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 김보통 작가 “ ‘진짜로 늦은 것’ 따위는 없다”

만화가, 수필가, 부정할 수 없는 어른. 김보통의 프로필은 간소하다.
데뷔작 『아만자』로 2014 오늘의 우리 만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2015 부천만화대상 부천시민만화상을 받고, 2015년부터는 수필가를 겸업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이런 삶을 예상한 것은 아니었다. 수년 전 그는 대기업에 들어가야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줄 알았고, 그 대기업에 들어가 새벽까지 야근을 거듭했던 회사원이었다. 회사를 뛰쳐나오면 불행할 줄만 알았으나 그래도 뛰쳐나온 이야기가 그의 첫 에세이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이다.
지난 1월 김보통은 우리가 잃어가는 풍경을 담은 에세이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을 펴냈다. 유년부터 이십대 초반까지, ‘도무지 맥락이란 없는’ 그의 삶을 담담하게 담았다. 한파가 기세등등한 지난 1월 25일 경기도 일산 작업실에서 만화가 김보통을 만났다. 마침 쉬는 시간을 맞은 그의 작업실에는 공기가 느릿하게 흘렀다.
아이 때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시간이란 어둑한 구석 어딘가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무료하게 얼쩡거리는 것 같았다. 귀찮은 손짓으로 휘휘 내저어도 하품을 쩍쩍하면서 낮잠을 청하다 뼈다귀 한 점 던져주면 그제야 잔걸음으로 사라지는 떠돌이 개 같았다. 무료하고 끈적하게 흘렀다.
어른이 되고 나니 시간은 손에 잡을 수 없는 신기루를 찾아 달리는 일 같았다. 점점 가속도가 붙는데 브레이크가 없어서, 가끔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를 잊었다.
사는 건 대체로 지치는 일이다. 죽을힘을 다해 달리는데 주변 사람들도 모두 죽을 똥을 싸며 달리니 나는 자꾸만 더디다 못해 뒤지는 기분이다. 그럴 때마다 이모부를 떠올린다. 자전거에 내게 줄 짜장맛 과자를 싣고 ‘흙에서 사리라~’라고 흥얼거리며 느릿느릿 논두렁 사잇길로 가로지르던 그 모습. 특별히 힘이 나지는 않기 때문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되려 잠시 멈춰 쉬고 싶어질 뿐. (159쪽)
뒷목이 자꾸 뻐근한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김보통 작가의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을 펼치는데, 피식 웃음이 났다. 도무지 긴장감이라곤 없는 만화가 김보통의 어린 시절과 그의 주변에 느물거리거나 느릿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정겨웠다. 팽팽하게 긴장감이 부풀려 하면 피식 바람을 빼는 김보통 작가 특유의 리듬에, 뻐근한 목덜미 근육이 조금 풀어지는 것 같았다고 하면 과장일까.
책을 보고 있자면 누군가 이렇게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괜찮다.”
직접 만난 김보통 작가는 그의 글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풀어지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담백하고 꾸밈없는 말 속에서 그 성정이 투명하게 비쳤다.
어쩌면 ‘진짜로 늦은 것’ 따위는 없을지 모른다. 1등으로 완주를 하거나, 마라톤을 직업으로 삼는 것은 불가능할지 몰라도 어찌됐든 나는 끝까지 달릴 수 있었다.
어렴풋이 살아갈 방향 같은 것도 알 수 있었다. 누군가를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록을 단축하는 것도, 완주를 해내는 것도 정말 중요한 것은 아니다. 못할 것 같은 일, 이미 늦어버린 것 같은 일, 뒤처지는 것이 두려워 시작하지 못했던 일을 천천히 나의 속도로 해내는 것. 설령 완주하지 못해도 괜찮다. 기념품은 대회에 참가만 해도 받을 수 있으니까. 그것으로 됐다. (97쪽)
- 작가님의 에세이를 보면 ‘주인공다운’ 선망받는 인물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많이 두시는 것 같습니다. 평범한 주변 사람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이끌어 주셔서 좋았어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에 정서적인 끌림을 느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변두리 정서’를 가진 채로 성장했기 때문일 거 같아요. 제가 살던 곳이 청계천 고가 만들면서 철거민들이 이주해 살던 동네거든요. 구역상 서울시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경기도 시흥시였죠. 서울 사람들에게는 서울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렇다고 경기도도 아닌, 서울의 변두리에서 자랐어요. 멋지고 화려한 것을 보고 자랄 기회가 별로 없었죠.
