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0원 이상 구매시 배송비 무료
※출고 예정일은 도서 재고상황에 따라 변동 될 수 있습니다.
토시오는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하며 한숨을 쉬었다. 돌고래 150명, 인간 일곱 명, 침팬지 한 명에 불과한 우리가 무엇을 발견할 것이라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어?
그것을 발견한 게 왜 하필이면 우리였단 말인가?
각각의 크기가 달만큼 큰, 5만 대의 우주선 함대. 스트리커호가 발견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돌고래들은 일찍이 그 누구도 발견한 적이 없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은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유령 선단을 발견하고는 대흥분에 휩싸였다. 크라이다이키 선장은 정신파 통신을 통해 지구에 보고한 뒤 지시를 기다렸다.
젠장! 지구에 보고는 왜 그렇게 급히 했냐고! 귀향한 다음에 보고해도 됐잖아? 생각도 못 한 미지의 장소에서 거대한 우주선 선단을 발견했다고 온 우주에 알리고 싶었단 말인가?
지구 평의회는 다음과 같은 암호 지령을 내렸다.
「숨으라. 명령을 기다리라. 응답하지 말라.」
물론 크라이다이키는 즉시 명령에 따랐다. 하지만 은하계의 주인 종족들 가운데 이미 절반 이상이 스트리커호를 추적하기 위해 함대를 보낸 뒤였다.
-pp.35~36
* 바다를 ─
닫은 채
* 꿈이 끝없이 ─
펼쳐진 곳에서
* 같은 조상을 둔 ─
흑등고래가
* 근심 어린 물고기들에게 ─
노래를 불러 주는 곳
* 이곳에서 당신은 나를 찾으세요 ─
떠도는 이여
* 인간의 음율 ─
그 속에서조차
* 인간들과 ─
다른 보행자들이
* 별들을 보며 ─
웃음 짓는 이곳이라 할지라도…… *
심장 박동이 느려지면서 행복감이 온몸으로 밀려왔다. 크라이다이키는 다정한 꿈의 여신 곁에서 잠들었다. 여신은 조상들이 사용하던 혼란스러운 원시어 대신 융통성 없고 뻣뻣한 삼진어로 시구를 읊으며 그가 자신을 꿈꾼 것을, 그리고 엔지니어가 된 것을 가볍게 나무랐다.
여신은 삼진어로 족한 원초의 바다로 크라이다이키를 안내했다. 그곳에서 크라이다이키는 <고래의 꿈>과 그곳에 사는 고대 신들의 분노를 어렴풋이 느꼈다. 그것이 엔지니어가 느낄 수 있는 바다의 전부였다.
때때로 삼진어는 얼마나 융통성이 없는가! 소리와 기호가 겹쳐지는 형태는 거의 인간의 언어만큼이나 정확했으며…… 또한 그만큼 제한도 컸다.
그러한 표현을 칭찬으로 여기도록 크라이다이키는 교육받았다. 유전자 개량을 통해, 크라이다이키의 두뇌 일부분은 인간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가끔씩 혼란스러운 음상(音像)이 떠오르고 고대의 노래가 어렴풋이 들려와 크라이다이키를 혼란에 빠뜨렸다.
-pp.58~60
유리를 사이에 두고, 고대의 시체가 질리언을 향해 씩 웃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이 물체가 살아 숨 쉬고 우주선을 타고 날았을 당시, 지구에는 다세포 생물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 물체는 섬뜩하리만치 인간과 비슷한 형체를 하고 있었다. 쭉 뻗은 팔다리, 인간과 아주 비슷한 머리와 목. 턱과 안구가 기묘해 보였지만 두개골에는 인간과 아주 닮은 웃음이 걸려 있었다.
<당신은 몇 살인가요, 허비, 10억 살? 20억 살?> 질리언이 속으로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당신의 고대 선단은 은하 문명에게 발견되지 않은 채, 우리가 갈 때까지 그곳에 있을 수 있었나요? 왜 하필 우리에게 발견된 거죠? 어린 늑대 새끼 같은 인간 몇과 갓 지성화된 돌고래들뿐인 우리에게 말이에요. 그리고 왜 당신에 대한 짧은 입체 영상 하나를 지구에 보냈다는 이유로 은하계의 주인 종족 절반이 저렇게 미쳐 날뛰는 건가요?>
스트리커호의 소형 도서관은 도움이 안 되었다. 도서관은 허비를 확인하려는 것조차 거부했다. 아마 금지된 듯했다. 아니면 오래전에 사라진 이상한 종족의 기록을 담고 있기에는 용량이 너무 작은지도 몰랐다.
