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릇』 김윤나 “당신의 말은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나요?”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가끔 실감한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너무 적절한 때에 필요한 책을 만날 때가 있다. 한파에 종일 얼어 있다가 만난 뜨거운 코코아 한 잔같이, 마침 그때 가장 필요한 말을 책 속에서 만나는 때가 있다. 말이 조급해지고, 뾰족해지고, 빈약해지는 것을 절실히 체감할 때 만난 책이 김윤나의 『말 그릇』이었다. 책을 읽으며 어느 하나 내 모습이 비쳐 보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지난 11일 청담역 인근 그의 코칭룸에서 김윤나를 만났다. 밖은 한창 겨울인데, 그의 표정은 봄빛처럼 싱그러웠다.
말은 몇 초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오지만, 그 한마디 한마디에는 평생의 경험이 담겨 있다. 따라서 당신의 말 그릇을 살핀다는 것은 말 속에 숨어 있는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과 같다. (42쪽)
한 사람의 말에는 그 사람의 삶이 나타난다. 말 한마디에 삶이 녹아 있고, 그 사람의 마음 상태가 드러난다.
돌아보면 조급해서 그랬다. 이벤트 물품 배달이 늦어지는 택배회사 고객센터에 전화 연결이 될 때까지 예닐곱 번 번호를 누르고, 약속 시간에 늦을까 봐 서둘러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면서 앞사람이 느려도 너무 느리게 가는 것 아닌가 속을 태우고, 그러고 집에 들어오면 새벽까지 술 취해 고성방가 하는 이웃 상가의 소음이 그렇게 짜증이 났다.
부쩍 말이 뾰죡해졌다는 생각에 되돌아보니 마음이 거칠어진 거였다.
말이 퇴행된 지점을 살펴보면 대부분 크거나 작은 마음의 균열이 남아 있다. 균열을 매만져주지 않으면 불필요한 곳에 힘이 실린다. 과부하가 걸린다. (47쪽)
『말 그릇』은 부쩍 마음결이 거칠어진 나에게 참 필요한 책이었다. 맑은 거울이 그러하듯 내 말결이 비춰 보였다.
코칭 심리학자 김윤나는 『말 그릇』을 통해 말의 기술에 앞서 자신의 심리적 근원을 들여다보길 주문한다. 그는 책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말 그릇을 다듬는 방법, 다른 이의 말을 잘 듣는 방법, 자신의 말 공식을 발견하는 방법, 말의 기술 등을 차근히 일러준다.
지난 11일 김윤나를 그의 코칭룸에서 만났다. 1월 초 문을 연 그의 코칭룸은 밝은 햇살이 들어와 포근했다. 방금까지 한파를 뚫고 왔음에도 문득 봄인가 하였다.
- 보통 말에 관하여 다룬 책들이 말의 기술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말 그릇』은 기술보다 오히려 자기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을 강조하셨습니다. 왜 말의 기술보다 마음의 문제가 더 중요한가요?
작가의 문제의식은 사실 자기로부터 출발하잖아요.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제가 7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는데, 그 과정에서 많이 싸우셨어요. 그분들의 싸움과 그 말을 들으면서 ‘가까운 사람에게 저렇게 상처 주는 말을 하는구나, 어른들은 참 말을 못하는 구나.’ 생각했죠.
사실 제가 물려받은 말의 자산이 별로 없어요. 대신 말을 책으로부터 많이 배웠어요. 학부로 국문학을 전공하고 석박사 과정으로 교육학,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언어란 이런 거고, 사람은 이렇다는 공부를 많이 했죠. 그런데도 제 말은 전혀 바뀌지 않는 거예요.
사회적으로 역할을 하거나 기능을 수행할 말하기는 굉장히 그럴싸하게 하지만, 가까운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는 저 자신에게 너무 실망스러울 정도로 ‘왜 나는 말을 이렇게밖에 못할까?’ 싶었어요.
‘왜 내 말은 이렇게 성장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이 책의 출발 지점이 되었지요.