대중적인 인물, 예를 들어 검사와 부자, 미녀가 나오는 이야기를 한다면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도 있겠지만 제가 그런 것에 가깝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도 제 이야기 속에 나오는 동네는 제가 살던 동네이지 않을까요?
- 책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에서도 퇴사 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실 때 평범한 사람들의 트위터 프로필 사진을 모델로 하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작가님의 지향성이 우리와 같은,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데 있는 거 같아요.
그때 만약 연예인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렸다면 더 많은 분이 관심을 가졌을 거 같아요. 하지만 연예인이나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은, 저에게는 현실감이 없거든요. 실제로 그런 사람을 본 적도 없고, 볼 일도 없고, 앞으로도 엮일 일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그림을 그리려면 대상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저도 수명을 들여서 하는 일이니까요. 그림 한 장을 그리더라도 현실 속에 있는 사람,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친근하게 느껴지는 사람을 그리고 싶어서 그랬던 거 같아요. 저에게는 그분들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에서는 회사 생활과 퇴사 이후 이야기를 담으셨어요. 작가님에게는 삶의 어느 시기를 매듭짓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과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반면에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은 이야기를 편안하게 꺼내놓는데 그 안에 위로와 감동이 있었어요. 두 에세이를 내실 때 작가님이 느낀 감정은 상당히 달랐을 거 같아요.
말 그대로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의 경우는 너무 묵혀두자니 이제 썩을 것 같고, 이쯤에서 밀어내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사실은 처음 만화를 시작할 때 비슷한 주제로 제안을 받았는데, 아무 것도 이룬 게 없는데 과거 이야기를 하는 게 주제 넘는 짓이란 생각이 든 까닭에 미뤘지요. 마음의 정리가 안 되어 있어서 편파적인 이야기를 할 거 같다는 이유도 있었고요.
그때부터 몇 년이 흘러서 이제 객관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낸 책이에요. 여기서 일단락을 내고 싶은 마음에 계속 원고를 늘려나가서 책 안에 다 싣지도 못했어요. 미련을 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이야기를 다 쏟아내려 한 것 같아요. 이제 회사, 퇴사에 관한 이야기는 더 이상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썼던 건데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의 경우는 그런 비장함이 없었어요. 말 그대로 그냥 제가 일하면서 문득문득 떠오른, 지금은 사라진 것들에 대해서 쓴 책이죠. 그런 것들을 다른 사람과도 같이 이야기하면서 공유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읽는 분들도 가볍게, 어떤 페이지를 펼쳐 읽더라도 쉰다는 생각이 들면 좋겠다 싶었지요.
할머니는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놀라울 정도로 가볍고, 보드랍고, 주름진 손이었다. 솜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젊은이도. 놀아.”하고 그녀는 말했다. 마치 숨겨진 인생의 비밀을 알려주려는 것처럼. (197쪽)
-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에서 요양원의 할머니가 “놀아.”라고 말씀해 주신 대목에 감동을 받았어요. ‘아, 정말 놀아야지!’라는 결심을 하게 한 대목이기도 했는데요. 할머니의 그 말이 작가님에게는 어떻게 다가왔는지, 지금은 ‘잘 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그때는 참 놀랐어요. 그 당시 나이가 이십 대 초반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사람이 늙으면 정신도 늙는 줄 알았어요. 스무 살의 몸에는 스무 살의 정신이 깃들어 있고, 오십 대의 몸에는 오십 대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줄 알았죠.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저와 연이 없는 아흔 살 할머니가 생의 마지막이 다가오는 순간에 마치 비밀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사실 나는 아흔 살의 몸에 갇혀 있는 열일곱의 정신이라는 것을 이야기하셨어요. 마음은 아직도 열일곱인데 놀지 못해서 서글프다는 이야기를, 인생이 끝나가 거동도 못하시는 와중에 생면부지의 청년에게 꺼내놓으셨잖아요.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을 하니까 또 안타까운 거예요.
‘아, 사람이 늙는다고 마음이 늙는 게 아니구나.’ 했어요. 몸이 고장 났지만, 마음에는 아직도 열일곱 소녀가 살고 있다고 하시는 걸 보면서, 나도 비슷한 과정을 거칠 것이고, 그렇다면 놀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죠.
논다는 개념은 자유롭게 사는 걸 말하는 거 같아요. 본인의 관계나 어떤 지위 때문에 참는 것에서 벗어나 얽매이지 않고 사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어떻게 보면 그게 회사를 벗어나게 된 발단이었던 것 같아요.
