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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숨』 모자 “언젠가는 나의 숨이 당신에게도 닿을 테니까”


마음에 습기가 가득 차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마르지 않는 날이 있었다. 마음의 습기는 곧 퀴퀴한 냄새를 풍기고, 점액질로 엉겨 붙어서 그런 날 나는 거리에 함부로 뱉은 콧물이나 가래침 같았다.
고작 이런 게 삶이라면 어째서 이어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233쪽)
모자 작가의 『숨』에는 이미 점성이 생겨 눈으로 흘려보낼 수 없는 슬픔과 폐부에 스며 떼어낼 수 없는 외로움이 있었다. 옥상에서 이런 삶을 어째서 이어가야 하는가를 고민하다가,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조금 더 살고 싶어 내려왔다는 이야기가 『숨』의 에필로그를 대신한다. 옥상에서 내려와 그가 한 일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옥상에서 본 평범한 사람들, 아주 작은 삶의 조각들을 떠올리면서.

모자의 두 번째 책인 『숨』은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굳이 구별하지 않은, ‘소설 같은 에세이’다. 책의 정체성은 시계를 가린 안개와도 같은데,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에게 이름이 없어 읽을수록 더욱 흐릿했다. ‘그’ 혹은 ‘그녀’라는 익명이 이름을 대신했다. 그 혹은 그녀였기 때문에 책 속의 이야기는 오늘 내가 스쳐온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 같았고 오늘 그들을 스쳐간 나의 이야기 같았다. 옥상에서 수없이 ‘고작 이런’ 삶에 번민하고, 그럼에도 수없이 ‘삶’을 택해 내려오는 이들의 이야기가 거기 담겨 있었다.
서면으로 나눈 작가 모자의 인터뷰를 전한다.





- 『숨』은 작가님의 두 번째 책입니다.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과정이 궁금해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우선, 작가라는 호칭을 달아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게는 참 과분한 단어인 것 같네요. 시작은 출판사에서 일하던 지인의 권유로 글을 쓰게 되었어요. 첫 책이 나오는 순간까지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았죠. 그 이후로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독서량도 늘리고 공부도 하게 됐어요. 책이 나온 이후에 부족함을 느꼈다고 할까요. 아직도 한참 부족하지만 꾸준히 작가의 길을 걷다 보면 언젠가는 저도 좋은 글을 쓸 수 있겠죠.

- 『숨』은 에세이면서 소설이면서 시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투명하면서도 춥고 아픈 이야기를 모아놓은 우화 같기도 했고요. 하나의 장르로 수렴하지 않는 이야기로 『숨』을 구성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처음에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도대체 삶이 뭔지 알 수 없었거든요. 그런데 인생에는 정해진 형식이 없잖아요. 누군가는 에세이 혹은 소설처럼 살아가고, 누군가는 시가 되어 살아가겠죠. 삶을 하나로 규정짓고 싶지 않아서 다양한 구성을 의도했어요. 제 나름대로는 ‘각자의 인생을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삶이 아닐까 하고 결론을 냈다고 할까요.

-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름이 없이 ‘그’ 혹은 ‘그녀’로 불립니다. 그 익명성을 통해서 제 주변에서 지나쳤을 여러 사람을 떠올렸습니다. 자전적 이야기도 있고 실제 모델들도 있을 것 같은데, 실제 어떤가요?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살아가며 마주친 사람들입니다. 물론 타인의 이름을 빌려 제 이야기도 했어요. 제게는 자전적인 이야기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저 역시 한 명의 ‘그’로만 존재하잖아요. 또 그들을 제 삶에 데려오기보다는, 제가 그들과 동일 선상에 존재 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 『숨』의 이야기를 적기 위해선 무명, 익명이 필요 했으리란 짐작도 드는데요. 그런데도 여쭙고 싶습니다. 왜 무명, 익명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셨는지요?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처럼 이름은 그 사람을 특별하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이름이 부여되는 순간 이야기가 그 사람에게 귀속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독자들이 제가 겪은 이야기를 통해 자기 주변의 누군가를 떠올리길 바랐어요. 그래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제 존재도 의도적으로 이야기에서 제외했죠. 만약 독자들이 책을 읽고 주변의 누군가를 추억한다면 제게는 감사한 일이 될 것 같네요.

- 자신을 너무 드러내고 싶지는 않다는 그런 마음이 투영된 것일까 하는 생각도 조금은 들었는데요. 필명이 모자인 이유, 그리고 작가님께서 모자를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다면?
사실 필명 자체에는 큰 의미가 없어요. 제가 원래 한 가지에 집착하는 성격인데 마침 첫 책인 『방구석 라디오』가 나올 때쯤 모자 수집에 열을 올렸거든요. 만날 때마다 모자가 바뀌는 걸 보고 책 속의 ‘그녀’가 필명을 추천해줬어요. 그때부터 별 의미가 없던 단어가 제게는 특별해졌고, 앞으로도 계속 모자라는 필명을 쓸 생각입니다. 뭐, 모자란 저를 잘 수식하는 단어이기도 하고요.