‘왜 공부를 그렇게 많이 하는데 내 말은 바뀌지 않지?’ 그런 고민을 하다 보니까 ‘아, 이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어요. 저는 말의 기술에 관한 것은 정말 많이 알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마음이 바뀌지 않으니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렇다면 내 마음은 대체 어떠한 형태인지, 내 안에 왜 이렇게 억울함이 많은 건지, 왜 나는 내 화를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렇게 표출하는 건지 내 마음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그렇게 제 안의 숙제부터 풀기 시작했고요. 그래서 이 책에 나온 대로 제 안의 공식이나, 제 마음을 조금씩 풀어가기 시작하니 말도 조금씩 변해가더라고요.
말은 마음의 문제라는 걸 저에게서 느꼈고, 고객 분들에게서도 그걸 많이 봤어요. 고객들이 보통 저에게 요청하시는 것은 “말 잘하는 방법 좀 알려 주세요.” “어떻게 하면 잘 포장할 수 있을까요?” 이런 문제인데, 밖으로 표현하는 기술만 바꿔서는 예전 저처럼 다시 돌아갈 뿐이거든요. 방법을 알려드려도 그 분 마음의 색깔이나 마음의 형태가 바뀌지 않으니까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또 본인의 성질대로 하시는 거죠.
고객들에게도 그 분의 마음의 색깔은 무엇인지, 그 사람이 평소에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무엇인지, 그 사람의 공식은 무엇인지를 살피기 시작하니, 그 분들의 말도 변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저도 자신감이 생겼고 『말 그릇』 책을 출간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 책을 읽을 땐 반성하게 되는데 덮고 나니까 다시 습관으로 돌아오더라고요. 마음을 돌아보기 위해서라도 책을 여러 번 두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책이 잠깐의 불편함 이를테면 ‘아 맞아, 그렇게 해야 했는데’ 그 정도만 되더라도 저는 정말 감사해요. 책 한 권 때문에 사람이 갑자기 확 바뀐다거나 그런 건 서로 욕심인 거 같아요. 제 책을 보고 반성했다는 분들이 많은데, 반성까진 아니어도 당연하게 해 온 말과 행동에 불편함이 생기고, 자기 행동에 있어서 버퍼링이 생기는 그 정도에 제 책이 영향을 미친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 실제로 책에 자신의 공식을 적는 대목이 있었는데, 그 대목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일일이 적으면서 살펴보니, 제 공식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가 ‘정직’과 ‘성실’이더라고요. 내가 그런 공식을 가지고 있는 줄 몰랐어요. 사실 그런 마음을 조금은 덜고 편안해져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중요한 것이 ‘말랑말랑함’인 거 같아요. 유연함이 떨어질수록 외로워지고 사람이 딱딱해질 수 있어요. 그럴수록 공식의 유연함이 필요해요.
제가 기업에서 기업 리더들에게 강연할 때가 많은데 그분들에게도 결국은 중요한 것이 어떻게 유연함을 가질까 하는 문제더라고요. 쉽지는 않죠. 공식을 찾는 이유도 “나는 이런 사람이야”를 위해 찾는 게 아니고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그러면 어떻게 공식의 유연함을 만들 수 있을까?” 이걸 위함이거든요.
- 전 직장에서 겪은 상사의 말, 둘째를 고민하고 있을 때 던진 지인의 질문 등 작가님에게 와 닿았던 말들을 예시로 들어주셔서 더욱 이해가 쉬웠어요. 구체적인 예시를 제시하는 데 신경을 많이 쓰셨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 어떠셨나요?
말씀드린 것처럼 제 경험에서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일상 속에서 저를 바꾸기 위해 그런 사례들을 수집했어요. ‘나는 왜 이렇게밖에 말을 못할까?’ ‘이렇게 말을 했던 감정은 무엇일까?’ 나아가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을 했을까?’ 그런 문제들을 저를 위해서 생각했어요. 저를 좀 잘 바꿔보고 싶어서요.
