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칼이 될 때』 홍성수 “혐오표현에 대한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

“… 바야흐로 ‘혐오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저자 홍성수는 오늘날을 ‘혐오의 시대’로 규정했다. 오늘날은 TV, 라디오, 나아가 개인 인터넷방송 등 다양한 채널이 쉴 새 없이 목소리를 쏟아내고 수많은 개인들이 SNS를 통해 이야기를 재생산한다. 각종 사건과 생각들이 여과지 없이 유통된다. 매체, 플랫폼의 성향에 따라 논조와 대상이 달라지며 그 과정에 혐오표현이 쉽게 오르내린다. 혐오의 대상은 여성, 남성 등 성별이 되기도 하고 학력, 출신 국가, 피부색, 성적 지향, 종교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혐오표현에 대한 통제의 부재를 지적하고 그것이 품은 위험성을 경고한다.
“혐오표현이 잠재적 가해자들 사이에서 확산성이 있다는 점도 혐오표현의 해악을 가중시킨다. …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는 혐오감정과 차별적 편견이 권력욕이나 경제적 궁핍, 사회불만 등과 결합되어 문제의 원인을 소수자에게 전가하고 희생양을 만들기도 하고, 혐오이데올로기가 후대에 전승되어 사회에 뿌리박히고 혐오조직의 결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83쪽)
당신의 SNS에 혐오표현을 쓰며 ‘ㅋㅋㅋ’을 남발하고 있는가? 언젠가 당신 또한 혐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저자 홍성수가 제시하는 ‘공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 출간 전후로 꾸준히 소수자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오셨습니다. 출간 이후 미디어 인터뷰며 원고 청탁 등 더 바삐 지내셨을 것 같아요.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책을 출간하기 전에도 인권이나 혐오표현에 관한 외부강의나 인터뷰를 많이 하는 편이었습니다만, 책이 나오고 난 뒤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곳에서 불러주시는 것 같습니다.
- 혐오표현의 정의와 유형, 사례, 해결방안 등 차근차근 오늘날의 혐오 문제를 정리해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사회에 만연한 ‘혐오’ 문제가 현재 위험수위에 다다랐다고 판단하신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한국사회가 유럽이나 미국처럼 증오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노골적인 인종, 종교 갈등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혐오 문제가 그렇게까지 심각한 것은 아니지 않냐는 의문인 거죠. 표면상으로는 그럴 수도 있는데요. 문제는 혐오가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는 차별이나 폭력으로 넘어가는 것이 꼭 단계적으로 천천히 진행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어떤 계기가 생겼을 때 순식간에 폭발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한국사회에서 이미 혐오가 곳곳에 만연해 있고, 이게 언제 어떻게 폭발할지 모르는 상태라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죠.

혐오의 피라미드
혐오표현의 해악은 단순히 관념 속의 상상이거나 개인적인 불쾌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혐오표현이 구체적으로 입증 가능한 고통과 사회적 배제를 낳고 있으며, 혐오가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졌던 역사적 경험 또한 무시할 수 없다. (84쪽)
-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혐오에 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증폭되기 시작했습니다. 도서 업계에서도 ‘페미니즘’에 대한 책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고요. 이 와중에 선생님께서는 페미니즘에 국한되지 않고 좀더 폭넓게 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혐오표현을 쟁점으로 잡으시고 오늘날을 ‘혐오의 시대’로 규정하셨습니다. 논지를 페미니즘에만 한정짓지 않고 ‘소수자’와 ‘혐오표현’에 두신 이유가 있나요?
혐오는 한 사회의 문제나 고통의 원인을 엉뚱하게 소수자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이 때 한 소수자 집단이 아니라 복수의 소수자 집단이 선택되기도 하고요. 혐오가 확산되기도 합니다. 어떤 소수자 그룹이냐의 문제일 뿐 혐오의 논리는 똑같거든요. 그래서 동성애 혐오하는 집단이 이슬람이나 이주자 혐오도 쉽게 하는 거고요. 여성혐오 같은 경우도 여성이라는 집단에 한정되는 게 아니라, 이주자 여성에 대한 혐오, 장애인 여성에 대한 혐오로 확산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여러 소수자 집단에 대한 혐오에 동시에 맞서 싸워야지, 어떤 특정 소수자 그룹에 대한 혐오에만 대항해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요.