-pp.107~108
지구인을 생각하니 크래트의 교합 집게가 부르르 떨렸다.
겨우 3백 년밖에 안 된 주제에 지구인들은 경건한 체하는 칸텐 종족이나 악마처럼 교활한 팀브리미 종족에 버금가는 골칫거리가 되어 있었다!
소로 종족은 일족의 명예를 더럽힌 얼룩을 지울 적당한 기회만을 끈질기게 기다려 왔다. 다행히도, 인간은 거의 가련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무지하고 허약했다. 어쩌면 이미 기회는 온 것인지도 모른다!
호모 사피엔스가 소로 종족을 위해 노역하고 봉사하도록 만든다면 얼마나 달콤할까? 그럴 수 있다! 그렇다면 개량도 할 수 있겠지! 인간들을 제대로 개량하리라!
크래트는 승무원들을 바라보며 마음대로 유전자를 휘저어 개량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성숙한 종족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면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법률을 바꿔야 했다.
만약 지성화된 지구의 물살이 포유류가 찾아낸 것이 그녀가 생각하는 것이라면……. 시조 종족이 돌아온 것이 사실이라면 법률이 바뀔 수도 있다. 가장 최근에 우주여행을 시작한 종족이 유령 선단을 발견했다니, 이 얼마나 얄궂은 일이란 말인가!
-pp.118~119
「제가 인간의 사고방식에 그렇게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배스킨 박사님?」 니스가 물었다. 니스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연민이 담긴 듯 바뀌어 있었다. 「저의 주인인 팀브리미 종족은 아주 교활합니다. 또한 대단한 적응력이 있기 때문에 이 위험한 은하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지요. 하지만 팀브리미 역시 은하계 사고방식에 빠져 있습니다. 당신네 지구인들은 참신한 관점으로 팀브리미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곤 하지요. 산소 호흡 종족들 사이에서는 다양한 행동 양식과 믿음이 존재하지만 인간처럼 독특한 경험이 있는 종족은 사실상 없습니다. 주도면밀하게 지성화된 보호 종족들과 달리, 인간은 지성화 전에 온갖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그러한 시행착오 덕분에 당신들은 다른 종족들과 다릅니다.」
그건 사실이었고, 질리언도 알고 있었다. 초창기 인간들은 온갖 멍청한 짓을 했다. 자연법칙을 아는 종족이라면 절대로 저지르지 않을 어리석은 짓들이었다. 야만의 시절에는 무모한 미신이 번성했다. 온갖 정치 형태, 음모, 철학이 시도되었다가 버려졌다. 고아인 지구 전체가 하나의 실험실이 되어 터무니없고 기묘한 온갖 실험들이 행해지는 것만 같았다.
이제 와 돌아보면 불합리하고 창피한 짓들이지만, 그러한 경험이 현대 인류를 풍요롭게 했다. 그렇게 짧은 기간에 그토록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또한 해결 불가능한 문제에 어떻게든 답을 내보려 애쓴 종족은 거의 없었다.
단조로운 삶이 지겨워진 ET들은 지구의 예술가들을 쫓아다니며, 은하 문명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두둑한 대가를 지불했다. 팀브리미는 드래곤, 오거, 마법이 잔뜩 등장하는 인간 종족의 판타지 소설들을 특히 좋아했다. 더 많을수록 좋았다. 그들은 그러한 내용이 무척이나 기괴하고 생생하다고 생각했다.
니스가 말했다. 「당신이 도서관 때문에 낙담했다고 해도 저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쁩니다. 저는 당신들이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것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웁니다! 당신들은 모든 은하 종족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내용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제가 여기서 당신들을 돕는 건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올레이 부인. 제게 가장 주요한 임무는 당신들이 고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 pp.247~248
대전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천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미국 미시간 대학에서 이온 추진 엔진에 대한 연구로 항공우주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플라스마를 연구한다. 옮긴책으로 코니 윌리스의 《둠즈데이북》, 제임스 S.A. 코리의 《익스팬스: 깨어난 괴물》, 코니 윌리스의 《화재감시원》 (공역),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자젤》, 세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 댄 시먼스의 《히페리온》, 마이크 레스닉의 《키리냐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어슐러 K. 르 귄 걸작선집 등이 있다. 헨리 페트로스키의 《이 세상을 다시 만들자》로 제17회 과학기술도서상 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시공사의 〈그리폰 북스〉, 열린책들의 〈경계 소설선〉, 샘터사의 〈외국 소설선〉을 기획했다.