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저를 바꾸기 위해 수집한 사례이기 때문에 책을 쓸 때도 자연스럽게 그런 에피소드가 흘러나온 거 같아요.
- 사실 코칭심리학이라는 분야를 잘 알지 못했어요. 코칭심리학은 무엇인지, 코칭심리학 분야로 나가야 하겠다고 결심하신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쉽게 접하는 분야가 아니다 보니 우리에게 코칭이 필요하다는 걸 알 기회가 없었지요.
맞아요. 사실 곪기 전에 누군가와 풀어내야 하는데, 이게 다른 사람과 이야기해봐도 해소가 되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 곪아서 상담을 받는 분들도 계세요.
주변에 단 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말을 끊지 않고, 섣불리 조언하지 않고, 잘 들어준다면 좋겠어요. 우리가 서로 주변에 있는 한 사람에게 만이라도 마음의 품앗이를 해주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 사실 그런 마음의 여유를 갖기 어려운 환경인 거 같아요. 최근 몇 년간 ‘말’이라는 키워드가 부상한 원인도 살기가 각박해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데요. 이전과는 다른 리더십이 요구되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고, 그만큼 말에 상처받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겠고, 따뜻한 말이 절실할 만큼 사람들이 느끼는 외로움과 소외감이 크다는 의미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얼마 전 강의를 가는데 출근길 버스가 만원이더라고요. 출근하시는 분들이 만원 버스 안에 끼여 가더라고요. 저도 사실 직장생활 할 때 그렇게 출퇴근을 했거든요.
문득 “저렇게 힘들게 출근해서 후배를 보듬어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추운 날 만원 버스에 끼여 고생하면서 출근을 했는데 후배가 일을 잘못해 왔을 때 “그래, 너는 어떤 마음으로 이 일을 시작했니?” 이렇게 질문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사는 일이 각박하고 내 마음 하나도 벅찬데, “너 괜찮니?” 이런 질문을 하는 게 쉽지 않은 거죠.
- 말이라는 키워드가 부상하는 건 결국 마음이 각박하기 때문이라고 보시는 거네요.
네 맞아요. 저는 마음을 파스텔 톤이라고 비유하거든요. 잘 들여다봐야 하고 세밀하게 잘 들여다봐야 하는데 이걸 잘 들여다볼 여유가 없으니까 화만 나고 강한 자극에만 반응하게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말도 그 감정에 맞게 세게 나가고요. 서로 그런 부정적 감정을 주고받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또 우리는 상처가 나면 치유하려는 본능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위로의 말을 열심히 찾아다니는 거예요. 인스타를 검색하면서 치유의 말을 찾아다니고, 그러면서 정작 내 가까운 사람에게는 그렇게 말하지 못하고 또 상처를 주고….
참 비극인 거죠. 상처를 주고 또 치유를 찾아다니는 게.
- 결국 시간에 쫓기고, 바쁘다 보면 마음결이 거칠어지는 거 같아요. 저도 그런 경험이 있어요. 업무 때문에 약속에 서두르고 있는데 때마침 지하철이 도착한 거예요. 열심히 지하철 계단을 가는데 앞사람이 너무 천천히 가시더라고요. 그 바람에 눈앞에서 열차 문이 닫히는데, 순간적으로 ‘아, 빨리 좀 가지.’ 짜증스러운 생각이 나더라고요. 내가 마음결이 참 거칠어졌다고 느꼈죠.
에디터님은 나를 위한 시간을 마련하실 수 있나요? ‘오늘 하루 나는 어땠나?’ 생각할 시간을 마련할 수 있어요?
- 거의 없는 거 같아요. 책에서도 오리지널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진짜 감정을 알아채는 일이 쉽지는 않은 일 같아요. 그때 저도 그 짜증이 난다고만 생각했는데, 다시 돌아보니 약속 시각에 쫓기는 조급함이었어요. 자신의 진짜 감정을 알아채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오늘 나의 하루는 어땠나?’ 생각할 수 있는, 나를 위한 시간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이를 먹을수록 역할이 점점 많아지잖아요. 회복의 시간, 고독한 시간,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이 없다면 아무리 내 감정을 알아내고 싶어도 알아차리기 어렵다고 봐요.
