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아무에게도 걱정을 끼치지 않는, 고요한 아픔의 시간으로 성장한 이들은 위로의 대상에서 제외되곤 한다. 그런 아픔은 드러나지 않아 외롭고, 목격자가 없어 나만의 기록으로 남는다. 문가영의 이야기는 그런 이들이 처음 만나는 공감과 위로가 될 것이다.
- 김이나 (작사가)
여러 배역의 인생을 산 배우의 삶은 하나의 삶일까, 여러 사람의 삶일까. 별로 중요한 질문이 아니다. 삶에서 중요한 건 개수가 아니라 얼마나 진실했느냐니까.
이 책의 이야기들은 파타가 쓴 걸까, 파타 역을 한 사람이 쓴 걸까. 역시 별로 중요한 질문이 아니다. 이야기에서도 중요한 건 누가 썼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솔직했느냐니까.
솔직함은 악기의 울림처럼 우리와 공명한다.
혼자 보는 거울에 있던 외롭고 슬픈 사람의 웃는 얼굴.
우리는 기어이 진실해지기 위해 기꺼이 거짓말이 된다.
- 이혁진 (소설가, 『사랑의 이해』 저자)
책 속에서
“넌 벌 받아야 해. 내가 없는 세상에 사는 벌.”
마주 보고 서 있는 파타는 이야기했다.
그렇게 사라진 그녀를 떠올리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떠올리는 것, 쫓아가는 것,
글을 쓰는 것.
즉 기록하는 것이다.
---p.13
“헤어지자.”
“내가 써준 편지 내놔.”
이 대화에서 알 수 있듯 파타에겐 마무리보다 자신의 편지가 중요했다. 하얀 종이에 얹어지는
활자들은 그녀의 감정들을 대신하고, 그녀의 넘치는 사랑은 모음 끝에서 뚝뚝 흘러내린다. 그래서 파타는 자신이 쓴 편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는 걸 좋아한다. 본인이 쓴 연애편지가 자신을 설레게 할 정도이니. 누군가가 이렇게만 써준다면 참 좋을 텐데.
한 아름 편지들을 안고 집에 도착했다. 안심했다.
‘내 맘을 돌려받았어. 난 잃은 게 하나도 없네.’
---p.21
“전 정체성을 찾고 있어요.”
“아주 좋은 시기네요.”
“근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요.”
파타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고 경계인은 파타를 보지 않은 채 말했다.
“매년 올라가야 하는 계단은 높이도 다르고 깊이도 달라요. 작년보다 이번 계단이 유독 높았나보네요. 그래서 적응하는 중인가 보다. 그건 혼돈의 시기가 아니라 빨리 온 축복이라고 하는 거예요. 정체성을 찾아야 해. 그게 앞으로의 몇 년을 책임질 거야. 정리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비빔밥을 만들어버려요. 아주 좋은 축복이니 자꾸 연구하지 말고, 그냥 관찰해.”
---p.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