사십니다. 놀라운 것은 그 연세에 게이트볼 아마추어 동네선수로 선발되어 다른 지방까지 대회도 나가며 상도 타고 오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성당을 다녔는데 부부 싸움을 하고 나서 어느 날 남편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성당 다니는 사람이…….” 마치 성당을 다니면 성모마리아의 모습이라도 되어야 한다는 투였습니다. 처음엔 그 말이 죄책감을 불러 일으켰고 혼란스러웠습니다. 그 이후로 또 그 말을 들었을 때 나 자신을 속박하는 족쇄처럼 느껴졌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다니던 성당도 그만두었습니다. 더 이상 좋은 아내, 착한 여자로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님을 내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더 이상 착한 사람으로 살지 않겠다는 생각을 다졌습니다.
진정한 착함은 무엇인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냥 착한 것은 자신에게 만이 아니라 결국 모두에게 나쁘다는 것입니다. 모두에게 선이 되는 것이 진정한 착함이라 여깁니다. 저는 나와 너, 우리 모두에게 이로운 일은 하늘이 돕는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이 일이 내 욕심을 위해서 하는가, 당신과 나 우리 가족 모두를 위해서인가. 보기에는 비정한 엄마, 아내 같아도 내 욕심이 아니라 더 큰 선, 이익을 위한 일이라면 기꺼이 실행하고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모두에게 선인지는 시간이 지나야 했고, 증명되기까지 그것을 견뎌내야 하는 것은 온전히 나 한 사람의 몫이었습니다.


- 책에서 ‘일 인분의 삶’을 강조하신 것이 인상 깊습니다. 관계의 기본은 각자가 일 인분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해 주셨는데요. 생각해보면 한국의 가족관계는 각자 자기 삶의 일 인분이 아니라 특정 구성원의 희생에 기반을 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가족관계가 ‘일 인분의 삶’에 기반을 두기 위해서는 어떠한 전환이 필요하겠습니까?

의식의 전환입니다. 경험하고 나니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밀착을 친밀로, 거리두기를 소외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저도 경험하기까지는 그것을 증명할 수 없었으니까요. 밀착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하고 모두에게 결핍감을 줍니다. 그러나 거리두기는 소외와 외로움 같지만 각자 자신의 돌봄을 위해 모든 역량을 발휘하게 되고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일인이 함께 만나면 친밀과 풍요로움을 느낍니다. 이때 1+1=2가 아닙니다. 3도 되고 10도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나면 반갑고 소중하고 더욱 친밀감을 느끼며 서로에게 친절합니다. 그러므로 가까운 사이일수록 일정한 거리두기는 중요하가 여깁니다.

현대인들의 문제는 이런 통과 의례가 없다는 데 있다. 몸은 어른인데 마음은 아이인 ‘어른아이’로 살아간다. (58쪽)

- 책을 보면서 상당히 공감했습니다. 주도적으로 자기 인생을 결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이 없이 몸만 어른이 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일 인분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해 자녀들을 독립시키신 게 인상 깊었어요. 부모는 자녀 일에는 마음이 약해지게 마련인데, 참 과감한 결단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내적인 갈등도 적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독립을 시키시며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며느리 사표처럼 딸 아들 독립시키는 것도 저 혼자 판단하고 결정한 일이라 두려웠습니다. (남편은 반대했기에) 말씀대로 마음으로 견뎌주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딸은 처음에 독립을 쫓겨나는 것으로, 버림받는 아이처럼 느낌을 받고 한숨을 쉬고 눈물을 보였습니다. 취직 때까지만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 흔들렸지만 그러면 더 독립하기 어려워질 거라 판단을 하고 버텨주었습니다. 지금이 가장 적기라며.
딸 아들의 독립에서 중요한 것은 부모로서의 독립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 부부가 점점 나이 들수록 딸 아들에게 의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식에게 짐을 얹는 격이 되기에 조금이라도 젊을 때 우리 스스로에게도 훈련이 필요하다 여겼습니다. 그것을 딸 아들도 이해하고 받아들였습니다. 딸 아들의 독립은 결국 우리 부부의 자녀로부터의 독립이기도 한 것입니다.

- 책에서 꿈에 관한 풀이들이 참 많이 등장합니다. 꿈을 통해서 자신을 그렇게 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구나 싶어 신기했어요. 작가님 자신의 꿈 이야기도 책 속에 많이 등장하는데요. 자신의 무의식을 솔직히 드러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 어떠셨나요?
물론 쉽지 않았습니다. 경험상 꿈작업을 할 때, 부끄럽지만 제가 먼저 솔직하게 옷을 벗을 때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벗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더욱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연결감을 느끼며 그룹 작업의 효과를 보게 됩니다. 글에서도 마찬가지라 여겼습니다. 가장 솔직한 것이 가장 진실이 잘 전달될 수 있을 거라 여겼습니다.