그는 한 번도 등대지기를 본 일이 없었다. 바닷가에서 우연히 등대를 발견한 것은 몇 번 있었지만 그게 어느 바다였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등대에 낙서를 하거나 사진을 찍었다. 아마도 여행지에서 우연히 발견한 기념비나 풍경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등대지기를 마주치더라도 알아볼 수 없으니, 등대지기는 그들의 세상에서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평생 엇갈려서 살아가느라 존재를 인식할 수 없는 존재. 그게 등대지기와 영사기사의 공통점이 아닐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35쪽)

- 책 속에서 영사기사와 등대지기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배경, 주변적인 인물들의 삶을 그리기 위해서는 그들 삶에 밀착한 경험이 필요했겠다 싶습니다. 영사기사와 등대지기의 이야기는 어떻게 그리셨는지 궁금합니다.
한창 영화에 빠져서 영화관을 밥 먹듯이 다니다가 보조기사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영사실에서 일하게 됐어요. 당시에는 필름 영화를 상영 중일 때라서 필름이 입고되면 영사 기사님이 편집을 해야 했거든요. 매번 머리를 질끈 묶고 필름을 만지는 기사님이 멋져 보이더라고요. ‘영사기사는 정말 매력적인 직업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영사기능사 자격증까지 따버렸죠. 이야기의 모티브가 된 인물도 영사실에서 일하다 만나게 되었고요. 등대지기라는 직업에 관해 아는 건 많지 않아요. 그저 우연히 신문기사에서 어느 등대지기 분의 인터뷰를 읽고 궁금해서 찾아봤어요. 바다를 보며 지내는 직업이라는 게 특별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짧게라도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는 혼자 울어야 할 일이 생기면 세수를 하는 것으로 끝을 내자고 마음먹었다. 눈물에도 동질감 비슷한 것이 있어서 누군가 함께 울어주면 덜 슬플지도 모르니까 수도꼭지라도 함께 울어주면 좋겠다는 이상한 결론이었다. (144쪽)

- 사는 게 아픈 일인 거 같습니다. 작가님 글을 보면서 많이 아프고 깊이 울어봐서 남도 아플 것을 아는, 그런 분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글을 보면서 먹먹하면서도 위안이 되는 경험을 했어요. 앞으로 글을 통해 구현하고 싶은 것 혹은 쓰고 싶은 글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세상은 따뜻하고 밝은 것만 존재하진 않는 것 같아요. 저는 양성적인 것보다는 조금 우울하고 어둡더라도 위안이 되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살다 보면 누구나 힘들고 지치는 순간이 있는데 그럴 때 위로가 되는 이야기면 좋겠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어떤 글이든 계속 쓸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 책의 제목이 ‘숨’인 이유는 춥고 외로운 우리 삶이 연결되어 있고 관계 맺고 있고, 그 연결이 살아가는 의미가 되기 때문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비가 누군가 흘린 눈물이라고 하신 것처럼, 그 연결성의 의미를 숨에 담으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책 제목 ‘숨’의 의미에 관해 여쭙고 싶습니다.
숨에 담긴 의미를 규정하고 싶지 않았어요. 위에서 이야기한 삶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 정도로만 이야기하고 싶어요. 실은 책의 독자들께서 숨이라는 단어에 각자 의미를 부여하길 바라는 마음도 컸죠. 그러면 삶이 다양한 만큼 숨의 의미도 다양해지지 않을까요.

- 에필로그인 「옥상에서」를 보면서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조금 더 살아보자고 마음먹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세상에 많은 삶이 가난하고 외롭고, 또 적지 않은 사람이 옥상에서 고작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실 텐데요. 지금 옥상에 계신 사람이 있다면 어떤 말을 들려주고 싶으신가요?
글쎄요. 무슨 말을 하려고 애쓰기보단 무슨 말이든 들어주고 싶네요. 이야기에 두서가 없어도, 끊임없이 반복되어도, 설령 하소연에 가까운 말이어도요. 조언이 필요했다면 아무도 없는 옥상에 올라가기보단 조언해 줄 누군가를 찾았을 테니까요. 옥상에서,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들으면서 같이 있어 주고 싶어요.



모자는…
세상을 마음으로 관찰하는 작가. 필명 모자의 의미는 작가의 말로 대신한다. ‘모자를 좋아합니다. 모자라서 그런 가 봅니다.’ 조금은 서툴렀던 자신의 지난 과거 속에서 ‘이렇게 살아도 될 것 같다’고 느낀 것들을 담담하게 고백하는 점이 매력이다. 꾸밈없이 담백하게 쓴 그의 글이, 진심으로 당신의 가슴을 울릴 것이다. 이 책에는 평범해서 더 특별한 일상의 기억들, 잊고 지낸 추억들, 알다가도 모를 마음의 조각들, 무심코 흘려보낸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세상을 향한 독특하고도 날카로운 관찰력이 돋보인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평범해서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일상이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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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 - 송보배
10rim@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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