하루에 단 5분이라도 핸드폰을 차단하고 조용히 나를 만나는 시간, 고독한 시간을 찾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두 아이의 엄마거든요. 정말 정신이 없어요. 오늘 인터뷰에 나올 때도 막 화장을 끝냈는데 아이가 울어서 달래고…. 정말 정신없이 나왔거든요.
그런 상황이지만, 제 시간을 가지려고 정말 노력해요. 그게 없으면 에디터님이 경험하신 것처럼 답답하고 화가 나기 시작하고, 그 감정이 또 아이들에게 가고 악순환이 되는 거죠.
자기에게 어울리는 ‘자기진정 스위치’를 발견해서 과열되었을 때 그 버튼을 누르고 잠깐 동안 멈출 수 있는 사람은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때문에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가려낼 수 있다. (87쪽)
- 책에서 자기에게 어울리는 ‘자기진정 스위치’를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상당히 중요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노사회이기도 하고 점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벌어지는 사건이 늘고 있는 거 같아요. 작가님은 어떤 ‘자기진정 스위치’를 갖고 계시는지, 어떤 방법을 추천하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저는 일단 권하고 싶은 게 모의실험이에요.
감정이 격해질 때는 숨을 깊이 쉬라는 말을 전문가들이 많이 하시는데 그게 맞는 분들도 있고 어떤 분들은 시각적인 것이 맞는 분들도 계세요. 또 자기 몸을 바쁘게 움직이는 게 맞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여러 방법 중에서 나를 전환할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해요.
저도 자기진정 스위치를 찾기 위해 다양하게 노력했어요.
저는 강연을 갔다가 늦게 집에 들어올 때 집 안 청소가 되어 있지 않고, 아이들이 씻지 않고 있으면 섭섭할 때가 있어요. 사실 신랑도 회사원인데 퇴근해 두 아이를 보는 게 얼마나 고생이겠어요. 그런데 저로서는 힘들게 일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아이들을 씻기지도 않고 있고, 집안이 난장판이면 ‘애들 좀 씻겨 놓지.’ ‘집 좀 치워 놓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저도 자기조절 스위치를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봤어요. 차 안에서 1분간 기도를 하기도 하고, 사진 폴더에 에너지 관리 폴더를 따로 만들어서 제게 힘을 주는 사진들을 보며 에너지를 얻기도 하고요.
그렇게 마음을 진정하고 집에 들어가도 사실 짜증이 나거든요. 그럴 때는 겉옷만 벗어놓고 일단 걸레질부터 해요. 걸레질을 하면서 여러 생각을 해요. 남편에게 바로 “왜 애들 안 씻겼어?” 하지 않고 그 10분 동안 저와 대화를 나누는 거죠.
‘아, 내가 지금 좀 짜증이 나기는 했지만 오늘 남편이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어. 회사 퇴근하자마자 바로 와서 아이들을 보고 있잖아. 그러면 내가 이 걸레질 끝내고 뭐라고 이야기해야 신랑도 힘이 나고, 나도 화가 덜 날까?’ 이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 걸레질하는 10분이 저를 진정하는 굉장히 좋은 시간이거든요. 그런데 어떤 책을 보더라도 “10분간 걸레질을 하면서 마음을 진정시키세요.” 이렇게 말하는 책은 없어요. 저는 모의실험을 많이 해봤기 때문에 저에게 맞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던 거예요.
내가 어떻게 했을 때 내 마음이 잘 진정되는지 여러 모의실험을 통해 잘 맞는 방법을 찾으셨으면 좋겠어요.
- 내면 아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해 주시기도 했고, 감정을 배우지 못한 채 자란 어른들에 관하여 말씀해 주셨지요. 어떻게 보면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표현하는 데에 참 서툴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많은 사람이 ‘어른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감정을 더 솔직히 들여다보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른들에게는 모의 시연이 허락되지 않잖아요. 그것이 오로지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니까 쉽지 않죠.