- 가족꿈심리작업소를 운영하고 계시다고요. 이름이 조금 생소한데요. 가족꿈심리작업소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작가님은 작업소 일을 통해 어떤 역할을 하고 싶으신지 여쭙고 싶어요.
2004년부터 부모교육 강사로 활동하였고, 2015년부터 ‘가족꿈심리작업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족꿈심리작업소는 꿈을 통해 부모와 자녀, 가족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꿈심리 강의와 거울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꿈작업은 치유차원을 넘어 일 인분의 온전한 자신으로서 풍요롭게 사는 것, 가족과 인간관계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한 구체적이며 실제적인 작업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저는 블로그에서 ‘꿈로바’로 활동합니다. ‘로바’는 서양 민담에 나오는 할머니 여신입니다. 로바는 강으로, 산으로 다니면서 뼈를 모으는데 특히나 늑대 뼈를 좋아해서 늑대 뼈를 모아 형체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위에 로바가 노래를 부르면 늑대 뼈에 살이 붙고 피가 돌고, 노래를 부르면 털이 나고 생기가 돕니다. 다시 또 노래를 부르면 숨을 쉬고,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 들판으로 달려갑니다. 어느덧 늑대는 여자가 되어 달려간다고 합니다. 로바는 우리 자신 안에 있는 ‘늑대 같은 야성’을 살려내는 여신입니다. 저는 저 자신에게 질문하고, 며느리 사표를 내고, 주부 휴식년을 선언하고, 졸혼을 해보면서 잃어버린 나를 찾았습니다. 오랫동안 죽어있던 저 자신을 살리고, 내 딸이 살아나고, 또한 주변의 여성들이 자신으로 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꿈작업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없게 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여성이 남편 집으로 들어가는 방식의 결혼”을 손꼽으신 적이 있어요. 남녀가 모두 동등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지금 결혼제도에서는 어떤 점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나라는 혼인신고를 통해야만 부부로 인정합니다. 그러한 결혼제도가 여성에게는 더욱 자유롭지 못한 역할에 묶인다고 여깁니다. 점점 일인가족, 비혼 등 다양한 가족 형태가 늘어나고 있는데 유럽처럼 사실혼이 인정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인이 12년째 동거로 살고 있습니다. 혼인신고만 안했지 부부입니다. 그런데 시댁에서나 친정부모는 결혼식, 혼인신고를 안 했기에 며느리, 사위 역할에 대한 기대가 없습니다. 나이 드신 부모님들은 그들이 결혼을 안 했다는 이유로 여전히 남이기에 그 어떤 기대를 갖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오히려 진짜 둘만의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남편과 결혼하고 싶었는데 결혼하고 나니 시댁과 결혼한 꼴이 되었습니다.
진정한 결혼은 부모를 떠나 둘만의 가정을 이루며 사는 것입니다. 진짜 부모를 떠나야 서로가 잘 살수 있다고 봅니다. 부모는 자식이 결혼한다면 이제 자신에게 자식은 죽은 것과 같다고 봅니다. 한 가정의 남편과 아내로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가정을 이루고 부모는 부모의 가정에 최선을 다하는 일, 그것이 모두가 잘 사는 길이라 여깁니다.

영주는…
장녀로 태어나 ‘착해야 사랑받는다’고 스스로 여기며 성장했다. 연애 시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만날 정도로 사랑했던 사람과 결혼해 시댁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대가족 장남의 아내로 새벽 5시부터 음식을 준비하고 수많은 손님들을 맞이하며 줄곧 ‘며느리’로 불렸다. 자신의 시간을 보내느라 늘 바쁜 남편의 부재와 무관심 속에서 그저 두 아이의 엄마로 사는 것이 전부인 줄만 알았던 삶이었다. 그러던 결혼 23년 차, 명절을 이틀 앞둔 어느 날 시부모님께 ‘며느리 사표’라고 쓴 봉투를 내밀었고, 이후 혁명에 가까운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이 책은 “어떤 역할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겠다.”라는 선언을 담은 서약서를 남편에게 받아내고 며느리 사표를 쓰며 부당한 의무를 거부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갓 대학을 졸업한 딸과 아들의 분가를 통해 가족 모두가 ‘일인분의 삶’을 만들어가기까지의 순간들을 5년여에 걸쳐 기록한 결과물이다. 나약하다고 생각했던 그가 ‘진짜 나’를 되찾는 독립 투쟁에 성공할 수 있었던 성찰과 용기는 꿈 작업 덕분에 가능했다. 꿈 작업은, 외면하고 포기하고픈 삶에서 벗어나 풍요롭고 평화로운 삶으로의 전환을 열어주었다. 2004년부터 부모 교육 강사를 시작으로 ‘가족꿈심리작업소’를 운영하고 있고, 꿈 작업 강의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 Editor - 송보배
10rim@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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