내 자유의지로 살겠다는, 내 자유의지로 일을 하겠다는 그 생각을 했고, 그렇게 보면 지금 잘 놀고 있는 것 같아요.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건 오래 하는 것이었고, 그보다 중요한 건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술래잡기건, 숨바꼭질이건 어느 한쪽만 계속해서 이기면 곧장 ‘재미없어’가 선언되었다. 그러면 규칙을 바꿔야했다. 잘하는 아이가 있는 편에선 못하는 아이를 데려갔고, 그래도 계속 ‘쫄리는 편’에겐 절대무적의 ‘깍두기’를 얹어주면서까지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참여하는 모두의 재미였다. (24~25쪽)
-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에서 배드민턴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작가님이 하고 싶은 말도 그 에피소드 안에 상당 부분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제 어떠셨나요?
그 에피소드에서 원래 다루려 했던 소재는 깍두기였어요. 본래 제목은 ‘깍두기가 사라진 세상’이었어요. 옛날에는 놀이를 하면서 약하고 부족한 사람이 있으면 ‘깍두기’를 시켰단 말이에요. 지금은 약하고 소외되고 부족한 사람이 있으면 열외를 시켜버리는 그런 상황을 이야기하고 싶었지요.
- ‘깍두기’가 뭔가요?
너무 어려서 뛸 줄도 모르고 룰도 모르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를 놀이에서 ‘깍두기’를 시켰어요. 깍두기에게는 룰을 철저히 적용시키지 않았어요. 어린 친구와도 함께 놀 수 있는 방법이었죠. 팀에 아무 해가 되지 않고 어린 친구도 소외되지 않아서 즐겁게 게임을 할 수가 있는 거죠. 지금은 깍두기가 없어졌잖아요. 일단 그런 놀이 문화 자체가 없고요. 그렇게 배제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글을 쓸 때마다 작은 외삼촌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책 한 권 읽지 않던 작은 외삼촌도 술술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언젠가 작은 외삼촌이 지긋지긋한 요양원 생활을 그만두고 돌아왔을 때 읽고 “야, 그래. 재밌다. 술술 읽히네.”하고 다시금 나를 칭찬해줬으면 좋겠다. (83쪽)
-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에서 외삼촌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쓰고 싶다고 하셨지요. 글에 관한 작가님의 지향성이 나타나는 부분이었습니다.
가끔 그런 이야기를 들어요. 너무 쉬운 어휘만 사용한다거나 미사어구가 너무 없다는. 그걸 좋게 봐주시는 분들은 담백하다고 봐주시고 좋지 않게 보시는 분들은 독해력이 필요없는 글을 쓴다고 말씀하시죠.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 글을 쓸 때 ‘우리 외삼촌이 이해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써왔어요. 물론 돌아가셨지만 저에게는 가상의 독자가 저희 외삼촌인 것이죠.
외삼촌은 세간의 기준으로 보면 아는 것이 없는 분이지만, 그 분이 기분 좋게 잘 읽었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그걸 위해 더 쉬운 어휘는 없는지 그런 고민을 많이 하는 거 같아요. 가장 쉬운 단어로, 가장 쉬운 문장으로 전달하고 싶은 게 제 마음이에요.
살면서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는 것 중 하나는,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타인도 당연히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것을 왜 못하냐고 종용하는 것 역시 안하려고 노력한다. 가능하다면 ‘정신력’이라는 개념 자체를 뇌에서 지운 채 산다. (58쪽)
- 술 강요하는 친구에게 일침을 한 일화를 보면서 말 그대로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에 관해 생각했어요. 어른이 된다는 건 속된 말로 ‘꼰대짓’을 하기 쉽다는 것이고, 그것을 의식적으로 견제해야 하는 일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것만 두 시간은 이야기할 수 있는데(웃음), 결론부터 말하면 바뀔거라 봐요.
저는 가장 큰 영향은 군대라고 봐요. 사회는 큰 군대잖아요. 폐쇄된 집단에서 가장 말단 폭력의 피해자부터 가장 상단 폭력의 가해자까지, 그 폭력의 위계를 체험하고 온 사람이 사회 막내로 다시 진입하면 군대에서 배운 것처럼 바닥에 포복하는 일부터 시작하죠. 군대에서 배운 폭력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거기에 ‘꼰대짓’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부터 시작이 될 거 같아요.
이전보다 나아지고 있고 궁극적으로는 없어져야 하겠지만 ‘꼰대’들은 내가 ‘꼰대짓’을 하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하고, 우리도 ‘젊은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 반성해야 하고 (정신적인)노화가 빨리 이뤄지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죠.
