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마침 1990년대생, 밀레니얼 세대를 호명하고 새로운 청년 세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많은 세대론 안에 내가 만난 90년대생들은 없었다. 평균 연령 28.4세, 각자의 방식으로 커리어를 일구며 자기 삶의 단독자로 살아가는 1990년대생 여성 10명과의 대화를 이곳에 한데 묶은 이유다. 이 책은 세대론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20~30대 많은 여성들이 왜 이토록 이들을 사랑하고, 지지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새 세대의 가장 자리를 더듬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6쪽
Q. 국적과 인종, 세대를 막론하고 많은 여성들이 ‘자신이 어떻게 보여질지’를 습관적으로 생각하도록 길러지기도 했죠. 보여지는 모습으로 인해 억압받는 여성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어요? A. 타인에게 ‘어떻게 보여지는가’는 다소 모호한 질문 같아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따라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불안이 여러 방향으로 나타날 수 있으니까요. 다만 저는 ‘내가 매력적으로 보일까’보다 내 동료들에게 ‘내가 유색 인종으로 비치지는 않을까’를 염려했어요.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이 백인이었고, 내가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종종 나를 좋아하지 않았으니까요. 이런 경우는 모든 종류의 불안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만약 누군가 당신을 당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싫어한다면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이 사실은 저 자신에게도 더 진실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줬어요.“ - 52쪽
인터뷰 중 김초엽 작가는 “SF가 늘 전복적인 것은 아니지만 작가가 쓰기에 따라 굉장히 진보적이고 전복적일 수 있는 장르”라고 말했다. 그는 진보와 전복이 지닌 힘을 믿는다. 그 믿음 아래 이 땅의 규칙과 질서를 의심하기도 하고, 세계의 가장자리를 세심히 더듬고 민낯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만든다. 타고난 낙관이 아니라 의지로 낙관을 실천하며 책상 앞에 다시 앉는다. 오늘, 이 자리의 변화가 더디고 지난할수록 도래할 내일에 대해 쓴다.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싸우고자 나서는 일은 두렵다. 최소한 번거롭다. 그럼에도 떨치고 싸우고자 하는 사람, 다짐함으로써 용기를 장전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만드는 세계라면 철저하게 망가진 지구든, 이역만리의 외계행성이든 그 어디라도 나는 기꺼이 따라 나서고 싶다. -89쪽
Q. 반면 황소윤으로서 한 일련의 발언이나 행동들이 여성들에게 힘을 실어준 사례가 많은데요. 자신이 해온 많은 것들에 대해 성량 좋게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A. 아니요. 저는 존재이고 싶거든요. 의미부여를 해서 여자가 이런 일을 했다라고 크게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황소윤이 하는 것들이 여자가 하는 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어요. 나는 황소윤인 거고 그 앞에 어떤 수식도 붙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그건 제 음악을 들어보면 알 수 있어요. 저는 누군가를 대변하는 가사는 쓰지 않아요. 내가 느끼고 살아가는 바에 대해 가사를 써요. 다만 저의 말이 곧 여성의 말이 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칠 수 있겠죠. 저 역시 보탬이 되고 싶고요. 하지만 내가 단지 여성이라고 해서 여성에게만 힘을 주는 건 큰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108쪽
당시 그의 일주일 단위의 일과를 들으며 나는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물었고 그는 ‘저주받은 책임감 때문에 서로 멱살 잡고 끌고 가는 것’이라 답했다. 그의 화두는 살아남는 것이라고 했다. 삶을 철학적으로 사유하고 의미를 찾을 겨를 없이 오늘 살아남아야 한다고. 그 가운데 나를 잃지 않고 살아남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을 하며 나를 완전하게 지키는 것이 가능할까? 누구도 그럴 수 없고, 일을 통해 깎이기도 하고 덧입혀지기도 하는 것이 어른의 성장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자신이 가진 것, 미흡한 것들 중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끝내 지키고 싶은 것 하나씩은 있다. 그게 무엇이든 남겨 둬야 내 인생에서 상관없는 사람들의 평가는 가뿐히 넘길 수 있고, 우직하게 몇 걸음 더 내디딜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 납작해진 나를 부풀리고, 쭈글거림을 팽팽하게 펴는 건 오직 나로부터 나오는 힘일 테니까. -146~147쪽
Q. 이주영에게 강함은 어떤 의미예요? 강한 사람인가요? A. 영화 〈메기〉 촬영 초반까지만 해도 뭔가 다 내가 감당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좀 힘들었어요. 내 몫을 내가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거든요. 근데 점차 촬영을 하면서는 이게 나만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고, 나의 부족한 부분을 누군가가 채워줄 수 있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아, 내가 왜 이렇게 못하지, 내가 못한 걸 내가 다 해결해야 돼’ 했지만 내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이 해줄 수도 있는 거더라고요. 어떤 작품 그리고 어떤 관계 속에서 내가 모든 걸 다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최근 들어 배웠어요. 나 혼자 강해지려 하기보다 곁의 사람들과 함께 해나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것이 진짜 강함이라는 생각이 이제야 조금씩 들어요. -202~203쪽
자기검열의 망망대해에서 허우적거려도 이 생이 좋은 건 매달 각자 다채로운 방식으로 허우적거리고 있는 옆자리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점이 패션지가 하는 페미니즘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취향과 사고방식, 가치관 등이 고유하게 다른 20여 명의 개인들이 매달 모여 다르고 다양한 여성들을 새로운 앵글과 목소리로 보여주는 것이 패션지가 하는 일이니까. 또 어느 매체보다 변화와 전복, 수많은 가능성을 환대하는 집단이니까. 그러니 패션지는 무엇을 입느냐에 따라 하루의 기분과 태도가 결정될 만큼 옷이 지닌 힘을 잘 알면서도, 신발 한 켤레를 구매할 때도 환경과 윤리를 함께 소비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는다. 이건 사야 한다며 소비를 찬양하다가도 곧바로 다음 페이지에선 아무것도 사지 않을 때, 아무것도 바르지 않을 때 느낄 수 있는 가뿐함과 홀가분함에 대해 긴 지면을 할애한다.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것들을 한껏 펼치다가도 다음 페이지에선 지체 없이 정색하며 아름답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낯설고 괴상한 아름다움도 가능하다는 것을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로 보여주며 설득하기도 한다. -242-243쪽
Q. 다음 한발을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 계속해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여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누군가가 써서 주는 역사, 그걸 통해 배우는 역사 말고 자기 이야기를요. 저는 제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거든요. 그래서 책으로 쓰고 영화로도 만드는 거예요. 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왜 나만 알아야 하나, 모두 다 같이 듣자 하고요. 그렇게 각자 자기 이야기를 역사로 만들고 신나게 보여주고 떠들 때 다양성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봐요. 요즘 독립영화 신에서 여성 감독들의 약진이 있었잖아요. 저는 그분들이 다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자기 이야기를요. 그 이야기를 계속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2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