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
반 아이들의 시선이 허공에 뜬 내 몸을 향해 쏠렸다
어느새 교실 문 너머 몰린 무리들이 입을 가리고 키득거리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입꼬리들이 나를 천장까지 잡아당기는 기분
어때? 재밌지? 재밌지?
―「구겨진 교실」에서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라는 말은 ‘너의 웃음을 나도 좋아한다’라는 동조일 수 있지만, 갖지 못한 ‘그 웃음’에 대한 선망일 수도 있다. 이기리의 시에서 ‘그 ?웃음’은 ?마치 ?‘당신들의 천국’처럼 ?내가 ?가질 ?수 ?없는 ?무엇이다. 시 속 어린 화자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다. 교실부터 복도, 화장실까지 괴롭힘이 들러붙는 와중에, 잔인하게 치켜 올라간 아이들의 입꼬리는 나를 천장까지 잡아당기는 것만 같다.
그런 화자에게도 ‘너’라고 부를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 빈 교실에 함께 남아 있는 너, 나에게 무슨 말인가를 적어 전하는 너, 함께 있는 시간을 계속하고 싶은 너. 그러나 ‘너’의 웃음은 알 수 없는 채로 남고 나는 아직 네가 듣고 싶은 말을 할 수가 없다. 차마 웃을 수 없는 자신의 낯선 표정을 숨기기 위해 서랍을 열면, 그 속엔 “이미 숨겨 두었던 정체들”(「싱크로율」)이 가득하다. 이기리의 화자는 웃음을 짓는 대신 구름을 보며 “비를 맞는 표정”을 짓는다. 붉어진 저녁 하늘을 보며 “이제 다른 행성의 노래를 들어도 될까”(「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 하고 생각한다.
■ 충분한 안녕
손목을 심장 가까이 구부렸다가
아이들을 향해 원반을 던진다
긴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원반은 빛의 모서리들을 껴안고
아프지 않은 모양이 된다
―「충분한 안녕」에서
같은 웃음을 지을 수 없어서일까, 이기리의 시 속에서 화자는 자주 혼자 남아 있다. 빈방에 문을 닫은 채 홀로 누워 있고, “수많은 등장인물을 없애고”(「유리온실」) 숲에 혼자 남기도 한다. 그 공간은 마치 유리온실처럼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현실에서도 화자가 보는 것은 누군가가 떠난 “구겨진 자리”(「오로라」), 함께 있지만 입속에서는 “차갑고 딱딱한 것이 깨”(「재회」)져 버리는 한순간, “당신과 멀어질수록 환해지는”(「빛」) 자기 자신이다.
그러나 혼자 남아 “더 정확한 울음”(「번안곡」)을 듣고, 어쩔 수 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이후, 비로소 시인은 “아프지 않은 모양”(「충분한 안녕」)으로 인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구겨진 얼룩 위에 조금 다른 무늬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미 진 주름을 펼 수는 없으니 그것은 새롭게 구겨지는 일에 다름 아닐 것이고,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나의 말은 당신에게 온전히 가닿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물러섬 없이 마주한 끝에 시인이 건네는 안부 인사는 그만큼 더 단단하고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