- 직접 소수자 연대의 현장에 뛰어들어 목소리를 내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인권법을 공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인권단체나 인권활동가들, 소수자 당사자들과 교류할 기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늘 겸허한 마음으로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고, 긴장감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 연대의 현장에서 가슴 뭉클한 적이 있다면요? 연대의 힘을 느꼈던 순간, 또는 공존의 가능성을 목격한 순간 등 기억에 남는 연대의 현장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서울시민 인권헌장 사태 때였던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전문위원으로 전 과정에 관여했었는데, 결국 헌장 제정이 좌절되어 크게 상심했었죠. 그런데 그 때 서울시청사에서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이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성소수자 당사자들도 많이 참여했지만, 그 외에도 정말 다양한 분들이 함께 했습니다. 곳곳에서 농성을 지지하는 후원물품이나 후원금도 많이 들어왔고요. 자유로우면서도 민주적인 의사결정에 따라 농성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지지와 연대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 차별받아온 역사적 맥락이 없었던 남성일지라도, 웹상에서 오가는 남성혐오 발화는 때로 굉장히 선정적이고 폭력적입니다. 비록 그 발화가 위험 초래의 가능성이 낮더라도 남성의 입장에서 다소 모욕감을 느낄 것 같습니다. 나아가 그와 같은 표현이 인터넷 댓글 또는 개인 미디어(ex.인터넷 방송) 등에서 여과없이 노출됐을 때 이를 판단력이 미숙한 아이들이 수용하는 경우를 가정해본다면, 미러링 역시 소수자의 대항표현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실제로 어떤 특정 집단을 싸잡아서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는 늘 조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백인이 흑인이나 히스패닉에 비해서 강자이긴 하지만, 백인을 혐오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거든요. 하지만 오랜 기간 차별받았고 지금도 차별받고 있는 흑인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거하고, 그런 조롱에 맞서 백인을 조롱하는 것을 동일한 문제로 삼는 것은 부당하다고 봅니다.
최근의 미러링 같은 경우에는 아무 맥락도 없이 남성혐오 자체를 목적으로 삼았다기 보다는 여성혐오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나온 거거든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성주체들이 새롭게 저항에 동참하게 되었고요. 그런 점에서 보면 남성혐오를 여성혐오만큼 위험하거나 해악적인 문제라고 보긴 어렵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또한 단순히 모욕감을 느낀다는 것과 실제 차별과 배제, 폭력으로 연결되는 것은 다른 문제거든요. 일례로 “여자는 3일에 한 번씩 맞아야 한다”(삼일한)는 말이 만연했을 때 여성들이 느끼는 위협과 “남성은 숨 쉴 때마다 한 번씩 패야 한다”(숨쉴한)는 말을 들었을 때의 남성들의 위협은 같다고 할 수 없죠. 후자도 물론 기분이 나쁠 수는 있겠지만 전자만큼 해악적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고요. 그 차이는 현실세계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과 남성에 대한 폭력이 같지 않기 때문이고요. 그게 차이가 나니까 어떤 말의 해악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 표현 중 ‘혐오표현’을 특별하게 문제 삼게 된 이유도 바로 이거고요.
- 공존의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책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방송 심의에 관한 규정’에서의 차별 금지 조항, 학교 교육과정의 방향성 등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보며, 이 책이 우리 사회 변화의 단초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혐오표현을 직접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논란도 많고 부작용도 적지 않고요. 저는 금지와 처벌도 반대하진 않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방송이나 학교 같은 영역에서 혐오표현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 오늘날 우리 사회를 ‘절박한 상황’(230쪽)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편견과 혐오표현을 넘어, 강남역 살인사건과 같은 물리적인 혐오표현(증오범죄)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거라고 보시나요?
그건 제가 예언을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가능성은 있죠. 주요 국가들 중 한국사회처럼 혐오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아무런 제재가 없는 것이나 다름 없으니까요. 혐오표현이 난무한다면 자연스럽게 혐오표현의 내용을 실천에 옮기게 됩니다. 여기에 사회경제적 여건이 악화되어 소수자 혐오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되거나, 어떤 정치선동가가 그것을 부추기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습니다. 사실 크고 작은 폭력은 지금도 있습니다. 그것이 증오범죄라는 통계로 잡히지 않을 뿐이죠.
- 최근 작성하신 충남 인권조례 폐지 문제에 관한 사설에서 “최근 유엔은 지방정부에서의 인권 실현에 관심이 지대하다. 지난 2013년 유엔 인권이사회는 ‘지방정부와 인권’ 결의안을 채택했고 본격적인 인권도시 운동에 시동을 걸었다.”라는 유엔의 움직임이 흥미로웠습니다. 이는 좀더 작은 부분으로부터의 변화에 필요성을 느낀 걸까요?
유엔에서도 인권이나 차별 문제는 가장 큰 관심사 중에 하나인데요. 유엔이나 국가 단위에서 조치를 취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지방정부와 인권 문제에 주목하기 시작했죠. 한국에서도 인권, 차별 문제와 관련해서 지방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 차별과 혐오표현은 쉽게 사라지지 않겠죠. 『말이 칼이 될 때』 출간 이후 소수자의 인권, 차별 문제 등에 있어서, 앞으로도 선생님의 목소리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더욱 많아질 것 같습니다.
혐오와 차별은 한국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우리보다 훨씬 더 강력한 반혐오/반차별정책을 실시해온 유럽에서도 여전히 큰 사회문제에요. 어느 한 정책이나 법률로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가 바뀌어야 되는 문제인 거죠. 당장 효과가 없더라도 하나하나 필요한 일들을 해 나가야 하고요. 저도 그 움직임에 보탬이 되려고 합니다.
- 다음으로 준비하고 계신 책이 있다면요?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올해 중으로 영화를 소재로 해서 법과 정의, 인권 문제를 다루는 책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연구 성과가 쌓이면 종종 폭넓은 대중을 대상으로 책을 내보려 합니다.
| Editor_박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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