우리는 누구나 안전한 환경이 필요해요. 아이들도 많이 넘어져 봐야 걷잖아요. 엄마들이 아이들이 넘어지는 것에 대비하기 위해서 바닥에 매트를 깔고 안전한 환경을 조성해주는데, 어른들에게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지요.
어른은 연습없이 대번에 실전으로 넘어와야 하는 건데, 우리는 누구나 미성숙한 부분이 있잖아요. 자기 안에 덜 자란 모습을 만나는 게 누구나 필요해요.
철마다 옷장 정리를 하듯이 우리 내면도 그렇게 정리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어른들은 그런 정리가 필요하다는 걸 잘 모르고, 실제 정리하는 게 힘들죠.
과거 자신의 마음을 정리해야 다시 돌아와도 가뿐해지는데, 그렇게 정리하지 않으면 계속 반복되는 겁니다. 우리는 완성되지 못한 이야기를 반복하잖아요.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완성되지 못한 이야기를 한 번쯤은 정리할 필요가 있어요.
- 그런 대화를 통해서 누군가의 변화를 이끌어 냈을 때 보람이 클 거 같아요.
코칭을 처음 배울 때는 ‘몇 번 코칭을 하면 이 사람을 드라마틱하게 변화시킬 수 있을 거야.’ 이런 부푼 꿈을 안고 시작한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인간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그렇게 만만치는 않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 제가 욕심을 버리려고 노력해요. 어떤 분을 고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분의 삶에서 그동안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해왔던 것에 관해 의문을 갖게 하는 걸 코칭의 목표로 삼아요.
많은 리더가 “내가 예전에는 당연하게 화를 냈는데 이제 그것이 조심스러워졌어요.” 이런 말을 하실 때 그것만으로도 보람을 느껴요.
제가 처음 코칭을 시작했을 때가 20대였는데, 50대 어떤 어머니와 코칭했던 기억이 굉장히 오래전 일인데도 생생해요.
그 어머니는 어느 식음료 업체에서 설거지하시는 분이었어요. 그때 코칭을 막 배운 시기이니 제가 뭘 잘했겠어요? 저는 그냥 잘 들어드리고 잘 질문을 드렸던 거 같아요. 그런데 그 어머니가 딸뻘인 제 손을 붙잡고 막 우시면서 “어디 가서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겠냐. 내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고맙다.” 이러시더라고요.
저는 그 경험이 잊히지 않아요. 일에서 사람을 변화시킨 보람을 이야기해달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저는 어떤 사람을 바꾼 것보다는 내가 그 사람의 삶에 잘 머물러서 그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그런 경험, 그것이 오히려 더 강하게 남아요.
‘아, 이 사람의 삶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구나’ 싶고,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 주었다는 생각이 들 때, 그게 더 보람 있어요.
저는 변화를 돕는 사람이지만, 변화보다 더 필요한 것은 나에게도 그런 한 사람이 있다는 것, 나에게도 나를 응원하는 사람이 있음을 아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사람은 기꺼이 변하려고 노력하거든요. 저도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말 기술도 내게 맞게 체화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47쪽)
- 책에서 질문의 여러 유형이 나와 있어서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실제 강연하시면서는 “질문하지 마라”고 말씀하신다는 게 재미있었어요. 질문의 기술을 체화하려면 어떤 연습이 필요하겠습니까?
부작용이 너무 커서 바로 질문하지 말라고 말씀드리죠. 질문하는 것은 굉장히 좋지만, 질문이란 곧 창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잘못 다루면 남을 찌를 수 있거든요.