조심한다고 되는 건 아니겠지만 그게 또 ‘어른이 되는 서글픈 일’인 거 같아요. 내가 그렇게 싫어했던 사람이 했던 걸 내가 그 나이가 되니까 이해되면서, 그가 했던 짓을 따라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섬찟한 일이죠.
꼰대가 된다는 섬찟한 일이라고 써야 하겠네요.
- 일상생활에서 내 행동이 불편할 때가 있어요. ‘이거 꼰대짓 아냐?’하는 문제의식을 자주 갖는데, 불편하면서도 필요한 일인 거 같아요.
저는 인간관계가 좀 드라이했으면 좋겠어요. 그냥 남이라고 생각하면 편한데, 우리는 너무 친밀함을 강조하잖아요. 남이 아니라 나보다 어린, 나의 후배가, 나 때는…. 그렇게 되니까 꼰대가 되는 거 같아요. 저는 기본적으로 반말이 사라진 세상을 꿈꿔요. 기본적으로 일하는 장소에서는 서로 존대를 하는 것이 에티켓이 되면 좋겠어요.
- 어시스트 분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신 일도 그렇고, 신인 만화가 분들에게 타블랫을 지원하는 이벤트도 진행하셨어요. 함께 조금씩 따뜻해지는 일에 관심을 두시는 것 같아요.
제 딴에는 뭐였냐면 저는 어린 시절에 뭔가를 지원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 그런 걸 지원해준다면 기쁘지 않을까? 하는 거였어요. 만화를 그리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타블랫을 마련하는 돈이 부담일 수 있잖아요.
저는 항상 풍족하지 않게 살다보니까 돈을 벌면 ‘이 돈을 내가 써도 되나?’ 생각이 들어요. 일본 판권이 팔리면서 처음에 돈이 좀 들어왔는데 그걸 혼자 갖고 있는 게 무슨 소용일까 싶어서 사무실을 내고 정규직으로 어시스트를 고용한 거죠.
- 어느 영화 리뷰를 보다 보니 작가님이 가장 눈물을 많이 흘린 영화가 아버지에 관한 영화더라고요.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하시는구나 싶었어요. 연재하신 만화 『아만자』에도 아버지의 이야기가 많이 녹아있지요?
아버지는 애증의 대상이었죠. 저에게는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산이면서 끊을 수 없는 족쇄였거든요. 너무 벗어나고 싶지만 또 벗어나고 싶지 않은 존재. 그런데 그런 분이 돌아가셨으니까 슬펐죠. 또 돌아가시는 과정에서 제가 곁에 있지를 못했어요. 회사 다니느라고. 시간이 더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돌아가신 그게 큰 죄책감으로 남아있어요.
『아만자』는 처음부터 아버지를 나로 하고 나를 아버지로 하자고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고 그리다보니까 그런 마음이 투영됐어요. 만화가 109화인데 108화에 가서 주인공의 이름이 밝혀져요. 주인공의 이름이 제 아버지 성함이거든요.
처음에 주인공 이름을 안 쓴 건 아무 의도가 없었어요. 처음 그리는 만화이기도 했고 이름을 정하지 못한 것도 있었는데 108화에 가서야 주인공의 이름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밝혔어요. 그때서야 죄책감을 조금 덜 수 있겠구나 생각했던 거 같아요.
- 『아만자』를 연재하실 때 실제 암환자 분이 작품을 보고 힘내겠다는 댓글을 달기도 하셨지요. 독자와 소통도 많이 하시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최근에 임종이 가까운 분이 호스피스 병동에 계시는데 작가님을 너무 만나고 싶어한다는 연락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제 주변에 있는 사람의 죽음을 안고 가는 것만도 버거운데 제가 독자 분의 죽음을 견딜 수 있을까 부담스러워 며칠 망설였어요. 그 사이에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죠.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49재에 편지를 써달라는 제안을 받아서 편지를 드렸어요. 당사자는 읽을 수 없는 글이지만, 근 몇 년 간 썼던 글을 통틀어 가장 열심히 쓴 글이었죠. 그분이 하늘에서 듣는다면, 참 애썼구나 생각하실 것 같아요. 물론 대중에 공개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어른이 되면, 달콤한 스카치 캔디보다 쌉싸름한 계피 사탕을 좋아하게 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어른이 되는 것은 가여운 일이었다. 언제까지고 이 부드러운 달콤함을 즐기며 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