남에게 관심을 두고 질문을 하랬다고 해서 대뜸 “너 왜 이렇게 했니?”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이 많은데, 자신은 뭔가를 더 알려주려고 묻는 건데도 상대방은 책망하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거든요. 잘못 쓰이는 경우가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숙성시키라고 말씀을 드리는데, 그 숙성은 다른 사람에게 질문을 사용하려고 과욕을 부리지 말고 본인에게 먼저 질문하는 연습을 해보라는 거죠.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연습을 해보시고 ‘아 이런 질문이 나를 기운 나게 하는구나.’ ‘이런 질문은 나를 굉장히 진 빠지게 하는구나.’ 본인 스스로 질문을 단련시켜 놓으면 이 창을 좀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거죠.
스스로에게는 질문을 잘 사용하지 못하면서 누군가에게 자꾸 질문을 쓴다는 것은 사실은 잘못 다룰 확률이 높죠. 스스로 질문하고 답변하면서 자신의 질문을 숙성시키는 연습을 하신 후에 다른 분에게도 사용하시면 좋겠어요.
- 실천까지 가려면 연습이 많이 필요하겠네요.
워킹맘으로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힘들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스스로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많이 해요.
저는 그 질문이 상당히 힘이 되거든요. 이 질문을 잘 숙성 해보면 이 질문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노하우가 생겨요. 그럼 이 질문을 다른 후배들에게도 해보는 거죠. “너는 그럼 지금 상황에서 해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뭐라고 생각해?” 이렇게요.
내가 이런 질문을 잘 써봤고, 이 질문이 어떤 힘을 가지는지 아니까 조심스럽게 쓸 수가 있어요.
또 다리를 놓는 것도 중요해요. 질문을 쓰기 전에 저 사람과 내가 얼마나 안전한 관계인가 하는 다리가 필요하죠. 그 사람의 의도를 잘 들어주고 그 사람이 힘들 때 함부로 조언하지 않고 잘 들어주는 연습을 평소에 해 놓으면 다리가 생기는 거거든요.
그 다리가 튼튼하게 세워지면 내 질문이 아직 서툴러도 상대방이 그 다리를 통해 내 말을 잘 들어주죠. 그런데 평소에 그 다리를 놓으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질문만 던지면 상대가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질문을 내면에서 성숙시키는 것, 그리고 그 질문이 잘 건너갈 수 있는 튼튼한 다리를 만드는 것. 이 두 가지가 중요합니다.
- 독자 분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면 자유롭게 부탁드립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대인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나는 왜 말을 이렇게 하나’ 반성하는 분들이 많은데, 우리가 사실 말실수는 평생 하지 않겠어요?
대인이 될 필요는 없고 모든 말이 성숙할 필요도 없어요. 때로는 논쟁도 해야 하고 어느 땐 흥정도 해야 하죠. 모든 말을 부드럽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필요한 순간에, 중요한 순간에 ‘내 말이 누구를 지킬 수 있는가.’ 이걸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것도 욕심내지 말고 한 사람 만이라도요. 그것이 내 아이일 수도 있고 내 친구일 수도 있어요.
살다보면 정말 중요한 순간이 있어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내 말이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는 정도의 힘을 갖고 사는가.’ 문득문득 그것을 돌아보면서 살았으면 합니다.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건 그걸 잘하려면 혼자 있는 시간을 갖고 내 마음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바쁘게 살지만, 그 안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잊지 않으면 좋겠어요.
김윤나는…
코칭심리학자이자 기업 전문 강사. 심리학에 기반을 둔 자기이해,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인간관계에 관한 코칭 및 강의를 하고 있다. 한양대학교 교육대학원(인재개발 전공)을 마친 후 광운대학교 산업심리학과 박사과정(코칭심리전공)을 수료했다. 한국코칭심리학회 회원이자 한국코치협회 인증 전문코치 KPC이며, 2013년에 한국 HRD 협회가 인증한 ‘BEST 코치’로 선정되었다. 현재 THE연결 대표로 SK, LG, 삼성, 롯데, 두산, 현대, 신세계 등 수많은 기업에서 커뮤니케이션 및 심리·관계 코칭을 담당했다. 저서로는 2014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로 선정된 『나공부』와 『외로운 내가 외로운 너에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